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플루이드

어느 밤 아랫배가 아팠다

by 새아

“그 기계는 무얼 위한 건가요?”


나의 검사 결과를 살펴보는 여자 3의 남편에게 물었다. 그는 아내가 죽은 뒤 부쩍 연구에 몰두했고, 특히 그 기계에 밤낮으로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소문으로 들었다.

그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그 기계와 무성화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 장치는 무성화를 연구하거나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게 아니에요. 무성화로 인해 멸종될 인간의 존속을 위한 거죠. 우리 팀은 연구 초기 단계에 알아낸 게 있어요. A 씨의 DNA에서 찾아낸 결과죠. 사실 무성화의 발현은 임신 여부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요. A 씨의 체세포는 유사 세포에 둔감하게 면역 반응하더라고요. 거의 돌연변이 수준으로요. 자기 세포와 동일성이 50% 이상이면 자신으로 인식하고 공격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양상은 무성화 환자들에게서 보이는 공통된 특이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환자들에게 암세포가 치명적인 겁니다. 암세포는 정상 세포에서 변이 된 것이니요. 미국의 제약회사에서 무성화의 원인이라고 발표한 내용도 A 씨에게는 해당되지 않지만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닙니다. 무시할 수 있을 만큼 극히 드문 확률로 A 씨의 경우가 존재할 뿐, 모든 무성화 환자들은 같은 특징이 있어요.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그들 자녀들의 유전 세포가 그들의 몸에서 작동하기 시작한 거죠. A 씨를 제외한 모두의 경우에는요.”


그가 말을 잠시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를 책망이라도 하듯 유독 길고 어두운 눈빛이었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도 저와 같은 케이스가 발생했다고 들었어요.” 나는 그의 눈빛에 반박하듯 대답했다.

“네. 있습니다. 저 기계의 성능을 확신할 수 있을 때 그들에게 협업을 요청하려고 합니다.”

“저 기계가 무성화를 치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요?”

“저 기계는 체세포를 한 개체로 구현하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어요. 단순 체세포만으로 다른 기능을 가진 복잡한 조직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단 한 가지 생식세포만 빼고요. 생식세포는 아직 성공한 사례가 없습니다.”

“복제 기술 같은 건가요?”

“네, 그런 셈이죠. 사용된 체세포와 유전 정보가 동일한 개체가 생성되는 거니까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완벽히 동일한 생명체가 생겨나진 않았어요. 유사성은 높으나 형태나 행동에 상이한 부분이 있어요.”

“사람에게 저 기술을 사용한 적이 있나요?”

“아직이요. 저는 기술에 대한 신뢰가 크지만 윤리적인 문제가 있고, 무엇보다 현 상황에서는 빠른 결과를 도출해야 유의미하기 때문에, 생명 주기가 빠른 생물 실험이 우선이었죠.”

“생쥐 같은 실험체요.”

“그렇죠. 동물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를 똑같은 실험 방법으로 생성해 낼 수 있습니다. 세포가 있는 무엇이든지요. 그리고 제가 우리의 기술에 가장 크게 자부심을 갖는 점은 가동 방식입니다. 쉽고 빠르게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어요. 저희 연구에 핵심은 바로 물같이 보이는 액체에 있습니다. 저 구조체를 둘러싼 수조에 채워져 있는 것 말이죠. 저 플루이드는 세포 데이터를 정확하고 빠르게 수집합니다. 그리고 생체 정보 분석을 마친 플루이드가 한 개의 세포에서 점점 개체로 발전하죠. 생쥐 같은 경우 이틀이면 완벽한 개채로 성장합니다. 저 가운데 구조물은 플루이드에 전기 자극과 생체를 구성할 에너지를 공급하는 역할을 해요. 구조물 가동을 중단시키면 플루이드의 활동도 멈추게 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플루이드 안에 생성되던 세포들에 전달되던 에너지도 고갈되죠. 간단히 작동 방식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그런 기술을 구현해 내시다니 놀랍네요. 제 생각에 이 기계를 사람에게 적용하는 것은 시기상조인 것 같아요.”

“윤리적 문제가 있죠. 우리 팀도 지금 당장을 염두에 두고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인류에 위기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무성화가 아니더라도 인류를 위협하는 요소는 있죠. 그리고 이 기계가 사용되기 전에 무성화 치료 방법이 개발되기를 저 또한 바랍니다.”





그 후로도 나는 매주 연구소에 가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몸은 더 나빠지기만 했다. 전 세계적으로 무성화 치료 연구는 진전이 없어 이곳 연구단지에 체류하는 시간이 늘어만 갔다.

