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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오생 Aug 31. 2024

28. 새로운 여행길의 첫출발

매거진 [중국 음식 중국 문화]를 마감하며

지난 2월 8일부터 7개월 가까이 연재해 온 매거진 [중국 음식 중국 문화]를 오늘로 대미를 고하고자 한다. 다음 주에는 3월 3일부터 연재를 시작했던 매거진 [앗 중국말이 이렇게 재밌다니] 역시 마감하고자 한다.


매거진을 시작하면서 미리 고백했듯이, 이 두 개의 매거진은 오래전에 이미 출판했던 책을 수정 보완하여 출판한 것이었다. 왜 그랬을까, 은근히 후회도 했다. 우선 이미 90% 이상의 원고가 확보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정 보완하자니 생각 외로 시간이 엄청 걸렸다. 지도 한 장 그리는 데 3, 4일 이상이 소모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정말 쓰고 싶은 이야기들이 자꾸만 뒤로 밀린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났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니, 하지만 그래도 그랬어야 했다. 어떤 분들은 소오생을 '중국말에 진심인 중국에 빠진 중국 마니아'로 생각하시기도 했다. 충분히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다. 하지만 아니다. 소오생 글쓰기의 궁극 목표는 우리 내면세계를 싱그럽고 충일하게 채워나가는 일, 그리하여 고독과 허무를 극복하고 새로운 삶의 전기를 마련하는 일, 마침내 더불어 아름다운 세상을 함께 만들어나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분열과 대립, 투쟁과 갈등으로 가득 찬 한국 사회! 소오생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 가득 찬 '서구의 이분법 패러다임'이 너무나 안타깝다. 무엇이든지 둘로 나누어 생각하고, 나누어진 그 둘을 철저히 대립시켜 생각하는 이원론二元論이 빚어낸 갈등의 골이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 있다. 대체 어떻게 극복하고 헤쳐나갈 것인가!


우주와 대자연과 인간을 보다 거시적으로 바라보는 합리적 과학적인 생각의 틀을 말하고 싶었다. 그게 무엇일까? 조화調和와 상생, 우리 동방 세계의 오랜 전통인 결합의 패러다임! 그것이었다. 동과 서의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원론과 원론 아니던가! 그러나 그것이 분명 우리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데올로기는 그 모든 것을 너무나 낯설게 만들어버렸다. 대체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 것인가.


브런치는 '문학'의 무대다. 그러나 '동방 세계 전통의 문학文學'이 아니라 '서구에서 건너온 literature'가 주로 활동하는 무대다. '문학文學'과 'literature'는 사뭇 다르다. 'literature'는 'letter - 문자' 중심, 이를 테면 글재주를 중시하는 '문장론'이다. 세상을 분리하여 바라본 그중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전통 문학'의 '문文'은 원래 '무늬 문紋'이었다고 한다. 우주와 대자연과 인간 세상, 청각 시각 촉각 후각 미각... 삼라만상의 그 모든 것을 글과 그림과 음악과 행동, 멀티미디어를 총동원해서 표현해내고자 하는 것이 우리 동방 세계 전통의 문학文學이었다. 이 세상 모든 것의 빼어남이 하나로 압축된 결합체였다.


그 문학을 어디서부터 출발할 것인가. 오랜 강의의 경험으로 얻어진 결론은 '먹고 마시는 것' 그리고 '말하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시라. 그것만큼 중요한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우리는 우리 동방에 대해 너무 모르는 같다. 중국요리 중국말을 가르쳐드리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우리 동방세계 문화주축 요인대한 기본 상식을 알려드리고 싶어서였다. 그래야 그다음 이야기를 제대로 펼쳐나갈 아닌가.


'언어'와 '음식', 그리고 '중국'은 소오생 글쓰기 여행길의 목적지가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매개체일 뿐,  [중국 음식 중국 문화] &  [앗 중국말이 이렇게 재밌다니]결국 시멘트 빌딩과 차가운 기계의 장벽 속에서 단절되어 가는 현대 문명인들의 외로운 마음과 마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방법론을 찾아 나선 여행길의 첫출발인 것이다. 이제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동안 정말 써보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펼쳐내보고 싶다.


참고로 [중국 음식 중국 문화] 매거진에서 미처 올린 자료들을 여기에 아카이빙해 둔다.



