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을 삶의 형에 처합니다 [도서]

항소는 불가능합니다

by 지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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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심판’을 받아야 한다니!


한국 독자에게 친숙한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심판’은 폐암 수술 중 사망한 판사 아나톨 피숑이 천국에 도착해, 천상의 법정에서 다음 생을 위한 심판을 받는 내용이다. 재판장 가브리엘, 수호천사이자 변호인 카롤린, 그리고 검사 베르트랑이 그의 삶을 하나하나 평가해 환생 여부를 가른다.


죽어서 심판을 받는다는 설정은 어딘가 익숙하다. 극장에 종종 가는 관객이라면 천만 영화 ‘신과 함께’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보여주는 ‘심판’에서의 재판은 조금 다르다. 이 재판의 쟁점은 피고인이 지옥에 가느냐, 천국에 가느냐가 아니다. 바로, “피고인은 다시 태어나야 하는 의무에서 벗어날 만큼 충분히 영적인 삶을 살았는가?”라는 물음이다.


생전에 판사였던 아나톨이 사후에는 피고인의 자리에 서는 장면은 아이러니하다. 여러 공방 끝에 그는 영적으로 충분히 성숙하지 못했다는 판정을 받는다. 그가 재능이 있었고 열망도 있었던 연극배우가 아닌 안정적인 판사의 삶을 택했다는 점이 특히 크게 작용했다. 안정적이지만 영혼이 원하지 않았던 길을 걸었다는 것은, 그의 삶이 자기 충실성보다는 타협과 현실에 머물렀음을 드러낸다. 이 판결에 따르면, 진정으로 성숙하고 영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라면 아나톨은 안정적이고 현실적인 직업이 아닌 자신의 영혼이 끌려했던 직업을 택했어야 했다. 맞는 말 같기도 하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자신의 인생을 위해 아나톨이 내린 결론을 판단하는 이러한 재판은 마치 인간은 자유의지가 없다고 말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그리고,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환생이 선택이 아니라 ‘의무’로 제시된다는 사실이다. 재판장 가브리엘이 선고한 “삶의 형”은 삶을 처벌로 규정한다. 부모, 강점과 단점, 배우자, 죽음의 방식까지 설계해야 하는 환생의 과정은 자유라기보다 운명의 분배에 가깝다. 결국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자는 또다시 윤회의 굴레로 돌아가야 한다. ‘삶의 형’이란 이름의 판결은 그렇게 무겁다.



아나톨에게 투영되는 인간 존재의 자화상


아나톨은 죽어서도 반지를 놓지 못하고, 상속세 문제를 걱정하며 지상으로 돌아가려 한다. 이 모습은 우스꽝스럽지만 동시에 인간 존재의 본질을 드러낸다. 인간이 얼마나 미완성의 존재인지 드러나는 것이다. 삶의 끝까지 욕망과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모습 속에서 우리는 자신의 자화상을 볼 수 있다.


재판장 가브리엘이 선고하는 “삶의 형”이 단순한 벌은 아니다. 그것은 미성숙한 영혼을 향한 또 다른 기회이기도 하다. ‘아직도 배우고 채워야 할 몫이 남아 있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배우가 되고 싶었고 재능도 있었던 아나톨에게 어쩌면 이번에는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을 선택할 기회가 주어질지도 모른다.


이 대목에서 가브리엘의 서사 또한 흥미롭게 겹친다. 판결을 내리는 재판장이던 그녀는 갑작스레 아나톨 대신 새로운 삶을 살기를 택한다. “고동치는 심장, 송송히 맺히는 땀, 사랑의 기쁨, 심지어 노화까지도 느껴 보고 싶다”는 고백은 천상의 법정에서조차 삶을 향한 갈망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영적 성숙이란, 단지 결핍 없는 완결된 상태가 아니라 여전히 삶을 탐구하고 싶어 하는 갈망 속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행운을 빌어달라 말하는 가브리엘에게 동료들은 ‘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조언’을 각기 다르게 건넨다. 베르트랑은 “텔레비전을 켜라”고, 아나톨은 “책을 읽어라”고, 카롤린은 “극장에 가라”고 말한다. 이 부분에서, 시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매체와 경험을 통해야 한다는 작가의 시선 또한 엿볼 수 있었다.



자유 의지와 운명 사이에서


희곡 ‘심판’이 던지는 핵심은 영적 성숙을 단순한 도덕의 문제로 환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것은 자유 의지와 운명의 문제로 드러난다. 환생을 설계하는 과정에서 선택지는 다양해 보이지만, “선택하지 않을 자유”는 허락되지 않는다.


반드시 태어나야 한다는 점에서 삶은 운명이고, 그 안에서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삶을 설계하려는 몸부림은 자유의지인 것이다.


따라서 아나톨의 심판은 곧 우리의 심판이다. 우리는 충분히 성숙했는가, 우리의 다음 삶을 준비할 수 있을 만큼 충실히 살았는가. 베르베르는 유머와 풍자를 곁들이며 독자와 관객이 이 질문을 자신에게 돌려 묻게 만든다.


결국 관객이 떠안게 되는 질문은 단순하다.


당신은 과연 천상의 재판에서 다음 생의 형에 처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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