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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오생 May 01. 2024

9. 절세 미녀가 바꿔놓은 동방의 역사

다 함께 모여라 다 함께 먹자 (3)

중국요리는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진다.


그중 가장 먼저 탄생한 것은 노채魯菜, 즉 노나라의 음식이다.

노나라가 어디인가? 오늘날의 산동성 곡부曲阜(Qufu, 취푸)이니, 바로 공자의 고향 아닌가?


이 사실은 중국의 음식 문화가 다름 아닌 공자로부터 출발했음을 시사해 주는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 얘들아, 모여라! 다 함께 모여라, 다 함께 먹자! 공자님이 가르쳐주신 중국 음식 문화의 정신이 바로 이곳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러니 어떻겠는가? 그들에게는 명절이 따로 없다. 손님 오는 날이 바로 곧 명절인 것이다. 자, 오늘날 산동 사람들은 공자의 이 가르침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 어디 한번 확인해 볼까요?    

 


명절이 따로 없다 푸짐한 산동요리     



우리나라의 짱꿰 집에 가서 느끼는 가장 큰 애로 사항이 있다면? 독자 여러분은 그런 경험이 없는지 모르겠으되, 나의 가장 큰 불만은 요리를 시키면 양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양이 많으니 우선 첫째, 돈이 비싸다. 둘째, 그러니까 요리를 다양하게 시켜 먹을 수가 없다. 셋째, 또 그러니까 작심하고 열 명 정도 떼거리로 작당하지 않는 다음에야, 두세 명 정도 인원이 모여서는 중국 음식을 먹으러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요새는 코스 요리라는 게 개발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너무 비싸고, 먹고 싶은 걸 제대로 골라 먹을 수가 없다.


선생님, 그럼 중국에 있는 짱꿰 집은 안 그런 가요? 물론이다. 사람 수만큼 요리를 시켜 먹으면 대충 들어맞는다. 두세 명 정도의 인원이 가면 두세 개 정도의 요리를, 일고 여덟 명이 가면 일고여덟 가지의 요리를 시켜 먹을 수가 있는 정도의 분량이 나온다. 돈도 당연히 그만큼 싸다.


그런데 산동에서 건너온 우리나라 짱꿰 집은 아주 웃긴다. 질보다는 양으로 승부를 건다. 세수 대야인지 쟁반인지 분간하기조차 힘든 커다란 접시에 엄청난 분량의 음식이 담겨 나온다. 요즈음은 고급스러운 중국 음식점에서는 그래도 조금 세련되게 대 · 중 · 소로 사이즈를 조절해서 시킬 수도 있지만, 변두리 중국 음식점일수록 악착같이 그 전통(?)을 고수한다. 울리 쌀람, 그렇게 짜근 거는 못 만든다 해! 고집이 황소 떡심줄 고집이다. 왜 이렇게 고집이 셀까? 바로 공자로부터 비롯된 산동요리의 전통 때문이다.


요리책에 보면 산동요리의 특징은 식자재 자체가 지니고 있는 맛을 살려주는 데 있다고 한다. 쉽게 말하자면 그만큼 요리 수준이 발달되지 못했다는 뜻. 하지만 산동요리의 진정한 특징은 푸짐한 데 있다. 푸짐해도 보통 푸짐한 게 아니다. 엄청나게 푸짐하다. 식자재도 푸짐하고, 요리도 푸짐하고, 요리 가짓수도 푸짐하고, 심지어는 요리사 생김새도 푸짐하다.


그들에게는 명절이 따로 없다. 손님 오시는 날이 바로 곧 명절이다. 그런데 산동에는 예로부터 손님이 안 오는 날이 별로 없으니, 일 년 삼백육십오일이 명절이나 진배없이 푸짐하게 음식을 차려낸다.

 

왜 그렇게 손님이 많은가요? 그건 얘기를 듣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되니까, 다른 질문부터 먼저 받겠다. 그럼, 대체 어느 정도로 푸짐한가요? 음, 예를 들어 설명해 주지. 우선 식자재부터!


