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드로잉

by 흘흘

안산에서 학교를 다니던 시절, 강남역까지 드로잉을 하러 8개월간 강남역을 왔다갔다 하던 적이 있었다. 드로잉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역시나 '그냥'이었다. 그때는 어반드로잉의 개념이 없었지만 이따금 여행 에세이라고 해서 자신이 갔다온 곳의 풍경을 펜으로 그려놓은 스케치와 함께 실어놓은 글 모음이 굉장히 예쁘고 근사해보였다. 나도 이런 거 써보고 싶다 하는 생각을 했다. 어째서인지 학교가 있던 안산에서 찾지는 않고 강남역에서 학원을 찾았는데, 이유는 모르겠다. 드로잉을 배워야지, 라고 마음을 먹었을 당시 내가 머물던 장소가 강남역이어서 그날로 강남역에서 취미미술 하는 학원을 찾다가 들른 것인지도 모른다.

그 학원은 드로잉 뿐 아니라 일러스트도 가르치고 있었다. 사실 내가 배울 것은 일러스트 정도를 배워도 충분했는데, 유리벽으로 이루어진 일러스트 연습실에서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앉은 수강생들이 그리고 있던 건물이며 동물, 공원의 풍경들이 딱 내가 그리고자 했던 것과 일치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학원 원장은 드로잉을 하면 기본기를 다지는 데 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적극 권했다. 나는 별다른 이유 없이 그냥 뭔가를 시작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지만, 다른 한편으로 기본기라는, 근본있는 실력이라는 것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하는 버릇이 있었다. 때문에 그 말에 솔깃하여 드로잉을 배우기로 마음을 바꿨다. 드로잉을 잘하면 일러스트도 잘하겠지 하는 마음이었던 듯 하다. 그렇게 이날 이후로 8개월간 나는 커다란 이젤에 사절 스케치북을 놓고 처음에는 원뿔이나 원기둥부터 시작하더니 이어서 오바마, 오드리 헵번, 조승우를 그린 다른 강사의 작품을 따라 그린 다음, 이어서 사진을 보고 그렸다.

어느 날이었다. 나는 버지니아 울프의 사진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사진은 드로잉 예시작품과는 달라서, 선의 모양도 음영의 경계도 뚜렷하지가 않다. 예시작품은 나온 그대로 선을 흉내내면 그만이다. 그 선이 섬세하든 그렇지 못하든 관계없이, 어쨌든 지금의 내게 있어 최선이란 형태를 잘 잡는 것, 드로잉을 하는 순서를 몸에 익히는 것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수업과정도 결국은 '보는 훈련'과 '드로잉 순서 익히기'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난 이런 수업 커리큘럼에는 만족한다. 애시당초 내가 "한 달 안에 저를 피카소로 만들어주세요" 내지 "두 달쯤 지나면 제임스딘의 초상을 완벽하게 모사할 수 있겠죠?"라고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려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렇다고 이 학원 수강생들의 태반이 하고 있는, 작품제작에도 전혀 관심이 없었다.

아마도 수강연한과 캔버스의 크기는 비례관계에 있는 듯 보였다. 예컨대 유화를 막 시작한 수강생들은 20에서 30센티를, 1년이 넘은 수강생들은 가로길이가 50센치에 육박하는 거대한 캔버스를 그리며 그보다 더 연배 있고 어느 정도 중급자 이상의 실력을 겸비한 사람들의 경우는 150센치가 넘는 초대형 캔버스에 온갖 형형색색들이 휘황찬란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여하튼 이왕 돈 들여 그림 공부하는 거, 유화작품 하나 정도는 남겨봐야 되지 않을까...싶은 생각으로 오는 학생들이 많은 듯하다.

