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량의 지난 겨울

by 흘흘

2월 말 즈음 약 닷새 내지 일주일간 지속되는 쾌적한 서늘함이 있다. 따뜻하다고는 절대 할 수 없지만, 추위가 희석되어 느껴지는 아늑한 기운. 3월 초에 시작되는 꽃샘추위 전에 맛보는 봄의 조짐같은 거라고 해야하나. 입춘도 이십 일 쯤 지나니 햇볕에도 조금씩 윤기가 돌기 시작하고- 산책을 나온 노인들의 얼굴에도 보름 전보다 다소 여유와 안도감이 느껴지는 것 같다.

나는 방안에서 약 1시간 가량 나타나는 이 햇볕을 누리려고 커튼을 걷었다. 실내온도가 14도까지 떨어지더라도 창문을 열어놓고 최대한 버티려고 한다. 겨울철에 이 방에서 햇볕은 앞에 세워진 재개발 아파트로 남향이 남향 같지 않은 이 집에서 드물고 귀하기 때문이다.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데, 한량이란 어깨가 뭉친 적이 없는 사람이라더라. 그 기준이라면 나는 한량인 거 같다. 수년 전에 회사 사람들이 어깨 근육 푸는 데 탁월한 침을 놓는 한의원에 단체로 간 적이 있는데 나는 어깨 근육이 뭉친다는 게 뭔지 잘 알 수 없었다. 어떤 느낌인지 모르겠다. 종아리나 허벅지가 결린 적은 꽤 많았으나- 어깨가 결리고 뭉치는 건 아주 보편적인 몸의 문제였던 건지 나의 이 말에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놀랄 줄은 몰랐다.

2월이 끝났다. 겨울이 어떻게 갔는지. 자기 할 일을 야무지게 한 사람들이 부럽다. 이렇게 허랑방탕하게 시간이 가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아니 알았다. 그렇게 또 가지 않기를 바랐을 뿐. 역시나였다. 겨울이었지만 겨울이 삭제된 것 같다. 절기도 전혀 맞지 않았고(대한/소한은 거의 들어맞지도 않았거니와 입춘이 2월 들어 제일 추웠다. 우수도 우수의 느낌이 아니었다)

아니 사실은 연말연시를 비롯하여 올겨울 자체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시간들이었다. 12월의 시작부터 계엄령선포와 탄핵소추시도, 탄핵가결, 탄핵심판, 그 사이에 계속해서 이어진 여의도와 남태령, 광화문 일대에서의 집회. 뉴스와 시사프로를 보느라 유튜브를 이렇게 오래 본 적도 전에는 없었으리라. 연말의 느낌은 가질 수도 없었는데 그런 사건의 사슬에서 시간감각은 느낄 수가 없어서 12월에 뭐 했지? 라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자꾸 하는데 12월에 하는 게 따로 있다고 느껴서 그런 모양이다. 그래 집회는 추웠지... 이 덕분에 겨울이었음을 기억할 순 있겠네. 이렇게 날이 풀려가는데도 여전히 겨울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음이 답답할 뿐.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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