황하 문명을 탄생시킨 황하 중류 지역은 먹거리가 별로 없다. 그러나 황하가 바다와 만나는 산동 지역은 우선 먹거리가 푸짐하게 쏟아져 나온다. 북쪽으로는 발해만, 동쪽으로는 황해를 끼고 있는 해안 지역에서는 전복, 바닷게, 상어지느러미, 해삼, 패주, 참돔, 대하 등의 해산물이 푸짐하게 쏟아지고, 내륙 지역에서는 왕따시 배추 마늘 대파 생강 등이 무더기로 쏟아진다. 장구章邱에서 생산되는 대파는 보통 평균 직경이 4~5㎝, 길이는 보통 2m 정도라니 얼마나 왕따시인지 짐작이 가시겠지?


<모자상봉母子相逢>이라는 재미난 이름을 가진 푸짐한 요리가 있다. 쉽게 말하자면 닭백숙 요리인데 반드시 2kg 이상 나가는 커다란 닭을 쓴다. 다른 경우도 아니고 어미 자식 간에 오랜만에 만났으니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이 기쁨을 어떻게 표현할까? 말이 필요 없다. 많이 많이 먹어서 이 기쁨을 나타내자!


그리하여 하루 종일 은은한 불에 푸욱― 고아내어 뼈다귀는 쏘옥― 발라내고 각종 소스 잔뜩 뿌려, 또다시 은은한 불에 통째로 올려놓고 몇 시간 동안 진진하게 먹어댄다. 그런데 상위에 이 요리 하나만 놓여 있겠는가? 천만의 말씀! 그야말로 상다리가 휠 정도로 각종 요리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그게 산동요리다. 그래놓곤 초대해 준 주인장이 손님에게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말한다.



“아이, 전(↓)머/()? 메이(↗)요 선(↗)머 ()비에(↗)더 차이(). 칭(↓)()!”

“아이, 전머/? 메이요 선머 /비에더 차이. 칭//!”

“唉! 怎么辦? 沒有什么特別的菜。請慢用。”

“아이구 이거 어떡하나, 차린 게 별로 없네요. 천천히 많이 드시지요.”     


하하! 어디서 많이 듣던 말 같지 않은가? 예전에 소오생 어머니가 손님 상 차려드리며 늘 하시던 말씀이다.


이번엔 어디서 많이 보던 광경을 보자. 산동에서는 초대받은 손님이 주인을 욕보이려면 음식을 남김없이 다 먹으면 된다. 쩨쩨하게 음식을 조금 차렸다는 뜻이 되니까. 주인을 빛나게 해 주는 방법은 그와 정반대다. 음식을 많이 남겨주면 된다. 물론 차린 음식이 별로 없는데도 많이 남기는 건, 아 기분 나빠. 성의도 없고 맛도 더럽게 없네. 그런 뜻이 되겠지만 실제로 그런 경우는 절대 없다. 왜냐하면 산동 사람 집에 놀러 가면 아무리 먹어도 한참 남을 수 있도록 음식을 엄청나게 많이 차리기 때문이다.


아니, 어쩜 그렇게 우리나라랑 똑같대요? 그렇다. 우리나라에서 음식을 많이 차려야만 손님을 제대로 접대한 것으로 여기는 풍속은 바로 공자로부터 비롯된 중국 음식 문화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긴 요새 그런 풍속도 많이 바뀌긴 했다만...


그러나 우리나라와 아주 다른 게 하나 있다. 중국에서, 특히 산동에서, 또 특히 손님으로 초대받았을 때 밥을 비벼먹으면 큰일 난다. 아니, 얼마나 배가 고프면 소스를 밥에다 비벼서 먹지? 내가 음식을 그렇게 모자라게 내놓았나? 주인이 좌불안석坐不安席이 되어 어쩔 줄 몰라할 것이다. 손님이 밥을 비벼 먹는 건 주인에게는 최대의 모독이다. 꼭 기억하여 실수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


우리나라에 사는 대부분의 화교는 산동성 출신, 바로 공자의 후예들이다. 공자는 덩치가 푸짐하게 컸다. 키가 2m도 더 되었다는 썰說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그 후예들도 덩치가 크다. 덩치만 큰 게 아니라 손도 크다. 그래서 그런지 요리를 만들었다 하면 푸짐―하기 짝이 없다. 이 음식점에는 소小짜 사이즈는 없나요? 그래서 손님이 고 따위 소릴 하면 너무 속상해한다. 그렇게 단작스럽게 음식을 만들면 재수 옴 붙는 걸로 여긴다. 다 함께 모여 다 함께 먹자! 공자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해 오늘도 산동 음식은 푸짐하게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다.