그러나 나에게 드로잉은 일종의 몸 훈련정도이며, 적어도 선으로 표현을 할 줄 아는 '능력' 정도는 지니기 위한 목적으로 배우고 있는 작업이다. 프루스트는 글을 쓰려는 사람이 그림을 그리면 '끝장'이라는 표현까지 썼지만, 나로서는 그림에 내 일부를 담아낼 만큼의 어떤 열정이 있다고 보지 않으므로, 함부로 능력이 낭비되거나 분산될 일은 없으리라고 본다. 지금으로선 그냥 드로잉을 하는 요령에 능숙해지기만을 기대한다. 나의 최종목표는 작품이 아니라, 크로키다. 물론 크로키가 드로잉작품 하나 완성하는 수준 이상이 되어야 할 수 있는 경지라는 말까지 들었기에, 어떤 식으로든 나는 과정을 착실히 밟아나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아니, 곰곰 생각해보면 드로잉자체만을 두고 보자면 어떤 '지점'을 특정하지 않아도 좋다. 나에게 이런 아무 목적 없는 경험들이란 늘 즐거움과 적극적인 태도를 안긴다. 목적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적극성을 띤다는 건 관성 없는 내 팔자의 한 면모를 드러내는 것 같아 한편으론 한숨이 나온다만. 돈 문제가 있을지언정, 조바심까지 가질 필요가 있을 정도로 드로잉을 '빨리' 마무리지어야 할 시급한 까닭같은 것이 있지도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 학원의 미술강사에게 나같은 초보자는 사실상 경우의 수에도 포함되지 않을 정도로 희귀한 존재인지, 그래서 '설마 그런 생각으로 석 달에 55만원이나 들여 이런 학원에 다니고 있는건지'라고 생각하는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는 언제나 학생들은 빨리빨리 배워나가고 싶어한다는 가정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의 말마따나 "십년 이상 그림을 그려온" 경험을 바탕으로 미술이라는 것이 조급증과는 상극이라는 본질을 통찰하고 있는 그로서는, 지금의 이 속성 교육이 갖는 한계를 최소화해야 할 의무감같은 것에 늘 사로잡혀 있다는 인상을 준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자신의 지도를 잘 따라와 주길 바라는 마음도 늘 있을 것이다.

그가 그런 의무감이 있는지 없는지 알 길이야 없지만, 어쨌거나 그는 교사로서의 의무를 다 하기 위해 언제나 학생들에게 강조한다 '네 주제를 알아라' 이건 어떤 교사든, 거의 본능적으로 품고 있는 어떤 태도같은 것이다. 학생들은 조금 배우면 거만해지고, 마치 자기가 그림의 모든걸 다 알아차리기라도 한 양 태만해지려고 하는 본능이 있는데, 그걸 깨뜨려줘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늘 믿고 있는 듯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건, 실제로 노련한 교사들은 학생들이 태만해지려는 징후를 적시에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잘 가르치는 것뿐만이 아니라 학생들의 징후를 파악해 완급을 조절하는 것도 교사의 중요한 자질중의 하나다.

그런 점에서 보건대, 지금 이 학원의 교사는 꽤 뛰어난 자질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초보자인 내가 보기에도) 보는 눈이 정확하고, 학생들이 지금 어떤 지경에 놓여있는지 대략 잘 파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부족한 점에 대해 미화시키려는 의도따위 없이, 지금 현 수준에서의 최선을 감안하여 칭찬을 하면서도, 한편으로 그 현 수준에서 응당 도달했어야 하는 지점에 대해서도 가차없이 집어낸다. 교사로서 최악은, '싫은 소리'하는 게 미안해서 되도록이면 돌려말하려고 하거나, 아니면 아예 모른체 넘어가는 경우일 것이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그의 이런 직설적이고 때때로 냉소적이기까지 한 태도를 문제삼아 수강을 관두는건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본다. 그런 지적이야말로 세달에 55만원을 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이니.


대개는 이렇게 얘기한다 '그림은 누구나 다 그릴 수 있는거예요' 물론 이 강사도 이 얘기까진 남들처럼 다 한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은 '그냥 손 가는대로 그리세요. 그게 정말 당신 작품입니다'따위로, 이 말 그대로 '손 놓고' 내버려둔다. 드로잉을 배우려고 왔는데, 결국 내 맘대로 연필질하면 되는구나, 라고만 생각하게 만드는 자유를 빙자한 게으른 미술교사에게 농락되어 돈만 낭비하고 마는 그런 화실. 그런 것과 비교하면 여긴 다르다고 볼 수 있겠다.

다만 내가 거슬리는 것은 그의 초보자들의 태도에 대한 선입견. 그가 나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지적해주는 것은 고마워해야 할 일이나(이따금의 냉소는 비위가 상하지만), 이따금 그는 나도 초보자임을 지나치게 강조하며, 내가 마치 지금의 교육과정에 불만이라도 품고 있는 양, 혹은 지나치게 앞서나가고 싶어 안달난 것으로 간주하고 설명하는 태도를 느낄때 나에 대한 강한 불신감과 뭔가 넘겨짚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불쾌할 때가 있다 그리고 그날 나는 그의 그런 기질을 불편하게 실감했던 것이다.


