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과거 언젠가 썼던 일기를 정리한 것입니다 ㅎ)
이번에 수영장 시간대 바꾸고 두 달만에 레인을 한 줄 옆으로 옮겼다. 나름 상급반 레인이었다. 그랬더니 그 라인 맨 앞에서 수영을 하는 분이 자기 다음에 하라고 자리까지 내주는데, 나머지 아저씨(!)들도 그렇게 하라고 적극 권하는 것이었다. 오늘따라 옆에서 볼 때마다 곧잘하던 사람들이 빠진 까닭에 두번째 서긴 했는데 좀 부담스럽다. 워낙 들쭉날쭉하는 식으로 수영을 하다보니... 원래 하던 레인이 다소 조용조용한 분위기로 수영을 하는데 반해, 이 레인은 맨 앞에 있는 분이 농담을 곧잘 하는 편이라 그런지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약간' 활기가 있는 편이다. (근데 아침 수영반은 좀 조용하게(?) 수영만 하는 분위기긴 하다) 단점이라면 명절때마다 너무나 적극적인 태도로 강사 줄 떡값을 걷는다는 것이지만.
근데 오늘 아침 수영시간에 그 맨 앞에서 하는 분이 느닷없이 몇살이냐고 묻길래 다소 쭈뼛한 태도로 "서른 세살이에요.."라고 대답했더니 대뜸 "결혼은?"하고 물어보는 것이 아닌가. 초면에 이런 말도 안되는 질문을 하는 사람을 너무 오랜만에 보아서 그런지 이 짤막한 질문은 느닷없이 나로 하여금 내가 너무 오랫동안 '사회생활'을 안 했나...하는 회의에 젖게 만들었다.
물론 학원에서도 빵을 굽다 보면은 넌지시 결혼 얘기는 나온다. 그러나 이 경우는 좀 자연스러워서, 아무래도 실업자국비지원이고 재취업이나 창업을 위해 모였음을 서로 아는만큼 지금까지 생활을 어떻게 해왔고 또 앞으론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얘기가 아주 간략하게라도 지나가듯 언급은 되다보니 누군가 책임져야 할 사람이 있는지의 여부도 드러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체로 '실업'이라는 사건을 겪었거나 취업을 염두에 두고 있어 그런지, 아니면 내가 배우고 있는 지금 클래스의 사람들의 특성이 그런진 몰라도 개인적인 질문을 주고받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기사, 내가 다니는 클래스 총 8명중에 4명이 각각 20대, 40대, 50대의 가정주부인만큼 이들의 경우는 빵을 남편이랑 아이들에게 나눠줬네, 이웃들하고 친정, 시댁, 아주버님 동서등등에게 나눠졌는데 반응이 어쨌네 하는 식의 말을 자주 하는 편이라 이들의 가정사는 이런 식으로 살짝 공개되는 편이다.
그러나 이 사람들의 경우 자신의 얘기를 꺼내는 데는 익숙해도 누군가더러 일부러 결혼을 했는지, 혹은 전에 어떤 직장에 다녔는지 이런 질문은 굳이 하지 않는다. 그냥 어찌하다보니 결혼얘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와서 "어머 안 했구나..." 정도로 넘어가고 말 뿐이지 더 물어보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근데 이 아저씨는 초면부터 결혼 여부를 물어보는 것도 모자라 "아직도 결혼을 안 했어요?? 아니 어떡해? 왜 결혼을 안했대? 준비를 해야지! 난 일찍 했거든! 지금 애가 대학다니는데..." 하며 호들갑을 떠는데, 조만간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 아는 처자와 선보라고 강권할 기세였다.
사실 생각지도 못한 사람에게서, 꼭두새벽부터 이런 류의 선입견에 사로잡혔음을 인증하는 뻔뻔한 질문과 반응을 접해서 좀 당황했던 탓이 가장 크다. 제빵 배울 때는 자기소개부터 불필요한 사생활 공개 등으로 장황했던 두 명의 중년 여성들을 좀 걱정했었다. 딱 저런 식으로 오지랖을 떨지 않을까 하는... 그러나 그건 좀 지나친 편견이었다. 그들은 자기 얘기 하는 것만 좋아했고 다른 사람이 얘기할 때 그렇게까지 귀기울이는 집중력은 보여주지 않았다.
