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학교를 나온 사람들은 공감할 만한 모습들이 있다.
여자애들끼리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일을 세상 중요한 기밀인양 주변 신경쓰면서 속닥거리는 거, 친한 친구들끼리 화장실 같이 가는 거, 학교 끝나고 집에 갈 때나 이동수업 할 때 친구를 기다렸다가 꼭 같이 가야 되는 거. 만약 내가 조금 늦게 준비하고 나왔는데 기다리는 친구가 없다면 그건 속해있던 무리에서 은따 당하고 있다는 뜻과 같다는 거.
이 ‘은따‘가 문제다. 나 역시 은따를 시켜본 적도, 당해본 적도 있다. 예외도 있겠다만, 보통 여자애들은 소속된 그룹에서 돌아가면서 은따의 상황을 겪곤 한다. 은따의 표적이 되는 이유는 너무도 단순하고 어이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걸 시키는 입장이 되면 그 어느 때보다 그 이유가 심각해지고 진지해지기 마련이다.
초등학교 때 바로 전 날까지 친했던 친구 무리가 갑자기 다음 날 내가 하는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다. 못 들었나 싶어 가까이 가서 말을 걸어보았지만 모두들 내 말을 무시하기에 생각했다.
‘아, 이번에는 내가 은따구나.’
익숙한 패턴이었어도 내 상황이 되니 몹시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들에게 매달리지는 않았다. 바로 다른 친구들 무리에 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때의 내가 조금 영악스러운 것도 같은데, 초등학교 때 난 살아남기 위해 언제나 메인 친구 그룹 하나랑 보험용 친구 그룹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하도 은따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은따가 됐는데 계속 쫓아다니면서 말 거는 것 만큼 추접스러운 건 없었기 때문에 난 쿨하게 메인 그룹에서 돌아섰다.
평소에 보험 그룹 친구들과도 잘 지냈기 때문에 무리없이 그들 모임에 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중 한 친구가 급식을 먹고는 내게 조심스레 다가왔다. 그녀는 이윽고 주변을 두리번거더니 속삭이는 목소리로 비밀스럽게 말했다.
“내가 비밀 하나 말해줄까?”
우린 바로 여자 화장실로 향했다. 그 친구는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는 내게 말했다.
“있잖아. 어제 학원에서 A가 네가 자기랑 비슷한 옷 입는다고 짜증난다고 했어.”
난 내가 은따가 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내가 A의 옷을 따라 입은 건 사실이었다. A가 입고 다니는 옷은 온전히 내 취향이었으니까. 내가 엄마를 조르고 졸라 양심상 그녀와 똑같은 건 못 사고, 비슷한 걸 산 게 그녀에게는 영 눈엣가시였던 모양이다.
그렇게 보험 그룹이었던 친구들이 나의 메인 그룹이 되었다. 그렇게 놀던 어느 날, 예전에 나의 메인 그룹이었던 친구 중 하나가 내게 슬그머니 다가왔다. 그녀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나를 화장실로 비밀스럽게 이끌었다.
“있잖아, 내가 비밀 하나 말해줄까?“
그 그룹의 은따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런 패턴은 내가 여중과 여고를 나오는 동안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머리가 조금 크니 이제 은따가 될 거 같은 상황이 되면, 그 칼날을 내가 아닌 다른 이에게로 교묘하게 옮겨 버리는 스킬까지 생겼다. 그렇게 난 학교에 다니는 동안 은따 패턴에 익숙해지고 적응돼 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지긋지긋해졌다. 은따가 되지 않기 위해 항상 안테나를 곤두세우는 상황은 너무 피곤했다. 난 빨리 대학교로 피신하고 싶었다.
그런데 대학생은 나이만 성인이지, 청소년과 어른의 과도기 시절에 불과했다. 즉, 대학교에도 그런 분위기가 여전히 존재했다는 말이다. 그나마 각자의 수업이 다르다 보니 예전만큼 은따의 포위망이 촘촘하지 못 했다. 대학교 3학년쯤이었을까. 난 엉성해질 대로 엉성해진 은따의 포위망을 거의 완벽하게 벗어날 수 있었다. 몰려다니던 친구 그룹에서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고 나와 결국 혼자 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여전히 혼자 학교 안에서 이동하고, 혼자 밥을 먹는 게 조금 민망할 때도 있었지만 시간이 약인지 그 민망함마저 점점 희미해져갔다.
학교에서 벗어나 어른이 돼 좋은 점이라면 이제는 저런 상황에서 꽤나 자유로워졌다는 거다. 물론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인 만큼 언제나 자유로울 순 없지만 말이다.
이제 빼도 박도 못 하게 어른이 돼 버린 난, 행사가 있어 아이 학교에 갈 일이 생기면 혼자 간다. 혼자 강당에 앉아 행사를 보고, 교실 참관 수업에서 엄마들이 삼삼오오 모여 아이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틈에 혼자 서서 아이를 바라본다.
아이에게는 “친구와 잘 어울려라”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라”고 말하면서 모순이 아닐 수 없다. 아이 친구 엄마들이 그 시절, 내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속닥속닥 무언가 자기들끼리 내 주변에서 이야기한다. 나는 안다. 그 대상이 나도 아니고, 내 뒷담화는 더더욱 아닐 거라는 것. 그게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그냥 스몰토크일 뿐이라는 걸. 그래도 난 그들의 한 발짝 뒤에서 그들을 보며 생각한다.
‘뭔 얘기를 저렇게 재미나게 하지?‘
그렇게 혼자!혼자!를 외치며 무리에서 튕겨져 나왔건만, 솔직히 난 모여있는 사람들을 보면 소외감을 느끼고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해진다.
인생은 이렇게 거짓말의 연속이다. 혼자를 외쳤건만, 난 사실은 여전히 그렇게 지긋지긋해했던 우리를 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