  

아, 그래서 짜장면 짬뽕에도 곱빼기가 있는 거구만요? 쭝국 놀러 가면 그거나 시켜 먹어야지? 앗! 잠깐! 짬뽕은 몰라도 짜장면은 중국요리가 아니다. 산동 지역에 가면 짜장면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나라 짜장면과는 전혀 딴판. 짜장면은 우리나라에 온 화교들이 한국 사람 입맛에 맞게 개발한 퓨전 음식이다. 아, 그러고 보니 저도 그 얘기 어디서 들은 얘기네요. 선생님 얘기는 다 듣고 나서 보면 대부분 어디서 들었던 얘기더라? 뭬야? 실컷 얘기해 줬더니, 이럴 수가! 좋다. 그럼 이번에는 아주 참신한 이야기를 해주겠다.

    


약소국 노나라, 종갓집 노릇을 맡은 사연     


앞서 말한 바 있지만 유교의 발상지인 노나라는 동시에 중국요리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런데, 중국 문명의 발상지는 황하 중류 지역 아닌가? 그렇다면 마땅히 그 지역에 있는 씨안(→), 서안西安이나 뤄(↘)양(↗), 낙양洛陽이 중국요리의 고향이 되어야 할 텐데, 왜 노나라가 중국요리의 고향이 된 것일까? 히히, 이거 지난번에 선생님이 가르쳐 주셨는데요?

황하 중류 지역은 누우런 황토 위에 누우런 황사가 천지를 가득 덮고 있는 척박한 땅, 황토고원이다. 요리해먹을 만한 먹거리의 재료가 다양할 까닭이 없다. 황하가 지나가는 지역 중에서는 그나마 황하의 하류인 산동 지역의 상황이 가장 나은 편이었다. 우선 황토고원에서 벗어나 있고, 해안 지역이라는 지리적 이점도 있어 먹거리의 재료가 상대적으로 다양할 수 있었던 때문이겠다. 맞았죠? 


음! 맞았다. 하지만 50점만 맞았다. 그건 산동요리가 중국 북방요리를 대표하게 된 사연이고, 노나라의 요리가 산동요리를 대표할 수 있게 된 사연은 아니니깐. 춘추 시대부터 산동을 대표하는 곳은 제齊나라 아니었던가? 노나라는 늘 제나라에게 당하기만 했던 약소국 아니었던가? 그런데 어떻게 제나라가 아닌 노나라의 음식이 산동요리를 대표하게 된 걸까? 그 사연을 알려면 왜 유교가 노나라에서 탄생하게 되었는지 그 사연을 우선 먼저 알아야 한다. 자, 우리의 상식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그 이야기 한 토막을 들어보시라!

  

춘추시대는 가히 ‘나라’의 천국이었다. 초기에는 무려 200여 개의 나라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될 정도. 하지만 그 당시의 ‘나라’란 오늘날의 개념과는 다른 것. ‘나라 국國’이란 글자는 성城의 형태를 본떠 만든 상형문자였으니, 결국 ‘도시국가’의 개념이라는 사실을 첫 번째 기본 상식으로 알아두자. 아무튼 그 수많은 나라들 중, 노나라는 늘 약소국 신세를 면치 못했다. 하지만 그 어떤 강국도 노나라를 절대로 괄시할 수 없었지. 왜요?


왜냐하면 주周나라 왕실의 각종 법규와 제도, 의례 등이 기록된 귀중한 문서를 오로지 노나라만이 보관하고 있었기 때문이란다. 그게 무슨 기밀문서나 되나요? 그럼, 기밀문서이고 말고. 만약 우리나라의 모든 국가 공문이 딱 한 대의 컴퓨터 안에 보관되어 있다면? 정말 그렇게 생각하니 상당히 중요하겠군요. 그런데 그렇게 귀중한 기밀문서를 왜 힘없고 쬐끄만 노나라가 보관하게 된 거죠?


음, 그 사연을 알려면 주나라를 세운 무왕武王 희발姬發이와 그의 동생인 희단姬旦이의 스토리를 대충 알고 있어야 한다. 서양을 이해하려면 그리스 로마 신화를 알아야 하듯이, 중국을 이해하려면 춘추전국시대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대충은 알고 있어야 중국의 지식인과 얘기가 통한다. 두 번째 상식 이야기, 시~작!


