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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한번 더 뻗어보라! 거기가 정상이다

언어의 절벽을 오르면서

by 소오생

자, 이제 우리의 중국어 특별 훈련도 마무리를 할 시간이다.


여러분, 그동안 많이 힘드셨죠? 어제 배운 실전 중국어 멜로디를 오늘 하루 종일 반복, 또 반복해서 노래하셨으니 정말 혓바닥이 녹초가 되었을 거예요. 그래도 어때요? 앞으로 중국어를 혼자서 어떻게 공부하고 훈련해야 할지, 감을 좀 잡으셨나요?


네-에(ㄹ)!


하하, 이젠 한국말도 권설음으로 나오네요?


어휴, 혓바닥 아파! 난 하도 연습해서 한국말이 잘 안 나와요.

나는 그래도 왠지 기운이 막 넘쳐흐르는 것 같은데?

으어(↘) 슬(↓)러(↑)! 餓死了! 난 배고파 죽겠어.

하하, 누구야 누구?



언어의 절벽! 연상훈련과 감정이입으로!



아아, 조용, 조용!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알려드릴 비법이 남아있다. 지금까지의 [기초코스]는 선생님과 함께 공부했지만, 지금부터는 혼자서 연마해야 한다. 말하기 트레이닝의 [응용코스]인 [연상훈련], 그리고 [감정이입] 단계다.


여기가 바로 외국어 공부의 클라이맥스다. 부처님의 불상도 눈에 점을 찍어야 자비의 부처님이 탄생하여 우리의 손을 잡아주실 수 있는 법! 그러니까 지금부터 화룡점정畵龍點睛, 画龙点睛의 점안식을 가지는 셈이니, 이제 곧 하산하여 홀로 외로이 중국어 여행길을 떠날 여러분은 부디 귀를 씻고 들으시라!




먼저 상식 퀴즈 문제! ‘배우고 늘 익히니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그 말을 누가 했게? 그렇다! 동아시아 학문의 스타트, 《논어》의 첫 구절에 나오는 공자님 말씀이다.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불역열호不亦說乎아!


‘배움(學)'이란 무엇인가? 이론이다. 단순 지식의 습득이다. 스승을 흉내 내고 모방하고 따라간다는 이야기다. 저기 바라보이는 저 높은 산의 정상을 올라가려면 어떤 산길로 어떻게 올라가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 배운다는 이야기다.


‘익힌다(習)'는 것은 무엇인가? 실천이다. 모방과 흉내를 바탕으로 스승의 경지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보고자 하는 이야기다. 머릿속에 입력된 그 산길을 실제로 올라간다는 이야기다.


‘즐거움(說, 悅)'이란 무엇인가? 눈앞만 바라보며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올라가다 보니 어느 날 갑자기 더 오를 데가 없네? 앗! 이게 웬일이냐, 여기가 바로 정상이잖아? 도저히 오르지 못할 것 같았던 그 높은 정상에 돌연 우뚝 서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어찌 감격하지 않을쏜가! 어찌 즐겁지 않을쏜가!


마찬가지다. 인생도 그러하고 학문도 그러하다. 언어 공부는 더욱 그러하다. 소오생이 얘기한 <말하기 트레이닝>의 두 단계, 기존에 배우던 [기초코스]는 이를테면 ‘배움'을 말한다. 그러나 단순히 배우기만 해서는 안 된다. 반드시 [응용코스]를 통하여 습習, 익혀야 한다. 그래야만 자기 것이 된다.


익힌다는 것은 산길을 오르는 것.

높은 산을 오르는 산길에는 절벽이 나타나게 마련.

정상에 올라가려면 그 절벽을 기어올라가야만 한다.


여기서 잠깐! 언어의 절벽을 오르려면 등반 도구가 있어야 한다. 절대로 무작정 올라가서는 안 된다. 그럼 무슨 도구를 준비해야 하나요? 잘 들으시라! 언어의 절벽을 오르는 첫 번째 도구는 [연상훈련]! 그리고 두 번째 도구는 [감정이입]이다. 이 두 가지 도구가 없으면 언어 공부는 백년하청百年河淸, 그러나 이 도구를 사용하면 아무리 늦어도 석 달이면 올라간다. 자, 계속 읽어보시죠!




점괘를 뽑아보자! 하루를 예측하자!



