열애설 (하)

by 유리

"수화기가 꺼져 있어 소리샘으로..."

벌써 4번째 걸고 있지만 홍주의 휴대폰은 꺼져 있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연락이 일절 안 됐다. 혜정은 문자메시지함을 열었다. 아까 왔던 모르는 번호를 찾았다.

"그러게. 내가 당신 남자친구가 여자랑 있다고 했잖아요"

모든 걸 알고 있는 듯한 말투. 이 사람은 처음부터 홍주가 다른 여자와 같이 있는 걸 알고 있었다. 혜정은 고민하다가 통신사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네. 고객님 안녕하십니까.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상담 직원이 하이톤의 친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왔는데요. 누가 보낸 건지 확인이 가능한가요?"

"아 고객님...그거는 개인정보보호 때문에 확인이 어려우세요."

"아..."

"도움이 못 되어드려 죄송합니다. 고객님"

"아..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고객님 혹시 범죄의 피해 사실이 있으시면 경찰서를 통해 확인해보실 수도 있으세요."

"범죄요?"

"네. 고객님께서 해당 번호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으셨거나, 사기를 당하신 거라면 신고하셔서 확인해보실 수 있으세요. 물론, 대포폰이라면 실소유주를 알기 어렵겠지만요. 경찰 조사를 통해 범죄로 인정될 경우에 한해서, 확인을 요청하실 수 있으세요. 하지만 그것도 바로는 안 되고, 좀 걸리실 거예요. 개인정보보호법 때문에 확인해야하는 절차가 강화돼서요."

"아..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고객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경찰을 통해 확인이 가능할 수도 있다라...답답해진 혜정은 연락처 목록에서 이 형사의 번호를 찾았다.

'뭐...한 번 물어나 볼까'

하지만 이 문제로 그에게 전화번호가 누구 것인지 물어보는 건 결코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았다. 이 번호는 얼마 전 까르띠에 시계 분실 사건과도 분명히 연관이 있는 번호였다. 그날, 그 문자가 온 이후에 혜정의 집 소파 위에 시계가 떡하니 놓여 있었으니까. 무엇에든 연루될 위험이 높았다.

휴우...

혜정이 무의식적으로 홍주의 인스타그램에 들어갔다. 너무 자주 들어가서 손가락이 기억하고 있었다.

새로운 피드 하나가 올라와 있었다.

"오늘 저에 대한 기사로 심려가 많으셨던 팬 분들께 우선 죄송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해당 기사는 사실이 아닙니다. 요즘 저는 그 누구보다 컴백 무대를 위해 달리고 있습니다. 여러분과의 만남을 고대하며 성실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케줄 틈틈이 연습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스케줄을 함께 하며 다소 친분이 쌓인 분과의 관계가 오해를 불러왔던 것 같습니다. 시련을 딛고 앞으로 이번 주말 있을 무대만을 생각하며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걱정끼쳐 다시 한 번 죄송합니다! 팬 여러분들 사랑해요"

열애는 사실이 아니라는 홍주의 입장문이었다. 댓글창은 닫혀 있었다. 이미 예상했던 거지만, 그 사람과의 열애는 사실이 아니며 다른 사람과 열애하고 있다는 말 같은 건 적혀 있지 않았다.

인스타그램 속 웃고 있는 홍주의 모습이 다시금 세상 그 누구보다 멀게 느껴졌다.

지잉

"오늘 밤,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문자메시지 알림이 떴다. 아까 왔던 그 모르는 번호였다. 혜정은 바로 전화를 걸었다.

여전히, 수신음만 갈 뿐 받지 않았다. 해결? 뭘 해결한다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

스튜디오 촬영을 마친 홍주는 연습실로 가고 있었다. 오늘 홍주는 평소보다 오버해서 오디오가 빌 새도 없이 이야기를 쉬지 않고 했다. 1초라도 오디오가 비면 그 사이에 누군가가 홍주의 열애설 이야기를 꺼낼 것만 같았다. 녹화를 끝내니 홍주는 목이 아플 정도였다.

