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잊지 못해
자동차는 그새 집 앞 골목까지 도달해 있었다.
지연의 원룸 건물 주차장 초입에 있는 과속방지턱을 넘어가자 차체가 울렁거렸고, 나와 지연의 몸은 그에 맞춰 동시에 붕 떴다가 다시 내려앉았다.
규칙적 간격으로 늘어선 형광등이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사회주의의 군무를 연상시키며 뒤쪽으로 하나하나 사라져 간다. 이렇게 많은 조명이 공간을 비추는 데도 지하주차장은 어둡기만 하다.
엘리베이터에서 가까운 빈자리에 차를 멈춘 지연은 주차에 집중하는지 입을 일자로 다물고 어떤 말도 입 밖으로 내놓지 않는다. 시동 꺼진 차 안에서 내가 문에 손을 갖다 대자 지연이 말을 시작한다.
“그래서 네가 나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뭐야? 어디서 누구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은 건데?”
나는 문손잡이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로 대답한다.
“당신이 모리 어머니를 살해하고 그 죄를 감추고 있다는 이야길 들었어.”
난 문 잠금장치를 풀려던 손을 스르르 미끄러뜨리며 지연 쪽으로 몸을 틀어 그를 바라본다.
“이 끔찍한 가정이 사실이야? 사실이 아니야?”
지연은 여전히 운전대를 두 손으로 부여잡고 앞면의 내 눈엔 보이지 않는 형체 없는 무언가를 노려보며 강한 어조로 대답한다.
“사실이 아냐. 어떤 이득이 얼마만큼 있어서 증거도 없는 억측을 내세워 무고한 사람을 선과 윤리도 모르는 패륜아로 만들려 드는지 모르겠어. 난 어떤 것도 숨기지 않아. 또 아무도 죽이지 않았어.”
“진짜가 아니라면 단지 헐뜯는 헛소문으로 넘겨버리면 돼. 그렇게 강한 부정을 취해오면 더 의심스러울 뿐이야.”
분에 못 이겨 양손으로 잡은 핸들이라도 뽑아버릴 기세로 격노하는 그의 모습은 나로 하여금 오히려 그를 한층 더 골나게 만들어 버리고픈 악질적 충동을 일게 했다.
“사실이 아니라고 하잖아.”
고개 돌려 나에게 보인 그의 얼굴은 당장 내 목을 비틀려고 달려들 듯이 흉포하게 변해 있었다. 나는 문을 열고 자동차 밖으로 나와 엘리베이터의 상행 버튼을 눌렀고, 지연은 차 안에서 꼼짝하지 않는다.
내가 홀로 집으로 들어가고 한 시간가량이 지나서 지연이 심경에 아무런 타격도 받지 않았음을 내보이려고 싶었는지 좀 전보다 한층 말끔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 특유의 생머리는 집으로 들어서기 바로 전에 매만진 듯 단정하고 옷매무새는 뒤틀림 없이 정돈되어 있다.
“내가 죽였다 해도 달라지는 건 없지? 안나는 이미 알면서도 여기, 내 집안에 있잖아. 경찰이든 어디에든 고자질하진 말아 줘. 일단락된 일을 소생시키는 건 피차 귀찮은 법이니까.”
지연이 소파에 앉은 나의 앞에 쭈그리고 앉아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말한다. 한없이 부드러운, 따뜻하고 달콤한 밀크티 같은 목소리가 귀로 흘러들어왔다.
교대 없이 4시간 넘게 운전하는 지연을 나 몰라라 하고 뒷자리에 누워 잠을 잤다. 어제의 공연을 위한 혹독한 훈련을 견뎌낸 몸은 한꺼번에 긴장 풀린 탓에 미열을 내고 있다.
얼굴 위쪽에서 내 이름이 들려와 눈을 뜨니 지연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피곤에 휩싸인 지연의 얼굴은 눈 밑 애교 살이 더욱 불거져 올라와 나 힘들어, 하고 볼썽사나운 어리광을 부리는 듯 보인다.
“안나야. 안나야. 도착했는데, 별장에 불이 켜져 있어.”
지연이 나를 흔들어 깨우며 말했다. 해는 이미 가라앉아 주위 어두워서, 첫눈에 홀딱 반할 거라던 풍경은 볼 수가 없다. 무의식으로 침잠했던 자아를 어렵사리 현실로 끌어올린 나는, 한밤중 방화범이 지른 불길 속에서 뛰쳐나오듯 후다닥 차에서 나온다.
“모리 아버지가 예정보다 일찍 오셨나?”
지연이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인다.
나는 견뎌내기 버겁게 요동치는 심장을 무시한 채로 최대속력을 내어 불 켜진 지점을 향해 달려간다.
동방박사들이 별을 쫓아 메시아를 찾아가듯, 나도 어떤 한 빛을 향해 내달린다. 다급한 마음을 따라가지 못한 몸의 중심이 앞으로 쏠리는 바람에 고꾸라질 뻔했지만 꺼이꺼이 상체를 일으켜 고비를 넘긴다. 언덕 꼭대기에 얹혀있는 달랑 한 채의 외로운 저택에 박힌 수많은 창문들 중 단 한 개에만 불이 들어와 있다.
‘바로 저기야. 좀 더 힘을 내자.’
바람 불자 대나무들이 사각사각 소리를 낸다.
“안나야!” 지연이 큰소리로 나를 부른다.
‘그’가 나의 이름을 들었을까. 손을 뻗고 문고리를 돌린다. 잠겨있지 않은 문이 벌컥 열려 나를 빨아들인다. 불 켜진 곳은 이층의 중간 방이었다. 계단 난간을 손바닥으로 밀어 추진력을 내본다. 방문 앞에 다다라 망설임 없이 문을 활짝 열어젖힌다.
그 방안에 모리가 서있다. 쿵쿵 소리를 내며 습격해 온 탓에 모리는 애초부터 방문 쪽을 보고 서있었다. 그와 마주 보고 서자 나 대신 모리가 뚝하고 눈물을 떨어뜨린다.
모리가 등지고 선 열린 창으로 장마 와중에 모처럼 맑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밤하늘이 별들을 여과 없이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