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프리즈

by 흘흘

추석 당일, 숙면을 위해 서울로 올라왔다. 용인 집에서는 집안의 소리에, 서울 집에서는 집 밖의 복도로부터 들리는 소리에 깨는 일이 많지만 서울 집에서는 새벽 정도를 빼면 다시 잠들기가 수월하다.


집 밖을 나서자 비가 장마 때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밥에 지어먹을 생밤과 약과, 누나가 내어준 드립백커피 등을 안고 버스를 탔다. 빗속에서 버스는 교각 위의 고속도로를 타고 달렸다. 한때 매주마다 오르던 광교산의 풍경은 적갈색으로 산란한 구름에 뒤섞여 평소에 보던 것과 다른 모습이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지만 체온만으로 모든 것이 순식간에 연상되는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어떤 말들의 모음은 형상을 파악할 수 없는 형태지만 그 자체에서 일종의 발열이 이루어지는 것 같다.


아키 카우리스마키라는 사람의 영화에 대해 생각했다. 엉망이 된 얼굴로 한 사람을 어색하게 끌어안는 행위가 일어나기까지 중첩된 상황과 시간에 대해 생각했다. 누군가를 끌어안기 위해 때때로 얼마나 많은 서로간의 경험과 시간이 필요할까. 그러나 그의 영화 속 또렷하지 않은 이야기들은 등장인물들의 무뚝뚝하다못해 표정이 상실되어 버린 듯한 얼굴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이야기는 일렬로 병렬되는 것 같이 보이지만, 우리가 익숙해하는 서사의 흐름과 무관하게 고립된 이야기들이, 단조롭고 무한하지만 서로 무관한 도시적 배경을 버스 창 밖에서 보며 이어나가는 것처럼, 오로지 나의 시선으로 인해 이어지는 것 같다. 어떤 키워드는 전형적이지만 보편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정서가 있는데 그 키워드들을 일종의 경우의 수로 파악하고 그것들을 여러 개 끄집어내어 적절하게 배치함으로써 해석의 가능성을 무한대로 펼쳐낼 수 있는 것 같다.


산란한 하늘 아래로 펼쳐진 산은 어둠 속에서 불을 머금은 듯 뜨겁게 느껴졌다. 문득, 산이 아니라 시선이 뜨거운 것이었음을 깨달았다. 너무 뜨거우면 뜨거움이 자신에게서 뿜어져나오는 게 아니라 뜨거움을 투사한 대상으로부터 방출되는 거라고 착각한다. 때때로 어떤 뜨거움은 화산처럼 폭발적으로 분출되어 잔혹함마저 풍긴다.


내 마음 속의 어떤 상황들은 그래도 조짐이라는 게 있어 그것들을 미리 알아차릴 수 있지 않을까- 그것들을 예비적으로 자잘하게 폭발시키거나 분출시켜서 이다음에 올 파국적인 상황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따스함은 열(시선)이 가진 최고치가 아닌 식어가는 상태이다. 뜨거움이 단 하나가 아닌 여러 개의, 이제껏 무관한-무관하다고 생각했던- 배경들을 향해 분산됨으로써 따뜻함으로 냉각되어간다. 나는 그저 흘러가는 존재이고 그 흘러가는 상태에서 다른 흘러가는 것들의 순간을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다.


억지로 끌어내지도, 붙잡아 억지로 이어가지도 말아야지... 우주의 모든 것이 완벽하게 안정화되어 절대적으로 깜깜하고 차가운 빅프리즈는 흘러가는 존재로서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상태이지만 방향성을 알려주는 표지와 같은 것이다. 나는 계속 힘을 빼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뜨거움을 인식하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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