이제는 골치 아픈 연락 오는 거는 없겠지

차에 탄 홍주가 매니저에게 건네받은 휴대폰 전원을 켰다. 정민에게 전화 2통, 혜정에게는 4통이 왔다. 몇 년 전 인터뷰를 하거나 오고가며 명함 정도 주고받았던 사이가 요원한 기자나 피디 두세 명한테도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어떤 기자는 전화를 안 받자 문자메시지까지 남겨놨었다. 열애설 관련 홍주의 입장을 물어보는 거였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비슷할 테지.

지잉

정민의 문자 메시지였다.

지잉

혜정의 문자 메시지도 왔다.

홍주는 고민했지만, 먼저 정민의 문자를 읽었다.

"끝나고 R호텔 2601호에서 기다릴게. 스튜디오 촬영 끝나고 들러."

홍주는 정민의 메시지를 읽자마자 수현에게 말했다.

"수현아. 차 돌려. 잠깐 R호텔 좀 들러야돼"

"형. 지금은 연습실 가야 하는데...그리고 오늘은 좀..."

"내가 마무리 잘 짓고 올게. 잠깐만 들리자"

"하...형 오늘은 그래도..."

"내가 진짜...아무 문제 없이 금방 마무리 짓고 올게. 나도 어쨌든 제대로 끝맺음은 해야지. 20분만, 아니 10분만 밑에서 기다려 줘. 잠깐만 이야기하고 올게"

"하..."

홍주의 간곡한 부탁에 수현은 차를 돌렸다. 다행히 막히는 시간대는 살짝 빗겨간 시간이었다. R호텔까지는 방송국에서 20분 거리였다. 지금 홍주에게는 멤버들과의 연습도 중요했지만, 정민과의 대화가 가장 절실했다. 뭐가 됐든, 이야기하고 싶었다.

혜정의 문자 메시지도 있었다.

"이따 밤에 시간 돼? 우리 할 이야기 있잖아"

사실, 그 누구보다 혜정과 이야기를 해야 했다. 혜정은 아마 오늘 홍주와 연락도 안 되고, 하루종일 지옥을 맛보았겠지. 피곤해도 혜정과의 이야기 역시 마무리지어야 했다. 홍주는 잠시 고민하다가 혜정에게 답장을 했다.

"연습 때문에 이따 열두시쯤 불러줘"

지잉

혜정의 답장이었다.

"알았어"

"형 거의 다 왔어요. 안 막혀서 생각보다 빨리 왔어요."

"응. 고마워. 지하에서 잠깐 기다려. 금방 올게"

"형. 오늘 연습 꼭 가셔야 하니까 10분 안에 오세요"

"응! 알겠어! 수현아 진짜 고맙다!"

홍주가 엘레베이터로 뛰어갔다. 수현에게는 정민과 정리하러 가는 거라고 말했지만, 사실 정민의 얼굴을 보러 가는 거였다. 수현도 아마 모르지 않았을 거다.

마무리? 언젠가 해야할 때가 올 수도 있지만, 지금 당장은 싫었다. 정민을 만나러 가는 이 순간, 홍주는 설레서 미칠 것 같았다. 홍주는 단숨에 26층까지 올라가 1호의 문을 두드렸다.

철컥

문이 열리고 조금 울었던지 눈이 빨간 정민의 모습이 보였다. 홍주의 마음이 아팠다.

"그렇게 강력 부인할 거는 뭐야? 자기 회사야 그렇다 쳐도, 인스타에까지 그렇게..."

"미안...나 이번주 컴백이 중요하잖아. 회사에서 실장이 하도 설쳐대니까 일단은 하라는 대로 하고 조용히는 시켜야 했어...미안"

"휴...뭐 알겠어. 이런거 생각 못 하고 자기 만난 것도 아니고. 아니 근데 누가 흘렸는지 몰라? 우리 그렇게 조심했는데"

"몰라. 나도 진짜 묻고 싶다. 누가 그랬는지"

"저기...자기야."

정민의 표정이 순간, 사뭇 진지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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