옛날 중국의 지식인들은 아침마다 시초점蓍草占이라는 걸 쳤다. 오늘 하루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마음을 경건하게 가다듬고 점괘를 뽑아봤다.

고대에는 여러 가지 점을 치는 방법이 있었지만 제일 대표적인 것은 '거북점'과 '시초점'이다. 시초점은 시초蓍草라는 식물의 줄기를 이용해 점을 치는 것이다. (시초는 뿌리 하나에 줄기가 매우 많은 특징이 있다) 후대에는 편의상 대나무를 깎아서 시초점을 치기도 했다. 《주역》은 시초점으로 점을 친다.




여기서 잠깐, 딴 소리 하나! 《주역周易》이란 책이 있다. 《역경易經》이라고도 한다. 이것이 뭔 책이냐? 기똥차게 점 잘 치는 점쟁이 도사께서 계룡산에 들어가 10년 기나긴 세월 동안 수련할 때 옆에 놓고 보셨다는 그 책이다. 역술인들이 신줏단지 모시듯 하는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은 먼저 우리가 처해 있는 환경의 상태를 총체적으로 관찰하여 볼 때, 통계적으로 어떤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예측을 해준다.


하지만 이 책의 키포인트는 인간의 정해진 운명을 알려주는 데 있지 아니하다. 이 책의 핵심은 ‘역易’이라는 글자에 있다. ‘역易’이 무슨 뜻인가? '바꾼다'는 뜻이다. 이 책은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무엇으로? 나름대로의 똥고집으로? 아니다, 수양이다. 운명이란 수양으로 바꾸는 것이다.


수양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수양해야 하는 걸까? 옛 성현들에 의하면 ‘격물치지格物致知하고 성의정심誠意正心’하는 것이 수양이라 하였다. 오잉? 소오생이 갑자기 왜 이래? 한자만 보면 지레 겁을 먹고 머리에 쥐가 나시는 독자 여러분들도 없지 않아 꽤 되실 거다. 하지만 사실 이건 무지 쉽고 무지 재미있는 얘기다. 자, 소오생 버전으로 이야기를 들어보시라.


시초점이 아니라도 우리는 오늘 하루 우리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충분히 점칠 수 있다. 어떻게? 이것도 아주 쉽다. 우선 먼저 새벽에 일어나 화장실에 가서 응가(!)를 하자! 사람은 하루 중에 아침 응가를 할 때 머리가 가장 맑아진다고 한다. 그 시간에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미리 예측을 해보자.


음, 조금 있으면 엄마가 날 깨우러 오실 거야. 에이, 엄마는 언제나 날 어린애 취급하신다니깐? 음, 그다음엔 아침밥을 먹겠군. 히히. 난 언제나 핸펀을 보면서 밥을 먹지. 애고, 늑장 부리다가 오늘도 늦었군. 허둥지둥 달려가는 내 모습…. 앗! 조심해야지! 저기 버스 온다! 저 건널목에서는 늘 버스가 신호등에 서지도 않고 그냥 지나가버린단 말야? 후유, 큰일 날 뻔했다! 에구, 오늘도 또 아슬아슬하게 지하철 놓쳤네. 이그, 지각이야, 지각!


찬찬히 생각해 보면 아주 많은 일들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마음에 걸리는 장면들이 자꾸 망막에 떠오른다. 핸드폰 보면서 밥 먹는 장면을 떠올리며 안 좋은 습관을 고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신호등을 무시하고 달려오는 버스를 못 본 체 길을 건너고 있는 위기 상황을 예견하며 놀라서 외마디 비명을 지를 수도 있다.


그러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잠시 후 식사 시간. 무심코 핸드폰을 꺼내다가 잠시 전 예견 상황을 떠올리며 피식 웃음과 함께 핸드폰을 도로 집어넣게 마련이다. 집을 나서 건널목을 건널 때. 문득 예견했던 그 상황을 떠올리며 발을 멈추고 주위를 살펴보게 되어 있다. 바로 그 순간, 쌩- 신호등을 위반한 버스가 눈앞에서 지나간다면? 소오생 말을 듣고 상황을 예측하여 죽을 운명을 바꾼 것이 아니겠는가!


화장실에 가서 핸드폰을 보지 말고 연상훈련으로 하루를 예측하라!

