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은 정말 우스꽝스러우나 '때깔 좋은 남자'들은 주류에, 그것도 중심부에 몰려 있구나라는 걸 느끼며 어쩌면 남자의 때깔좋음에 대한 기준은 그 어떤 것보다도 수직위계적이고 중앙집중적인 것이 아닐까, 그래서 그들이 주로 강남에 있고 여의도에 있고 그러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했다. 가끔 그곳을 갈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들은 유난히 패션 감각이 좋고 말끔하고 헬스와 러닝 등 각종 운동으로 잘 단련되어 있다. 인상은 매우 정돈되었고 불안이나 근심이 별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은 더할 나위 없는 헤테로로서 결혼도 30대 초반쯤에는 거의 다 했으며 직장은 대기업과 공무직에 집중되어 있었다. 난 때때로 주류에의 욕망이 유달리 강한 게이들을 보면서 이들도 저런 남자들과 엮이기 좋은 곳은 그곳뿐이라는 걸 알아서 그런 거 아닌가라고 억지스러운 추측을 하기도 했다. 사실 이런 회사남관 달리, '전문직'은 의외로 그런 때깔좋음이 별로 없다. 그들은 고도의 전문기술에 스스로가 마모되어버린 느낌을 주고, 인간성도 비례하여 갈린 느낌을 주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예전에도 그런 걸 느꼈다. 의대생이나 법대생이 때깔좋은 경우는 별로 없었다. 대체로 그런 남자는 경영대학이나 공대에 모여 있었다. 사실 공대는 너무 다양한 남성의 스펙트럼이 분포된 곳이라 오히려 그런 일관된 때깔좋음의 느낌이라기보다는 '남자판'이 주는 그냥 그런 므흣함과 헤테로남자들끼리 외모에 구애받지 않고 엮이고 보여주는 특유의 유대감이 인상적인 곳이었다면, 경영대는 그야말로 스스로를 자기계발의 대상이자 실험수단으로 삼은 듯한 그야말로 갈고 닦은 남자들이 경쟁적으로 모여있는 것 같았다.
때깔좋은 남자들은 옷매무새, 능수능란한 왁스의 사용(2000년대에는 거의 대부분의 남자들이 머리에 왁스를 발랐다) 여러 단과대학 사람들이 모여서 듣는 교양수업때 그들이-경영대생들이 발표 때 꽤 적극적인 건 일관된 특징이기도 했다-발표하는 걸 들어보면 아직까지 과제 발표 때 OHP가 어색하지 않던 그 시절 그들은 파워포인트로 모두 갈아탄지 오래였는데 파워포인트로 발표하던 초창기, 프리젠테이션에서 온갖 효과음과 애니메이션 효과를 남발하고 여전히 끝 부분에 '감사합니다'같은 걸 즐겨 쓰던 시절에도 그들은 이미 그런 촌스러운 효과 같은 건 사용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발성법부터 따로 배운 건지 발표할 때 목소리 쓰는 거도 다른 등, 아무튼 자신을 말끔하게 드러내는 데에는 연기를 전공하는 남자들과는 다른 결에서 이골이 났다. (어쩌면 그런 애들만 내가 기억하는 건지도?) 어떻게 같은 나이를 먹고 이런 차이를 보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물론 만사에 동기를 신속하게 부여하는 습관이라든가 일에 대한 감각, 투지, 집중력 등등도 매력적인 요소였다. 정말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인간들이 이들일까 싶게. 그들은 오만것들에 동기부여를 가질 만반의 준비를 한 거 같다. 물론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하고 빠질 수 있는 걸 찾고 싶어할 거 같긴 한데- 많은 상황과 처지들이 좋아하고 빠질 만한 것만 머금고 살 수 없음을 깨닫게 만드는 경우가 많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다른 건 다 제쳐두고 한 가지에만 집중하고 몰두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는 사실은 스스로 모른 채(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야할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 조건 위에서 상당히 쉽게 동기를 부여하고, 또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처럼 보였다.
뭐가 어떻게 됐건 그들이 좋아하고 빠지는 모습은 어떤 점에서든 인상적이고 매력적이다. 그렇게 빠진 자들끼리 형님동생하면서 땀을 흘리는 모습은 (외모를 제외하고) 헤테로남자들에게서 느껴지는 희귀한 매력포인트 중 하나기도 하다. 어떤 존재이든간에 그들의 이런 모습은 인생에서 한번쯤은 꼭 겪고 싶은 장면이기도 하다. 눈가리개를 한 경주용 말이 아무 근심도 잡념도 없이 거침없이 질주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박력있으니까... 근데 무엇보다도 대기업에서 그런 일을 찾을 수 있다는 것부터가 나와는 큰 차이점이 있었다. 나는 일보다 나를 먼저라고 생각해서 이토록 게을렀건만 세상에는 정말 일이 먼저인 것처럼 태어난 인간들도 있었다. 뭐 저렇게까지 할 일인가? 싶은데 내가 생각하는 무상함과는 다른 종류의 무상한 집중을 그들은 일에 한다. 인생이 일을 잘 하기 위해 주어진 것처럼, 혹은 사람의 존재감이 일을 잘하는 데에 절대적으로 부여되는 것처럼 생긴 이 시대에 일에 대한 집중을 무상하다고 생각할 리가 절대로 없는 이들이고, 일을 좀더 잘 하기 위한 온갖 시도와 내가 보기엔 이상한 종류의 실험에 자신의 막대한 시간을 투자하면서 좋은 결과를 보는 건 사실이었으며, 아무튼 그럼으로써 이들이 그렇게 강남에 가고 여의도에 가고 세종에 가는 모양이다.
