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가 더 익기 전에

어느 밤 아랫배가 아팠다

by 새아

“나 아는 의사 언니가 배가 너무 아파서 검사받아보니까 성별이 없어졌다고 했대요.”


점심을 먹는 도중 마취과 선생님이 말을 꺼냈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 해져 선생님을 바라보았고, 차마 나도 그렇다는 말은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왜 그렇게 놀래? 너무 이상하죠? 그래서 그 언니 다음 주에 난소 적출 수술을 받고 호르몬 치료도 받고 해야 하는데, 치료가 의미가 있나 싶더라는 거예요. 언니 나이가 오십이라, 성별이 없어졌다는 얘기를 듣고도 아쉬움이 없었다는 거죠. 그도 그럴게 이미 큰 애가 20살이니까 여자로서 살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겠지. 그래도 만약 내가 성별이 없어진다면 나는 너무 다운될 거 같아요.”

“그분이 그렇게 느낀다니 다행이네요.”

“그니까. 아이 둘을 낳았으니 망정이지.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딩크들은 많이들 이혼하더라. 물론 A네 부부처럼 안 그런 경우도 있지만.”


생각보다 가까이에 나와 같은 증상을 겪는 사람이 있었다. 그녀도 담담하게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는 듯 들렸다. 나는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 나의 병의 진전을 막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온전히 일상을 살고 배가 아프면 진통제를 먹고 때때마다 병원에 가 내 몸을 점검하는 것 외에, 내가 노력해야 할 것은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다.


“아, 남편이랑 7월 중순에 삿포로 가기로 했어요.”


약간의 적막이 흐르고 나는 그녀에게 여름휴가 계획을 전했다. 내가 자리를 비우면 그녀가 내 일의 대부분을 인계받았다.

“어머, 정말? 좋겠다. 다녀와요. 우리 집도 슬슬 얘기해 봐야겠다. 현이 데리고 처음 가는 해외라 장거리는 못 갈 거 같아.”

“원래는 남편이 먼저 휴가 계획 세우는 데 요즘에 그 프로젝트 때문에 겨를이 없는지 아무 말도 없었어요. 난 그게 좀 서운했어요.”


“맞아. 자기네 남편 그러잖아요. 강의보다는 직접 실무 하는 게 맞나 보네요.”

“본인도 오랜만에 실무 하니 즐겁다고 하더라고요.”





토요일 아침, 예약한 시간에 병원을 찾았다. 다시 초음파 검사를 하고 혈액검사를 위해 피를 뽑았다. 내가 검사받는 동안 B는 1층 카페에 있겠다고 했고, 웬일인지 같이 들어가겠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난소의 퇴화는 계속 진행되고 있어요. 그래도 섣불리 수술을 하기에는 아직 일러요.”

“지인 통해서 들었는데 어떤 분도 저와 같이 성별을 잃는다는 진단을 받으셨대요. 이번에 난소 적출을 받는다고 하더라고요.”

의사는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입을 뗐다.

“최근 갑작스레 A님과 같은 케이스가 생겨나고 있어요. 진행 속도는 조금씩 다르지만 양상은 모두 같아요. A님은 빠르게 나빠지고 있지는 않아요. 계속 지켜보면 일상생활에 큰 지장은 없을 겁니다.”

“속도의 문제이지 저도 난소 적출 수술을 받기는 해야 되는 거죠? 그 다음 증상이 나타난 사람이 있나요? 속도가 빠른 사람들은 어디까지 진행되었나요?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저와 같은 케이스는 없었잖아요.”

“A님은 궁금한 것이 많으시네요. 저도 아는 것은 많이 없지만 학회 통해서 상황을 공유받고 있으니 새로운 정보가 있으면 알려드릴게요. 이번에도 한 달 뒤 경과를 보는 걸로 하죠. 다른 변화가 생기면 그전에라도 방문하시면 됩니다.”

다시 한 달 뒤였다. 지난 한 달도 성적표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긴장한 상태에서 시간을 보냈다. 요즘은 무얼 해도 내가 성별을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놓아버릴 수 없었다. 진찰을 마치고 1층으로 내려가자 B가 창가 쪽 자리에 햇볕을 받으며 앉아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핸드폰도 보지 않고 테이블 위를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앞자리에 가 앉았다.

B는 졸린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내가 말을 시작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난소 퇴화는 멈추지 않고 있는데 속도가 빠르지 않다고 했어. 한 달 뒤 다시 검사하자고, 생활에는 크게 지장 없을 거라고 하셨어. 그리고 나와 같은 병을 앓는 여자들이 생기기 시작했대.”

B는 깜짝 놀라 크게 “진짜?”라고 외쳤다.

“나보다 진행 속도가 빠른 사람도 있대. 잘 모르겠는데 의사가 나에게 아는 걸 전부 말해주는 느낌은 아니었어.”

“갑작스럽네. 그래도 A와 같은 증상의 사람들이 있다는 게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인다.”

“응. 수가 많아야 연구가 진행될 수 있으니까.”

“의외로 간단히 고칠 수 있는 병이면 좋겠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있는 고깃집에 들어가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한결 홀가분해진 표정으로 고기를 굽는 B의 얼굴을 보니, 이번 검진을 기다리는 한 달 동안을 그 또한 불안한 채로 보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안쓰러운 마음에 고기 집게를 잡은 그의 손을 꼭 잡아보았다.

“오늘따라 여기 고기가 더 좋네. 너무 익기 전에 먹을까.” B는 내 앞에 고기를 가득 놓아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