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공부하는 방법 (3)
‘헤엄치다’라는 단어는 한자로 ‘유游’다.
하지만 옛날 선비들은 이 글자를 다른 뜻으로 더 많이 사용했다.
⑴ ‘공부하다’는 뜻. 학문의 세계는 바다와 같다.
‘배움(學)’과 ‘사색(思)’은 이 학문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것이란다.
정말 멋진 표현 아닌가. 서구식 공부에도 이런 간지 나는 표현이 있을까?
⑵ ‘주유周游한다’는 뜻. 요새말로 ‘체험 답사’ 또는 새로운 형태의 '여행'이다.
공자의 ‘배움’과 ‘사색’에 더하여, 중국 역사의 아버지 사마천이 제시한 또 하나의 공부 방법이다.
여행은 21세기에 들어와 문화 산업의 핵심이 되었다. TV를 보아도 온통 여행 프로그램이다. 브런치 스토리에서도 여행에 관한 글은 단연 인기를 끈다. 많은 사람들이 환상적으로 아름다운 곳으로 여행을 떠나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마시며 재미있게 즐긴다. 그러면서 '힐링'이 되었단다. 그런 삶을 '웰빙'이라고 칭송한다.
과연 그럴까? 그것은 혹시 ‘여행’의 탈을 쓴 일탈逸脫은 아닐까? '바캉스 베이비'라는 말이 왜 탄생했을까? 여행에서 일상으로 돌아오면 후유증은 없을까? 여러 가지 상념이 이어진다.
우리는 여행을 가면서 수많은 사진을 찍는다. 디지털카메라가 발명되면서 값비싼 필름을 살 필요가 없어지자 정말로 엄청나게 찍는다.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오고 나면, 세월이 흘러가면, 어디에서 찍은 것인지 기억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런 여행이 과연 '웰빙'이요 '힐링'일까?
그런 여행은 떠나면 떠날수록 욕망만을 추구한다.
떠나면 떠날수록 현실 속의 삶과 괴리된다. 자꾸만 현실을 도피하고만 싶어 진다.
요새는 해외여행도 옆집 드나들듯 다닌다. 일 년에 두세 번씩 해외여행을 다니는 게 기본이다. 다들 그러시죠? 자, 여기서 질문을 드려보겠다. 만약 해외여행 경비로 100만 원을 쓴다면 그중에서 가장 큰 항목은 무엇일까? 얼마나 쓸까? 우리가 그렇게 쓰는 돈은 누가 혜택을 받게 될까?
통계에 의하면 약 50~60% 정도를 교통비로 쓴다고 한다. 그중 90% 이상이 항공료다. 즉 항공사가 돈을 버는 것이다. 항공사는 누구의 소유인가? 대 재벌 소유다.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다닐수록 돈 많은 재벌들만 더욱더 돈을 번다. 그나저나... 비행기 연료가 지구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사실 정도는 다 알고 계시겠죠?
두 번째로 많이 쓰는 경비 항목은 무엇일까? 그렇다. 숙박이다. 전체 경비의 약 20~30% 정도다. 어디에 묵을까? 대부분이 외부 자본으로 지은 숙박 및 휴양 시설에서 묵는다. 현지 주민의 집에서 민박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우리가 아무리 여행을 가도 현지 주민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많지 않다. 식비를 포함해도 마찬가지.
그 대신 현지에 끼치는 환경오염은 엄청나다. 인간이 많아지면 쓰레기도 많아지고 소음도 심해지며 물가도 엄청나게 비싸진다. 현지인들은 아주 작은 수익을 얻는 반면, 그들 삶의 터전은 점점 더 심각하게 훼손된다.
그래서 최근에는 이른바 '공정 여행'이라는 단어가 부각하기도 했다. 현지인들도 '공정한' 혜택을 얻을 수 있는 여행을 하자는 이야기. 하지만 '공정'의 이름을 걸고 가장 '불공정한' 일이 자행되고 있는 시대 아닌가! '공정'이란 말만 들어도 거부 반응이 생기기만 한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면 떠날수록 현지 주민의 삶은 점점 더 피폐해진다. 양극화는 심화되고 지구 환경은 더욱 파괴된다. 비닐봉지를 사용하지 말고 용기를 가지고 다닙시다! 옹기종기 모여서 백날 외치며 실천해 봐야 비행기 한 번 뜨면 말짱 도루묵이다. 해외여행을 갈 때 가더라도 그런 사실은 알고나 다니자.