다만 대화 몇번만 하면 드러나는 건 있다. 이들과 대화하면 뭐랄까, 거부감이나 뜨악함이 아닌-그래도 잘생긴 남자애들이랑 대화는 좀 이어보고 싶어서 그랬는지 애는 썼지만, 그냥 대화 자체가 진행이 되지 않았다. 뭐랄까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판단조차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군 시절에도 이런 류의 애들과 대화를 몇번 했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첫 마디에서부터 "뭐라고?"를 서로간에 이어가다가 끝나는 수준이라고 해야 하나. 그애들 중 하나는 "도대체 네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를 못하겠다." 라고 하기도 했는데, 그때 당시에는 내가 나름 신경써서 거를 건 거르고 대화한다고 했던 건데 저런 수준이었다. 일과 무관한, 오히려 삶을 좀먹는 듯한 무익하고 무상한 것들의 존재 자체를 의아하게 생각하는 수준이라 이런 것과 관련된 말은 농담으로라도 안 하는 게 좋았다. 그런 것들에 대해 거부감을 표시한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뭔가 보고듣거나 배운 게 있으면 이 정도 수준에 이르기는 한다- 그냥 그런 거에 대한 감각 자체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마치 외국어로 대화하는 거나 다름이 없는 상황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과는 일에 관련된 대화를 하는 게 가장 탁월하다. 정말 시작부터 끝까지, 일과 관련된 얘기만 하는 게 좋을 때도 있다. 그래서 그럴까 나는 그들과 대화를 이벤트 성격 이상으로는 안 하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러다 군생활을 거치고 그들과 좋든싫든 엮이면서 보인 것이 있기는 했는데- 내 눈엔 보이는데 걔들 눈엔 안보이고, 걔들 눈에 보인 건 있겠지만 그것들 중에 흥미로운 게 몇개 있다 한들 그들이 본 게 나에게는 대수롭지 않았으니, 어쩌면 우리는 그냥 어차피 살 세상이 달라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사실 나는 걔들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닌데 저것만 가지고 삶이 이어진다는 게 신기하긴 했다. 저게 가능하구나. 저들은 자아의 많은 부분을 그냥 이 제도와 사회에 의탁하는 게 가능하구나.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나마 이들 중 좀더 풍부해보이는 삶을 사는 이들이 개신교를 믿는 이들이기는 했다. 해석되지 않는 '나머지 전부'는 그냥 종교의 영역에 퉁침으로써 좀더 정신적으로 안정감을 찾은 느낌이 있었다. 한국 주류 개신교가 갖고 있는 독보적인 네트워크 효과도 무시할 수 없으리라. 그래서 내가 이제껏 본 남자들의 때깔좋음의 완성은 종교에 있겠거니 하는 생각을 늘 한다.
또 이 과정에서 내 자신이 누군가와 대화를 하면서 상당수준의 맥락을 생략해가며 한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는데 그 맥락들 하나하나를 다 갖고 가서 대화하려니 너무 지루하고 그렇다고 내가 파이터 기질이 있거나 엄청난 재담꾼도 아니거니와 그걸 일일이 설명하거나 납득시킬 재간이 있는 건 또 아닌데, 뭣보다도 이 성실한 맥락들의 상당부분이 지금 기준으로 말하면 '빻은 것'들이다. 성의 맥락뿐 아니라 개인의 영달 및 성공과 자기계발로 점철된 삶의 가치관에 대한 과도한 확신, 걸핏하면 튀어나오는 무한경쟁과 약육강식, 그런 기반 위에서 존재하는 이상적인 정상가족중심주의와 서울중심주의, 미국 중심주의, 그리고 그것들을 지향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따스함과 인간미, 뜬금없이 고전적인 권선징악(여기서의 선악도 잘 뜯어봐야 한다 최근의 경우를 들자면 '페미'가 악이 된 거 같은 식이다), 성실, 성의, 우정, 신실함....등등등. 때문에 아무리 저 남자애가 멋있게 보이더라도 더는 대화를 하고픈 의욕조차 생기지 않는 것이었다. 좋은 미덕들이 드러난다 한들 그 미덕은 매우 반동적인 가치관과 견고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도무지 그것만 쏙 빼서 좋게 '소통'할 수는 없었다. 여기서 맥락 하나만 생략되어도 나는 악마가 되고 게으름뱅이가 될 수 있고, 패배근성에 찌든 인간이 된다든가 인간미 없이 시니컬한 불신자가 되기도, 또는 대책없는 몽상적 반제국주의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대개의 '중심'의 헤테로들은 이 맥락을 토씨 하나 빼먹지 않고 엄수하는 건 있는 듯 하고 그럼으로써 여기에 하나라도 제대로 부합하지 않는 이들에게 자신있게 낙인을 찍을 수 있는 것 같았다. 다만 지들끼리도 이 맥락 하나하나 다 놓치지 않고 얘기하려면 지루하지 않을까. 이래서 남자들이 맨날 여자, 섹스 얘기를 윤활유마냥 포기하지 못하는 걸까. 그래서 이런 멋진 남자들을 볼 때마다 꼭 말을 걸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뭐 잘 되길 바라면서 그러는 게 아니고 결국 내가 알게 되는 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랄까.
좋아한다면 그 남자와 일 얘기를 하자. 중년 이후에는 이제껏 매달리던 제 일에 동기도 시들면서 나르시시즘에 빠질 상황이라 곤란하겠지만 여전히 동기부여에 혼신의 힘을 쏟는 사람의 모습은 그냥 옆에서 지켜보면 또 흥미롭고 재미있으며 정말로 인간은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났고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인간에게 주어진 숙명인가보다라고 믿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