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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오생 Apr 18. 2024

8. 한식寒食과 단오端午 사이

다 함께 모여라 다 함께 먹자 (2)

기본 상식


( 1 ) 24 절기

① 1년을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24개로 나눈 날들. 대체로 15일마다 한 번 찾아온다. 달이 아니라 태양의 움직임에 따른 것이므로 음력이 아닌 양력으로 시행한다.

② 고대 황하문명 때부터 동아시아 농경 사회에서 사용되었다. 고대 동아시아에서는 당연히 음력을 따랐지만, 24 절기는 태양의 움직임에 영향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계절과 맞지 않아 자주 보정을 해주어야 했다.

③ 이런 모순을 개혁하기 위해 청나라는 숭정황제 때 1645년 서양천문학과 음력을 결합한 태음태양력인 시헌력時憲曆을 채택한다. 조선은 1654년 효종 때 우리 형편에 맞게 일부 수정한 시헌력을 시행한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음력은 이때 만들어진 시헌력이다.  

④ 양력은 1895년 일제가 명성황후를 시해하고 친일 내각을 구성하여 이른바 을미개혁을 단행할 때 공식적으로 음력을 폐지하고 시행했다.


( 2 ) 청명과 한식

① 청명淸明은 24 절기 중의 5번째 절기로 양력을 따르지만, 한식寒食은 24 절기가 아니라 동짓날로부터 105일 째가 되는 날로 음력을 따른다. 하지만 청명과 한식은 매년 4월 4일 또는 4월 5일에 거의 비슷한 날자에 중복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오십 보 백보)"와 같은 속담이 생겼다.

② 한식은 동아시아 농경 사회에서 설날(春節), 정월 대보름(元宵節), 단오(端午節), 추석(中秋節)과 함께 5대 명절 중의 하나로 일 년 농사의 시작을 상징하는 날이다. 그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 첫째: 고대 농경 사회에서는 불씨를 소중하게 보관하여 후손에게 넘겨주었는데, 매년 농사를 시작할 무렵에 액운을 쫓고 새 기분 새 마음으로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기존 불씨를 꺼버리고 2, 3일 지낸 후에 다시 새로운 불을 지펴 보관했음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생겼다는 설.
▶ 둘째: 본문을 읽어 보시라.

③ 청명/한식은 아직도 동아시아 사회에서 대부분 공휴일로 쉬고 있다. 중국과 대만은 물론이고, 북한에서도 4월 4일은 식목일로 노는 날이다. 우리나라도 1948년 이승만 정권 때부터 4월 5일을 식목일로 지정, 법정 공휴일이었으나 식목일 날 오히려 행락객들이 산불을 자주 낸다 하여, 2006년 노무현 정권 때부터 법정 공휴일에서 제외하였다. 그 후로 산불 발생 건수가 정말로 대폭 감소하였다고 한다.


( 3 ) 단오

① 단오端午는 음력 5월 5일이다. 예로부터 동아시아 농경 사회의 4대 명절 중의 하나였다. (위의 5대 명절에서 한식 제외)

② 홀수 숫자는 양기陽氣를 상징한다. 홀수 숫자가 겹치는 날, 즉 음력 3월 3일과 5월 5일, 7월 7일과 9월 9일은 '겹칠 중重', 원래는 모두 중양절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중양절이라고 하면 대체로 9월 9일을 말한다. 3월 3일 삼짇날은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날. 7월 7일은 견우직녀 만나는 날. 9월 9일은 제비가 다시 강남으로 떠나가는 날로 고대 중국에서는 추석보다도 더 중요한 명절이었다. 온 가족이 모여 높은 곳에 올라가서 머리에 수유꽃을 꽂고 국화주를 마셨다고 한다.

③ 음력 5월 5일은 1년 중에서 양기陽氣가 가장 왕성한 날. 모내기를 끝내고 무더운 여름으로 들어가기 직전, 풍년을 기원하며 페스티벌을 즐기는 날이었다. 지금도 여러 지방에서 단오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데 그중 강릉 단오제는 2005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④ 우리나라 강릉 단오제가 유네스코 무형문화재로 등록되자, 중국에서는 단오절을 도둑 당했다고 난리가 났다. 중국의 단오절은 그들의 민족 영웅을 칭송하는 특별한 축제로, 강릉 단오제와 같은 기간에 벌어지는 축제지만 그 내용은 완전히 다르다. 그 사실을 오해하고 벌어진 소동이었다. 아직도 양국의 수준 낮은 네티즌들이 쓸데없이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신윤복, <단오풍정>. 간송미술관 소장.