희발이 아버지 이름은 희창姬昌! 유명한 백이伯夷 숙제叔齊가 흠모해서 찾아갔을 정도로 덕이 높은 인물이었단다. 그러나 백이 숙제가 만난 것은 살아있는 희창이 아니라 죽어서 관棺속에 들어간 그의 ‘장례(?)’ 행렬이었다. 그 아들 희발이가 아버지의 장례 행렬을 핑계 삼아 군사를 일으킨 것이다. 그 바람에 희발이는 백이 숙제한테 아버지 장례도 안 치르고 전쟁을 일으킨 호로자식이라고 욕을 직 싸게 얻어먹었지.


아무튼 아버지 장례를 제대로 안 치러서 죗값을 받은 건지, 나라를 세운 지 3년 만에 희발이는 임금 노릇도 제대로 못해보고 금방 아버지 따라 하늘나라로 가고 말았다. 그때 그의 아들 희송姬誦은 초등학교 빵 학년, 아직 한참 코 흘리며 놀고 있던 어린아이였다. 그러니 건국 초기의 권력 투쟁은 명약관화明若觀火, 불을 보듯 뻔한 불문가지不問可知, 물어보나 마나 한 일 아니겠니? 그래서 권력의 전면에 등장한 인물이 희발의 동생이요, 희송의 숙부인 희단姬旦이었던 것이다!


자, 어떠냐? 어디서 많이 듣던 스토리 같지 않니? 맞아요, 우리나라 단종과 세조 이야기 같아요. 그렇다. 하지만 이야기의 처음 얼개는 비슷했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희단은 우리나라 세조처럼 어린 조카의 왕위를 충분히 찬탈할 수 있었지만 어린 조카 희송, 즉 성왕成王을 도와 건국 초기에 흔들리는 주나라 왕실을 반석 위에 올려놓았단다. 훗날 공자가 입에 침이 마르게 찬탄한 주공周公이 바로 이 사람이지.


아무튼 주공은 이때 국가의 각종 법규와 제도를 기록한 문서를 두 벌 만들었단다. 유학의 기틀이 여기서 다져진 거지. 종이가 아직 발명되지 않았던 시대라서 대나무 죽간竹簡에 새겨놓은 이런 책冊을 만든다는 것은 국가적인 사업이었단다. 어쨌든 한 벌은 주나라의 도읍지인 호경鎬京(오늘날의 서안)에 보관하고 또 한 벌은 자신의 봉국封國인 노나라에서 보관하게 하였지.

 

그리고는 세월이 흘러갔다. 얼마나 흘렀느냐? 200여 년이란 세월이 순식간에 지나간 뒤, 유왕幽王(B.C.795?~ B.C. 771; 주나라 12대 왕. 본명은 희궁생姬宫湦)이라는 자가 나타나 나라를 말아먹게 되었단다. 그 스토리를 간단하게 알아보자. 유왕에게는 절세 미녀인 애첩이 있었지. 그런데 이 여자가 성장 환경에 문제가 있었는지 우울증에 걸려서 맨날 짜증만 피우고 생전에 웃지를 않는 거야.


아, 그런데 어느 날 실수로 잘못 봉화烽火가 올라갔거든? 각 지방의 제후들이 임금을 구하려고 허둥지둥 달려왔다가 하릴없이 돌아섰지. 아, 그런데, 생전에 웃음이란 걸 모르던 우울증 미녀가 그 꼬락서닐 보고 갑자기 까르르… 웃었다는 거야.(나라를 말아먹은 웃음!)


아, 그런데, 그 모습이 월매나 섹시하게 사람의 애간장을 녹이던지, 그 뇌쇄惱殺적인 모습을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자꾸만 보고 싶어 유왕이 거짓 봉화를 본격적으로 올리게 되었다~, 그 얘기란다. 그래서 나중에는 진짜로 외적이 쳐들어와 진짜로 봉화를 올렸지만, 흥! 또 속을 줄 알고? 제후들이 아무도 구하러 가지 않아 드디어 나라를 말아먹었다는 그 얘기란다.


