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9일
2024.1.31
지금의 내 상태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지금 상황에 집중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요즘은 모든 게 다 힘든데, 집중해야 할 것이 뭔지 명확하니까 그래도 그걸 토대로 계속 생각을 해보려고 애쓴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잊고 싶지 않다. 그런 식으로 살고 싶지도 않고. 생계의 방법도 같이 고민해야 할 상황이지만- 생계에 절박해지는 상황까지 스스로를 몰고 싶지는 않으나, 적어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잊어버리고 살면 안 되겠다는 것, 여기에는 '절박감'이 있는 것 같다.
후회는 여러가지가 있다. 단기적인 것, 중장기적인 것, 근본적인 것 등등등. 모든 후회를 읊어보자. 다른 어떤 관계에서라도 그것들을 떠올리며 함께할 수 있게. 상대가 받아들이든 말든 할 수 있는 최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이 사진을 인스타에 아무 설명 없이 올린 적이 있다. 그런데 나중에 좀더 길게 적어봐야지 하고 짤막하게만 쓰고 말았었다.
마지막으로 생전의 엄마를 만났던 12월 9일, 늦은 점심을 하려고 뭘 시켜먹을까 중얼거리고 있을 때, 엄마는 당신이 밥을 해주겠다고 했다. 요 최근 2년은 엄마가 밥을 해준다는 걸 거의 고려하지 않았었다. 집에 오면 뭔가를 시켜 먹는 게 일상이었다. 나 막 이사가고 두번째로 집에 왔을 때였던가... 엄마가 장조림이랑 꽈리고추볶음을 반찬으로 챙겨준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나도 이거 할 줄 아니까 엄마 안 해줘도 된다고 얘기했었고 그 뒤로-설날에 아직 기력이 괜찮았던 엄마가 만든 전이랑 잡채 등등 싸갖고 간 것 빼고는- 엄마도 누구 신경 써줄 정도로 몸 상태가 괜찮은 편도 아니었기에 반찬을 싸들고 가는 일은 별로 없었다. 엄마가 밥을 한다니까 너무 오랜만에 집밥을 먹는다는 생각에 알겠다고 했다.
11월 말, 병원에서 암이 다시 전이되었다는 검사결과를 받고 치료방법을 기다리고 있었던 엄마는 내가 오기 하루 전인 12월 8일, 병원으로부터 다시 항암치료를 시작해야 한다는 말에 마음이 가라앉은 상태였고, 다음날이었던 9일에는 심란해진 마음을 다잡기 위해 다시 신약성경의 공관복음 읽기에 돌입하던 차였는데, 그렇게 내가 불쑥 엄마를 찾아왔던 거였다. 엄마는 이날 일기에 "매일이 무사하기를 기도했던지라 놀랐다."고 썼다.
이날 내가 엄마를 찾아갔던 이유는 엄마에게 줄 아이패드 때문이었다. 친구가 내가 보여준 엄마의 그림을 보고 엄마의 재능과 의지를 느꼈다고 했다. 자신의 선배로부터 선물받은 아이패드였는데, 자신에겐 요긴하지 않은 듯 하여 한참 방치하고 있던 차에 필요한 사람을 찾은 것 같다며 건네줬다. 나보다도 훨씬 나은 친구. 그렇게 아이패드를 엄마에게 전달하였다. 난 있는 그대로 친구가 엄마 주라고 했다고 알렸지만, 옛날 사람이었던 엄마는 내가 엄마에게 선물로 주는 걸 쑥스러워하여 돌려 말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엄마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했고, 축복의 말을 일기에 남겼다.