예측을 하다 보면 자신에게 닥쳐오는 운명을 이렇게 바꾸게 된다. 이게 수양의 힘이다.


예전에 예쁘장한 우리 학과의 1학년 여학생 한 명이 집 근처 큰길 건널목에서 버스에 치어 죽은 적이 있다. 나한테 이 얘기를 들었으면 혹시나 그 죽음을 막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부모님의 눈물을 보며 한이 맺혔다. 그 후로는 신입생에게 맨 먼저 시초점 이야기를 꼭 해준다. 오늘 하루를 예측하라!

뭣이 중헌디? 중국어 공부가 목적이 아니다. 그것은 방편일 뿐. 외국어 공부라는 방편으로 치열하게 절벽을 기어오르는 간절한 정성을 배우는 것! 나 자신에게 닥쳐오는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여 바꾸어 나가는 수양의 훈련을 하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수양의 효과는 또 있다.


좀 더 잘 예측해 보면 어머니의 눈동자가 보인다.(와! 알고 보니 엄마 눈동자가 너무 따스하네? 히히, 맨날 입으로는 구박하시지만 마음으로는 날 무지 사랑하시는구나!) 장식장에 올려놓은 장식품처럼 무심하기 짝이 없게 취급했던 마누라의 외롭고 허전하고 아픈 그 심정도 보인다.(미안하구려, 여보! 내가 잘못했소. 내가 당신을 돌봐줘야 하는 건데…)


여우 같은 마누라, 토깽이 같은 자식새끼 먹여 살리느라 싸나이 자존심도 다 팽개치고 굽신굽신 더러븐 세상에 고개 숙이며 사는 불쌍한 남편의 썩어가는 마음도 읽혀진다.(여보, 미안해요. 난 그것도 모르고….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하셨어요?)


엥? 뭬라? 깐깐하고 퉁명스런 고약한 선생, 아니 인간 소오생의 텅 빈 내면에 흐르는 간절함과 타는 목마름의 세계도 쪼깨 보이지 않느냐고? (흥! 속을 줄 알고? 넌 고 따위로 지내도 싸다, 싸! 후어(↗)까이(→), 活该! 깨소금이닷!)


이게 바로 수양의 힘이다. 이런 훈련은 변화하는 사물의 내재규율과 복잡 미묘한 인간 심리의 섬세함을 읽어내는 탁월한 혜안을 키워준다. 이해가 되시죠?




변화하는 상황을 중국어로 예측하라!



생각해 보라! 변화하는 상황을 미리 예측하는 이 기막힌 훈련을 한국어 아닌 중국어로 한다면 얼마나 더 기똥차겠는가! 국가 대표 양궁 선수들도 명상 훈련을 한다고 한다.


음, 바람이 갑자기 세게 부는군. 풍향도 바뀌었어. 가만있자? 이럴 때는 어떡한다? 그래, 맞았어. 보통 때보다 활을 15도 각도 더 위로 틀어야겠어. 하나, 둘, 셋! 쐈다! 자, 화살아, 제대로 날아가는 거야, 그래, 그거야! 오케이, 명중이다!


마찬가지다. 중국어 공부도 그렇게 하면 된다. 정말 효과 만점이다. 머릿속이 그대로 중국이 된다. 자, 예를 들어보자. 시중에는 수많은 중국어 회화 교재들이 있다. 그러나 교재에 담긴 내용은 언제나 판에 박힌 듯 정해져 있다. 중국에서는 사람을 만날 때면 한결같이 아래와 같은 대사를 한단다. 정말일까?


"니 하오 마? Nǐ hǎo ma? 안녕?"

"워 헝 하오. 니 너? Wǒ hěn hǎo. Nǐ ne? 난 잘 지내. 너는?"

"워 예 헝 하오. Wǒ yě hěn hǎo. 나도 잘 지내."


하하하! 아니 뭐 하자는 건가. 헤어진 연인들이 오랜만에 만난 거라면 또 모를까, 진짜로 친구랑 만나서 이런 식의 대화를 주고받는다고? 말도 안 된다. 진짜라면 너무 웃긴다. 아니, 이 짜식이 왜 이래? 나한테 뭐 삐진 거 있나? 상대방이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는가? 이런 말도 안 되는 문장만 외우고 있으니 중국 친구를 갑자기 만났을 때 입이 얼어붙는 거다.