아, 그 얘기요? 그 얘기 저도 알아요! 선생님은 남들이 다 아는 얘기만 하시더라? 그래? 안다 이거지? 그람 그 여자 이름이 뭔데? 내가 지금 이 얘길 왜 하는 건데? 에이, 뭘 그런 것까지 물어보고 그러시나용?

서안 근교 여산驪山에 가면 유명한 화청궁華淸宮이 있다.(상)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의 로맨스(?) 현장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곳이 주나라 때부터 내려온 황실의 별궁이라는 사실은 잘 모른다. 즉 여기가 유왕과 짜증 미녀 포사의 스토리 현장이라는 이야기. 화청궁 뒷산 꼭대기를 줌으로 최대한 당겨보시라. 유왕을 구하려고 달려왔던 제후들이 simple simple 욕을 하며 돌아서게 만들었던 바로 그 봉화대가 보일 것이다.(하)


정말이지, 우리는 우리의 동방 세계를 너무 모른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양치기 소년의 스토리는 누구나 툭하면 인용하며 써먹는다. 하지만 동방의 고대 역사와 문화의 결정적 분기점이 되는 이 사건에 대해서는 끽해야 바람에 스쳐 가는 풍문 정도로만 알고 있으니, 오호嗚呼! 통재痛哉라, 참으로 가슴이 아프구나!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한 치만 낮았다면 서양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라는 둥 떠드는 그대여, 그대의 코는 그래서 얼마나 길단 말인고? 그 여인의 그 웃음이 동방의 문화와 역사를 뒤바꾼 그 사실을 아느냐 모르느냐?


각설却說!


소오생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이야기를 정리해 보자. 첫째, 물어보았으니 대답은 해야지? 그 우울증 절세 미녀의 이름은 포사褒似다. 둘째, 이때 외적의 침입에 주나라의 수도이던 호경, 오늘날의 서안은 불에 타 쑥대밭이 되었다. 그래서 도읍지를 서안의 동쪽에 있는 낙양洛陽으로 옮기게 되었다. 강력한 왕권을 행사하던 서주西周 시대가 막이 내리고, 춘추 열강이 할거하는 동주東周 시대, 즉 춘추春秋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업그레이드 상식]

1. 유왕은 B.C. 774년 왕후였던 신후申后와 적장자이자 태자였던 희의구姬宜臼를 폐하고, 포사를 왕비로 앉힌 뒤 그녀에게 낳은 아들 희백복姬伯服을 태자로 삼는다. 이에 원한을 품은 신후의 아버지 신후申侯는 견융犬戎과 손을 잡고 유왕을 공격하여 여산驪山 아래에서 그를 잡아 죽인다. 그리고 외손자 희의구를 왕위에 올리고 도읍지를 호경(장안, 서안)의 동쪽에 있는 낙양으로 옮긴다.

2. 그로부터 중국은 두 개의 도읍지를 가지게 되었다. 서쪽에 위치한 장안은 서경西京, 동쪽의 낙양은 동경東京이라는 별칭이 생겼다. 서경에 도읍지를 둔 주나라와 한나라를 서주/서한(전한), 동경에 도읍지를 둔 주나라/한나라는 동주(춘추전국)/동한(후한)이라고 불렀다.

3. 왕이 거주하는 곳을 '경京'이라고 하고, 제후에게 봉지를 주듯 왕 자신이 먹고살 수 있도록 '경' 주변에 있는 왕의 직할 소유지를 '기畿'라고 불렀다. 소오생이 살고 있는 우리나라 '경기도'의 이름 유래 정도는 상식으로 알고 있자.

4. 서주 시대에는 경기京畿의 영토가 넓었고, 동주 시대에는 거의 없었다. 그로써 왕의 권위가 떨어지고 제후들이 큰소리치는 춘추전국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셋째, 주공이 만들었던 그 기밀문서의 이름은 《예禮》다. 훗날 공자가 정리하여 유교의 경전이 되었지. 아무튼 그 《예》가 호경, 즉 장안長安, 즉 서안이 쑥대밭이 될 그 당시에 함께 소실되었다는 이야기. 그래서 동주 시대, 즉 춘추 시대 때는 주공의 땅인 노나라에 보관한 문서가 유일한 기밀문서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리하여 어떤 일이 생겼을까? 여러 제후국들이 각종 행사를 개최할 때마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그 방법을 알 수가 있어야지? 그때마다 할 수 없이 그 법규와 제도를 알기 위해 노나라를 찾아와 아쉬운 소리를 하고 열람을 해야만 했다는 이야기다. 원래는 종갓집인 주나라 왕실을 찾아가서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건데, 종갓집 주나라는 포사 덕에 고걸 불태워 먹었으니 도리 없이 노나라에 그 역할을 넘겨버린 셈이지. 이제 그 어떤 강대국도 약소국인 노나라를 괄시할 수 없었던 그 사연을 이해할 수 있겠지?


