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생각 없이 남들이 하는 브이로그를 찍기로 했다. 그래봤자 편집은 할 건지, 업로드는 할 생각이 있는지 명확한 목표가 없는 그저 영상 찍기에 불과하지만, 나름 일상에 낯섦이 끼어드니 감회가 새롭다. 지금은 내가 일기를 쓰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해외여행을 가서 난생처음 네일 아트를 받았는데 연장까지 한 바람에 지금은 키보드를 치기가 버겁다. 괜히 연장을 했나 싶다가도 예쁜 손을 보면 또 나름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투잡을 뛰는 엄마가 일주일에 한 번, 오후에 쉬는 날이 있는데 매번 복불복이라 엄마의 휴일에 맞춰 나의 특별한 날도 따라간다. 말로만 '특별한'이지 실상은 평소보다 엄마와 이른 시간에 밥을 먹고 수다를 떨고 갑갑한 방에서 벗어나 조금 더 거실에 오래 머물러 있을 뿐이다. 나도 이제 대학을 졸업했고 계획했던 해외여행까지 다녀왔으니 일을 구할 생각이다. 그럼 갑갑한 방도 '갑갑한'이 빠지고 안식처로 바뀔 수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언니가 둘 있다. 지금은 둘 다 자취를 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언니와 함께 살았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이 말하는 나의 방이란 개념을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내겐 나의 방보다는 언니와 내가 함께 쓰는 우리 방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우리 방에서 나와 언니는 무척 다투기도 했고 서로 웃기도 했다. 어쩔 땐 고민상담을 했던 것도 같은데 따로 살기 시작하면서 고민을 꺼내기도 어려워졌다. 다들 각자의 삶이 있고 그 안에 또 다른 힘듦이 있으니 굳이 나의 고민까지 얹어주고 싶진 않았다. 그 탓에 남몰래 고민을 많이 삼켰다. 그 시기가 고등학교 삼 학년이었다. 언니가 함께 집을 나가 살고 있었고, 나는 엄마, 할머니, 고양이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때부터 나만의 방이 생겼다. 그 덕분에 지금도 나의 방에서 영상을 찍고 있다. 아무튼, 나는 이 방이 편하다고 느낀 적이 드물다. 워낙에 힘든 시기에 얻은 방이라서 그런지. 방에 있을 때면 무언가를 암묵적으로 끄집어서 의자에 앉혀야 했다. 학업을 위해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미래를 위해 글쓰기에 매진하면서 내 안의 무언가를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곳이었다. 그러다 한 번, 두 번. 실패를 했다. 대학 등록금이 다자녀 중 막내는 면제라는 걸 몰랐다. 애당초 대학을 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이루고자 하는 목표도 없었기에, 그저 대학은 졸업해야 하지 않겠냐는 주변 사람들 말에 나도 어영부영 준비를 했을 뿐이었다. 취미로 하던 글쓰기와 실용무용에 싫증을 가지게 된 것도 더 이상 취미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수단으로 정한 뒤였다. 담임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원서를 넣어야 하는 시기가 왔으니 가고 싶은 대학이 있냐는 뻔한 물음을 던지기 위해서였다. 그때 보았다. 예술대학교의 어마무시한 등록금을. 가늠하기도 힘든 숫자를 보자마자 나는 덜컥 겁을 먹었고 무작정 담임 선생님께 예술 대학교는 진학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등록금이 부담되는 건 알지만 그래도 실기 시험은 봐보자는 선생님의 말에 이를 악물고 준비를 했지만, 끝내 원서를 넣지 않았다.
갑자기 예전 일이 왜 떠오르는지. 방에 관한 얘기를 해서 그런가 보다. 최근에는 공모전도 열심히 준비했는데 끝내 제출하지 않았다. 워낙에 실패에 실패를 거듭해서 그럴까. 방에만 들어서면 후덥지근해진다. 홍수처럼 땀이 나고 기분도 울적해진다. 그래서 오늘 처음으로 시도하는 영상 찍기가 이곳을 환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밥을 먹는 것도 찍어야 하고 평소에 무얼 하는지도 찍어야 하는데 벌써부터 막막하다. 브이로그는 생각보다 어렵다. 아무것도 없는 일상을 담는 것은 더더욱. 누가 내 일상에 흥미를 가질까. 그럼에도 담아보고자 한다. 이 일기장처럼 나의 일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