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밤 아랫배가 아팠다
그날 밤 또다시 배에 극심한 고통이 찾아왔다. 몸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날 때 통증이 나타나는 듯했다.
병원에 가도 더 안 좋아졌다는 이야기 외에 별 수 있을까 싶었지만, 통증이 누그러들지 않았다. 잠든 B를 깨우지 않고 혼자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B는 내일 오전 수업 후 영일의 회사에 들린다고 했다.
병원에 도착해 수속을 하고 진통제를 맞고 누워있었다. 묵직했던 복부가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고 잠에 빠져들었다. 간호사가 날 흔들어 깨워 눈을 뜨자 수액팩이 비워져 있었다.
“선생님이 진료 보셔야 해요. 나가서 잠깐 대기하시면 이름 불러드릴 거예요. 일어나실 수 있으시겠어요?”
“통증은 많이 나아졌어요. 나가서 기다릴게요.”
“네, 일어나실 수 있을 때 나오세요.”
의사 선생님과의 면담을 위해 대기실로 갔다. 새벽의 응급실은 고요함과는 거리가 멀었고, 긴급하게 조치가 필요한 환자들과 다급하게 뛰어다니는 의료진들 가운데, 나와 다른 한 여자만 대기실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때 B에게서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으니 B의 격양된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어디야?”
“지금 병원이야. 놀랐구나. 미안해. 배에 통증이 시작돼서 응급실 왔어. B 깨우기 싫어서 나 혼자 택시 타고 왔어. 진통제 맞고 괜찮아졌어.”
“내가 데리러 갈게. 몸도 아픈데 혼자서는 더 힘들 거야.”
“아니야. 안 와도 돼. 이따가 수업 가야 하잖아. 별일 없을 거 같아. 지금 진료 보고 가려고 잠깐 기다리고 있어.”
“A야. 밤에 응급실을 혼자 가는 건 안 좋은 선례 같아. 사이 안 좋은 부부 같잖아.”
“아침 수업도 있고 회사도 가야 하는데, 잠 부족하면 몸에 무리되잖아.”
“일보다 나보다, A가 더 중요하지.”
B는 기어코 병원으로 오겠다고 했다. 막힐 시간이 아니니 병원까지 30분도 채 걸리지 않을 것이다. 마음 급한 B가 운전하다가 과속 하지나 않을지 걱정됐다.
“배가 아파서 오셨어요?” 뒷자리에 앉아있던 여자가 나지막이 물었다.
나는 예상치 못한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네, 배가 가끔 아파서요. 수액 맞고 진정됐어요. 배가 아파서 오셨나요?”
“아니요. 저는 배 아플 때는 지났어요. 요새 자주 마주치네요. 그 진단을 받으신 거 아니세요?”
나는 아무런 대답하지 않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내 상황을 이야기해도 괜찮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저는 작년 7월에 진단을 받았어요. 1년이 좀 안되었죠. 어느 날 밤에 자던 도중에 하혈이 시작돼서 응급실로 왔어요. 성별이 없어졌다고 하더라고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린가 했는데 지금은 적응을 했어요.”
“오늘은 무슨 일로 병원에 오셨어요?” 배가 아픈 것도 아닌 그녀가 응급실에 온 이유가 뭘까.
“저와 같은 병을 앓는 여자들을 만나러 왔어요. 병원에서는 자세하게 말해주지 않거든요.”
그녀가 목소리를 낮춰 소곤소곤 이야기했다. 주위 사람들은 정신없이 뛰어다녔고 우리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성별을 잃은 여자들이 많나요? 저는 소문으로만 1명 알고 있어요.”
나는 머뭇거리다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그녀에게 물었다.
“이 병원에서만 15명째예요. 아시는 분까지하면 16명이 되겠네요. 여기서만 15명인데 우리가 모르는 사람들도 전국적으로 많을 거예요. 물론 우리나라에서만 생기는 병이 아닐 수도 있겠죠. 어떻게 생각해요?”
그녀는 대답을 조르듯 빠르게 질문을 던졌다.
“저는 잘 모르겠어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었어요. 저 같은 사례를 본 적도 들어 본 적도 없긴 하고요.”
예상치 못한 만남에 나는 쉽사리 마음을 열고 나의 상황을 털어놓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경계하지 않아도 돼요. 우리 모두가 속도는 달라도 같은 단계를 거치고 있어요.”
그녀는 나에게 자신의 연락처를 알려주며, 언제든 연락 달라고 했다.
“우리는 모임도 하면서 정보 교환을 하고 있어요.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서로의 불안이 경감되죠.”
나와 같은 상황의 사람들이 더 있다는 이야기는 확실히 위안이 되었다. 대기실의 스크린에 진료실로 들어오라는 알림이 뜨고 나는 그녀와의 대화를 마무리하고 자리를 떴다. 의사와 상담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그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