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밤 아랫배가 아팠다
병원에 도착한 B의 얼굴은 조금 부어있었고 머리는 헝클어진 채였다.
“이렇게 아픔이 반복된다면 예상보다 빨리 난소를 적출하는 것도 방법이래. 결국에는 제거하게 될 거고 언제가 됐든 시간문제이니까.”
그는 나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충격을 받은 표정도, 덤덤한 표정도 아니었다.
“A 얼굴이 피곤해 보여. 난소 제거만 하면 앞으로 괜찮아지는 거래?”
“배 통증은 사라질 거라고 했어. 그리고 이 병원에 나와 같은 여자들이 14명 더 있다는 얘기를 들었어. 정확히 몇 명인 줄은 모르지만 내가 들은 바에는 14명은 더 있어.”
B에게 오늘 만난 여자의 이야기를 하자 그의 눈이 번쩍 띄었다. 나는 그 여자를 조만간 꼭 만나 볼 생각이었다. 가능하면 그녀 외 다른 사람들과도 교류를 갖고 싶었다. 이대로 가만히 병이 진행되는 대로 나 자신을 맡겨두고 싶지 않았고, 어떤 기회라도 잡아 나의 상태에 대해 면밀히 알아보아야만 했다.
지금까지 병원에는 아직까지 나의 모든 상황을 말할 수가 없었다. 내 몸의 변화에 대해서 상세하게 털어놓아도 의사들의 처방은 같았다.
‘잠을 충분히 자고 통증이 생기면 진통제 2알을 먹어라. 그리고 무슨 문제가 있으면 병원에 와도 좋다.’
병원에서는 기본적인 진단 말고는 다른 유용한 정보를 얻어낼 수 없었고, 14명의 사람들이 어떤 이야기를 할지 들어볼 차례였다. 그날 아침 휴가를 내고 부족한 잠을 보충하기 전에, 그녀에게 문자를 남겼다.
저는 오늘 병원 대기실에서 전화번호를 받은 사람이에요. 조만간 한번 만나 뵐 수 있을까요?
그녀의 답장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이 잠에 빠져들었다. B는 이미 출근하고 집은 조용했다.
잠에서 깨어나 핸드폰 화면을 켜자 부재중 전화가 남겨져있었다. B에게서 그리고 문자를 보내놓았던 그녀에게서 각각 1통씩이었다. 시간을 보니 B는 여전히 강의 중일 것이었다. 망설임 없이 다른 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고, 연결음이 몇 번 울리고 상대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집에는 무사히 들어가셨어요? 문자가 와있어서 바로 전화를 했는데 안 받으시더라고요.”
그녀는 병원에서와는 달리 쾌활한 목소리였다.
“집에 도착해서 쉬느라 전화를 못 받았어요. 지금은 집이세요?”
“네. 저도 집이에요. 괜찮으시면 오늘 점심 같이 드실래요?”
그녀와 나의 집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걸어서 몇 분 안에 갈 수 있는 거리는 아니었지만 같은 동네라 자주 가는 식당들이 겹쳤다. 그녀는 마침 오늘 우리와 같은 여자 한 명과 점심 약속이 있었고 나도 그 자리에 합류하게 됐다.
“블루리본을 받은 맛집이에요. 이 동네에서 점심때 운영하는 이탈리안 중에 여기가 파스타를 제일 잘하는 것 같아요.”
원형 테이블에 앉은 3명 중 가운데에서 여자 1이 말했다.
우리는 음식이 나오기 전 각자 자기소개를 마쳤다. 나를 제외한 2명의 여자는 일을 하지 않았고 출산을 했으며 40대였다. 각자 1명, 2명의 아이가 있었다. 셋 모두 결혼을 한 것은 똑같았다.
“저는 작년 12월에 배 아픈 증상이 시작됐어요. 지금은 난소를 제거했고, A님은 유전자 검사하셨나요?”
여자 2가 말했다. 그녀는 중학교 1학년 생 남자아이를 키우고 있다고 했다.
“병원에서 유전자 검사 얘기는 없었어요. 두 분은 검사를 하셨나요?”
“그럼요. 결국엔 같은 단계를 거치더라고요. 우리 중에 다른 대학병원에 가본 분이 있는데 거기서도 유전자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얘기를 들었대요. 근데 유전자 이상 진단을 내리고도, 병원도 별 수 없어요. 멀티비타민 수준의 약만 처방할 뿐이죠.”
“사실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으니 내가 겪는 일들이 무슨 병인가 싶기도 해요.” 여자 1의 말에 여자 2가 덧붙였다.
“유전자 이상이요?” 나는 새로운 사실에 놀랍기도 흥미롭기도 했다.
“궁극적으로 우리의 병은 유전자에서 기인한 거라네요.”
“돌연변이 같은 건가요?”
“우리가 이해하기론 돌연변이가 맞아요. 정상은 아니니까요. 유전자가 그 특성을 발휘하지 않는대요. 그렇다고 우리가 남자로 변해가는 건 아니고요.”
“호르몬 치료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건요?”
“갱년기 치료 같은, 여성 호르몬을 보충하는 거 말이죠? 우리는 여성 호르몬이 들어와서 작동해야 하는 기능들이 멈췄어요. 우리 몸은 그 호르몬을 필요로 하지 않아요.”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식사를 시작했다. 음식들은 모두 풍미가 좋았다. B와도 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파스타 맛 괜찮죠? 여기서 직접 뽑은 생면이고 아마 셰프가 이탈리아 사람이라나봐요. 우리 남편하고 아들도 여기 토마토 파스타를 좋아해서 자주 와요.”
여자 2가 이 레스토랑을 약속장소로 정했으며, 그녀의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라고 한다.
“네, 맛있어요. 남편 하고도 와봐야겠네요. 그러니까, 예를 들어 우리의 몸은 이런 음식을 먹어도 소화시키지 못하는 거죠? 여성 호르몬의 경우에 말이에요.”
“아, 그렇죠.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이런 것들을 에너지로 바꾸질 못하는 거예요. 영양분이 여성 호르몬이라고 가정하면요.”
여자 1은 대답을 하고 웨이터를 불러 레모네이드 3잔을 주문했다.
“여기 레모네이드도 달지 않고 괜찮아요.”
나를 제외한 2명은 이 주제에 대한 대화가 익숙한 듯 보였다.
“유전자 검사까지 하고 나면 어느 정도 몸의 변화에 적응을 할 거예요. 심정 정리도 될 거고요.”
여자 2는 유전자 검사가 이 일에 유의미한 전환점인 것처럼 이야기했다.
“걱정 말아요. 몸은 더 가벼워지고 컨디션은 나날이 좋아질 거예요.”
여자 1이 나를 지긋이 바라보았고, 나는 그녀의 나긋한 목소리에 불안했던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