그날 오후, 나는 생애 마지막 엄마가 해준 밥이 될지도 모른 채 엄마가 차려준 점심 겸 저녁을 먹었다. 엄마는 지난 가을에 비해 기력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엄마는 한번에 건생선튀김, 달걀말이, 들기름에 재워서 프라이팬에 구운 김을 정말 빠른 속도로 만들어냈다. 달궈진 프라이팬에 기름에 재운 김을 재빨리 구워내던 엄마 뒷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밥은 담백하고 맛있었다. 원래 집에 가면 늘 먹던 그런 밥. 그런데 용인에서 살 때는 엄마 밥을 잘 먹지 않았는데 애써서 먹으면 꼭 소화불량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엄마 밥이 문제였다기보다는 뭔가 타이밍이 내가 소화가 잘 안 되는 타이밍이었었다. 난 두 그릇을 먹었는데 엄마가 이게 너무나 만족스러웠는지 일기장에도 적어놨을 정도였다.
식사를 하고 있던 내게 엄마는 "너 1월 13일에 집에 올 수 있어?"라고 물었다. 1월 13일은 친할아버지 제사인데 그동안 자기가 제사 준비를 할 수 없어서 제사도 못 지냈고, 또 앞으로 치료 다시 시작하면 언제 지낼 수 있을지 모르는데 이번에는 지내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때 이미 베를린 가는 비행기티켓을 예매했던 나는 차마 해외 간다는 얘기는 못하고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못 갈 수도 있다고 대답했다. 엄마는 "그래. 그때 가서 생각해보자." 라고 말했다. 아빠하고의 관계는 사실상 졸혼이나 다름없는 상태였는데 어떻게 시아버지 제사를 지낼 생각을 할까 엄마는... 싶었는데.
12월 말부터 엄마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음을 일기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일기 속의 어조는 점점 어두워져 갔고, 죽음과 관련된 표현들이 언급되었다. 그냥 아무것도 몰랐다, 나는. 그냥 지난 6년간 그래왔던 것처럼 치료받아 힘들었다가 암세포 증식이 멈춰 다시 휴지기를 거치며 컨디션 회복하고... 이런 사이클의 일부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이 기나긴 사이클에 언제나 함께 한다는 마음을 갖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이었을까... 엄마의 연세가 점점 늘어나고 있어 회복도 점점 늦어지고 치료의 충격도 점점 커져간다는 건 생각도 못한 채-
엄마의 일기 속 2023년 가을은 행복으로 가득했던 때였다. 항암치료를 10개월간 중단한 가운데 컨디션이 다시 회복되어가고 있었고, 그때 엄마는 자신이 먹고 싶었던 것을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먹고, 친구들과 벚꽃을 구경하고 미술관에 가고, 사진을 찍었다. 오랜만에 다시 미사에 참석하여 벅찬 기쁨을 느꼈다. 용인에도 갔다오고, 좋아하는 못골시장에도 갔으며, 생일에는 혼자 기념삼아 소래포구에도 갔다. 그 무렵 엄마의 일기장엔 온통 감사의 마음으로 가득했다.
일기 속에 쓰여진 "나는 너무 행복하다!"라는 글을 읽었을 때, 엄마의 행복과는 별개로 나는 마음이 시리다. 지난 가을 나는 일이 점점 줄어들어가는 상황에 초조함을 느꼈고, 방송대 중간과제, 바로 이어지는 기말과제 및 시험 준비를 곧바로 하고 있었으며 평생교육실습에서 약간의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지만, 가장 큰 건 내 산만함이었다. 어디에도 집중하지 못했고(방송대 과제가 그나마 나한테 집중을 하게 만드는 계기는 됐었다) 독서도 자발적인 건 한두 페이지를 넘기기 힘들었던 것 같다. 말초적인 기사와 사회비판적인 SNS에 딱히 생각이랄 건 없이 감정 소모만 내내 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달리기에 열심이었던 건 그나마 그게 나를 좀 붙잡을 수 있었기에 그랬던 것 같다.
정말 중요하고 집중해야 할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몰랐던 시간-
엄마의 소중했던 가을을 하루라도 함께 하지 못한 것이 끝내 아쉽고 후회스럽다.