그렇다면 아예 여행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
아니다.
여행은 분명 격물치지格物致知의 가장 좋은 공부 방법 중의 하나다. 여행은 인간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거시적 안목’을 키워주고, 자기 성찰을 통해 문제의식을 길러주며, 궁극적으로 진정한 ‘나’ 자신을 발견하게 해 준다.
그래서 고대 동아시아의 '학문'에서 현대 서구의 신흥 융합 학문인 '문화인류학'에 이르기까지 가장 중시하는 공부 방법이기도 하다.
대체 어떻게 여행을 해야 하는 것인지, 동아시아 '학문'의 여행 방법부터 차근차근 알아보자.
― 사마천,《사기》<오제본기> 중에서
이 <오제본기五帝本紀>라는 글은 《사기》의 서두를 장식하는 맨 첫 번째 글이다. 그리고 위에서 인용한 대목은 그 <오제본기>의 '찬贊'의 일부다. 그러므로 여기서의 '나'는 '사마천'을 지칭한다.
'찬'이란 무엇일까?
《사기》의 모든 글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 번째는 서사敍事, 즉 묘사 대상이 되는 인물에 대한 역사 서술이다.
두 번째 부분은 의론議論이다. 사마천은 역사 서술을 끝내고 나면 언제나 “태사공은 말하노라 (太史公曰)”라고 하면서 자신의 주관적 견해를 밝힌다. 그 의론 부분을 '찬'이라고 한다.
사마천司馬遷(B.C.145? ~ B.C.90?)은 여기서 자신의 여행 경험과 목적을 이야기하고 있다. 왜 하필이면 《사기》의 서두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 걸까? 《사기》가 그 여행의 결과로 탄생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사마천은 스무 살 나이에 2, 3 년 동안 천하를 주유하며 여행을 했다. 그의 여행은 남다른 면이 있었다. 2, 3년이라는 장기간의 여행이라는 점도 있었지만, '한 번' 떠난 여행이 아니라 평생을 두고 적어도 '세 번'에 걸쳐 떠난 여행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섬서성 한성시 사마천 사당에 있는 그림. (좌) 답사 여행을 떠난 청년 사마천 (우) 사마천이 여행을 다닌 곳.
첫 번째 여행은 사전에 먼저 '책으로 떠난 가상 여행'이었다. 위의 기록을 읽어보면, 사마천의 여행 대상지역은 모두 ‘오제五帝’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되는 곳이었다. 그곳에 가서 그는 현지인들과 함께 어울려 지내며 자신이 서적에서 보았던 '오제'와 연관된 기록들이 사실이었음을 확인한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가 2, 3년에 걸친 장기간의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수많은 책을 읽으며 가상의 여행을 떠났다는 이야기 아닌가. 그런데 왜 하필 '오제'였을까?
사마천은 태사령太史令이었던 아버지 사마담司馬談의 영향을 받아 역사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옛날에 역사란 아무나 기록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반드시 태사령이라는 전문 사관史官만이 기록할 수 있었다. 이 벼슬은 대부분 가업으로 계승되었으므로, 사마천에게 역사란 운명적 존재였다.
사마천이 관심을 가진 것은 '시작'이었다. 대체 역사를 어디서부터 기록해야 할 것인가. 신화로 전해 내려오는 복희伏犧•여와女媧•신농씨神農氏 등의 '삼황三皇'에 관한 이야기, 황제黃帝•전욱顓頊•제곡帝嚳•요堯•순舜 등의 '다섯 임금(五帝)'에 관한 전설도 있었다. 어디서부터 얼마나 믿을 수 있는 기록일까.
여기서 우리가 배울 점이 있다. 그의 독서법이다. 브런치의 많은 작가님들이 다양한 서평을 내놓고 계신다. 여러분은 어떤 방법으로 독서를 하시는가? 혹시 특별한 계획 없이 무작정 다방면에 걸쳐 다독多讀하고 계신 것은 아닌지?
대학에서는 교수들이 교양 도서를 추천해주곤 한다. 다방면에 걸쳐 골고루 책을 읽으라고 한다. 그런데 정말 다방면일까? 소오생이 보기에는 80% 이상이 서양학 관련 서적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대학이 가르치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 서양학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동아시아의 전통 학문 관련 서적도 대부분 해석에 문제가 많다. 심각한 불균형이다.
