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없는 살인

평생 잊지 못해

by 새아

“담양이요?”


내가 물었다.


‘당신 가족이 모리가 없는 여름을 전례 없이 특별하게 보내야 하는 이유가 뭔가요?’


“네. 대나무 숲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산골이에요. 전기는 간신히 들어오고 장 보려면 차 끌고 한참을 나가야 하는데, 주위에는 아무도 안 살아서 정말 조용하지요. 날 좋은 여름에 매미 소리, 새소리 들으면서 그늘에 앉아 있으면 천국이 따로 없다니까요. 이번 여름엔 못 간다니 좀 아쉽긴 하네요.”


“그럼 담양에는 상림 선생님 혼자 계시는 건가요?”


어딘가 꺼림칙한 예감이 들고 억지스럽게 느껴졌다.

“응. 쓸쓸하지만 그렇게 될 거예요. 아버지는 체질상 장거리 비행을 못 견디시기도 하고 담양 별장을 원체 아끼시거든요. 거기서 여름을 보내면서 좋은 작품도 많이 내셨죠. 그러고 보니 이번에는 홀로 조용히 작품에 몰두하고 싶으신 건지도 모르겠네요.”


‘아무래도 이상하네요. 거치적거리는 훼방꾼을 치워버리고자 하는 당신 아버지의 계략 아닌가요?’


“저도 가보고 싶어요. 담양엔 한 번도 가 본 적 없거든요. 안 그래도 요새 쉬지를 못했는데…….”


나는 말꼬리를 길게 빼며 그녀의 대답을 기다린다.


“정말이에요. 안나씨가 공연 준비 때문에 잠도 못 자고 연습하거든요. 쓰러지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로, 혹독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지연이 나의 노골적인 의도 전달에 민망해하며 한마디 거든다.


“그죠? 사람들이랑 다 같이 잠깐이라도 갔다 오면 스트레스 해소에 제격이겠죠?”


지연이 계속 내 편이길 바라면서, 최면이라도 걸 듯 그의 눈동자를 나의 눈빛으로 지그시 눌렀다.


“음……. 그렇겠네요. 인파 몰리는 해수욕장에서보다는 휴가다운 휴가를 느긋이 즐길 수 있겠네요. 누나, 어떠세요? 폐가 아니라면 저희가 며칠 빌려도 괜찮을 까요?”


장난감 진열대 앞에서 발붙이고 떼쓰는 미운 세 살 아이처럼, 막무가내로 나오는 나를 차마 견디지 못하고 그가 직접 묻는다.


“그럼, 물론 괜찮지. 날짜만 아버지 하고 겹치지 않게 잡으면 상관없어. 단언컨대 분명 발 내디딘 순간부터 맘에 쏙 들 거예요.”


그녀의 승낙을 얻어낸 지원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나를 본다. 나라를 팔아먹은 주제에 전쟁훈장을 바라는 비열한 에고이스트처럼, 자신의 잘못을 감춘 채로 운 좋게 얻어걸린 공에 대한 치하를 요구한다.


‘어떻게, 얼마나 칭찬해 줄까요? 당신의 파렴치한 간음, 살해에 대해서.’


돌아가는 길은 비도 추적추적 내리는 데다가 퇴근시간대까지 겹쳐 신경질적으로 변한 차들과 함께 도로 한가운데에 옴짝달싹 할 수 없이 갇혀버렸다.


“다 같이 가고 싶다며?”


지연은 자신의 안락한 운전석 안에서 마비된 도로와 상반되게 평안한 표정으로 콧노래 흥얼거린다.


“그냥 둘이서 가자.”


나는 멈춘 바깥 풍경을 시큰둥하게 바라보며 말한다.


“왜? 그새 마음 바뀌었어?”


그는 앞으로 나아가길 포기하고 시동을 끈다. 단념의 속도가 보통 사람들보다 빠르다.


“아니, 원래 둘이서 가려고 했어.”


나는 창가 쪽으로 몸을 틀고 있지만, 고개 돌려 나를 바라보는 그가 시야에 잡힌다. 연신 히죽이는 그의 곱상한 얼굴이 눈 안에서 사라지도록 몸을 문 쪽으로 바짝 기댄다.


“좋은 곳은 좋아하는 사람, 단둘이하고만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때마침 앞차가 들썩이고 지연이 시동을 켠다.


“말투 거슬려.”


내가 쿡 하고 웃으며 왼팔로 지연의 가슴팍을 툭 치자 지연이 그에 따라 헉 소리를 낸다.


“아, 진짜 아파. 내가 정곡을 찔러서 민망한 거지? 그렇게 무용으로 다져진 팔로 기습공격 들어오면 당하는 사람은 목숨에 위협을 느낀다고. 심장 멎는 줄 알았네. 생명을 소중히 하지 않으면 못써.”


샛길로 빠져 간신히 교통체증의 수렁에서 탈출한 지연의 아우디 구형 세단이 갑자기 배트모빌로 변신이라도 한 듯 거들먹거리며 골목을 빠져나간다.


“속도 좀 줄여줄래. 방심했을 때 사고 나는 법이잖아? 누구 말마따나 생명을 소중히 해야지. 또 실수해서 되겠어? 이번엔 바로 옆에 증인도 두고 있고. 난 거짓말 안 해 줄 거야.”


가열하게 가동되는 에어컨으로 메마르고 차가워진 차 안 공기가 기침을 유발하여 말끝을 콜록콜록 소리로 마무리했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고, 지연은 급속 냉동되어 딱딱하게 굳었다. 외부자극에 카멜레온처럼 눈에 보이는 반응을 보이는 그는, 먹구름 가득 낀 하늘을 바라보는 것만큼 예측 가능하여 재미없다.


침묵은 조금 이어졌다.


“아닌 게 아니라 너 때문에 사고 나겠다. 밑도 끝도 없이 그게 무슨 말이야?”


얼음 마법에서 해제된 지연이 가까스로 얼굴에 미소 비슷한 표정을 내건 채 평정을 가정한다.


‘참 가련하고 가증스러워라.’


그의 떨리는 입술을 감출 도리 없이 우리는 너무 가까이 있었다.


“악의 품지 않은 살인이라도 죄가 없지 않은 건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