중국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날 것을 안 먹는다. 중국 요리의 기본은 뭐니 뭐니 해도 뜨거운 맛! 그들은 차가운 음식을 싫어한다. 그런 그들에게도 일 년에 두 번 예외가 있다. 바로 청명절淸明節 한식寒食날과, 음력 오월 오일 단오절에는 꾹 참고 차가운 음식을 먹는다. 왜냐하면 그들이 사랑하는 춘추 전국 시대의 두 인물이 슬픈 사연으로 저 세상으로 떠난 기일忌日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몇 가지 재미있는 차이점이 있다. 읽어보시죠!    

 

첫째, 한식날은 춘추 시대의 북방 사람 개자추介子推의 기일이고, 단오절은 전국 시대 남방의 애국 시인 굴원屈原의 기일이다. 둘째, 개자추는 불에 타 죽었고 굴원은 물에 빠져 죽었다. 셋째가 가장 중요한 차이점이다. 한식날 음식을 차갑게 먹는 건 역대 임금들의 강요에 의해서였고, 단오절 날 ‘쫑(↘)즈’라는 차가운 찰밥을 먹는 건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원해서 먹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넷째, 그래서 말이 그렇다는 얘기지, 오늘날 한식이랍시고 진짜로 더운 음식 안 먹는 바보 같은 중국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단오절 날 먹는 쫑즈粽子는 갈수록 만드는 비법이 더해지니, 그 진미를 맛보고자 하는 중국인들이 해가 갈수록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이게 대체 무슨 사연? 궁금하시겠지만 한식 이야기는 요 뒤에서 다시 하고, 우선 먼저 단오절에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차가운 찰밥 먹는 사연부터 알아보자.




오월 단오절에는 차가운 찰밥 사랑을      



굴원은 중국문학사에 최초로 등장하는 시인이다. 그가 <이소離騷>라는 작품으로 이룩한 문학적 성취는 그야말로 휘황 찬란, 후세에 길이길이 빛나고 있다. 중국 낭만주의의 흐름이 바로 여기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와 그의 문학에 대해서는 절대로 한 두 마디 말로 대충 넘어가서는 안 된다.


하지만 지금은 맛난 음식 이야기하자고 벌려놓은 마당 아니더냐! 너무너무 아쉽지만 그 감동적인 나라 사랑의 구체적 스토리는 천상 다음 이야기 한 마당을 기다리시길! 음... 잠깐. 그래도 그렇지, 아무리 급해도 한 가지는 짚고 넘어가자.

요코야마 다이칸 横山大觀, <굴원 屈原>, 1898년.


모든 종교의 진정한 목표는 무엇일까? 내가 편해지고 내가 극락세계, 천국에 가자는 것일까? 아니다. 모든 종교가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사랑과 자비는 바로 자기희생에 다름 아니다. 타인을 위하여 자신의 행복을 포기하고 지옥에 남아 있을 수 있는 마음, 그것이 바로 사랑과 자비 아니겠는가?


굴원은 지장보살이었다. 지옥에 남은 중생을 모두 제도하고 난 후에야 성불하여 극락에 가리라 서원誓願하였다는 지장보살의 화신이었다. 아니, 모든 인류를 위하여 십자가에 자신의 몸을 희생한 또 하나의 예수였다.


모든 사랑은 하나다. 이성異性간의 사랑, 부모 자식 간의 사랑도 궁극적으로 나아가면 인간과 자연, 우주에 대한 사랑과 하나의 원리로 만난다. 사랑은 우주의 근본 원리인 것이다. 나라 사랑, 겨레 사랑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그러나 굴원이 살았던 시대에는 그런 개념이 없었다. 사랑은커녕 나라와 겨레의 개념이란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성현 공자도 뜻을 알아주는 군주를 만나기 위해 천하를 주유하지 않았던가! 그 당시의 모든 지식인들은 어리석은 군주를 위해 헌신하느니, 참된 성군을 섬겨 천하 만민을 복되게 하는 것이 보다 옳다는 미명美名 아래, 여기저기 아무 나라나 기웃거리고 다녔던 것이다.