사마천은 달랐다. 그는 분명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의문점을 해결하기 위해 책을 뒤지면서 읽었다. 그리고 몇 가지 자신만의 가설을 가지게 되고, 그 가설을 확인할 수 있는 여행의 동선을 정하고, 구체적인 여행 계획을 수립할 수 있었다. 그의 첫 번째 여행은 문제의식을 지니고 나름대로의 가설을 정립하기 위해 책을 통하여 떠나는 가상 여행이었다.
우리의 여행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실제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수많은 '배움'과 '사색'을 통해 먼저 가상 여행을 떠나야 한다. 분명한 목적이 있는 여행이어야 한다. 자신만의 확실한 테마를 정하고 가설을 정립해야 한다. 꼼꼼한 도상 여행을 통해 동선을 치밀하게 세워보는 가상 여행이 선행되어야 한다.
(좌) 사마천 묘로 가는 길. (우) 산 정상에 있는 사마천 묘. 중국 섬서성 한성. 2018. 10. 11.
두 번째 여행은 스무 살의 청년 사마천이 실제로 떠난 여행이다.
그의 여행은 몇 가지 특징이 있었다. 우리도 배워볼 만하여 정리해 본다.
(1) 분명한 목적과 계획이 있는 여행이었다. 스무 살의 청년 사마천은, 황제黃帝를 비롯한 다섯 임금이 중국 역사의 출발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길을 떠난다. 여행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문제의식을 해결/확인하기 위한 '답사 여행'의 성격이 되어야 한다.
(2) 느리게 가는 여행이었다. 비행기나 고속버스, 자동차를 타고 순식간에 스쳐 지나가는 주마간산走馬看山 여행으로는 허영심만 채울 뿐, 사실은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천 천 히, 느리게 가면 갈수록 여행 경비도 줄어들고 깨달음도 많아진다.
(3) 현지인과 함께 하는 여행이었다. 사마천은 늘 현지인들과 함께 지내며 현지의 풍속을 알아보고 촌로들의 증언을 통해 기록의 진위 여부를 판단해 나갔다. 현지인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여행은, '여행'이 아니라 일방적인 '침입'에 가깝다.
(4) 사색이 있는 여행이었다. 사마천은 낮에는 유적지를 찾아 답사를 하고 밤에는 답사 결과와 기록을 대조하며 사색에 잠겼을 것이다. 사색이 없는 여행은 단언컨대 여행의 이름을 뒤집어쓴 '일탈'에 불과하다.
(5) '참 나'를 만나는 여행이었다. 사마천은 왜 그렇게 역사의 '시작'에 관심이 많았을까? 영겁의 시간 속에 흘러가는 인간 삶의 실체가 무엇인지, 그 속에서 '참 나'의 존재 가치는 또 무엇인지 그것이 궁금했던 것이리라.
세 번째 여행은 마흔 살의 중년 사마천이 글로 쓴 '회고 여행'이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청년 사마천은 다시 ‘읽기’와 ‘사색’을 거듭하며 자신의 생각과 답사 결과를 가다듬고 또 가다듬는다. (부친 사마담이 죽은 뒤 태사령 벼슬을 이어받아 공무로 전국 각지를 다니기도 했다.)
그렇게 20 년 세월이 흘렀다. 중년 사마천은 드디어 황제黃帝를 중국인의 시조로 규정하고, 동아시아 최초의 본격 역사책의 저술을 시작한다. 서술 범위가 어마어마했다. 모든 역사책이 어느 한 시대만을 다룬 단대사斷代史였던 것에 비해, 사마천은 역사의 시작으로부터 그가 살고 있던 바로 그 시대까지를 서술한, 이른바 통사通史를 서술한 것이었다.
나이 마흔아홉에는 억울하게 궁형宮刑을 당하는 치욕을 겪기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10여 년이 지난 오십여 세에 사마천은 온갖 환난과 수모를 극복하고, 위대한 문학 서적이자 역사책인 《사기》를 완성하였다. 장기간에 걸친 '세 번의 여행'을 통한 철저한 실증의 결과물이었다.
공부란 책상머리에 앉아서 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사마천처럼 ‘배움’과 ‘사색’을 통해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그게 없으면 억지로 백날 앉혀봤자 고문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체험 답사(游)’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확인해야 한다.
격물치지格物致知의 공부는 세 번 떠나는 여행이다. 첫 번째와 세 번째는 강의실과 도서관에서. 두 번째는 확인을 위한 답사 여행이 되어야 한다. '학문'이란 이 과정의 반복이다.