교재 안에 쓰여 있는 건 내 얘기가 아니다. 오늘 나에게 벌어질 상황도 아니다. 상황은 늘 변한다. 내가 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바뀐다. 내가 이렇게 행동하면 상대방은 어떻게 반응할까? A, B, C 등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겠지? 그 상황 상황마다 미리미리 대비를 해보자.


Hēi―, 아뺘오! Zěnme la? shūfu ma? Liǎnsè bù hǎokàn!”

“아니, 오생아. 왜 그래? 어디 아픈 거 아냐? 얼굴색이 안되어 보이네!”


맞아, 아무래도 그 친구 이렇게 말할 거 같아. 그 친구가 의외로 섬세한 면이 좀 있거든. 게다가 내가 어제 술을 많이 마셔서 얼굴색이 안 좋으니까 틀림없이 이런 식으로 말을 꺼낼 거야. 음… 그럼 나는 뭐라고 대꾸할까? 이렇게 대답해 볼까? 아냐, 아냐! 그 친구가 좀 무관심한 면이 많으니까 이렇게 말을 꺼낼지도 몰라.


Hēi, 아뺘오! Hǎojiǔ bújiàn! Zuìjìn guòde zěnme yàng? 하이(↗) hǎo ba?”

“어, 오생이구나! 오랜만이네? 요새 어때? 잘 지내지?”


짜식! 너무 의례적으로 나오는군! 좋았어. 나도 같은 수준으로 대접해 주지…. 이렇게 상황 상황마다 아는 중국어를 모두 활용하여 조금씩 준비해 두는 거다. 짧고 쉬운 말일수록 좋다. 그렇다고 계속해서 모든 가능성을 끝까지 예측하며 준비하려고 할 필요는 없다. 그건 절대로 불가능한 헛수고니까.


몇 가지의 상황에 대비하여 처음 말문만 트이게 할 정도면 충분하다. 일단 중국말이 터져 나오기만 하면 된다. “어? 나도 알고 보니 한 중국말 하네?” 자신감이 생기면 그다음부터는 휘말리는 혓바닥에 찰싹 올려놓았던 멜로디 중국어가 전 자동으로 좔좔좔좔 터져 나올 테니 걱정 마시라. 그게 바로 [연상훈련]의 효과다.




새벽에 일어나 중국어로 웃고 울자



이제 [연상훈련]을 어떻게 하는 건지 대충 감을 잡으셨죠? 이번에는 [감정이입]을 해보자. 그런데 사실 이 두 가지는 하나이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인 거나 마찬가지다. 그게 무슨 소리냐? 오늘 하루 일어날 상황, 상황을 하나씩 머릿속으로 그려보면 그게 바로 [연상훈련]이요, 그걸 큰소리로 입 바깥에 좔좔좔좔 토해내면 그게 바로 [감정이입]이란 이야기다.


그러나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리딩을 해서는 안 된다. 먼저 이 말이 지금 어떤 상황에서 나오는 말인지 그걸 생각해라. 그때의 감정, 그 목소리를 떠올리며 실제 상황이라 생각하고 리딩을 해야 한다. 누군가 사막에서 “아, 목말라! 물 한 잔 먹고 죽었으면….” 말했다 치자. 그 말을 한 사람은 어떤 감정이었을까? 어떤 목소리였을까?


또 여러분이 중국 땅에서 중국 친구와 함께 TV로 월드컵 축구 경기를 시청한다 치자. 슛! 골~인! 꼬올~인! 우리의 대~한민국이 강호 이/따(↘)리에게 역전골을 넣었다. 그 순간, 어떤 몸짓과 어떤 목소리가 튀어나올까? 그렇다! 지금 여러분의 머릿속에 떠오르고 있는 바로 그 소리, 그 감정이다. 그 소리와 그 감정을 재현하며 리딩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실제 상황에서 중국어가 자유자재, 천의무봉으로 튀어나온다. 아시겠는가?


그러다가 어느 정도 멜로디 중국어의 리듬감을 파악했다 싶으면 이번에는 중국 영화나 비디오를 보도록 하자. 이제는 완전히 미쳐버리는 거다. 중국 배우가 호호호 웃으면 여러분도 똑같은 목소리로 어머나 호호호 중국말로 따라 웃어라. 절더러 연기자 수업을 하라는 겁니까, 지금?


