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세상을 휩쓸기 직전의 일이다. 오래간만에 동창 모임에 나갔더니 자리에 앉자마자 한 친구가 대뜸 질문을 던진다. 에휴, 내 그럴 줄 알았다. 그래서 이런 자리에 나오기 싫었는데... 무슨 대답을 원하는가. 어떻게 대답해줘야 하나. 생각할수록 가슴이 막막하고 답답해진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분열과 투쟁으로 가득 차 있다. 무엇이든지 둘로 나누어 생각하고, 나누어진 그 둘을 철저히 대립시켜 생각하는 이원론이 빚어낸 갈등의 골이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있다. 남과 북의 뼈아픈 분단, 동서 간의 망국적 지역감정, 남녀 성별 간의 갈등, 무엇보다 정치의 극한 대립으로 둘 중 하나 선택해서 줄 서기를 강요당하고 있다. 우리 편이 아니면, 적이다. 이 무서운 이분법적 생각의 틀, 그 뿌리는 어디일까?
한국 사회의 이분법적 생각의 틀, 그 뿌리는 '서양의 신학문'이다.
유물론과 유신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좌익과 우익...
그 이원론二元論은 서구의 패러다임이다. 그에 반해 우리 동아시아의 패러다임은 일원론一元論이었다.
일원론과 이원론.
동東과 서西의 가장 대표적인 생각의 차이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우리는 동아시아인인데 어쩌다가 이원론의 망령에 사로잡혔을까? 해결책은 무엇일까?
인간의 생각 패러다임은 최초에는 자연환경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다. 그러다가 교통의 발달에 따라 차차 인문환경의 영향을 더 많이 받게 된다. 알래스카 설원의 추운 곳에 사는 에스키모와 아마존 깊은 밀림 속 무더운 곳에 사는 원시부족은 생각의 틀이 다를 수밖에 없다. 자연환경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동과 서도 마찬가지다. 약 2천여 년 전의 역사를 기준으로 할 때, 지구에는 동방과 서방이라는 두 개의 세계가 있었다. (역사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세계는 논외로 한다). 중국 대륙을 중심으로 하는 동방 세계와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서방 세계는 서로 거의 상반된 자연환경을 지니고 있었다. 그 자연환경 속에서 거주하는 동안, 동방 세계에서는 모든 것을 '하나 one'로 결합하여 전체를 바라보고자 하는 '일원론一元論'이라는 결합의 패러다임이 탄생했다. 반면 서방 세계에서는 모든 것을 '둘two' 이상으로 분리하여 따로따로 바라보는 '이원론二元論'이라는 분리의 패러다임이 탄생했다.
대체 자연환경이 어떻게 달랐길래 그랬을까? 일원론 이원론이란 건 구체적으로 무슨 말일까? 2천여 년 전 상황을 기본으로 검토해 보자. 먼저 이원론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