화요일 수업이 끝난 뒤, 강남역까지 가서 그곳 스타벅스에서 오늘의 커피에, 싸온 빵이며 아몬드등을 먹고는 두시 반에 맞춰서 학원에 갔다. 캔버스에 놓여진 나의 드로잉을 보는 순간, 다시 멍해지는 기분이 들면서도 동시에 지금 내가 해야 할 것이 단지 톤깔기일 뿐임을 다행으로 여겼다. 집에서 안산, 다시 안산에서 강남을 왔다갔다하는 일이 그렇게 만만한 일은 아닌 모양인지, 월요일에 오후 늦도록 수업을 듣고 밤 열시까지 드로잉을 하자면 몸이 찐득거리는 듯 피곤하다. (월요일엔 아침수영을 위해 여섯시 이십분에 일어나니 더욱 더 그렇다) 그래서 결국 나는 화요일로 아침수업을 듣는 일이 있더라도 드로잉시간을 옮기는 수밖에 없었다. 원래는 토,일요일에 나가려고 했지만 주중 내내 학교를 왔다갔다하는 판에 주말까지 강남을 오가기가 힘들어 주말엔 토요일에만 나가기로 했다. 화요일인 오늘은 저녁에 수영강습이 있기에 몸이 일찍부터 노곤해지는 일은 없다. 그럼에도 안산에서 지하철을 타고 올라오는 길이 십여 년전과는 달리 그렇게 가뿐하지는 않다. 그 시절엔 어떻게 주말마다 홍대까지 놀러갈 생각을 했던 건지. 캔버스를 바라보는 내 눈은 어느 정도 풀려 있었다.

여전히 형태잡기와 톤 깔기 사이의 과정에 서투르다. 외곽선을 대략 가선으로 잡은 뒤, 이어서 이목구비를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선'이 아닌 '면'으로 표현해야한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 받았는데, "물론 선을 아예 안 쓸 수는 없지만, 선을 쓰면서 바로 명암을 표현해서 양감이 드러나게 해야 한다"라는 말을 듣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쓰고 있는 지금도,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간에 서두르지 않는다. 여건만 주어진다면 '베껴 그리기'만 반복했으면 좋겠다, 몸이 자동적으로 기억할 수 있도록. 이것이 드로잉을 일종의 '운동'으로 보는 나의 이해정도이다.

그날 학원에는 새로 들어온 수강생 둘이 와서 막 까는 선 연습이나 구 표현 등을 하고 있었고, 선생은 나도, 그리고 학원에 있는 내내 신입수강생들에게 알려주던 멘트를 또다시 반복하고 있었다. 삼월 평일오후의 학원엔 사람이 방학 때 같은 시간만큼 많진 않았다. 그래서 그 두 신입 수강생들에게 하는 말이 내 귀에 아주 또렷하게 들려왔다. 학원에서의 강사는 아마도 손보다 목이 더 피곤할 것같단 생각을 했다.

그가 지난주엔가 인도여행을 다녀온 뒤, 그 대신 자리를 메꾸던 선생은 더 이상 보이지 않고 그 혼자서 여러 학생들을 상대하고 있었는데, 물론 이런 일에 익숙이야 하겠지만 계속 그 혼자 맡아서 할 건지는 궁금했다. 톤 깔기를 다소 멍한 가운데 한참 하고 있을 무렵, 선생이 다가가 뒤에서 걸상을 툭툭 친다. 이는 옆으로 자리를 옮겨달라는 의사표시로 대개는 "좀 비켜주실래요?"라고 말하는 편이지만, 아까 신입생한테 가르쳐주면서 자기가 가르쳐줄 때는 옆으로 옮겨앉아달라는 말과 함께, "이제 앞으로는 제가 의자를 툭툭치면 알아서..."라고 말하는데, 뒤의 말을 흐렸지만 그 여자수강생은 알았다는 듯 호호 웃었다.

