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엮어서 책을 내보면 어떠냐는 제안에 늘 시큰둥했다. 이런 글로 무슨 책을 만들어... 하는 생각이 사실은 더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내 글을 책으로 보고 싶은 바람이 진심으로 내 안에서 움틀 때도 있다. 그저 글을 써낸 것과는 다른, 무언가와 연결될 거 같은 느낌이 그때서야 든다. 책이 된다, 라고 생각하면 책을 상상하고 좀더 구체적인 의욕들이 생기는 것 같다. (그럴 때 브런치북에 응모하기도 하고 여러 출간 지원 행사에 응모하기도 하는 것이다) 책의 기분이라는 것은 글을 써내는 것 이상의 기분, 누군가와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드러내고자 하는, 이를 위해 좀더 글을 정제되는, 글들을 직조하는, 그리하여 책이라는 구조물을 축조해내는 욕구같은 것들이 반영되어 있다.
글을 쓴다고 글의 내용이라던가 '수준'같은 것들과 실제의 나와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 글 쓰는 나는 일상의 나보다는 좀더 고양되었고 좀더 정제되어 있으니까.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당장 글을 왜 쓰는가, 나는 왜 여전히 (108배를, 요가를, 달리기를, 베이킹을, 명상을, 조용히 용인에 갔다오는 일을 등등) 중단도 없이 꾸준히 계속 할 수 있었는가에 대해 이거다 싶은 대답을 찾지 못한다든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경험을 하고도 그 경험을 여전히 글로 온전하게 표현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그러하다.
글과 나의 관계처럼, 책과 글의 관계도 약간 이런 것이 있는 것 같다. 책의 기분이 든다고 해서 글의 내용이 내가 판단하기에 혹은 누군가의 판단에 훌륭하지는-다시 말해 '잘 쓴 글'이지는-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것과 상관 없이 쓰면서 기분이 좋은 글이 있다. 나한테는 그게 점점더 소중해졌던 것 같다. 너무 희귀하기 때문이다. 글을 쓰면서 속이 뚫리는 무언가 답답한 것을 규명해내는 것에 많은 의미를 두다가 어느 날엔가 한번 써보다가 순간 그저 기분이 좋은 순간을 느낄 때, 내가 얼마나 이런 기분을 몰랐는지 알게 되어 놀라고 또 이걸 계속 누려보고 싶다고 느꼈다. 그런 주관적인 감정에 도취되거나 머무르면 안된다 어쩌고저쩌고... 내 스스로에게 그런 경고를 하지 않기로 하고 그 희귀한 글에 대해 좀더 알고 싶어졌다. 글을 계속 쓰는 것은 좋은 기분으로 쓴 글과 잘 쓴 글이 일치하게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리고 책을 만든다는 것은 그 좋았던 기분을 누군가에게 드러내고 싶고 함께 하고 싶은 욕구인 것 같다. 말 그대로 무언가 이어진다고 느껴지는 그때는 아주 잠깐인데, 글을 써서 좋은 기분 이상인, 이 글이 책으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느껴지는 바로 그 순간이다. 아직은 희소하게만 느껴지는 이 순간을 놓쳐서는 안 될 것 같다. "아, 그런 열망이 좀더 커졌으면 좋겠네."
그런 마음일 때 더 나은 작품에 대한 의지와 의욕이 좀더 생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동시에 나란 사람이 평상시 그런 열망이 그다지 크지 않다는 사실을 이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도 당혹스럽다. 왜 크지 않은 걸까? 어떻게 해야 그런 열망을 증폭시킬 수 있을까? 그 의지는 보다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끄는데 있어 중요하다. 동기가 부여되어야 비로소 하는 게 아니라 일단 해야 동기가 따라온다는 말에 그렇게 공감이 되진 않았는데. 일단 하게 되는 것도 결국 순간적이나마 어떤 강렬한 추동이 있어서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이런 얘기 해서 생뚱맞지만, 정말 중요한 건 사랑의 마음이라고 느꼈다. 사람을 사랑할 줄도 모르면서 무슨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한거냐는 예전 애인의 독설은 틀린 게 없었다. 하지만 글에 대한 욕구는 이미 존재해서 도취되고자 했던 자기애의 연장선도 딱히 아니었다. 자기애조차 나에게는 흉내의 대상이었으니까. 어떻게든 글을 책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이야기에 대한 열망까지 이어지게 만드는 것은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 같다. 사람들에 대한 사랑 나 자신에 대한 사랑. 이건 내 글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싶어, 같은 거랑 다른 거다.(아예 없을 수야 있겠냐만 그보다는) 내가 사람들을 사랑해, 그래서 나는 이걸 글로 완성시켜야 해. 라는 마음이다. 왜 거기까지 닿는건지는 여전히 글로 쓰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치만, 감사의 마음이 차라리 그와 닮았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느닷없이, 영문 모를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를 번갈아 외치는 기분. 때때로 나는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그러나 끈질긴 갈망이 있었던 것 같다.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그것이어야 무언가가 가능하리라고 느끼게 했던 것도 다, 나도 나를 사랑하고 싶다는 갈망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