차의 종류



“선생님. 이건 무슨 차예요? 중국 차와 한국 차는 어떻게 달라요?” 가끔 학생들한테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난감하기 짝이 없다. 중국 사람과 한국 사람, 흑인이나 백인이 마찬가지 똑같은 사람이듯, 차나무도 매 한 가지. 딱 하나밖에 없다.


중국이 원산지인 차의 학명은 Camellia sinensis. 동백나무과의 식물이다. 그러나 수 천년 동안 전 세계에서 음용되다 보니, 정신이 헷갈릴 정도로 여러 가지 분류법이 있다. 그중, 너무 전문적이고 학술적인 분류법과 설명은 생략하고 가장 일반적인 것만 간단하게 정리해 보자.


첫째, 차의 모양에 따른 분류법. 잎으로 만든 잎차(葉茶)와, 가루로 만든 말차末茶, 덩어리로 만든 떡차(餠茶, 團茶) 등이 있다. 오늘날에는 대부분 잎차를 마신다.


둘째, 산지産地에 따른 분류법. 예컨대 유명한 중국의 서호西湖 용정차龍井茶, 동정洞庭 벽라춘碧螺春, 몽정蒙頂 감로차甘露茶, 신양信陽 모첨차毛尖茶, 황산黃山 모봉차毛峰茶, 군산君山 은침차銀針茶, 동정凍頂 오룡차烏龍茶, 안계安溪 철관음鐵觀音 등은 모두 산지의 이름을 앞에 표기한 것이다.


셋째, 색상에 따른 분류법. 가장 일반적인 분류법이다. 차는 제조 과정에서 발효를 어느 정도 시키느냐에 따라 백차白茶, 녹차綠茶, 황차黃茶, 청차靑茶, 흑차黑茶, 홍차紅茶로 분류된다. 그중 제일 많이 마시는 차는 녹차와 청차, 그리고 홍차이다.


① 서구인이 즐겨 마시는 홍차는 85 % 이상 발효시킨 것으로 인도의 다즐링 dazzeling, 중국의 기문祁門, 스리랑카의 우바 Uva가 세계 3대 홍차의 명산지로 손꼽힌다.


 녹차는 찻잎을 따서 바로 증기로 찌거나 솥에서 덖어 발효 과정을 거치지 않은 차이다. 때문에 차의 성분이 그대로 남아 있어 비타민 C가 레몬의 5배~8배나 함유되어 있고, 노화 억제나 암 및 각종 성인병의 예방과 억제 효과가 있는 카테킨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나 일본에서 나오는 차는 모두 녹차 계열이고, 중국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차 역시 녹차 계통이다.


청차靑茶는 절반 정도 발효시킨 것으로, 15 ~ 20 % 정도로 조금 발효시킨 포종차包種茶에서부터 50 ~60% 정도 발효시킨 오룡차烏龍茶, 철관음鐵觀音 등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일반적으로 청차라는 단어보다는 ‘오룡차’(중국어 발음은 ‘우롱차’)로 통칭하기도 한다. 복건성福建省 무이산武夷山이 원산지이지만, 오늘날에는 대만 동정오룡차凍頂烏龍茶를 최고로 친다. 청淸 나라 도광道光 연간에 대만에 살던 선비 임봉지林鳳池가 무이산에서 차 씨앗을 대만으로 가져와 동정산凍頂山 일대에 심은 것이 그 유래다.


넷째, 잎의 채취시기와  찻잎의 여리고 굳은 정도에 따른 분류법. 예컨대 양력 4월 하순~5월 상순에 채취한 녹차를 봄차 또는 첫물차라 하고, 양력 5월 하순~6월 상순에 채취한 차를 두물차라 부르는 식이다. 또 찻잎의 여리고 굳은 정도에 따라 세작細作(또는 상작上雀) 중작中雀 하작下雀 등으로 분류한다. 작설차雀舌茶는 세작 중에서도 곡우穀雨 5일 전에 딴 것을 말하는데, 잎의 싹 모양이 참새 혀 모양을 닮았다 하여 중국 송나라 때의 문인들이 지은 이름이라 한다.


그 외에도 차 잎에 꽃 향을 첨가한 화차花茶가 있다. 중국 북방 지역에서는 말리화茉莉花, 즉 재스민을 첨가한 재스민 차를 많이 음용한다. 한편 양자강 유역의 남방에서는 녹차를 많이 음용하고, 복건福建 및 광동성廣東省 등 아열대 지역에서는 청차를 많이 마신다.