그래, 맞았다, 바로 연기를 배우는 거다! 인생은 어차피 한 마당의 연극 무대! 석 달 동안 중국어로 웃다가 울며 신들린 연기를 하다 보면 이미 중국 사람으로 바뀌어 있는 여러분 자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자, 이제 결론을 내자. 새벽에 일찍 일어나자. 배운 것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응용코스]의 훈련은 새벽에 하는 거다. 그래야 가장 좋다. 새벽에 미쳐야 한다. 아니, 새벽부터 미쳐야 한다.


새벽부터 미치면 하루종일 완전히 미칠 수 있다. 아침에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 학교 가는 지하철 속에서 우연히 귓가에 스며드는 감미로운 노래 한 소절…. 여러분은 자꾸만 떠오르는 그 노래 가락을 온종일 아무 생각 없이 흥얼거려 본 적이 없는가? 바로 그거다. 아침에는 머리가 아주 맑다. 다른 말로 하면 머리가 텅 비어있다. 아직은 다른 잡스러운 생각이 뇌세포의 세계로 쳐들어오지 않은 것이다. 이때를 이용하자!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연기를 해라.


중국 영화나 비디오를 틀고 감정을 모아 그대로 따라 하라. 소리를 지르고 춤을 추며 30분 정도 미친 듯이 중국어로 연기를 하자. 그리고 오늘 하루 무슨 일이 일어날지 조용히 명상에 잠겨보자. 그 상황 상황마다 나는 또 어떻게 대처할지 생각해 보자. 상대방은 또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생각해 보자. 그 생각을 중국어로 하자. 수양을 중국어로 하는 거다. 그러면 내 모든 세계는 아름답게 중국으로 피어난다.


자, 드디어 하루가 시작되었다. 모든 상황이 신기하게도 내 예측대로 전개되고 있다. 어머니가 날 깨우러 오시고, 나는 아침밥을 먹고, 건널목에서는 버스가 위험하게 지나가고, 오늘은 지하철을 아슬아슬하게 잡아탄다. 중국 친구와 만났더니, 이야 정말 내가 예측했던 그 말을 하네? 참으로 기가 막히다.


앗, 이런 중국말은 생전 처음 듣는군. 하지만 전체적인 내용이 대충 이런 뜻이니까 이건 필경 저런 뜻일 거야. 우와, 맞았어! 조금 더 듣다 보니 정말 내가 생각했던 그 뜻이 맞는 거 같애! 생전 처음 듣는 중국말도 귀에 쏙쏙 들어온다.


무슨 말인지 들리니까 내가 준비해 둔 중국말이 술술 잘도 터져 나온다. 이야, 내가 중국말을 이렇게 잘하다니!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 부처님, 싸부님! 소오생 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인격 수양도 하고 중국어 공부도 하고, 꿩 먹고 알 먹고, 도랑치고 가재 잡고,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님도 보고 뽕도 따고. 쉬운 말로는 일석이조요, 쪼깨 어려운 말로는 일전쌍조一箭雙鵰가 이를 일러하는 말이로다! 아, 화살 한 대로 용맹한 송골매를 두 마리나 잡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소오생 멜로디 중국어'의 위력이란 말이었단 말이냐!




사랑으로 올라가는 중국어 공부의 계단 길



“선생님, 엉엉! 전 안 돼요.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진짜 열심히 했는데도 전 안 돼요. 쟤는 대충 어영부영해도 잘만 하는데, 저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걸 어떡해요? 엉엉, 중국어는 제 적성에 안 맞나 봐요.” 가끔 학생들이 울며 하소연을 한다.


마지막으로 그런 학생들을 위하여 한마디 하겠다. 아냐, 좀 더 미쳐 봐! 좀 더 확실하게 미쳐보라구! 한국말 못 하는 한국 사람은 없어. 중국 말 못 하는 중국 사람도 없고. 말 못 배우는 어린아이 본 적 있니? 절대로 없지? 단지 어느 순간 입이 트이느냐 그 차이일 뿐이야. 입이 빨리 트인다고 그 아이의 국어 실력이 뛰어나다고 말할 수 있겠니? 좀 늦게 트인다고 그 아이에게 땡땡 네 인생은 여기서 종친 거야 그렇게 말할 수 있겠니?


