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내가 두고 본다

by 유리


난 애들이라고 봐주지 않는다.

물론 사회적 체면이 있으니 머릿속에서 말이다. 못되게 굴고, 교묘하게 이간질 하는 애들을 보면 화가 치민다. 다른 애들끼리 있을 때 그래도 치가 떨리도록 싫은데, 특히 내 아이에게 그런 애라면 더 싫다.

내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얼마 안 된 어느 날이었다. 1학년이라 하굣길에 데리러 가야했는데 그 날따라 아이가 밝은 얼굴로 정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내게 달려오며 소리쳤다.

“엄마! 오늘 A가 학교 도서관에서 책 보고 놀자는데 놀고 와도 돼?“

그러지 않아도 초등학교 생활은 잘 하고 있는지 걱정됐던 차였다. 아이가 친구랑 놀고 온다니 잘 지내고 있는가 싶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난 아이의 책가방을 들어주며 말했다.

“그럼. 엄마가 이따 두 시까지 교문으로 올 테니까 그 때까지 나와.“

“응!“

자기 몸 만한 책가방을 벗어 던지고 운동장으로 달려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얼마나 뿌듯하고 행복했는지 모른다. 알록달록 아이의 운동화가 오후 햇살에 반짝였다. 그렇게 난 집에서 한시간 반 정도를 보내고 학교로 다시 찾아갔다.

그런데 저 멀리서 터덜터덜 걸어오는 아이의 모습이 뭔가 이상했다. 자세히 보니 신발 한 짝이 없었다. 코로나 시기라 학교 안으로 한 발짝도 들어갈 수 없었던 난 애가 타 발만 동동 구르며 아이의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무슨 일이야? 왜 신발이 한 짝 밖에 없어? 친구는?”

“A가 갑자기 다른 애들이랑 놀고 싶다고 해서 혼자 도서관에 있었어. 걔네들이 내 신발 가지고 복도에서 발로 차면서 축구하고 놀았어. 그런데 나와 보니까 신발 하나가 없어졌어.”

아이의 순수한 목소리와 대조된 너무나도 섬뜩하고 잔인한 이야기.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뭐? 하지 말라고 해야지!! 그리고 선생님께 말씀드려야지 그런 건!! 독서실에 선생님 안 계셨어? 어? A는 뭐래? 너 신발 어디 뒀대?”

“모른대. 물어보지 말래. 딴 애랑 노는데 말 시키지 말래.”

“뭐! 바보처럼 그런다고 그냥 온 거야?”

나도 모르게 속상해서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 때, 오전에 비가 와 질퍽해진 운동장을 신발도 없이 가로질러온 아이의 새까매진 양말이 눈에 들어왔다. 난 말 없이 아이를 업었다. A와 노는 줄 알고 들떴다가 막상 이렇게 돼 가장 속상할 건 아이였을 거다. 그렇게 난 속상함만 가득 안은 채 집으로 돌아왔다.

학교에 전화해 이 상황을 선생님과 상의했으나 해결된 건 없었다. A가 갑자기 마음이 바뀌어 내 아이랑 안 논 걸 따져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아이의 신발을 A가 없앴을 거라는 것도 내 심증 뿐이었으니까.

그주 주말, 난 아이와 키즈카페에 갔다. 거기에는 소원 나무가 있었는데 포스트잇에 각자의 소원을 적어 나무에 붙이는 거였다.

<A 너 내가 두고 본다>

아름답고 순수한 아이들의 소원들 속 난 어울리지 않는 저주의 포스트잇을 적어 붙였다. 아이가 엄마는 뭐라고 썼나 힐끔거리는 걸 팔로 필사적으로 가리면서.

하지만 키즈카페를 나서기 전, 난 후다닥 달려가 소원나무에서 포스트잇을 떼내었다. 그걸 붙여서 후련하기는 커녕, 오히려 불안하고 불편했기 때문이다. 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내내 불편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다. 언제나 머릿속으로만 해왔던 나쁜 생각이 막상 몸 바깥으로 튀어나와 실체가 되니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고작 초등학교 1학년인 어린 애를 향해 저주의 말이나 내뱉는 나쁜 어른이 된 것 같았다.

A는 그렇게 꽤 오랫동안 내 생활 속에 머물렀다. 아이가 잘 지내다 왔는지, 아이의 신발은 제대로 있는지 확인하는 ‘예민맘’으로 만들었고, A 말고 다른 애들 중에는 경계 대상이 없는지 촉각을 곤두세우게 했다.

그 학교에서 한 학기를 보낸 후 다른 지역으로 이사한 우리 가족은 자연스레 전학을 가게 되었다.

몇 년이 흘렀고, 그 곳에서 보낸 시간은 고작 몇 개월 뿐이지만 지금도 문득 A를 생각할 때가 있다.

그 아이를 생각하면 여전히 내 심장 박동은 두근두근 빨라진다. A도 내 아이도 고작 여덟 살이었으니 미성숙했던 거라며 이해해 보려고 노력은 하고 있다. 머릿속으로만 하는 나쁜 생각일지어도, 막상 하게 되면 영 개운하지 않다. 솔직히 초등학생이나 이겨 먹으려는 한심한 어른이 된 느낌이라 기분이 아주 별로다.

길 가다 A를 마주친다면 아마도 아무 말 없이 웃으며 잘 지냈냐고 물을 것이다. 여전히 머릿속으로는 “얘! 너 이제 반성은 좀 했니?”하고 다그치는 ‘초딩 상대로 싸우는 어른‘이 될 것 같지만 말이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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