그러나 중국 대륙의 차는 녹차나 청차를 막론하고 거의 갈증을 해소하는 음료수 수준에 불과하다. 녹차는 한국이나 일본에서도 가공하지만, 청차를 제대로 가공하는 곳은 전 세계에서 차 문화가 가장 발달한 대만뿐이다.



글로 먹는 맛의 황홀


추천사: 김주연 (문학평론가, 전 한국번역원 원장)          


이 책은 우리의 음식문화뿐 아니라 글로 된 우리의 모든 문화에 짜릿한 감동과 더불어 둔중한 충격까지 가한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은 가지각색 중국요리의 기기묘묘한 맛을 즐기기에 앞서 지금까지 한 번도 읽은 경험이 없는 현란한 글의 향연 앞에서 벌써 녹초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운문체와 산문체가 한데 어울려 때로는 즉물적인 묘사로, 때로는 한없는 주관의 흥분으로 읽는 이를 몸통 째 들었다 놓았다 하니 이 어찌 한갓 혓바닥과 입술에만 닿는 음식의 메뉴 학(學)이라고만 하겠는가.


중국요리가 대단하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중국이 거대한 나라인 만큼 그 맛의 다양함도 엄청난 것 같다. 중국요리와 더불어 세계적으로 이름난 프랑스요리, 이탈리아요리가 몇 가지의 특징으로 집중적인 개성을 형성하고 있다면, 이쪽은 도무지 어느 한두 가지로 특성을 꼬집어내기 어려울 정도로 그 성격을 일반화할 수 없는 듯하다. 굳이 그 특색을 살펴본다면 색色, 향香, 맛味의 세 가지를 들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인데, 그것들 모두에 충분한 관점들을 배려하면서 씌어진 책이 이 책이다.


중국학자도 요리전문가도 아닌 내가 흥미를 느끼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첫 번째 요인도 바로 이 점이다. 맛의 미각적 특색은 사천四川에서, 색의 시각적 특색은 강소江蘇에서, 그리고 향의 후각적 특색은 복건福建에서 누릴 수 있다고 하면서 펼쳐가는 맛의 순례기는 소설보다도 훨씬 더 긴장감 넘치는 작품성을 띤다.


작품이라고 나는 말했는데, 정말이지 이 책은, 실제 음식이 없더라도, 글 자체만으로 너무 맛있다. 리듬감이 넘치는 문장, 살아 있는 현장의 대화체, 풍부한 의성어와 젊은이들이 즐겨 쓰는 어미 등…. 게다가 유머나 해학으로 가득한 분위기는 사실 문학성의 새로운 범주 개척이라고 할 만하다. 그중에서도 동파의 <돼지고기 찬송가(猪肉頌)>는 백미라고 하겠다. 동파육東坡肉의 탄생 과정은 아마도 이 요리 맛에 버금가지 않을까, 아직 먹어보지 못한 나로서는 상상만 해볼 뿐이다.


이렇듯 화려하고 분방한 문체를 통해서 저자가 노리는 것은, 중국에서 음식은 단순히 배고픔을 채우는 생존의 행사가 아니라 그 자체가 인간관계의 사랑을 열어가는 미디어라는 점이다. 사람들은 식탁에서 음식을 먹고 술과 차를 마시며 수백, 수천 가지에 이르는 종류들을 음미, 감상하는 가운데 자신들의 지식과 인생관을 교환한다. 상당한 시간을 아낌없이 할애하는 이 식사시간에 사람들은 사실상 그들의 인격과 교양을 다 드러내게 되고, 이것이 사회생활의 요체를 결정짓는다.


결국 저자는 중국요리가 훌륭한 멀티미디어 예술이라는 인식 아래, 이에 대한 글 또한 이와 상통하는 문체의 예술로 전개함으로써 내용과 형식의 짝을 도모한 것이 아닌가 싶다. 맛있는 음식에 맛있는 책을 읽는 즐거움이 낭창하다.




추천사를 써주신 김주연 선생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시길 기도합니다.




[ 대문 그림 ]

중국 북송 시대 휘종徽宗 조길趙佶(1082~1135)의 <문회도文會圖> (일부). 184.4 ×123.9cm. 대만 고궁박물원 소장. 음식을 먹고 술과 차를 마시며 인간관계를 맺어가는 중국인들의 모습이 약여躍如하다. 동방 세계에서의 음식은 지식과 인생관을 교환하는 가운데, 인간관계를 열어가는 사랑의 미디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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