2008년 섣달그믐날 저녁.
중국과 미얀마의 접경지역인 운남성의 노강(怒江; 살윈강)대협곡.
양쪽은 평균고도 해발 4,000m의 민둥산. 모래 먼지가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그 중턱에 아찔한 절벽 길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이제 몇 시간 후면 설날인지라 모든 교통편은 일찌감치 끊어졌다. 버스를 몇 번이나 갈아타고 도착한 어느 시골 마을에서 천신만고 끝에 택시를 잡아타고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달린다. 나는 과연 오늘 안에 허린(何林) 교수를 만날 수 있을 것인가.
설날 아침, 눈을 뜨고 일어나니 눈앞에 엄청난 설산이 보인다. 해발 6,740m의 메이리설산(梅里雪山) 뒷면이다. 여기는 티베트고원과 이어진 노강 상류의 어느 노족怒族 마을. 오지 중의 오지다. 허린은 여기서 1년째 현지조사(field work)를 하고 있는 운남대학 인류학과의 젊은 교수다. 지난밤, 어둠 속에서 그와 극적으로 상봉하여 함께 산길을 올라온 것이 꿈만 같다.
추운 밤이었다. 오기 전에 가장 먼저 챙겼던 전기장판은 아무 소용이 없다. 이 마을에는 전기가 없었던 것이다. 식당도 없다. 배고프면 때맞춰서 아무 집에나 불쑥 쳐들어가야 한다. 실내는 딱 하나의 공간뿐. 모든 식구들이 모닥불가에 둘러앉아 밥을 먹다가 덤덤한 미소로 자리 한 칸을 내준다. 처음 보는 이방인도 늘 보는 친구다. 식사는 꿀꿀이죽이지만 그저 감사하다.
밤이 되니 다른 현지인들이 놀러 왔다. 돼지 족발 삭혀 만든 귀빈용 술을 꺼낸다. 비계가 둥둥 떠 있다. 악취가 코를 찌른다. 일 년에 서너 달을 오지에서 비위 좋게 먹고 자며 지낸 소오생이지만, 그 역겨운 냄새에는 저절로 눈이 찌푸려진다.
어라, 근데 허린 교수는 잘도 받아 마시네? 술을 전혀 못 마신다더니 거짓말이었나? 요~쌍한 안주도 현지인들이 주는 대로 넙쭉넙쭉 두꺼비처럼 잘도 받아먹는다.
할머니들이 술에 취해 흥이 도도해져서 노래를 흥얼거린다. 갑자기 허린의 눈빛이 반짝인다. 즉시 볼펜녹음기를 꺼내 녹음을 시작한다. 온종일 이 순간만을 기다린 것처럼.
노족 신화를 연구한다는 허린 교수는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노트북을 꺼내 자료를 정리한다. 아침에는 산 아랫마을에 내려가 노트북을 충전하고는, 중국어에 능통한 노족 사람을 찾아가 녹음을 들려주면서 통역을 부탁한다. 물론 그것도 또 녹음한다. 노족 신화에 관한 문자텍스트란 게 아예 없으니까 자기가 만들고 있는 것이었다.
학문이란 원래 이런 거였구나! 그 옛날 사마천의 답사 여행이 이랬겠구나! 여행이란 이렇게 해야 하는 거구나! 가슴이 뭉클했다.
인류학자는 현지인들 삶의 객관적 관찰자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허린 교수가 어느 날 밤, 고민을 털어놓는다. 철저한 방관자로 지내야 하는데, 어떤 이들의 삶을 지켜보노라면 때로는 가슴이 너무 아프다고 한다. 며칠 지켜보니 그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도 모르게 그들을 돕고 있었다. 아무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사실상 그들의 정신적 지주였다.
헤어지는 날, 그가 기독교인임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전도란 이렇게 하는 거구나! 진한 감동과 함께 깨달음이 밀려왔다.
21세기 문화의 키워드는 여행이다.
대한민국 도시인/문명인들의 소망은 사실 상당히 소박하다. 일상적인 생활의 작은 행위 하나하나 속에서 긍정적인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는 삶을 원한다. 이른바 '소확행'이다. 정신적으로도 소박하다. 특정 종교를 맹신하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많이 줄어들었다. 타인과의 갈등 구조를 극복하고 함께 조화調和를 이루어나가며 정신적인 갈급함을 채워나가는 '참 나'의 삶을 원한다.