이렇듯 그의 '좀 비켜주실래요?'는 말 그대로 자신이 피드백을 하겠다는 알림이기는 하지만, 그의 숨길 수 없는 껄렁한 말투와 함께 비키지 않으면 일을 진행할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꺼내야 하는 말임이 뒤섞여 불가피하고 당연하지만 왠지 퉁명스럽고 도발적으로 들리는 그런 느낌을 항상 주곤 한다. 걸상을 툭툭 치는 행위는 그보다 더 신경질적이고 이젠 말하기도 귀찮으니 알아서좀 비키라는 느낌마저 풍긴다. 난 이런 사람이 힘든게, 그의 이런 퉁명스러움은 의도나 감정이 배어있다기보다는 애당초 체질적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본인은 단지 필요에 따른 이런 행동을 간결하게 수행할 뿐이기에 나의 이런 불편함을 터무니없다고 느낄게 뻔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를 상대한지도 석 달이 되어가는 나는 알아서 비켜준다.


"이제 중간톤이랑 흐린톤도 까셔야죠. 진한톤만 깔지 마시고... 이 정도면 대충 됐으니."

하며, 그는 바로 얼굴의 밝은 부분에 선을 까는 시범을 보이기 시작한다. 날래지만 치밀한 선이 그의 손놀림을 통해 일정한 방향을 따라 곧게 펼쳐진다. 내가 할 땐 마치 장님 코끼리 만지듯 방향성도 없이 거친 선으로 진척이 되는지 안 되는지조차 분간하지 못하기에 그의 그런 면밀해보이는 듯한-이젠 너무 익숙해져서 심드렁하기까지 한-선의 표현이 신기하기만 하다.

그러나 이 즈음의 나는 시범을 보기에 앞서, 특유의 나른함이 온몸을 뒤덮어 실은 오늘 하루 드로잉은 물론이고 수영도 접어두고 싶은 심정(하지만 달리 할 것도 없고, 집에 이토록 이른 시간에 있다면 너무 끔찍할 것이므로)이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넋놓고만 있으면 시간만 낭비한 채 드로잉에 대한 감을 익히기가 어려우리라는 염려가 순간 스쳐지나갔다. 사진에서는 드러날 리가 없는, 드로잉 특유의 선의 느낌을 내가 파악할 리가 없는 까닭에 나는 그에게 그것과 관련된 질문을 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선생은 톤깔기의 순서파악에 대해 다시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는데, 내가 궁금한 것은 그보다는 그가 얼굴위에 까는 선들이 어느정도 일정한 패턴의 방향성을 그리며 표현된다는 점의 기준이 뭔가 하는 것이었다. 내 궁금증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예의 설명을 계속 하고 있었다. 보통 그는 혼자 떠들어대고 있지 않음을 확인받기 위해서인지, 혹은 자기 말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를 수강생의 반응으로 파악하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말 끝을 다소 센 억양으로 올려붙이거나 아니면 반말과 경어를 섞어쓰는 그의 말버릇이 반영된 '응?'을 아예 말 끝에 붙이거나 하는 방법으로 알아들었다는 표시로서의 '네'를 강요한다. 그런 반응표시를 하지 않을 때도 있는데 넘어가기도 하지만 때로는 "응?응?응?"하고 연발장전하여 극히 짧은 간격에 걸쳐 쏘아붙임으로써 무응답을 추궁하기까지한다. 이런 식으로 추임새에 가까운 대답을 강요하는 스타일은 피곤하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가 해주는 조언이나 지침은 정확하고 도움이 되는 것들이라 삼분지 일은 자발적으로, 또 삼분지 일은 예의상, 나머지 삼분지 일은 애써 불편한 상황을 초래하고 싶지 않은 나름의 긴장감을 한데 붙여 그의 '응?'에 성실히 응답해주고는 했다. 그러나 어제따라 나는 긴장이 느슨한 상황에서, 그의 그런 꼬리올림말에 싫증을 느끼기도 한데다가 노곤함까지 겹쳐 대답을 성의 없게, 어떻게 들으면 언짢은 듯한 느낌이 묻어나올지도 모르게 '네'를 뜸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난 그저 그 선생이 내가 피곤한가보다,라고 추측해주길 바라면서, 애쓰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많은 경우 사람들은 상대방의 사정에 별로 관심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 배려고 뭐고를 떠나, 일단 남이 뭘 하는지는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는 것이다. 혹은 그 반대로, 상대방의 행위만을 죽 나열함으로써 '나는 그를 안다'고 의기양양하게 주장을 펼치거나 말이다. 현대 도시의 예절이란 이런 점을 염두에 둔 가운데 형성되는 것 같다. 적어도 이 공간은 그림을 그리는 공간이지, 사람을 만나는 공간이 아니다, 사적인 대화보다는 일단 그림에 몰두한다, 이건 듣기에 무척 당연해보이지만, 그간 이런 지극히 합목적적인 공간에 머무른 적이 별로 없었던 나로서는 다소 삭막하다는 느낌조차 들었던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단시일 내에 그림에 몰두하는 몸가짐을 만들기에는 이런 공간이 오히려 효과적이다.)