그러나 굴원은 달랐다. 어리석은 군주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았고, 어리석은 신하들과 어리석은 백성들도 자신의 충정을 알아주지 않았다. 그는 너무나도 외로웠다. 하지만 개인적인 고독이 문제가 아니었다. 나라의 존망이 백척간두百尺竿頭에 걸린 문제였다.


그는 너무나 안타까워 초현실의 세계를 넘나들며 나라와 겨레 살릴 방법을 모색한다. 그러나 신이 제시해 주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포기하라! 그것이었다. 천하는 넓고 고운 님은 어디든지 있는 법! 어리석은 옛 님일랑 깨끗이 잊어버리고 네 가치를 진정으로 알아주는 새 님 찾아 떠나거라! 철석같던 굴원의 마음도 신이 내리는 계시에는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자전적 서사시 <이소>에 보면, 그리하여 그는 모든 미련을 버리고 홀가분하게 자신이 그렇게도 사랑했던 초楚나라를 떠나간다. 아니, 떠나가려 한다. 선생님, 왜 말을 바꾸세요? 왜냐고? 필경은 떠나지 못했기에. 그는 차마 떠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결국 지옥에 남아있기를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멱라강汨羅江에 몸을 던져 자살한다.


하지만 그의 자살은 절망과 죽음을 선택한 것이 아니었다. <이소>라는 위대한 작품을 남김으로써, 그리고 자신의 사랑을 죽음과 희생이라는 방법으로 실천해 보임으로써, 초나라 사람들에게 참된 나라 사랑과 겨레 사랑이 무엇인지 가르쳐주고 싶다는 희망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의 희망은 그가 죽고 난 후 곧 이루어졌다. <이소>는 초나라 사람들에게 널리 애창되었고, 멸망한 초나라의 유민들은 굴원의 희망대로 그 어떤 중원의 민족도 갖지 못했던 애국 애족의 마음을 지니게 되었다. 그가 선택한 지옥은 지옥이 아니라 그곳이 바로 곧 천국이었던 것이다. 어떠니? 굴원의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겠니? 네, 정말 감동적이네요. 근데요, 선생님! 무드 깨는 거 같아서 죄송하긴 한데요, 먹는 이야기는 언제 하실 건가요?


음, 그렇군.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말이 필요 없다. 일단 단오절 날 중국 사람들이 용선龍船을 타고 다니며 먹는다는 ‘쫑(↘)즈’를 직접 먹어보고 다시 얘기하도록 하자.

자, 이게 바로 문제의 쫑즈粽子다. 어? 참 희한하게 생겼네요? 뿔처럼 생긴 것 같기도 하고. 근데 왜 겉을 나뭇잎으로 쌌죠? 하하, 이건 나뭇잎이 아니라 갈대 잎이란다. 어떤 지역에서는 대나무 잎으로 싸기도 하지. 자, 설명은 나중에 하고 일단 포장(?)을 풀고 속에 있는 밥을 먹어보자꾸나.

음~! 아주 좋은 향기가 나네요! 이야, 밥이 어쩜 이렇게 쫀득쫀득 찰질 수가 있는 거죠?

후후, 그거야 찹쌀로 지은 밥이니까 찰지지. 근데 왜 이렇게 밥을 찰지게 짓는지 아니? 모르지?


음력 오월 오일, 굴원이 물에 빠져 죽자, 초나라 백성들은 너무 슬펐다. 그제야 굴원이 얼마나 자신들을 사랑했는지 비로소 깨달은 거다. 그래서 매년 그의 기일이 되면 물속 어디엔가 있을 굴원의 시신을 찾기 위하여 배를 타고 돌아다녔단다.


그때 쌀밥이나 계란 따위 먹을 것을 강 위에 뿌려주었는데 왜 그랬게? 굴원 먹으라고 그랬겠죠, 뭐. 아니다. 고기야, 고기야, 귀여운 물고기야! 이거 뜯어먹고 굴원 어르신네 시신일랑은 절대로 뜯어먹지 말아라, 알았지? 그렇게 당부하느라고 그랬단다.


