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독 배에 지방이 집중된 체형이다. 다른 곳에도 살이 많긴 하지만, 뱃살이 정말 독보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옷을 입을 때 허리에 맞추면 바지 통이 너무 커지고, 티셔츠는 이불만큼 큰 사이즈를 사도 옆구리에 붙어버려서 겉옷으로 가리기 바쁘다.
기분이 괜찮다가도 배가 옷에 닿는 느낌이 들면 화가 치밀어 오르고, 조금이라도 딱 붙는 옷을 입으면 하루종일 옷을 만지작거리는 데 온 신경을 쏟게 된다. 스타킹을 신는 날에는 치마와 함께 말려 내려가서 항상 끌어올리기 일쑤다. 살을 빼도 배가 이미 너무 많이 튀어나온 탓에 스트레스가 심했다. 그러다가 혼자만의 힘으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의학의 도움을 받기로 결심했다.
예전부터 엄마는 지방흡입을 한 번 해보지 않겠냐고 했는데, 나는 거절했었다. 지방흡입을 받다가 죽었다는 사람도 있고, 부작용도 있다고 하고, 받고 나면 살이 더 잘 찐다고 하는 많은 말을 접했기에 거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벼랑 끝에 몰리니 못 할 게 뭔가 싶었다. 이 몸으로 사느니 수술받다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마음을 굳히고 나니 행동에 옮기는 건 쉬웠다. 핸드폰으로 열심히 손품을 팔아 병원 5군데를 추렸고, 날짜를 잡았다.
아침 일찍 첫 번째 병원에 들어섰다. 데스크에는 날씬하고 예쁜 언니들이 웃으며 맞아주었다. 괜히 기가 죽었지만, 아닌 척하고 접수를 했다. 접수 후에 인바디를 재고 탈의실로 안내받았다. 위아래 속옷만 입은 채 가운을 걸치라고 했는데, 사이즈가 안 맞았다. 나는 당황하여 개미 목소리로 가운이 작다고 말했고, 곧 큰 사이즈를 받아 입었다. 잠시 후, 진료실에서 만난 의사는 가운을 벗어보라고 하고 내 배를 이리저리 관찰했다. 촉진도 하고, 초음파도 찍고, 그 과정이 조금 수치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이렇게 해서 이 배가 사라질 수 있다면 이까짓 거 백 번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면담이 끝나고 담당 실장과 상담을 했다. 가격을 상의하고, 예약금을 결제하는 절차였는데 뒤에 많은 병원들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다시 방문하기로 하고 나왔다.
그다음으로 간 두 번째 병원도 앞의 병원과 거의 동일한 과정을 거쳤다. 인바디 후 가운으로 갈아입고, 의사를 만났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내 배를 보시더니 상당히 당황스러워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얼굴이나 팔다리만 보고는 배가 이 정도일 줄 몰랐네요;; 수술 못 할 것 같습니다."
세 번째 병원에서도 네 번째 병원에서도 비슷한 말을 들었다.
"이 정도 배 사이즈면 150kg 정도 나가는 사람 사이즈예요."
"수술하면 죽습니다."
"살을 빼고 오셔야지 수술할 수 있어요."
나는 그 말을 듣는 당시에는 아무렇지 않은 척, 허허하고 웃었지만 사실 너무 충격이었다. 내 배가 보통이 아닌 줄은 알았지만 수술도 안 되는 지경이었다니. 어쩌다 이렇게까지 됐을까 오만가지 생각을 하면서 마지막 병원으로 향했다.
저녁 늦게 도착한 마지막 병원에서는 너무나 확신에 차서 수술이 가능하다고 했다. 몇 번이나 묻고, 또 물었지만 나보다 더 큰 케이스도 수술한 적 있다고 자신 있게 걱정 말라고 하셨다. 앞 선 병원들에서 마음이 너무 지쳐서 그랬는지 나는 바로 예약금을 결제했고, 수술 날짜를 잡았다.
나는 규모가 있는 수술이라 전신마취를 하는 게 안전하다는 판단하에 그렇게 진행을 했다. 그래서 수술 일주일 전에 폐 검사와 피검사 등 간단한 검사를 했고, 정상이라는 판정을 받고 수술에 들어갔다.
