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함께 모여라 다 함께 먹자 (3)
[업그레이드 상식]
1. 유왕은 B.C. 774년 왕후였던 신후申后와 적장자이자 태자였던 희의구姬宜臼를 폐하고, 포사를 왕비로 앉힌 뒤 그녀에게 낳은 아들 희백복姬伯服을 태자로 삼는다. 이에 원한을 품은 신후의 아버지 신후申侯는 견융犬戎과 손을 잡고 유왕을 공격하여 여산驪山 아래에서 그를 잡아 죽인다. 그리고 외손자 희의구를 왕위에 올리고 도읍지를 호경(장안, 서안)의 동쪽에 있는 낙양으로 옮긴다.
2. 그로부터 중국은 두 개의 도읍지를 가지게 되었다. 서쪽에 위치한 장안은 서경西京, 동쪽의 낙양은 동경東京이라는 별칭이 생겼다. 서경에 도읍지를 둔 주나라와 한나라를 서주/서한(전한), 동경에 도읍지를 둔 주나라/한나라는 동주(춘추전국)/동한(후한)이라고 불렀다.
3. 왕이 거주하는 곳을 '경京'이라고 하고, 제후에게 봉지를 주듯 왕 자신이 먹고살 수 있도록 '경' 주변에 있는 왕의 직할 소유지를 '기畿'라고 불렀다. 소오생이 살고 있는 우리나라 '경기도'의 이름 유래 정도는 상식으로 알고 있자.
4. 서주 시대에는 경기京畿의 영토가 넓었고, 동주 시대에는 거의 없었다. 그로써 왕의 권위가 떨어지고 제후들이 큰소리치는 춘추전국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