그런데 굴원의 혼령에게도 먹을 걸 줘야 되지 않겠니? 그런데 그냥 보통 밥을 던져주면 물에 던지자마자 흩어져서 계속 물고기들 좋은 일만 시켜주지 않겠니? 그래서 물속 깊이 빠져있는 굴원도 받아먹으라고 밥을 아주 찰지게 만들어서 꼭꼭 뭉친 다음 물속에 던지게 된 거란다. 에휴, 이렇게 쫀득쫀득 뭉친 밥이니까 이젠 굴원 님도 맛있게 드실 수 있을 거야. 이제 좀 안심이군. 하지만 안심하긴 일렀다. 꿈에 굴원이 엉엉 울면서 나타난 것이다.(말도 안 돼!) 내가 먹을 음식을 용왕이 다 뺏어먹고 있다오! 아이고, 배고파….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용왕이 싫어한다는 갈대 잎이나 대나무 잎으로 찰밥을 꽁꽁 포장해서 강물에 던지게 된 거란다.


아하, 그게 또 그런 사연이! 아야! 이게 뭐야? 선생님, 찰밥 속에서 뭐가 나왔어요! 어? 이건 대추 아냐? 어라? 과일 말린 것도 나오네? 그렇다. 쫑즈 속에 집어넣는 소에는 그 외에도 절인 고기 · 말린 고기 · 꿀 · 팥 · 설탕 등등 지역마다 독특한 맛을 지닌 여러 가지 식자재를 집어넣는다. 쫑즈 만드는 비법이 늘어갈수록 그만큼 일반 민중들의 굴원 사랑의 마음도 늘어가는 셈이겠지.


사랑은 표현이다. 모든 사랑은 상대방을 참으로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정성으로 표현해야만 진짜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굴원은 자신의 사랑을 <이소>라는 작품으로 후세 사람들에게 표현했고, 후세 사람들은 굴원에 대한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쫑즈粽子라는 차가운 찰밥을 먹음으로써 길이길이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혼자서 드시옵소서, 한식에 숨겨놓은 함정      



옛날 춘추 시대에 진晉나라라는 나라가 있었다. 왜, 춘추 오패五覇라는 말은 들어봤지? 그중 첫 번째가 제환공齊桓公이고 두 번째가 진문공晉文公인데, 지금 그 사람 얘기 하려는 거다. 진문공의 이름은 중이重耳였다.(귀가 무거웠나, 아님 중이염을 앓았나?) 고생을 많이 하다가 늙어서야 군주가 되었는데, 군주가 되기 전에는 몇몇 신하들과 함께 망명 생활을 하며 여기저기 쫄쫄 굶으면서 돌아다녔다.

춘추 시대 진晉 나라의 위치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먹을 게 동이 났다. 모두들 누리끼리 뜬 얼굴로 굶주린 배를 움켜쥐고 있었다. 아이고 배고파라. 그런데, 그중에서 누가 제일 배고팠게? 그런 게 어딨어요? 다 똑같이 배고팠겠지. 그렇다. 누가 제일 배고프고 말고 할 게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짜가’ 유가는 배고픈 순서를 정해준다. 임금님부터. 나이 많은 사람부터.(우이 씨. 젊은 사람이 더 배고픈 거 아닌가?)


앗, 이게 뭐야. 고기 굽는 냄새 아냐? 벌름벌름, 킁킁! 다들 벌떡 일어나 코로 공기를 한껏 들여 마시며 굶주림을 채우는데, 한 신하가 구운 고기를 들고 쩔뚝, 쩔뚝(!) 들어온다.      


“주공! 얼마나 배고프시옵니까? 어서 드시옵소서!”     


아니, 이게 웬 떡, 아니, 웬 고기더란 말이냐. 배고파 눈이 뒤집혀 있던 공자 중이는 낼름낼름 고기를 몽땅 먹어버리고야 말았다. 다 먹고 난 중이, 그제야 그 신하를 쳐다보며 왈:      


“아, 잘 먹었다! 끄윽―(무슨 소리?) 근데, 자네 어디 다쳤나? 왜 그렇게 쩔뚝 대냐?”     