수술 당일, 아침 일찍 병원에 방문한 나는 인바디를 쟀다. 몸무게는 118kg이었다. 입원실에 짐을 풀고, 간단하게 핸드폰으로 수술 전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탈의 후 위생팬티, 가슴엔 패치를 붙이고 가운을 걸쳤다. 그리고 원장님을 만나 간단하게 면담하고 배에 알 수 없는 그림을 그린 채로 수술실에 들어갔다. 수술실에서는 머리에 위생캡을 쓰고 온몸에 소독약을 바른 채 손에는 양말 같은 것을 끼운 상태로 침대에 누웠다. 간호사님들이 긴장을 풀어주시려 말을 걸어주시는데 정말 감사했다. 아무리 마음을 굳게 먹고 온 것이라 하더라도 무섭긴 했기 때문이다. 이윽고 마취과 의사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얼굴에 마스크를 끼워주셨다. 호흡을 몇 번 하다가 발에 주사를 놓아주시는데 시원한 느낌과 아픈 느낌이 들다가 많이 아픈데?라는 생각이 들 때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떠보니 너무 추웠고, 간호사님께 춥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간호사님은 내 손을 꼭 잡아 주시며 이제 다 끝났다고 달래주셨다. 어느새 내 몸에는 압박복과 가운이 입혀져 있었고, 휠체어에 태워져 입원실로 올려 보내졌다.
입원실에 도착한 나는 침대 위에 올라가는 것도 고역이었다. 몸을 움직이는 게 악 소리가 나올 만큼 아팠다. 여기저기 두들겨 맞은 것처럼 뻐근하고, 아렸다. 특히 초반에는 화장실을 자주 가줘야 한다고 했는데 그게 제일 힘들었다. 볼일을 보려면 몸을 숙여 압박복을 풀어야 하는데 몸을 숙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겨우겨우 숙여서 풀어도 다시 후크를 채우는 게 문제였다. 손가락의 감만으로 후크를 채워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잠시 누워있다가 죽과 음료수를 먹고 있는데, 나를 담당하셨던 간호사님께서 오셔서 말씀하셨다.
"복부에서만 10,400cc가 빠졌어요!"
나는 회복도 할 겸 빠진 지방을 구경하러 밖으로 나갔다. 노란 지방들이 통에 가득히 들어있었다. 그리고 나서야 내 배를 아직 확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고, 배를 만져보았다. 툭 튀어나와 있었던 앞 배가 정말 썰려나간 듯이 사라져 있었다. 솔직히 옆구리는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지만, 앞 배가 사라진 게 너무 신기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후 나는 바로 퇴원해 집으로 갔다. 어지럼증, 구토, 오한 등의 증상이 있을 수도 있다고 들었는데 그런 증상은 다행히도 없었고 대신 다리 쪽에 열감과 욱신거림이 너무 심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붓기가 내려가면서 팬티가 꽉 조였던 것이었고, 널널한 팬티로 바꾸니 나아졌다. 며칠간 샤워도 못하고, 압박복은 계속 입고 있어야 되고, 화장실 가는 건 지옥 같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거울을 보면서 만족스러운 하루하루를 보냈었다.
그러나 압박복을 벗고 보니 아직 지방이 많이 남아있었다. 특히 옆구리가 거의 그대로인 게 보여서 나는 병원에 재방문했다. 의사도 지방이 남아있다는 걸 인정했고 재수술을 해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수술했을 때 전신마취의 부담과 수술한 지 1년도 채 되지 않아 재수술을 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만약 수술을 했는데 옆구리가 또 그대로면 어떡하지 라는 고민 등 여러 생각이 많았다.
그러다가 *복부 거상이라는 걸 알게 됐고, 우연히 한 병원을 방문했다. 처음에는 이 병원도 다른 병원들처럼 살 빼고 오라던지, 아니면 무조건 된다고 하고 결과물은 신경 쓰지 않던지 하겠지 하며 기대조차 않았다. 그런데 정말 적극적으로 이런저런 수술 방법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면서 결론적으로 지금 수술할 수는 있지만, 살을 잘라내는 것밖에 되지 않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왜 이 수술을 하려고 하냐는 질문에 나는 한 번뿐인 20대를 살 때문에 숨어 사는 게 아니라 당당하게 나답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원장님과 실장님은 한동안 얘기를 나누시더니 살 빼는 것부터 수술까지 도와주겠다고 하셨다. 나는 속으로 외쳤다.
"홀리!"
*복부거상: 처진 피부를 제거해 교정하고, 늘어난 복직근의 근막을 복원시키는 수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