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아들

평생 잊지 못해

by 새아

"그날 아틀리에에서 수연과 있던 사람은 지연이야."

은혜가 고개를 치켜세우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전에 말했지? 모리와 지연 둘이 특별한 습관이 있었다고. 모리는 당연히 자신의 어머니만큼은 예외로 적용했지만, 지연이는 아니었어. 그 애, 순두부 같이 야들야들한 생김새와는 다르게 보기보다 약아서 제 몫은 제대로 챙기는 아이거든. 알레르기 체질인지도 모르고 내가 선물한 술을 잔에 따라줬는지, 아님 그 술 마신 지연이가 수연씨와 관계라도 맺었는지. 지연이 두 가지 술을 챙겨간 거나 여러 정황을 보면 후자가 더 적합한 결론 같지만."


“여러 정황이라뇨?”


“수연 씨의 몸에 성관계의 흔적이 있었어. 연못물 안에서 발견됐기 때문에 상대의 정체가 드러나는 증거는 찾지 못했지만, 사후경직이 일어나기 불과 몇 시간 전에 생긴 수연씨 몸 안에 생긴 상처가 부검 시 밝혀졌어. 그 밖에도 정욕의 자국이 피부에 남아있었지. 죽고 다섯 여섯 시간 후면 전신이 경직된다고 하는데, 계산해 보면 그건 죽음과 거의 동시에 생긴 것들이었지.”


“상대를 지연으로 지명하신 근거는요? 상림 선생님이나 제삼자가 아니라고 판단하신 배경은 뭔가요?”


“우선 상림 선배는 수연의 사망 추정 시간에 수업 중이셨어. 많은 증인들이 있으니 의심의 여지는 없다고 봐. 무엇보다 내가 지연을 범인으로 지목한 이유는 당사자의 발언에서 기인했기 때문에 틀릴 리가 없어. 모리와 내게 떠벌린 게 화근이 됐지. 모리 너희 어머니의 몸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등에서 엉덩이로 이어지는 선이야. 그녀의 나체를 뒤에서 품을 때면 나는 정열의 키스를 참을 수 없어.”


그녀는 연극적 어조로 지연의 대사를 재연해 냈다.


“어찌나 치졸한 발상이니! 경쟁자를 비겁하게 공격하는 태도라니, 난 실망이 너무 커서 말문이 막혔어. 조바심에서 나온 충고도 한마디 하지 못했지. 솔직히 말하면 당황스러움에 그 자리를 뜨고 싶은 심정이었어. 나도 알고 보면 형편없는 여자야. 못된 일은 하지 말라고 그 자리에서 가르쳤어야 했는데.”


은혜는 조그만 창문 앞에 무릎 꿇고 고백성사를 보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가톨릭 신자처럼 자기 비하를 서슴없이 내뱉는다.


양어머니를 사랑하는 모리와 아들의 절친한 친구를 불순한 유희에 끌어들인 수연과 모리에게 그의 어머니와의 사랑을 자랑하는 지연. 최악을 배가시키는 트리플 조합. 그리고 곁에서 모든 행태를 지켜볼 뿐 끝끝내 그들을 제재할 용기를 내지 않았던 은혜까지. 최악의 최악으로 치닫는 실패한 캐스팅.


“아……. 지저분해.”


열외대상이었던 지연이 어디선가 불쑥 등장해 불쾌한 파도를 일으켰고, 나는 그에 빙글빙글 휩쓸려 미지의 해변으로 나뒹굴어졌다.


“하지만 이상해요. 모리 어머니가 연못에서 발견되신 건 왜…….”


거기에는 어떤 이유가 있는지 차근차근 생각했다. 은혜는 어지러운 나의 머릿속에 들어와서 흥미롭게 관광 중이었다.


“그건 지연이 일부러 옮긴 거죠?”


“딩동댕! 증거인멸이지.”


그녀가 딩동댕 소리를 눈으로 낼 것처럼 빠르게 눈을 깜박이며 즐겁게 웃는다.


“안나는 내가 범인이 아니라서 섭섭한가봐?”


그녀의 표정이 보통의 은혜로 돌아와 있었지만, 전혀 안심되지 않는다.


또 속았다. 지원이 은혜를 마녀라고 지칭한 것은 틀리지 않았는지, 화두로 질투에 대해 중대히 털어놓던 은혜의 술수에 빠졌다. 사건은 부도덕한 치정에서 유인한 하늘의 처벌이나 다름없다. 우연적으로 발생한 이 사고에 질투라는 사사로운 감정이 개입하여 영향력을 행사했을 리가 없다.


“그럼 아까 질투 얘기는 뭐였어요?”


테이블을 손으로 쿵 소리 나게 짚어 나의 분함을 표현한다.


“전혀 딴소리한 건 아냐. 내가 수연씨나 안나를 시기 질투하는 것처럼 지연이도 마찬가지 아닌가 해서 꺼낸 말이야. 지연이가 모리에게 종속되어 있었거든. 너는 그 투샷을 본 적 없어 모르겠지만, 딱 보면 알 수 있게 티 났어.”


은혜의 말마따나 모리에겐 분명히 그런 면이 있다. 마음 안에 자신 만이 있어서 타인의 결점은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그래서 너그러운 인품을 가진 사람으로 내비쳐질 수밖에 없는, 그런 카무플라주적인 면이 분명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모리와는 다르게 강한 질투를 경험했다. 은혜가 질투를 느낀 동일한 상대에게.


“원래 여자의 적은 여자, 남자의 적은 남자이게 마련이잖니?”


은혜가 의자를 뒤로 빼고 두 손으로 테이블을 짚은 채 일어서서 나를 내려다본다.

새해 첫날 새벽녘부터 간밤의 흥청망청한 축제로 쓰러진 지연을 흔들어 일으켜서, 모두들 곤히 자는 중에 아틀리에를 빠져나왔다.


지연과 내가 대문으로 나가는 길에 홀로 깨어있던 은혜가 이층 창에서 몸을 내밀어 ‘해피뉴이어’ 하며 손을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