중이에게 고기를 바치는 개자추. 송宋, 이당李唐, <진문공부국도 晉文公復國圖> 일부.


어허, 이런 이런! 사연을 알고 보니 배고파 어쩔 줄 몰라하는 자신의 주공을 보다 못해 그 신하, 자기 허벅다리를 잘라서 구워 온 것이었네 그려! 주공 혼자라도 배불리 드시옵소서! 저라도 잡아드시옵소서! 아, 이 갸륵한 충성심이여! 중이는 그제야 그 사실을 알고 달기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내, 자네의 이 은혜를 결코 잊지 않음세.”     


했다는군 글쎄. 하지만 세상 이치가 어디 그런가? 변치 말자 맹세한 것일수록 더 잘 변한다는 사실을 쩔뚝이는 미처 모르고 중이의 말을 태산같이 믿어 버렸다.


정권을 잡기 위해 진나라로 돌아가는 중이. 송宋, 이당李唐, <진문공부국도 晉文公復國圖> 일부.

훗날 공자 중이는 드디어 진나라의 군주가 되었다. 진문공이 바로 그다. 선생님, 그 얘긴 아까 했어요. 음, 그런가? 아무튼 논공행상이 벌어졌다. 근데 임금이 된 진문공, 너무 흥분하다 보니 논공행상에서 그만 옛날 그 쩔뚝이 신하를 깜박 잊고 빼먹었다.


쩔뚝이 신하, 너무너무 열받았다. 하긴, 그 어느 누가 열받지 않겠는가. 쫄쫄 굶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그 심경을 충분히 짐작한다. 씨―! 그때 나도 을마나 배고팠는지 알어? 딴 사람 고기라도 잘라먹고 싶은 그 심정을 꾹 참고 내 살을 뚝 잘라서, 혼자라도 배불리 드시옵소서, 했더니 세상에 이런 나쁜 자식이 있나, 잊을 게 따로 잊지! 잔뜩 열받은 쩔뚝이 신하는 노모를 모시고 산에 들어가 숨어버렸다.


뒤늦게 그 소식을 접한 진문공은 뒤늦게 후회하며 뒤늦게 그를 찾아오라 명령했다.(뒤늦으면 늦으리!) 하지만 다른 신하는 엉뚱한 계책을 바친다.      


“산이 깊어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요. 차라리 불을 지르면 어떨깝쇼? 어머니도 모시고 있으니 불이 나면 얼른 하산할 게 틀림없습죠.”     


짜아식, 찾기가 귀찮았던 게지? 아니면 이 참에 정적을 제거하려는 음모가 틀림없어. 나뿐(!) 놈! 그러나 더 한심한 건 진문공이었다.      


“어, 그래? 네 말이 일리가 있도다. 어서 불을 질러라!”     


귀가 무거워 중이重耳라고 이름 지은 줄 알았더니, 귀가 하도 얇아 귀 좀 무거워 보라는 뜻에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나 보다. 아무튼 잔뜩 열받았던 쩔뚝이 신하는 그들이 불을 지르자 더 열을 받고야 말았다.     


“개자식! 내가 그러면 내려갈 줄 알고? 흥, 어림없다!”     


노모를 모시고 불을 피해 나무 꼭대기 위로 기어올라갔다. 그리고 개자식 개자식 하면서 불에 타 죽고야 말았다. 선생님, 그 사람도 참 독하네요. 근데 그 쩔뚝이 신하 이름이 뭐예요? 음? 뭐더라? 내가 요새 머리가 깜박깜박한단 말야. 가만있어봐라. 개자식, 개자식 하면서 죽었단 말이지… 맞아, 개자식, 아니 개자추介子推였구나.

산서성 면산綿山에 있는 개자추 모자의 동상

아~, 개자추! 선생님, 다 듣고 나니까 이 얘기 저도 아는 얘기네요, 뭐. 유명한 얘기잖아요. 그래? 그람, 그다음 얘기는 니가 계속하렴. 어, 아직 다 끝난 게 아니었나요? 흥! 소오생 얘기는 끝까지 다 들어야 하는 거야. 시시껄렁한 얘기 같지만 그 속엔 다 심오한 삶의 메시지가 감동적으로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아느냐 모르느냐? 히히, 그래요? 우리 선생님은 다 좋은데 너무 잘 삐지셔. 선생님, 그다음 얘기는 어떻게 되는 건데요? 가르쳐주세요, 네?