여행은 '참 나'를 찾을 수 있는 가장 유용한 도구다. 소오생이 가장 추천하는 방식의 여행은 ‘문화인류학’에서 주로 채택하고 있는 '현지조사(field work)'를 통한 '참여 관찰(participant observation)'이다. 위에서 말한 허린 교수의 여행 방식이다.
거창한 말 같지만 '현지 조사'란 사실 별 게 아니다. 사마천의 여행이 바로 곧 '현지 조사'다. 그래도 거창하게 느껴진다면 요즈음 유행하는 '한 달 살이'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목적과 계획이 있는 여행.
느리게 가는 여행.
현지인과 함께 하는 여행.
사색이 있는 여행.
그런 여행에서는 '참 나'를 만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간'보다는 '장소'다. 여행 대상지가 내가 성장한 문화집단과 다른 '타문화 집단'일수록 효과가 있다. 동일한 문화라면 별로 효과가 없다. 왜 그럴까?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배운 대로’ 본다. 인간은 특정 문화집단 속에서 태어나 성장하는 문화화(文化化; enculturation) 과정에서, 특정한 유형의 정보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다른 유형의 정보는 차단하는 습관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속한 문화의 기본적인 가치나 여러 특질들을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그리고 자신의 문화에 우월감을 느끼면서 자신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다른 문화 사람에게 강요하거나, 자신의 문화에 대한 성찰이나 비판 없이 그를 당연시한다. 자신의 문화 속의 여러 특질들의 존재에 대해 전혀 문제의식을 가지지 못하는, 이른바 ‘자문화중심주의(ethnocentrism)’에 빠지게 된다. '교육'이라는 미명 하에 '세뇌'를 당하는 것이다.
때문에 타문화집단 속에서 상당한 기간 동안 머물러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따르는 것이다. 그들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그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먹고 자고 공동으로 생활하는 가운데, ‘나’의 문화집단과 서로 다른 자연환경과 생활조건 속에서 형성되는 문화적 특징을 객관적으로 관찰해야 한다. 그것이 '참여 관찰'이다.
여행자는 '참여 관찰'의 과정 속에서, ‘나’ 자신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내 삶의 방식이 필연적이며 유일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저절로 깨닫게 된다. 자신이 속한 자문화의 문제점을 파악하게 되고, 낯선 곳 낯선 사람들의 생각과 낯선 문화 속에서, 있는 그대로의 진정한 ‘나’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구상에서 어디가 가장 낯선 곳일까?
소오생은 단연코 '티베트'를 꼽고 싶다.
21세기 전 세계의 주류 문화는 서구의 물질문명이다. 세계인의 대부분이 물질문명에 물들어있다. 그것과 가장 거리가 먼 비주류문화, 그것이 티베트문화다. 티베트문화는 우리가 소속한 주류문화와 삶을 생각하는 패러다임이 크게 다르다. 그들의 문화를 만나다 보면 그래서 강력한 '문화 충격 culture shock'을 갖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속한 자문화의 문제점을 깨닫게 되고, 낯선 패러다임 속에서 있는 그대로의 ‘참 나’를 만나게 된다.
2025년 1월 중순부터는 소오생의 중국 대륙 방랑기를 연재할 계획이다. 티베트, 방랑의 추억도 물론 포함되어 있다. 광활한 중국 대륙에서 새롭게 눈을 떠가는 소오생의 모습을 기대해 주시기 바란다.
중국어로 ‘여행’은 [뤼(↓)싱(↗): 旅行]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뤼(↓)여오(↗): 旅遊]라는 말이 훨씬 더 많이 쓰인다.
그래서 '관광객'을 [여오(↗)커(↘): 遊客]라고 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싸돌아다니며 놀 유遊’ 자 대신에 ‘헤엄칠 유游’ 자를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예전에 선비들이 사용한 ‘헤엄칠 유游’라는 글자가 지니는 의미가 무엇이었다고? '공부하는 여행' 아니었던가!
그런데 왜 '旅遊'를 '旅游'로 바꾼 걸까? 누가 바꾼 걸까? 당연히 중국 정부일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 각국 돌아다니며 개판치고 놀 생각만 하지 말고, 배우고 사색할 생각도 좀 하라귯! 세계적으로 비판받는 여우커(遊客/游客), 중국 여행객들에게 호소하고픈 중국 당국의 의지가 담긴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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