아무튼 그 바람에 노나라에는 전문적인 직업인들이 생겨났단다. 그 《예》를 공부하여 각종 행사를 잘 치르도록 도와주는 그런 직업인들을 뭐라고 불렀느냐? 그게 바로 유자儒者라는 이야기다. 요건 미처 몰랐지? 그런데 어떤 키 크고 떡대 좋은 사람이 등장하여 그런 형식적인 일에 내면적인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으니, 그 사람이 누구냐? 그 양반이 바로 공자님이다. 고건 짐작했겠지? 좌우간에 그런 저런 사연으로 노나라가 유교儒敎의 발상지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산동 곡부曲阜는 옛날 춘추전국시대의 노나라이자 공자의 고향이다. 사진(상)은 공자를 모시는 성전인 공묘 孔廟이고, 사진(하)는 공묘의 입구다. 성곽은 20여 년 전에 복원한 것이다. 공묘는 공자가 제자를 가르쳤던 곳이기도 하고, 노나라의 왕궁이기도 하다. 한나라 고조 유방이 유교를 국가의 기본으로 삼으면서 공자의 후손에게 노나라를 봉지封地로 하사했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공자를 팔아먹은 셈이다. 그 후 중국의 모든 왕조는 공자의 후손을 일인지하一人之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의 명예 재상으로 삼았다.


흘러간 역사에 가정假定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러나 여기서 잠깐 심심풀이 땅콩 삼아 재미있는 가정 하나만 해보자! 만약에 포사가 안 웃었다면 역사는 어떻게 흘렀을까? 강력한 왕권을 행사하던 서주가 과연 그렇게 쉽게 멸망했을까?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춘추시대라는 시대는 아예 존재조차도 없지 않았을까?


만일 그렇다면 주나라 왕실에서 보관하고 있던 기밀문서 《예》도 불에 타지 않았을 것이고, 만일 그렇다면 제후들이 노나라에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고, 만일 그렇다면 노나라에 유자儒者라는 전문 직업인들이 생겨났을 리도 없었을 것이고, 만일 그렇다면 공자라는 인물이 노나라에서 태어났다한들 어찌 유교의 창시자가 되었을 것이며, 만일 그렇다면 유교에 의해 좌지우지되었던 우리 동방의 문화는 과연 어떤 모습을 띠었을 것인가? 생각하면 할수록 재미있지 않니?


선생님, 재미있긴 한데요, 그거 하고 노나라가 중국음식문화의 고향이 된 거하고 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 거래요? 음, 아직도 그걸 잊지 않고 기억하다니, 수업 태도가 맘에 드는군. 점수 일 점 플러스, 찰카닥!


<계속>




[ 대문 사진 ]


◎ 포사로 분장한 중국 배우 리우이페이劉亦菲. 드라마 천룡팔부에 데뷔했을 당시, 그녀 나이 17세. 그 청초한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오 마이 갓! 그런데 그게 벌써 20년 전이란다. ㅠㅜ


◎ 역사책을 보면 포사는 나라를 망친 요녀다. 그러나 포사가 왜 우울증에 걸렸을지 한 번쯤 생각해보자. 주나라 유왕은 재위 3년 만에 포褒 나라를 공격하여 포사를 선물로 받는다. 그녀는 아비가 누구인지 어미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포나라 군주의 노리개가 되고, 또다시 적국인 유왕의 노리개 선물이 되었다. 그리고 견융족의 공격을 받아 유왕이 죽고난 후에는 또다시 견융족에게 끌려간다. 그 뒷 이야기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우울증에 걸리지 않았을까? 그녀가 대체 무슨 잘못을 저질렀길래 나라를 망친 요녀라 하는가? 그런 기록을 남긴 더러운 자들이여, 그대들이야말로 나라를 찜쪄먹은 도둑놈들 아니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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