굶음의 미학이 여기서 탄생한다. 불에 타 죽은 개자추의 스토리가 천고에 길이 빛나는 아름다운 미담으로 둔갑을 한 것이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자. 개자추가 불에 타 죽을 때 심정이 어떠했을까? 아이고 임금님 고맙습니다 하고 죽었겠는가? 개자식, 욕을 하며 죽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으되 적어도 원망하는 심정이 있었음은 틀림없을 것이다. 아니라면 논공행상에서 누락되었다고 산에 들어가 숨을 리가 없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교를 국가의 기본 이념으로 채택한 역대 왕조는 그를 칭송하여 그가 죽은 날을 한식寒食으로 삼았다. 그날만은 개자추의 정신을 기리어 불을 피워 따뜻한 밥 지어먹지 말고 차가운 밥을 먹으라는 얘기다. 헌데, 그의 무슨 정신을 기리자는 것이었을까? 소오생보다도 더 잘 삐지는 개자추의 삐짐 정신을 배우자는 얘기였을까? 개자식! 하며 임금을 욕하는 정신을 기리자는 얘기였을까? 오우, 노우, 네버! 그럴 리가 있겠는가?


임금님 혼자라도 배불리 드시옵소서! 저는 배고파도 참겠나이다. 드실 게 없으면 저라도 잡아서 드시옵소서! 바로 그 정신을 기리자는 얘기다. 아이구, 예뻐라! 그래, 그게 바로 충성이니라! 니네 백성들도 찬밥 먹으면서 배고파도 참아라? 개자식, 아니 개자추의 그 정신을 잘 배워야 한다, 알았지? 그것이 바로 한식에 숨겨놓은 함정인 것이다.     


결론을 짓자. 우리는 이 이야기에서 무슨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소오생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 다시 한번 확인해 보자. 우리는 안빈낙도安貧樂道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특히 지식인들은 가난하게 지낼 것을 유형무형으로 강요받아왔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식食과 색色은 인간의 본능이다. 그것이 어찌 중국인들만의 특성이겠는가? 욕망의 바다에서 헤엄치며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의 영원한 비극 아니겠는가! 공자는 과연 그 절박한 욕망의 세계를 완전히 초탈한 인물이었던가? 그래서 안빈낙도 운운하며 남들에게도 가난하게 지낼 것을 강요한 것인가?


오해하지 말자! 착각하지도 말자! 가난을 칭송하고 굶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이른바 ‘굶음의 미학’은 유가의 정신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가난한 자들끼리 주고받는 격려의 말이요, 권면의 말이다. 배불리 먹는 자들이 가난하게 지내는 자들에게 복종을 강요하며 써먹으라는 말은 절대로 아닌 것이다.


그것은 순전히 유가를 팔아먹고 형식주의 유교를 국가 운영의 기틀로 삼아 자신의 이익만을 얻고자 했던 역대 임금들의 농간이다.(가부장제와 전제주의의 탄생!) 거기에, 그 임금들에게 빌붙어 출세를 노렸던 쓸개 빠진 거짓 유학자들의 곡학아세曲學阿世가 합세한 것이다. 또 그 위에,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세상에서 떠드는 대로, 나도 한번 아는 척, 공연히 한 마디 떠들어보는 골빈당들의 흰수작이 가세한 것에 불과하다.


앗, 선생님! 어쩌자고 이렇게 말씀이 과하세요? 후환이 두렵지도 않으신가요? 비켜, 아무래도 오늘 나 한 마디 해야 될까 봐. 다시 한번 강조한다. 일부 몰지각한 인사들은 공자께서 말씀하신 안빈낙도의 뜻을 왜곡하지 말라! 중국요리의 정신이 무엇인지 아시는가? 다 함께 모여라, 다 함께 먹자! 그게 바로 공자님의 말씀이다. 무슨 뜻인지 궁금하면 하회下回를 계속 읽어보시라.


<계속>




<대문 사진>

◎ 한식날 차가운 음식을 즐기는 당나라의 여인들. 작가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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