그래도 떼를 쓰며 대드는 학생도 있다. 선생님은 거짓말쟁이. 석 달 동안 하라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된다고 그랬잖아요? 이제 와서 무책임하게 오리발이세요? 난 정말 하라는 대로 다 했단 말예요. 그런가? 내가 너무 큰소리를 뻥뻥 친 건가?


하긴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먹고 여우가 시집가던 소오생의 강사 시절, 이런 일도 있었다. 국내 굴지의 재벌 H 그룹에서 하루에 두 시간, 일주일에 닷새씩 중국어를 가르치는데, 7주가 지나니까 쉰이 넘으신 어떤 부장님의 리딩 실력이 갑자기 너무 좋아졌다. 대학교에서 중국어를 전공한 웬만한 4학년 학생보다 더 훌륭했다.


기분이 좋아진 내가 그 양반한테 물어봤다. 어때요, 제 말이 맞죠? 아침에 삼십 분 미친 듯이 리딩 연습하니까 되죠? 그 양반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아시는가? 허허! 선생님, 삼십 분 가지고는 어림도 없던걸요? 저, 새벽 세시에 일어나 하루에 네 시간씩 리딩했어요….


소오생이 거짓말쟁이든 뻥쟁이든 그게 무슨 상관이랴.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어쨌든 그 양반이 나로 인하여 그 연세에 미치실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기뻤다. 30분이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정신없이 미쳐 지내느냐이다. 시계를 보고 30분을 재면서 리딩 연습하다가, 응 이제 30분 됐네? 그만해야지. 이건 절대 미친 사람이 아니다. 어영부영 미친 건 미친 게 아니다. 미치려면 확실히 미쳐라!


외국어 공부는 계단을 오르는 것과 같다. 외국어 실력은 경사진 언덕을 오르는 것처럼 조금씩 느는 게 아니다. 아무리 공부해도 한동안은 전혀 효과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치열하게 기어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 절벽 위로 훌쩍 올라선다. 그다음도 마찬가지. 일정 기간 답보 상태에 머물다가 그래도 열심히 하다 보면 또다시 시야가 탁 트인다. 또 그다음 단계의 절벽 위에 올라선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삶은 절벽을 오르는 것. 절벽을 오르는 사람은 정상이 어디인지, 얼마나 올라온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정상이 없는 절벽은 없다. 언젠가 정상은 돌연, 마치 우연처럼 불쑥 나타나 우리들의 간절한 기도에 보답해 줄 것이 틀림없다. 한 번 더 뻗어보라! 거기가 정상일 것이다!


아하, 그렇군요! 그렇다면 계단 하나 오르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리나요? 중국에서 미치면 한 달, 한국에서 미치면 석 달이다! 늦어도 석 달 동안 확실히 미치면 된다. 물론 사람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두 달 보름 만에도 되고, 어떤 사람은 석 달 하고 하루가 더 걸릴 수도 있다. 이틀이 더 걸릴 수도 있고 보름이 더 걸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하루를 더 못 넘기고, 오늘로 정확하게 석 달이군. 근데 난 왜 이 모양이지? 아냐, 소오생한테 사기당한 거야, 에이 관둬라.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결단코 그동안 미쳐있던 사람이 아니다. 이해하셨는가? 으흠, 대충 여기서 통과! 땅, 땅, 땅!




언어의 그물을 버리고 마음의 주파수를 맞추자



여러분, 소오생은 언제 중국어를 가장 유창하게 했을까? 아마 처음 유학 갔을 때, 중국과 중국어에 미쳐서 지낸 지 육 개월쯤 되었던 시절, 그때 제일 유창하게 구사했던 것 같다. 시골 중국 친구 집에 가서 한 달간 지내게 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는 내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을 정도였으니까.


그 무렵, 모교의 은사님이 오셨다. 모시고 택시를 탔는데, 아 글쎄, 이 나뿐(^^) 운전사 넘이 요금을 더 받으려고 빙빙 돌아가는 게 아닌가! 그래 한바탕 싸우고 기어이 요금을 깎았더니, “아니, 너 유학 온 지 얼마나 지난 거야?” 선생님이 내 중국어 실력에 깜짝 놀라셨다.