"근데"

선생님이란 말을 대놓고 쓰는 일이 드문 나는 일단 이렇게 말문을 열고는 "얼굴에 선 방향은 어떤 기준으로 까는 건지 모르겠네요..." 라고 그의 뒷통수에 대고 수줍게 덧붙였다.

선생은 선 깔기를 멈추지 않았으나, 잠시 손을 멈췄다. 그러나 대답이 나오기까지는 내 예상보다 조금 오래 걸렸다. 질문과 대답이 오가는 통상적인 리듬보다 훨씬 느린, 어쩌면 의도적인 지연이라고도 할 수 있을 잠깐의 침묵을 나는 느꼈다. 이 침묵어린 그의 뒷모습으로부터 나는 일종의 신경질어린 기운도 느꼈는데, 마치 옆에서 끊임없이 지껄이는 무리한 요구를 말없이 참고 듣다가 못해 순간 감정이 폭발하기 직전, 숨을 고르는 잠깐의 휴지와도 같은 종류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곧 말을 시작했다.

그가 늘어놓은 말들을 정확하게 기억하기는 곤란하지만 대략은 이랬다: "그런 건 지금 생각할 필요 없어, 신경 쓰지 마세요. 본인은 지금 그런 걸 볼 단계가 아니야. 지금 **씨는 초보자이기 때문에, 선이 무슨 방향으로 깔리고 그런거 생각할 그런 수준이 아니에요. 아직은 초보자이니까, 그냥 사진에 보인 대로 어두운 부분에 맞게 깔아주면 돼요. 선 방향이나 뭐 그런 건 드로잉 1년이나 배워야 나오는 단계지. 지금 드로잉배운지 이제 사개월 됐나? ...삼개월도 안됐죠? 그렇게 초보자니까, 지금은 그냥 대충 보고 형태가 얼마나 맞는지 그런 거 보고, 또 여러 그림 그리면서 드로잉하는 과정에 숙달되는 거에 목표를 두고 그려야지, 뭐 실물하고 비슷하게 나오거나 예쁘게 이목구비 그리거나 하는건 초보자 땐 아직 신경 쓸 일이 아니에요. 그렇게 몇 달 동안 수십 번 그려서 순서에 숙달되어야 이제 세부묘사나 이런 것도 신경 쓰고 하는 거지. **씨는 초보자라 지금 그런 거 보실 단계는 아니에요. 사실 다른 학원에 가서 지금 같은 초보단계에서 사진보고 그린다고 하면 웃어요, 말이 되냐고. 벌써부터 사진보고 그리는 건 한참이나 가야 하는 거고...(사진을 준건 그가 아니라 그를 대신했던 선생이었다) 그리고 선이 이런 방향으로 나오는 건, 봐요, 얼굴은 평면인가? 얼굴도 굴곡이 있잖아요. 굴곡 기울기에 맞게 그리는 거지, 원통 원기둥 안했어요? 같은 원리잖아, 안 그래? 물론 선이 방향이 있어야 모양이 예쁘게 나오는 건 있어요. 원기둥도 뭐 이렇게(하면서 그는 스케치북 한 귀퉁이에 원기둥을 그리고는 선을 아무렇게나 그어보였다)그어도 되긴 해. 명암 표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왜 수직선으로 긋느냐, 막 그리면 모양이 구리거든요! ... 물론 사진은 이제껏 보던 그림이랑 다르니까, 선으로 표현된 게 아니고 하니까 그런 것 때문에 물어본 것일 수도 있어요...하지만 지금 단계에선 일단 형태 잡는거, 순서 숙달되는 거 거기에 더 신경쓰시고."

