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생각을 계속해서 재생하고 다시 해석해보는 시도들이 단순히 곱씹으며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문을 불러일으키고, 다시 정리하고 고쳐 쓰는, 마치 퇴고와도 같이 느껴져서 멈출 수 없다.
2014년, 퇴사 후 32일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적이 있다. 절대로 잊혀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당시의 기억도 이제는 많은 것들이 잊혀졌고 어쩌면 그렇게 되는 것이 마땅한 것 같지만, 어느 순간 문득문득 그때 상황들에 대해서 떠올리는데 단순한 회상이라기보다는 이 '사건'이 나에게 어떻게 감각이 되었고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가를 떠올리게 된다. 그 길에서의 체험으로 뭔가가 달라졌는가를 묻는 사람이 종종 있었지만, 그때마다 나는 오히려 어떤 계기를 통해 내가 달라졌다는 믿음은 내 안에서 생길 수 없다고 답했지만 그럼에도 그때 내가 겪었던, 여전히 해석되지 않는 것들에 대해 떠올리곤 했다.
지난 연말 지인들과 함께한 식사자리에서 나는 산티아고 길에 있던 페레이로스라는 마을에서의 저녁에 겪은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날 나는 여정이 끝난 뒤 저녁식사를 하러 식당에 들렀고, 와인 한 병을 비웠으며 식당을 나와 마을 어귀의 묘지를 통과하였고 밀밭을 끼고 돌다, 숙소에 거의 다 도착해서 비탈에 늘어선 오래된 밤나무 숲을 보다가 눈물을 흘리다 못해, 목놓아 울었다. 이상한 것은 내가 다시 이 얘기를 꺼내는 순간 다시 울컥했다는 것이다.
거의 10년이 다 되어 가는 그 상황을 얘기하면서 느꼈던 그 감정은 일종의 격정에 가까웠는데, 그게 그때가 그립고 다시 돌아가고 싶다, 이런 기분이 아니었다. 이 격정은 재생됨과 동시에 나타났고 때문에 지극히 현재적이었다. 사실 나는 저 기억이 과거 그 시간의 경험과 정확히 일치하는지도 의문이다. 페레이로스에서의 밤나무숲은 사실이지만, 내가 본 그 나무들이 정말 밤나무가 맞을까? 과연 내가 밤숲에 도착하기 전에 거닐었다던 밀밭이 갈리시아 페레이로스에서 봤던 그곳이었을까? 이전의 메세타에서 여러 차례 거닐었던 밀밭의 기억들과 뒤섞인 건 아닌가? 하지만 진상의 규명이 우선시되어야 하는 상황도 아닌 이상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이 합성된 기억이 나에게 어떤 그 무언가의 명료함을 일깨우게 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식사를 마친 후 걸었던 길에 대해서 지금의 나는 그때의 산책이 마치 마지막 식사를 마친 뒤 사찰의 일주문과도 같은 묘지를 지나 죽음을 맞이하고 밀밭이라는 초현실적 공간을 거쳐 마침내 맞닥뜨린 천국을 목격한 기분과도 같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천국이란 종교적인 의미일지도 모르지만, 당시로서는 '좋다'는 기분의 어떤 궁극적인 끝을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밤나무숲이 준 감동이 아닌, 그 이전의 내가 겪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찬찬히 무르익다 마침내 그것이 아름다움으로 실현되었다는 것에, 그것이 나에게 '경험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에 경이감을 느꼈던 것일 수도 있다. 전에도 말했듯, 이전의 나는 좋은 게 뭔지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으므로. 좋은 것을 표현하고 싶다, 나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드러내고 싶다, 라는 의욕과 의지에 대한 순간의 화답 또는 결과일지도 모른다. 굳이 달라진 걸 든다면 이런 것일까? 아니, 이 조차도 현재의 해석이다. 물론 난 이런 해석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이 날의 그 자리에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과는 별개로 아름다움이란 나한테 어떤 것인가에 대해 스스로 말을 풀어보고 있었다. 아름다움은 나에게 현장에서의 발견이라기보다는 이런 식으로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인식된다. 여러 차례에 걸쳐 나는 용인에 방문하지만 용인에는 내 과거의 현장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 뭣보다, 용인은 어떤 기준에서 조금도 아름답지 않은 곳이며 갈수록 변형되어 가고 있다. 모든 것이 불투명했고, 모든 것이 선명하지 않았던, 부인하고 싶었던 시절로 가득한 장소이기 때문에, 오히려 규명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곳이다. 아무것도 알아차린 바 없고 올 때마다 마음이 답답하고 관성에 젖어들지만, 나는 그 '자리'들을 '흔적'들을 순회하며 내 스스로 알아차리는 과정을 되풀이한다. 차라리 용인이 아니라 용인을 그렇게 헤매는 나에게서 오히려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메세타 한가운데에 있던 외딴 마을 산 볼에서의 쏟아질 듯한 별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은 아름답다가 아니라 정확히 두려움이었다. 한번도 겪은 적 없는 아름다움은 곧장 아름다움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내 날 것의 욕망과 감정을 담은 나의 첫 글을 사람들 앞에 보였던 순간, 뭣도 모르고 만들었던 영화를 상영했던 첫 순간의 이상한 시간감각과 비슷하게 느꼈던 두려움에 대해 생각한다. 산티아고길에서도, 그 '첫 순간'들에서도 나는 명료함을 느꼈고 거기서 해방감과 동시에 아름다움을 인식한다.
아름다움은, 이 현재의 시간에 몰두하는 과정을 통해 드러난다. 아름다움이 가능한 현장이 반드시 시각적 충족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아름다움은 감각을 넘어선 나의 주관에서, 나의 의식에서 비롯된다. 내 고민은 그런 것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 그리고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까 하는 마음들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