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대였던 2000년대 초반, 난 호기롭게 대학 친구들과 나이트에 갔다.
그 때의 나 기준, 가장 섹시하다고 생각하는 옷을 입고 유행하던 스모키 메이크업으로 눈을 시커멓게 칠한 다음, 한올한올 정성스럽게 초코송이 머리를 드라이했다. 그렇게 설레는 맘으로 처음 입성했던 나이트는 드라마에서 보던 모습 그 자체였다.
붐붐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화려한 사이키 조명. 그 당시 나름 물 좋다고 핫했던 삼성동의 한 업장이었다. 나이트의 웨이터들은 스무살의 앳된 우리를 귀신 같이 알아봤다. 대학생이냐며 반색하더니 우리를 끌고 테이블로 안내했다. 나이트에서 여자들의 국룰, 우리는 모르는 척, 싫은데 어쩔 수 없는 척 그의 손에 이끌려 테이블로 향했다.
우리가 앉기 무섭게 손에 쟁반을 들고 가던 웨이터 하나가 내 친구의 손목을 잡아 끌었다. 내가 봐도 그 애의 화장은 오늘 괜찮게 잘 먹었다. 유행에는 좀 뒤쳐지지만 청순한 긴생머리 역시 만고 불변의 법칙이니 나쁘지 않았다.
‘오늘 쟤는 인정.’
아직은 여유로웠다. 우린 넷이었고, 겨우 하나 없어진 것 뿐이었다. 우리가 맥주세트를 시키려고 웨이터를 부르려던 찰나, 지나가던 웨이터가 내 옆에 앉아 있던 친구 하나를 일으켰다.
“언니야, 지금 방 물 끝내줘. 얼른 가자.”
우리가 그 웨이터보다 훨씬 어려보였지만, 우린 들어올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언니야’들이었다. 내 친구는 조금 난감한 듯, 나와 남아있던 친구 하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언니야들! 기다리고 있어. 내가 이 언니 데려다 주고 금방 다시 와서 부킹해줄게. 좀만 기다려.”
우리가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웨이터 아저씨가 우리에게 대답을 던져놓고는 급하다는듯, 친구를 데리고 사라져 버렸다. 그 사이에 처음 부킹에 끌려 갔던 친구 하나가 돌아왔다.
“벌써 와?”
“어?”
고막을 때리는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 방금 돌아온 그 친구는 바로 앞에 앉은 내 질문도 잘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벌!써!오!냐!고!”
“아…완전 아저씨. 야, 술이나 마시자.”
하지만, 그 친구의 대답이 끝나기도 무섭게 또 다른 웨이터가 친구의 손목을 잡아 끌었다. 친구의 머리카락이 웨이터의 손에 이끌려 흩날렸다. 그는 슬쩍 보더니 그 친구 옆에 있던 또 다른 친구도 데려갔다. 이제 테이블에는 나만 남았다.
뻘쭘해진 난, 시켰던 맥주 세트가 나오자 홀짝 홀짝 맥주나 들이켜고 있었다. 금요일 밤 12시. 나이트 안은 점점 북적이기 시작했고, 열기가 뜨거워졌다.
간간이 웨이터들이 지나가며 내 얼굴을 확인했다. 그들은 무슨 등 같은 걸 들고 있었다. 들고 가다가 내 얼굴 옆에 등을 훅 들이대고는 아리송한 표정을 짓더니 그냥 갔다. 한 명이 가고 또 다른 웨이터도 훅 다가와서 등을 대고 날 확인하더니 “애매한데?”하고는 그냥 갔다. 그렇게 난 30분 동안 혼자였다. 그 동안 친구들이 돌아와서 앉았고, 맥주 몇 모금 마시기 무섭게 그들은 또 끌려갔다.
혼자 맥주를 잔뜩 마신 난 화장실로 향했다. 거기에는 여러 여자들이 화장실과 연결된 파우더룸 앞에서 화장을 고치고, 오늘 물에 대해 논하고 있었다. 나도 화장실에서 나와 그 무리 옆에서 손을 닦고 있는데 끌려갔던 친구 하나가 화장실로 들어오며 날 보더니 막 뛰어왔다.
“오! 여기서 만나네! 어땠어 넌? 난 완전 별로. 여기 물 좋다더니 완전 별로인데?“
친구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난 태연히 대답했다.
“그러니까. 내가 갔던 방도 완전 별로였어.”
그렇게 난 테이블로 돌아왔다가 친구들이 다 끌려가면 화장실에 오고 이러길 반복했다. 결국, 엄마가 빨리 오라고 전화통이 불났다며 난 먼저 나이트에서 나왔다. 내가 빠져도, 그 날 나이트는 문제 없이 잘 돌아갈 것이었다.
그 날, 문을 나서는 순간 내 뺨에 닿은 새벽 공기가 그렇게 차갑고 시릴 수 없었다. 혼자 나이트 앞에서 죽 대기하고 있던 택시들 중 하나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난 가방 안에서 거울을 꺼내 내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은 내가 상상했던 얼굴이 아니었다. 오동통한 젖살 위에 어울리지 않는 서툰 화장을 한 못난 내가 있었다. 그 날 이후로 난 한동안, 아니 꽤 오랫동안 나이트에 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나이트는 홍대와 강남역에 클럽붐이 일면서 자연스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요즘 샤워를 하고 거울 속 내 모습을 보면 그 때의 내가 떠오른다. 그 때보다 족히 20년은 지났지만 난 지금의 내가 그 때의 나보다 맘에 든다.
갸름한 친구들이 해야 귀여웠던 초코송이 머리를 동그란 내가 하니 달덩이가 따로 없었다. 옆으로 길지 않은 내 눈에 스모키 화장은 전혀 섹시해 보이지 않고, 지저분하기만 했다. 안 되는 걸 피하기만 해도 애매하게 별로인 일은 드물었다.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 못 하고, 유행이면 다 어울릴 줄 알고 덤벼들었던…무식했던 그 때의 내가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수고해준 덕에 지금의 나는 피해야할 것들은 확실하게 안다.
어느 날, 난 내게 있어 가장 안전한 선택들로 무장한 채 학부모 참관수업에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요즘 잘 나간다는 새로 산 립을 바르고 나가려는데 출근 준비를 하던 남편이 날 보고 말했다.
“그 립…씁…좀 애매한데?”
난 그 날, 새로 산 그 립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