다만 빵 모양이 의도한 대로 잘 되지 않을 때는 어김없이 나타나서 "어머 이 빵 모양 왜 이렇대? 망했네! 선생님, 이거 잘못된 거 맞죠?... (선생님이 몇마디 하고 나면 혼잣말하듯) 그래... 저건 그래서 안 된 거 같아." 하는 소리를 좀 하는 경향들이 있긴 하지만, 그리 심하게 호들갑을 떨거나 훈장질을 하는 식은 아닌 수준에서 저 정도의 반응을 매번 일정하게 보이다보니 그냥 눈에 보이는대로 말을 하는 경향들이 있으신가보다...라고 받아들이게 되어서 뭐 그렇게 기분나쁘진 않았다.
그리고 어쨌거나 그들의 저런 반응은 어쨌든 사실인 건 맞다. 이를테면 오늘 만든 단과자빵은 반죽이 너무 거지같이 질었는데(...) 꼬아서 더블8자니 8자니를 만들어야 해서 덧가루를 얼마나 뿌려야 하는지가 미묘한 관건이었다. 근데 대충 뿌리면 바닥에 아예 늘어붙고, 많이 뿌리면 길게 늘어지지가 않아서 너무 어려운데 게다가 우리 반죽이 까닭모르게 과발효되어서 특히 질어진 것도 원인이었다. 이때도 그 여성들이 나타나서 "어머 어머, 반죽 좀 봐 이거 왜이래? 다 붙었네, 다 붙었어!" 하는데 불난집에 부채질하는 듯한 이런 반응이 그다지 반갑진 않지만, 사실 내 마음 속 반응 그대로를 반영하고 있었으므로- 나도 짜증이 났다. 그들은 "좋았어, 다 죽었어!"하고 환호성을 지르며 상당히 빠른속도로 해냈는데, 알고보니 반죽에 설탕넣는걸 빼먹어서 상대적으로 찰기가 있기 때문이었다(단과자빵인데 설탕이 빠진 단과자빵...) 누군가 나타나서 안타까워해 줄 새도 없이 "못 살아 정말!" 하며 그네들끼리 신나하는 모습을 보며 어찌됐든, 그들의 말에 악의가 없음을 알고 있으니- 그런 부분에 대해 하나하나 다 신경쓰고 싶진 않다.
그런데 이 아저씨의 경우는, 이게 악의는 없다 하더라도 개인 신상에 실례가 될 말 안 될 말을, 어째서 저 연배가 되도록 분간을 못할까 싶은 생각에 어처구니가 없었으나 평영을 하느라 물살을 가르며 언짢음을 곱씹고 뭐라고 대답하는게 좋았을 뻔했을까 하며 괜찮은 대답을 생각해내기 시작했다. 제 친구들은 대부분 결혼 안 했는데요, 얼마전에 헤어졌거든요(하면서 도리어 원하는대로 온갖 사적이고 은밀한 얘기들을 폭로한다...자기네 교회든 센터에서 떠들든 말든), 사실 이혼했어요, 이런 얘기 해도 되나 모르겠는데...제가 사실 한눈을 팔았었거든요. (이렇게 대답하면 일단 자기 지인에게 바람폈다가 이혼당한 남자를 소개시킬 생각을 하지는 않을거라는 장점이 있다), 남자 좋아해서요. 뭐가 문젠가요?(그들에겐 충격과 공포인 이런 고백은 곧 수영보다 사회운동을 하게 되는 상황으로 이어지기에 이 수영장 그만 다닐 작정으로)... 마땅한 대답을 찾지 못했다.
강습이 끝나고 화이팅인사하려는데 이 아저씨가 나를 가리키며 "라인 옮겨왔는데 노래 시켜야죠." 하길래 이때 좀 오바스럽게 "아니 노래는 무슨 노래에요 새로 들어온 것도 아닌데"를, 말은 이렇게 해도 얼굴 가득 가짜웃음을 함박 터뜨리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