3년 뒤, 나는 박사반에 떨어져서 석사 학위만 받고 일시 귀국하게 되었다. 그때 나는 만 서른 살도 안 된 나이에 대한민국에서 외국어 교육을 제일 잘한다는 모교에서, 그것도 중국어를 전공하는 ‘후배님’들을 상대로 중국어를 가르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그 모두가 육 개월 미친 덕분이었다.


그런 소오생, 지금 중국어 실력은? 보나마나 전혀 유창하지 못할 거다. 왜? 말을 할 기회가 있어야지. (사실은 그래서 한국어도 떠듬떠듬) 그러나 수십 년 전의 내 중국어가 초등학생이 따발총처럼 쏘아내던 유치한 중국어라면, 지금은 다소나마 어른이 된 느낌이다. 어휘력이 훨씬 더 늘어서? 아니다. 그런 차원이 아니다. 그럼, 어떤 차원일까?


여러분! 언어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가?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언어의 목적은 의사 전달에 있다고. 그러나 소오생은 말한다. 언어의 목적은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해 보자. ‘의사 전달’? 무엇을 위한 ‘전달’일까? 갈등과 분쟁을 위하여? 그럴 리가 없다. 그러려면 말이 필요 없는 것 아니겠는가! ‘전달’이란 결국 화해와 조화를 위해 필요한 것,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위해 필요한 것이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인간이 마음속에 있는 뜻을 언어로 표현해 낼 수 있는 것은 30%도 안 된다고 한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언어 공부는 단순 기능 훈련에 멈추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참된 언어 공부는 30%에 지나지 않는 언어의 그물을 버리고, 타인이 미처 표현해 내지 못한 70%의 숨어있는 말과 감정을 헤아리는 것, 우리들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따스하고 섬세한 안테나로 상대방의 참된 뜻이 발산하고 있는 주파수를 포착하는 것, 다시 말하자면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게 언어 공부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언어 공부는 그래서 바로 곧 문학 공부로 이어진다. 먼저 그 사실을 깨닫고 언어 공부를 시작하자! 지금은 학령 인구 감소 영향으로 이름을 몽땅 바꿨지만, 예전 대부분 대학의 외국어 전공 학과 명칭에 언어와 문학을 병립했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영어영문학과, 중어중문학과 등등...


여러분! 여러분은 무엇 때문에 중국어를 배우시는가? 요새 중국이 뜬다니까, 중국어가 잘 팔린다니까, 중국어를 잘하면 월급을 조금 더 많이 받는다니까, 혹시 그래서 중국어를 배우시는가? (이건 모두 옛날 얘기다 ^^;;)사랑하는 여러분! 한 번 더 생각해 보시라. 조금 더 멀리 내다보시라. 조금 더 거시적인 안목으로 세계와 우주를 폭넓게 바라보시라. 중국어를 배운다는 것은 중국 사랑의 마음을 배우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사대주의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영어도 그렇고 일본어도 마찬가지다. 맹목적인 마니아가 되면 안 된다. 타인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배우는 것은, 결국 참된 나 자신을 발견하고 사랑하자는 것 아니겠는가! 언어는 과학이 아니다. 단순 기능도 아니다. 언어는 감정이요, 우리 마음속의 사랑을 표현하는 도구이며 방편이다. 그 사실을 잊지 말고 중국어 공부의 계단을 사랑의 마음으로 올라가자!


아울러 바라건대 이 매거진에서 보여준 경망스러움을 소오생의 전부로 판단하지 말아 주셨으면…. 부디 앞으로 소오생이 눈을 감을 때까지 이곳 브런치에 유언으로 남기는 모든 이야기들을 끝까지 듣고 난 후, 소오생이 말하고자 하는 중국과 중국인, 중국 문학과 역사 문화의 세계가 무엇인지 판단해 주셨으면 좋겠다.


이 매거진으로 어린이 중국어를 배우신 여러분, 그 세계도 부디 마저 익히시어 중국인을 진정으로 탄복시킬 수 있는 어른 중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게 되시기를 희망해 본다.


그동안 매거진 [앗 중국말이 이렇게 재밌다니]를 애독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와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전합니다. , 따지아! 여러분, 감사합니다. ^^


<끝>




[ 대문 사진 ]

◎ 북한산 인수봉. 멀리 도봉산이 보인다. 소오생 고등학교 시절의 놀이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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