B는 필요에 따라 연구단지와 서울을 이동하며 지냈고, 주말에만 연구단지로 오는 경우도 잦았다. 떨어져 있는 날에는 매일같이 전화로 나의 컨디션을 체크하는 것이 그의 일상이 되었다. 그렇게 연구단지에 들어온 지 2년이 지났다.

무성화는 급격히 확산되어 10대 여자아이들 중에도 발병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게 생겼다. 전 세계의 가임 여성 인구는 5년 전과 비교하여 3분의 1로 떨어졌다.

한국 무성화 연구팀의 기계는 비판적 목소리들로 인해 사용이 중지되었지만, 그들의 혁신적인 기술은 친환경 농축산업의 방법으로서 거론되며 상용화를 위해 준비 중이었다. 여자 3의 남편이 말했던 것과 같이, 기술적인 문제는 없으나 법적 규제가 마련되는 것에 시간이 소요되었다.

근래 드물게 B가 주중에도 나와 같이 연구단지에 머물렀다. 볕이 좋아 우리는 테라스에 나와 점심식사를 했다.

“친한 사람도 없이 심심하지 않아? 연구도 진척이 없고, 다시 돌아가는 건 어때? 서울에서도 매주 검사를 하면 되기도 하고, 오히려 응급 상황에서는 서울이 더 메리트 있어.” B가 나에게 말했다. 맞는 말이었다.

“난 여기가 좋아. B가 설계해서 더 그런지 이곳을 떠나고 싶지 않아. 가끔 커뮤니티 센터에 아무도 없는 연회장에 가서 앉아있으면 그 완벽하게 고요한 분위기에 마음이 차분해져. 예전에 삿포로로 여행 갔을 때가 생각나. 물의 교회에서 여기 커뮤니티 센터의 영감을 얻었잖아.”

“잊고 있었는데 그랬었지. 그때는 내 아이디어가 현실로 구현된다는 건 꿈같은 일이었어.”

“그러고 보면 우리가 얘기한 건 그대로 이루어지는 거 같네. 나중에 B가 설계한 집에서 살자고 했었잖아. 여기 이 부지에 나무 밖에 아무것도 없을 때 말이야. 비록 B가 우리만을 위해 설계한 집은 아니지만.”

“신기하다. A의 얘기를 듣고 보니 진짜 그렇네.” 어쩐지 B가 눈물이 맺힌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B가 나와 함께 머문 한 주의 주말이 지나고, B는 다시 일을 위해 건축사무소가 있는 서울로 올라갔다. 나는 한동안 그곳에 계속 남기로 결정했다. 컨디션은 좋아질 기미가 없고, 대부분의 날을 몸살감기를 달고 살았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식사로 먹을 것으로 모두 게워내고 불안한 마음에 아픈 몸을 이끌고 연구소를 찾았다.

연구소는 조용했다. 안을 들여다보니 아무도 없었다. 건강 검진이 있는 수요일 외에 다른 요일에는 이곳을 한 번도 와보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인기척 없는 연구소의 모습은 낯설었다. 여자 3의 남편에게 연락을 하려던 찰나, 그 거대한 기계에 불이 들어와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나는 통화 버튼을 누르던 손을 멈추고 연구소 안으로 들어갔다.

기계에 가까이 다가가자 그 규모가 실감되었다. 높이는 몇 미터가 될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구축물 주위로는 플루이드가 느리게 움직이고 반짝이고 있었다.. 물보다 불투명하고 밀도가 있어 보였다. 그리고 주변 빛을 반사하는 반짝임이 다이아몬드 같이 각도에 따라 여러 색으로 빛났다.

나는 문득 그것의 촉감이 궁금해졌다. 젤라틴처럼 매끄러울 것 같았다. 나는 무심코 나의 손을 플루이드 안으로 담갔다. 플루이드는 천천히 요동쳤고 가운데의 구축물에서 나던 낮은 기계음 소리는 좀 전보다 더 빠른 박자로 변했다. 눈앞 스크린 상 로딩바의 진행율이 100%가 되었을 때 나는 수조에서 손을 뺐다.

앞으로 생겨날 일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은 잊은 채 여자 3 부부를 떠올렸다. 여자 3이 목숨을 잃기 전 이 기계가 완성되었다면, 그녀도 이 반짝이는 액체를 향해 손을 뻗지 않았을까. 그녀의 남편도 지금의 슬픔을 좀 덜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