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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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인의 아해가 도로로 질주한다.
이상의 ‘오감도’는 1934년 조선중앙일보에 게재된 시 작품이다. 13인의 아이가 도로로 질주하는 상황임은 명확히 전달되지만, 난해하고 의미를 알 수 없어 연재 당시 독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이 연작시를 모티브로 한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는 무서워하는 어린이들과 무서워하는 어른들이 함께 빚어낸 공동 창작물이다.
연극은 시의 빈칸을 채우듯, 아이들이 무서워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마음껏 상상한다. 세상에 ‘태어나고’, 어딘가로 ‘달리는’ 지극히 개인적인 출발점에서부터 ‘부모님’, ‘학교’라는 외부 환경, 그리고 성장기 아이들에게 자극적인 영향을 주는 ‘스마트폰’과 ‘아이돌’까지. 나아가 조금 이른 걱정일지 모를 ‘나이 드는 것’, 아직은 추상적인 ‘꿈’, 아이들의 공간을 지우는 ‘노키즈존’, 폭력이 폭력을 낳는 ‘전쟁’, 그리고 마침내 ‘나 자신’에 이르기까지. 연극은 13인 아해들의 목소리를 빌려 모든 세대를 관통하는 공통의 두려움을 비춘다.
극은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시선을 따라가다가도 섬뜩한 연출로 관객을 긴장시킨다. 상황은 간단하다.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한 아이에게 부모는 자신의 바람을 투영한다. 처음에는 유머러스한 농담으로 시작된 장면은 조명과 배우의 배치가 변함에 따라 점차 기괴하게 뒤틀린다.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부모의 손길은 어느새 압박으로, 공포로 변해 있다.
이 밖에도 부모의 관심을 갈구하며 거짓말을 하는 아이의 모습에서 부모를 ‘집에 사는 괴물’로 묘사하거나, ‘전쟁’의 테마에서 아이들끼리의 가벼운 다툼이 공동체 전체의 싸움으로 번지는 과정도 인상적이었다. 윗세대의 폭력이 아해들에게 전이되어 결국 복수심만 남은 세상을 보여주는 대목은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의 아이들은 세상을 향해 웃고, 울고, 소리지르고, 싸우고, 무서워하고, 달린다. 행복하고 찬란하기만한 기존 어린이극의 틀을 깨고 말이다. 이러한 공포는 어린이들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 ‘나 자신’이라는 테마에서는 과거의 자신과 마주한 어른이 등장한다.
가난한 연극배우가 된 어른 ‘강민’은 균형을 잡기 위해 애써야만 일상을 버틸 수 있는 스카이 콩콩 신발을 신고 나온다. 어린 ‘강민’은 어른 ‘강민’에게 자신이 꿈을 이룬 거냐며, 멋진 어른이 된 거냐며 신나게 묻는다. 두 강민은 대화를 하다가, 서로를 붙잡고 ‘무섭다’는 외침을 반복한다. 세상에 대한, 자신에 대한 두려움은 아이들만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 또한 당연히 가지는 감각인 것이다. 이 두려움이라는 감각을 통해 어린 강민과 어른 강민이 만나는 클라이맥스는 관객석의 아이들과 어른들을 모두 하나로 잇는 장면이었다.
물론 길지 않은 러닝타임 안에 생의 시작부터 전쟁까지 결코 가볍지 않은 13개의 두려움을 다루다 보니, 일부 연출 방식이 정형화되어 아쉬움이 남는 테마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극은 관객 스스로 자신의 두려움을 직면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13인의 아해들은 질주한다.
13인의 아해들은 막다른 길목에서 가로막힌다.
13인의 아해들은 무서워한다.
그러나, 13인의 아해들은 ‘질주하지 아니하여도 좋다’고 말한다.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와 함께한 시간은 막다른 길목에서 두려워하는 아해들의 모습을 통해 나의 두려움을 들여다보는 과정이었다. 질주하지 않아도 좋다. 무서워해도 좋다. 이상해도 좋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가는 존재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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