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생각해봤는데, 딱히 우선순위를 달아두고픈 마음이 없으나 아무래도 퀴어함보다는 사소함이 먼저였던 것 같다 우리의 퀴어함보다 서로의 사소함을 먼저 귀하게 여기는 사람이 편하며 그런 사람이길 원한다. 나는 의외로 우리라는 말을 신뢰하지 않는 것 같다. 우리의 시간은 너무 짧아서 그 누군가와 그저 잠시나마 그렇게 불릴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즐거웠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그런 방향으로 삶을 살아가야겠다.
다시 말해보면 모든 사소한 것들은 퀴어하다. 나는 단지 스스로를 유형화하여 나타내는 일을 잘 하지 않을 뿐이었다. 하지만 점차 사소함에서 멀어지는 사람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초조함과는 어쩔 수 없이 거리가 멀어졌다. 인생의 각 주기마다 찾아오는 중대한 과업들이라든가, 자의가 아닌 상황에 놓인 사람들로서는 사소함을 챙길 여력이 없다는 것도 잘 안다. 그래서 원망보다는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떠나보낸다. 오히려 이런 데서 '우리'가 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나름 오랜만이었던 그를 만나기 전 난 이미 지레짐작부터 했다. 작업이 본궤도에 올라 거기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보여 그에게는 '선택과 집중'이 긴요한 일이었을 것 같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선택하고 집중한 것을 보여줄 게 없어서 자신이 없었던 것 같아 그냥 얘기나 듣고 있어야겠다- 아니 그런 걸 의도하지 않지만 그런 만남은 꼭 그런 식으로 몇번 더 이어지다 어느 순간 뜸해지고 더는 만나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왠지 그럴 것 같았기에 어느 정도 마음을 그렇게 갖고 만났다. 그랬는데, 보통 내가 겪어 온 일들에 대해 나는 대개는 여전히 사소하다고 느끼거나 상대는 으레 그렇게 흘려 생각하겠거니 넘어가지만, 그럼에도 그날 나의 말을 듣는 그의 태도는 사소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내가 말한 나의 일들이 별로 사소하지 않았다는 것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사소하게 느끼며 말하는 걸 가장 편히 여기지만 어쩌면 그건 정말 사소한 건 아닐지도 모르겠구나. 여기서의 사소한 게 좋다 나쁘다라는 가치 판단은 아니고, 오히려 가치의 척도가 되었는데 다시 말해 그저 상대의, 나의 사소함을 귀히 여길 줄 아는 그 마음에서 가치가 나오기에 오로지 그 마음만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귀하게 여길 줄 아는 그 태도를 통해 나는 더 많은 감정을 보였고 내 스스로 그것의 귀함을 알았다. 그 생각이 나에게 미치는 순간 몹시 부끄러웠다. 요 최근 성숙함이라는 말에 회의를 갖고 있던 차였지만 내 자신이 더욱 성숙한 인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기 시작했다. 탐하는 것과 귀하게 여기는 것은 달라서 그저 무언가를 귀하게 여길 줄 아는 그 마음 자체가 성숙함의 일면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