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즈음- 베이킹의 즐거움에 빠져 식빵은 물론이거니와 치아바타, 포카치아, 각종 종류의 머핀과 스콘, 그리고 지금은 잘 만들지 않는 카스테라, 치즈케이크나 고구마케이크 같은 것까지 만들던 나는 천연발효종이라는 걸 알게 되어 호밀사워종과 화이트사워종 같은 것들도 만들기 시작했는데 그 중 화이트사워종을 이용한 빵들은 지금까지 키워서 만들고 있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그 무렵 나는 다시 학교에 다녔는데, 돈이 넉넉하지 않은 시절이었기에 화이트사워종으로 만든 호밀빵과 통밀쿠키를 점심으로 싸가지고 다니며 먹고 다녔다.
어느 날부턴가 서사론 수업시간마다 문창과의 한 여학생으로부터 소소한 것들을 선물받았었다. 초코바랄지, 따뜻한 허브차같은. 나는 그 전에 한국 현대시 수업에서 그를 처음 알았었는데, 그도 내가 그 수업을 들었음을 인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만 그는 그런 것들을 건네주며 한 마디도 말을 거는 일이 없었기에 이렇다할 대화를 한 적은 없었는데, 남성친구보다 훨씬 많았던 여성친구들과의 일정한 교류 패턴에 익숙했던 나로서는 이런 식의 접근이 생소하고 '난감'했다.
한동안 그로부터 계속 받기만 하는 게 민망해서 답례로 손바닥만한 크기의 통밀오트밀쿠키를 구워다가 그 중 2개를 선물했다.(크긴 했지만 그래도 2개는 너무 적지 싶은데, 저땐 내가 구운 걸로 점심을 때우기도 해서 아마 달랑 두 개만 줬던 건지도) 내가 뭔가를 줄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는지, 그는 약간 당황한 눈치였다. 그러나 난 선물을 준 경위만 아주 짤막하게 설명한 뒤, 냉큼 내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리고 그 다음 주엔 다시 그가 아침의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갑자기 나타나 나에게 에이미 크루즈 로젠탈이 쓴 <쿠키, 한 입의 행복 수업>이라는 그림동화책을 건네주고 후다닥 사라졌다.
휴대폰으로 멍하니 다음뉴스를 읽으며 수업을 기다리던 나는 그가 이 책을 내게 준 건지 한번 읽어보라고 빌려준 건지 몰라 살짝 놀랐지만, 이것 또한 그의 선물일 것임을 짐작했다. 그리곤 책을 넘겨보았는데, 쿠키를 선물하고, 쿠키를 다른 사람을 위해 남겨두고, 남의 쿠키에 눈독들이지 않는 행동들을 통해 의미를 찾아가는 동화책이었다. 난 이 책을 읽으며, 그 무렵 세미나로 내내 읽어야 했던 들뢰즈니 프루스트니 하는 것보다는 이거야말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책이라는, 내가 제대로 망상의 개입없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책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했다. 어떤 의도인지와 관계없이, 탁월한 안목으로 이 책을 나에게 준 것이 아닌가. 이 책의 내용뿐 아니라 쿠키를 굽는 고양이와 토끼와 쥐 등등의 등장동물과 아이들은, 나의 유아적인 취향과 감수성에 맞닿았다. 그의 이런 행동이 나에 대한 일종의 강한 호감의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이 학교에서 아무런 특출나거나 인상적인 행동이나 말을 해본 적 없는 나로서는, 도대체 그가 어떤 계기로 나에게 그런 호감, 혹은 관심을 품게 되었을지 궁금해졌다. 단지 내 얼굴만 보고 판단하기엔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그 역시 뛰어난 감수성의 소유자라서인가?(ㅎㅎ) 그의 선물이 갖는 의미가 관심의 표현이라는 해석이 맞긴 하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왠지 서글프고 안타깝기도 했다. 내가 그라면... 한없이 쓸쓸해보이는, 그러나 뭔가 꿈을 꾸는 듯한, 현실에 발을 닿지 못하고 있는 듯한 그 누군가에게 이 무미건조한 학교에도 즐거운 예외가 있을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은, 유쾌한 자극을 선물해주고픈 생각으로 이런 행동을 했으리라. 그 사람이라면, 그런 자극에 그렇게 의아해한다거나 기분나빠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하며.