11월 말 복부의 통증이 시작되기 직전 엄마의 가을이 그렇게 행복감으로 넘쳐 있는 줄은 몰랐다. 안부를 물어볼 생각도 안했지만, 요즘 어때라고 물어보고, 좋다고 하면 아 엄마 요새 좋구나 하고 말 게 아니라 나도 그 좋은 기분에 함께 할 방법을 찾아보면 어땠을까. 동네 산책이라도 제안하면 어땠을까. 엄마는 자신이 지팡이를 짚고 걸어다니니까 외출을 하면 자기때문에 내 산책에 방해가 될 거라고 생각했을 게 틀림없었다. 그럴 때는 내가 그냥 먼저 나가자고 했으면 엄마도 짧은 거리나마 함께 걸었을것이다.
일기 속 엄마는 홀로 외출하며 쓸쓸함을 계속 느꼈던 것 같다. 가다가 짚고 있던 지팡이에 걸려 고꾸라진 적도 더러 있었고, 금슬 좋아보이는 노부부의 부축과 위로를 받으며 부끄러움과 슬픔을 느낀 적도 있다. 그 뒤로도 엄마는 줄곧 혼자 산책했다.
엄마의 모든 감정에 동의하거나 공감하지는 않지만, 이 가을에 한번쯤이라도 어쩌다 한번 오는 아들과 산책을 가고 이쁜 카페라도 들렀으면 기분전환은 됐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런 기억을 떠올리며 '내게도 같이 다닐 사람이 있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게 했으면 좋았을텐데.
엄마의 모든 마음에 다 호응했으면 하는 후회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분명 엄마와 나 사이에 어긋나는 지점은 있고, 그걸 둘 중 하나가 무조건 누그러뜨리고 동일시하는 건 지금 마음으로도 여전히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때 나는 엄마가 내 방 안의 일기나 각종 책들을 읽으며 내 정체성에 대해 어느정도 추측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지만 엄마의 일기 속에서의 '아들'은 아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해 안타까운 모습 정도였다.(이게 엄마의 변화였다. 예전에는 엄마가 생각하는 어떤 정답이 있었고, 그것이 작은누나와 나에게는 거부감을 주었었다.)
엄마에게 모든 면에서 솔직해진다고 좋은 소통이 되는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난 그냥 내 어려운 상황에 대해, 나는 나 대로 살면 되고 엄마는 엄마 건강에만 집중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홀가분하게 얘기했으나, 그런 얘기를 들으며 엄마는 여전히 '엄마'로서 자식의 삶이 위태롭다고 느꼈고, '하루하루가 무사하기를 기도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 엄마에게 그보다 더 엄청난 수준의 근심거리를-아마 근심거리를 넘어서 당신 자신이 죄인이라는 생각마저 했을 것이다-안길 필요까지는 없다.
하지만 엄마에게 어떤 마음-나를 있는 그대로 지지해주기 등등-을 기대하기보다는, 이제는 내가 엄마에게 최선이 될 수 있는, 엄마 나름대로 마음먹은,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변해보려고 노력하던 엄마의 새로운 인생에 지지를 보내는 쪽이었다면 어땠을까. 난 이미 그런 마음이었지만 엄마에게 충분히 전달되지 못했던 것 같다. 엄마는 이미 당신 스스로 자존감을 어떻게 지킬 수 있는지에 대해 '알고'는 있었다. 자신보다는 나아 보인다고 느끼던 또래 친구들의 쓸쓸함과 나름의 어려움도 곁에서 지켜 보기도 했고-
하지만 늦은 생에 다가온 엄마의 새로운 깨달음은 미처 제 자리를 잡을 틈도 없이 엄마에게 자주 불안과 두려움을 안겼다. 여기에 빈번했던 육체의 통증은, 엄마가 마음을 다잡기에는 너무나 큰 어려움이었던 것 같다. 이제와 나는 후회한다. 엄마가 노부부와 당신을 비교하며 부끄러워하고 슬퍼하기보다, 비록 사실상 혼자가 되었다고 느끼지만 그래도 때때로 당신의 곁에 산책해 줄 누군가-아들이나 또래 친구 등등-가 있으며, 언제든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안정감을 갖게 하는데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텐데. 그렇게 새로운 자리에 선 엄마를 바라보고, 이야기하고, 엄마 마음이 너무 감상적으로 흘러가지 않게 하여 자신의 시간을 차분히 지켜보며 지낼 수 있는 데에 미미하게나마 도움이 될 수 있었다면. 엄마는 나보다 훨씬 성숙한 사람이라 그런 말을 할 필요도 없다는 내 확신보다는, 어설퍼도 조력이 되겠다는 나의 어떤 말이나 시도가 엄마 당신에게는 훨씬 큰 위안이 되었을지도 모를텐데.