사실 나는, 이런저런 배경 설명할 필요 없이, 그저 그가 이 순간 쏟아냈던 말들을 좀 더 당시 상황에 최대한 일치하도록 재현해낸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글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나는 그의 극히 과장된 반응에 마음속으로 경악하는 와중에도 다른 한편으론 내 스스로도 신기한 인내심을 발휘하면서, 또 그의 말로부터 최대한 좋은 의미들을 상기시켜가며, 그의 그런 말들에 눈살 한번 찌푸리지 않은 채, 모든 가르침에 최선을 다해 배워깨치겠노라는 초보자다운 과장된 끄덕임을 동원하며 눈을 맞추고는 염려마시라는 듯, 알아 모신다는 듯, 당연히 해야 할 일을 실수하자마자 선배로부터 지적받으면 더욱 복창을 높이는 초보 근무자처럼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라고 대답했다.

그게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지건 말건, 할 일을 마친 그는 들은체도 없이 바로 옆에 있는 수강생에게로 다가가 그의 드로잉을 지도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림 그린 지가 군대 빼고 십일 년이나 됐는데"로 그의 입버릇 같은 운을 떼었다.

"드로잉 해놓은 걸 보면 이 사람이 앞으로 그림을 잘 그릴지 못할지 훤히 보여요. 근데 자기는(그는 수강생들 이름을 기억못해 흔히 자기라고 부른다) 계속 잘 그릴것 같아. 못 그릴 사람은 티가 나거든! 잘 그리는 사람들은 하나 뚫어지게 보면서 끈질기게 고치고 하면서 결국 그려내고 금방금방 실력이 느는데 못 그리는 사람은 그렇게 안 돼, 계속 헤매."하고, 연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칭찬을 받은 그 학생은 "(그대로 따라 그리느라) 토나와요"하며 머쓱하게 웃어보인다. 다닌지 꽤 된 듯한 그의 선은 몹시 곱고 섬세한 느낌이 흐르는데 단지 내가 보기에만 좋은 건 아니었고, "이제 자기는 드로잉에 어느 정도 단계에 이르렀다고 말할 수 있잖아... 드로잉에 대해 더는 말을 하지 않겠어. 문제는 수채환데..."하고 갑자기 말을 놓으며 구체적인 설명을 늘어놓는 강사의, 이미 알 거 아는 너에게 하는 말인데 하는 식의 선배스런 뉘앙스가 깃든 말의 태도를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나는 이날 그의 까칠함이 다른 어느 때보다 더 심하다는 인상을 받았지만, 이것이 그의 일진에 의한 영향인지, 아니면 나의 무성의한 추임새에 대한 분노였는지, 그도 아니면 내가 초보수강생들에 대한 그 나름의 엄격한 방침을 자극하는 발언을 해서인지 곰곰 생각했다.

그렇게 7개월여를 드로잉을 하던 어느 날, 강사는 그 뒤 '다음 단계'인 유화를 배울 생각이 없는 나를 의아하게 생각하며, "이제 여기서 배울 건 더 없는데... 나머지는 본인이 알아서 연습하고 훈련해야 하는 거예요."라고 말하며 나를 꿔다 놓은 보릿자루 취급하기 시작했다. 나는 뭘 더 새롭게 배우기보다는 그냥 그리고 싶은 게 있으면 계속 와서 그려가며, 마치 수영장에서 자세 교정 받듯이 그때그때 잘못된 부분을 지적받는 식으로 머무를 생각이었지만 그의 이런 태도를 겪으니 여기 머무르는 것이 더 이상 편하게-애초에 편하지도 않았다만- 느껴지지 않았고 결국 8개월쯤 되었을 때 학원을 그만두었다. 원 돈을 더 내어가면서 머무르겠다는데도 저렇듯 냉담한 태도라니. 하지만 가르침은 나쁘지 않았다. 뭔가를 그리면서 뭔가를 보는 것에도 좋은 영향을 주었고, 손은 녹슬어도 한번 본 눈은 평생 안 녹슬어요하던 그의 말은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물론 자기만의 창작 영역에 들어서려면 그 눈은 또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겠지만, 미술 쪽에 마음을 두고 있는 나는 아닌지라 한때 어떤 식의 보는 방법을 배웠다는 것 자체는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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