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축하파티

어느 밤 아랫배가 아팠다

by 새아

연구소에 입주하고 3개월이 지났다. 이곳에서의 생활은 만족스러웠고 B와 나는 또 다른 3개월을 다시 여기에서 보내기로 결정했다.

연구소 사람들과도 쉽게 친해졌다. 여자 3 부부뿐만 아니라 다른 연구원들과도 교류를 하며 지내게 되었다. 무성화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사람들 중 부부가 함께 거주하는 경우는 여자 3과 나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주말이 되면 각자 가족이 있는 본가로 올라가거나, 미혼인 젊은 연구원들은 이곳에서 혼자 살았다.

나는 매주 수요일, 일주일에 한 번 연구동에 들러 검진을 받았다. 병원에서 하는 정기 검사와는 다르게, 연구 데이터를 수집하는 목적이 더 강했다. 내가 연구동에 가는 날에 여자 3은 항상 동행해 주었고, 그날은 시내로 나가 점심을 먹거나 가끔 영화를 보고 돌아왔다.

여자 3은 인후두암 3기였다. 반년 전 1기 진단을 받고 계속 치료해 왔지만, 치료 속도가 전이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면역 세포의 활동이 일반인의 10% 수준인 무성화 환자에게, 암은 초기에 발견해도 완치될 수 없는 병이었다. 그녀는 계속되는 항암치료로 지친 상태였고, 고용량 함암제 사용으로 더욱 체력이 약해졌다. 어느 날 그녀는 남편과 의논하여 더 이상 고강도 치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고 이야기했다.

“치료는 계속 받을 거지만, 항암제 투여양을 줄이기로 했어요. 초기 때부터 지금까지 항암제 사용을 늘려왔는데 암의 진행을 막을 수 없었어요. 병에 순응을 해야 할 때인 것 같아요. 무성화를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찾지 않는 한 암은 완치되지 않는다는 게 남편과 나의 판단이에요. A는 암이 재발하지 않게 무엇보다 철저히 관리해야 해요. 스트레스받지 않고 건강한 음식만 먹고 일주일에 한 번씩 꼭 검진받아야 해요.”

나는 그녀의 말에 어떤 대답도 덧붙이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자궁암에 걸렸을 때 치료보다 적출을 결정한 것은 올바른 선택이었다. 항암제 투여량을 줄이자 여자 3의 컨디션은 일시적으로 좋아졌지만, 그와 반대로 암은 빠르게 번져나갔다.

무성화의 공식적인 발병일로부터 약 5년이 흘렀고 한국에서도 무성화로 인해 사망하는 비율이 증가했다. 여자 3과 같이 급격히 진행되는 암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 경우가 90%였다. 한국의 누적 사망자는 100명을 기록했고, 전 세계적으로는 1만 5천 명으로 추정되었다.

무성화의 발병 원인은 미국의 한 제약회사에서 밝혀냈는데, 임신 시 여성의 몸에서 태아의 DNA 합성이 이뤄질 때 남은 태아의 DNA가 엄마의 면역 체계에 장기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그 제약회사에서는 무성화 환자들의 면역세포에서, 공통적으로 그들 자녀들의 DNA가 기능함을 발견했다. 자녀들의 DNA에서 만들어진 면역세포들은 엄마의 면역 세포들과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어떤 요인이 트리거가 되어 자녀들의 DNA 활동을 촉발했는지는 아직 밝혀내지 못한 채였다. 또한 이 연구 결과는 자녀의 DNA가 내 안에 존재할리 없는 나의 경우를 설명해주지 못했다.

발병 원인이 밝혀진 뒤에도 P시 연구단지에서의 무성화 연구는 계속 진행됐다. 내가 P시에 온 지 6개월이 흐르자 정체를 알 수 없던 거대한 기계가 완성되었다. 연구팀은 축하 파티 없이 조용히 기계의 완성을 기념했다. 여자 3의 장례를 치른 지 일주일이 안되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져, 병원으로 옮겨진 지 이틀 만에 세상을 떠났다. 연구소 단지 내 커뮤니티 센터에서 그녀의 장례식이 행해졌다. 인공조명이 아닌 식장 전면 통창으로 들어오는 자연의 빛이 내부를 밝혔다. 이곳은 결혼식의 용도로 설계된 공간인데, 여자 3은 이곳에서 장례식을 치러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고요하고 아름다운 공간이네요.” 여자 3과 단지를 산책하고 있을 때, 커뮤니티 센터 내의 결혼식을 우연히 마주친 그녀가 눈을 반짝이며 감탄했었다. 그녀는 그때 이미 자신의 장례를 머릿속에 그렸는지도 모른다.

연구소 중앙에 위치한 기계의 주변을 물이 1m 정도의 폭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조형물 주변에 물이 고여있는 분수 같은 모습이었다. 검진하는 날 살짝 연구실 안을 들여다보면 간혹 기계가 켜져 있을 때도 있었다. 가동하고 있을 때는 나지막한 기계음이 울리고 새끼손톱보다 작은 조그만 불빛들이 반짝였다.

“테스트 중이에요. 혹시라도 호기심에 가까이 가시면 안 됩니다.” 젊은 연구원이 연구실 문 앞에서 기계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나를 스쳐 지나가면서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