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밤 아랫배가 아팠다
“난소가 퇴화됐대. 정상적인 난소보다 30% 작고, 외형적으로도 변형되었대. 한 달 뒤 다시 경과 보러 오라고 했어.”
“한 달이나 뒤? 그 얘기가 다였어?”
“이미 손쓸 방법이 없대. 다른 문제는 없댔어. 임신은 못하지만.”
B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다른 영향은 없다고 했어. 배에 통증이 계속되면 난소를 제거해도 괜찮지 않을까?” 나는 변명하듯 대답했다.
“내일 다시 가보자. 나도 같이 얘기를 듣고 싶어. 방법이 정말 없는 건지, 뭐가 문제인지 물어보자.”
“원인을 모른다고 했어. 일만 커질 것 같아.”
“A와 같은 병을 앓는 사람이 있는지 알아봐야지. 난소만 문제일 수 있잖아. 동네 병원의 의사 말만 믿을 수는 없는 거고.”
“한 달 뒤에 오라고 했으니까 그 말대로 할래. 그전에 문제가 생기면 가보지 뭐.”
“어제 그 일을 겪고도 그래? 피도 많이 흘리고 많이 아팠잖아.”
“약 처방받은 거 잘 먹을게. 그럼 문제 없댔어.”
B를 안심시키기 위해, 그의 말대로 다시 병원에 가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병원에 가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 것이 불필요하게 느껴졌다. 의사에게선 잘 모르겠다는 대답만 돌아올 뿐이었다.
“다른 병원에 가보자.”
“B가 걱정하는 거 알아. 나는 이 문제로 우리의 일상에 영향이 있는 걸 원치 않아. 오늘도 병원에서 검진을 했고, 또 다른 병원에 간다 한들 같은 검사를 할 거야. 난 그게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어.”
B는 불안해 보였다. 그러나 별 탈 없이 며칠 지나면 그 불안감도 가라앉을 것이다.
“충분한 수면과 스트레스 상황을 피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에요.” 대학병원의 담당의사는 나와 눈을 마주치고 또박또박 그리고 친절하게 말했다.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거죠? 지금도 잠을 못 자거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진 않아요.”
“분명 원인이 있을 겁니다. 유전적 이유나 생활 습관에서 나요. 원인 없는 결과는 없어요.”
“그 원인을 저도, 병원도 찾지 못하고 있는 거네요. 유전적 요소는 없으니 제 삶에서 이 결과를 초래한 무언가가 있다는 건데 문제를 일으킬만한 특별한 건 아무것도 없어요.”
“통증이 심해지거나 다른 증상이 나타나면 한 달 기다리지 마시고 그전에라도 언제든 병원으로 오세요.” 의사는 나를 안심시키듯 상담을 마무리했다.
“네, 그렇게 할게요.”
그 뒤 한 달 동안 두 번째 하혈이나 심한 통증은 없었다. B는 학교와 회사에서 일상을 이어나갔고, 나도 마찬가지였다. 한 가지 이전과 달라진 점은 B와의 대화가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그는 강의를 마치고 회사로 곧바로 가서 일을 하다가 집에 늦게 들어오는 경우가 늘었고 돌아와서도 자신의 방에서 시간을 보냈다. 신나게 늘어놨던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도, 이제는 내가 물어보지 않는 한 말하지 않았다.
“이번 학기 끝나고 회사로 출근하기 전에 며칠이라도 여행하는 건 어때?”
매년 여름휴가 계획은 더워지기 몇 달 전부터 B가 세웠는데 이번 연도에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어 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아무 일정 없는 일요일, 느지막이 일어나 막 세수를 하고 식탁에 앉은 B는 나의 물음에 잠시 머뭇거리더니 입을 떼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여행 얘기에도 시큰둥한 것을 보니, 요즘 프로젝트인지 다른 무엇인지 어떤 것에 정신이 팔린 듯하다.
“며칠은 시간낼 수 있을 거야. 영일 선배한테 이야기해 볼게. 이제 여행도 많이 다녀서 가고 싶은 데가 없긴 하다. 부산이나 강원도 쪽으로 짧게 다녀올까?”
“공항 가고 싶어. 일본이라도 해외로 가자.”
“더위 피해서 삿포로 갈까?”
“삿포로 좋다. 추울 때만 갔었잖아. 물의 교회도 다시 가보고 싶어..”
“너무 좋은데. 7월 초쯤 4박 5일 정도로 영일 선배한테 이야기해 볼게.”
삿포로는 결혼한 해 겨울, 양가 부모님들과 함께 패키지여행으로 가본 적이 있다. 눈이 계속 내렸고 상상 이상으로 많이 쌓여있었다. 겨울 풍경도 예뻤지만 눈으로 덮여 보이지 않는 풍경은 어떨지 여름에도 와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7월의 삿포로라니, 너무 기대돼.” 내가 말하자 B는 오랜만에 환한 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