다만 나는 이후에 더 이상 그에게 반응을 하지 않았다. 이제 좀더 적극적인 제스쳐가 필요할 것 같았고, 그렇게 되면 본격적인 교제 국면에 이를 것 같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지금이었다면 좀더 적극적으로-호들갑스럽게- 말도 걸면서, 상대가 묻지 않았는데도 내가 누군지 먼저 밝혀가며 대화의 물꼬를 틀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때는 사람들로부터 자기 주변에 벽을 치고 있는 것 같다는 분석까지 들었을 정도로 사람들과 왕래를 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의 수줍지만 도발적인 접근은 뭐랄까, 그때까지의 경험상 이는 친구로서의 우의라기보다는 구애의 내음이 강하게 풍겼기에 이 이상은 아무래도 어렵겠다는 판단을 나 홀로 했다. 이에 그도 나의 뜨뜻미지근함을 알아차리곤 더 이상 나와 마주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 다음 해 초에 발간된 졸업문집에 이 때의 일과 관련한 그의 수필이 실렸다. 읽어보면 이게 나일 리 없다고 말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꼼꼼하고 자세하게 소개되었다. 글 속에서 나는 '그애'로 표현되었는데, 그는 강의실 앞, 캠퍼스 곳곳, 도서관, 플랫폼, 버스 안 곳곳에서 나를 발견하였고, 방학중에도 아무도 없는 도서관에 나와 책을 읽는 나의 모습을(그때 그 도서관에서 내가 읽은 책은 유일하게 뿌리깊은 나무에서 1980년대 중반에 발간한 '한국의 발견'뿐이었다), 넓은 길 두고 일부러 오솔길을 택해 하교하는 나의 모습을, 어디서든 수시로 무언가를-물론 여기 언급한 빵과 쿠키들이다- 꺼내어 먹는 나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나와 겹치는 수업이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더 많음을 알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나는 그가 언제부터 나를 알게 되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내가 기억하지도 못했던 스몰토크의 기억들이 그의 글 속에 나왔다. 글 속의 나는 흡사 전경린의 '염소를 모는 여자'에 나오는 박쥐우산을 든 남자 같은 모습같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글 속의 나는 내가 아는 나보다 더 아름다워 보였다. 그가 보았던 나의 여러 모습들 중 맑은 날 우산을 쓰고 걸어가던 모습도 잠깐 소개되었는데, 사실 그 당시에 햇볕 쨍쨍한 날에는 자외선을 피하겠답시고 장우산을 펼쳐서 캠퍼스를 돌아다니던 때가 종종 있기는 했으니 그 얘기를 내 친구는 지금까지도 두고두고 하고는 했다. 내용의 후반부는 여기에 실린 것과 거의 같다고 보면 된다. 그는 그 뒤로도 나와 마주쳤다 했지만 '우연의 조롱'에 그만 지쳐버렸고, '홀로 있는 시간을 좋아하고 익숙해하고 즐거워하는' 나만이 누리고 있는 기쁨, 휴식, 위로를 존중하기로 했다.
난 가끔 생각한다. 한때 나를 호의적으로 생각했던 사람들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때 그렇게 스쳐 지나간 걸 다행이라고 생각할까, 신기하고 흥미롭다고 생각할까. 대개는 전자일 것 같기에 후자라면 나는, 이 계절 아니면 못 먹을 시나몬향 가득한 상큼한 홍옥 타르트를 구워다 주며 수다를 풀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