내가 엄마의 이야기에 마음을 열기 시작한 순간의 애틋함을 좀더 성실히 풀어보았더라면. 엄마가 느낄 애틋함(아들의 살가움)과 나의 애틋함(고독의 연대 같은)은 결이 좀 달랐겠지만- 그런 건 어차피 어떠한 관계에서든 당연한 일이니까.
엄마가 이제는 평온한 안식 속에 머무르기를 바라는 마음과 동시에 나는 후회를 그대로 안고 살아갈 필요를 느낀다. 자신의 익숙했던 자리에서 벗어나, '개인의 삶'을 성취하고자 했던-비록 그 출발은 본의가 아니었지만- 엄마의 시도와 고통과 결실들을 기억하며- 그렇게 새로운 자리에 머무르게 될 누군가를, 그리고 나를 위하여, 할 수 있는 최선의 역할과 몫에 대해 기억하고 실행한다. 언제나 기억한다. 상기한다.
2024 연말에.
2024년 다시 돌아온 겨울, 1년 전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라는 주제로 나에게 말을 걸어본다. 친구도 나에게 한 적이 있던 말이었다. 스스로의 질문에 문득 떠오른 답은,
"엄마랑 성복천에 같이 가자고 해.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얘기해."
하지만 아직은 과거의 나를 이해한다. 사랑한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가까웠다'고 느꼈던 것 같다.
서울로 나와서야, 엄마의 도움 없이 온전하게 내 모든 일상을 영위하고 나서야 엄마에게 그런 말을 건네야 하는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을 비로소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선뜻 하지 못했다.
'나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라고 엄마가 얘기했던 순간, 난 그것도 엄마가 꽤 용기를 내어 한 말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거기에 발맞춰 사랑하는 엄마도 행복했으면 좋겠어, 라고 말할 수 있었다면 참 좋았겠지. 하지만 그러지는 못했다. 내가 불행해보인다고 느껴서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아 "엄마 나 충분히 행복해."라고만 대답했을 뿐이다.
엄마의 일기에는 혼자 산책했다는 얘기가 많이 나온다. 묵묵하게 일상적으로 걷던 순간도 있지만 혼자 걷다 넘어져 노부부의 도움을 받고 서러움을 느끼는 순간도 있었다. 엄마와 산책 타이밍을 잡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무언가를 만들어 먹어도 엄마의 입맛이 돌아올 때가 맞아떨어지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2023년 12월 9일은 이 모자에게 뭔가 마법같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한창 아들에 대한 기도를 할 즈음, 홀연히 아들이 나타나 태블릿을 선물하고 갔고, 엄마가 한동안 긴 대화를 하지 못할 거라 느껴서 엄마와 두 시간이 넘도록 계속 대화를 나눴으며(그날 나는 엄마가 한 말들을 일기에 중점적으로 남겼다), 엄마가 모처럼 직접 밥을 짓고 반찬을 차려줄 수 있었던 날, (그 전에는 속도 안 좋은데 집밥을 억지로 먹느라 소화불량에 자주 시달렸었다) 모자가 함께 할 수 있었던 최후의 날, 어긋난 타이밍과 마음은 이 관계에 한도 없이 상처를 주고받게 했지만 이 마법같은 희귀한 시간이, 모처럼 맞아떨어진 타이밍이, 영속적인, 그리고 아득하고도 아늑한 기억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