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월길을 걸을 적마다 남산자락을 뒤덮은 울창한 숲이 유혹적으로 다가오곤 한다. 무심코 남산에 들어섰다가 어느덧 중턱까지 올라왔음을 알았다. 더위와 습기에 지칠 것 같았다. 새로 산 슬리퍼의 날에 발등의 살갗이 벗겨지고 있었다 팔꿈치는 어디서 다친 건지 피가 나고 있었다. 가장 참을 수 없는 순간이 바로 이럴 때이다. 뒤늦게 와서야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는 게 너무 싫다는, 뭐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는 그런 기분.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려가거나 올라가는 일밖에 없었다. 어쩌면 스스로로 하여금 뭔가를 하게 만들려면 거기가 어디가 됐든 무작정 가게 하는 게 정답일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지점에 오게 되면 결국 돌아가든지, 더 나아가든지 해야 하는데 둘 중 어느 하나도 나쁘지 않을 거 같기 때문이다.
마침내 도착한 남산 꼭대기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수많은 관광객들이 버스를 타고 쉽게 올라와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맑은 하늘과는 달리 대기 상태가 그렇게까지 투명하다거나 시야가 훤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쨌든 석양이 저문 저녁의 서울 하늘은 고왔다, 아니 그냥 그랬다. 나는 다시 내려갔다 그런데 또 내려가는 길이 아름다웠다 뭐랄까 모두가 같은 지점에 도착한 다음 저마다 각자의 길로 흩어지는 순간의 느슨한 느낌도 좋았다. 케이블카를 기다리기도 하지만 천천히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혹은 그늘진 계단참에 머무는 사람들, 자물쇠로 가득한 울타리를 둘러보는 사람들, 남산산책로로 들어서는 사람들, 남대문시장으로 내려가는 사람들-
글을 잘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내 글 중에 유통이 가능할 만큼 '잘 쓴' 글이 있을까도 생각한다. 그런 글이 있긴 한가 쓰여질까 싶기도 하다. 나는 마음이 들떴을 때만 글을 쓸 수 있는데 이렇게 하면 안 되지 않나. 가만히 앉아서, 막연하고 끔찍한 상황이라고 느껴져도 끝까지 엉덩이를 무겁게 하고 주저앉아서 백짓장이 되어버린 머릿속을 계속해서 탐색하고 거기서 한 줄씩 한 줄씩 써야 하지 않을까 싶은 거다.
글쓰기에는 두 차례의 시발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번째 시발점은 그 어떤 장소라도 상관이 없다 무작정 들어서기,의 출발점이다.
첫번째 시발점에서는 호기심과 흥미가 잔뜩 어린 태도로 무작정 들어서서 계속 나아간다
그러다 어느 순간 오도가도 못한 지점에 들어선다
이 지점에는 이런 표지판이 쓰여져 있다: 여기서부터 시작입니다 ***까지 850km
두번째 시발점이 시작된 것이다
아, 이제는 계속 갈 일밖에 없어요- 여기 더 있을 수도 없을테니까
좋든 싫든 무조건 움직여야 하는 지점으로서, 여기서부터는 왔던길로 돌아가든, 계속해서 새로운 길로 들어서든 새로운 국면이 시작된다
오도가도 못하는 지점이기 때문에 왔던 길로 돌아가는 선택은 쉽지 않지만 이 역시 용기가 따르는 일이다. 용기있게 돌아가는 것은 아무 생각없이 들어섰던 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두번째 시발점에서의 첫 걸음은 첫번째 시발점에서의 설레는 기분과는 다른 상태다.
다소 지친 상태, 질린 상태. 무력한 상태.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거워질 수 있는 상태다.
그래도 나아가야 한다. 여기서의 동기는 내 기분이 아니라 어찌됐든 이 구간을 통과해야 한다는 절박감이나 체념이다.
절박하고 체념어린 태도로 나는 걸어간다 끝날 때까지
끝났다고 느껴질때까지
중간 중간에 세워진 표지판을 봐도 더이상 설레지도 지칠 수도 없는 그 상태에서 계속 걸어가기
이 즈음 되면 지치는 마음조차 의식되지 않고 그냥 하는
걸으니까 걸어지는, 그런 상태
이미 땀에 절은 몸이 더위를 떨쳐내지 못해 짜증내기보다는 축축한 이 더위에 고스란히 젖어든 그런 상태 그래도 발등을 피투성이로 만들어버린 슬리퍼에 어느덧 적응되어 부지불식간에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상태.
그래도 어쩌면 이렇게 가다가 산중턱에 걸린 구름을 보게 될지도 몰라
체념에 익숙해지면 쉴 줄도 알게 될지 몰라
그는 도착했을까, 실종됐을까 ?
그것은 그가 결정할 일이다 도착한 그를 발견했으나 그는 스스로의 행방이 묘연해졌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르고
누구도 그를 다시 만난 적 없다 해도 그는 자기만의 종착지에 도착했을지도 모른다고 가정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