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5 나는 어떤 사람일까

by 여름

나는 어떤 사람일까

오늘 상담을 다녀오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상담 선생님이 나를 오롯이 다 간파한 것 같다는 생각.

남자친구 이야기를 꺼냈는데,

그게 엄마 이야기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아, 나는 결국 이렇게 연결되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나는 이미 충분히 노력한 사람이었다.

회피형인 그는 처음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잘해주다가

관계가 깊어질수록 오히려 더 말을 아꼈다.

나는 더 이야기하고 싶었고,

그냥 끝났다고 정리해버리기보다는

왜 그런지, 무엇이었는지 알고 싶었다.

그런데 그는 “이미 끝난 일이다.”

“다 잊었다.”

“더는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말했다.

고마운 말이었다.

나를 배려하는 말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방식은 나와 맞지 않았다.

나는 잊는 말보다 이야기하는 시간이 필요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2주 뒤에 오는 답장.

그는 신중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나는 그 시간 동안 내가 많이 미운 사람인가 싶어

걱정하고, 자책하고, 기다리느라 힘들었다.

결국 그는 잘 마무리하자고 말했다.

그 말이 고맙지 않은 건 아니다.

하지만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은

나에게는 답답함으로 남았다.

나는 시간을 갖는 것보다

지금의 감정을 함께 마주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일을 겪으며 처음으로 분명해진 것이 있다.

다음에는 감정 표현을 잘하고

회피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것.

그리고 나도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지금 내가 왜 서운한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서운해.”

“우리 더 깊어지려면 조금 더 이야기해보자. 그냥 넘기지 말자.”

나는 감정을 참고 넘기는 사람이 아니라

말하고 연결되고 싶은 사람이었다.

자꾸 나를 서운하게 만들고

내가 과한 건 아닌지 스스로 검열하게 만드는 사람은

결코 나에게 맞는 사람이 아니다.

그게 반복된다면

관계를 다시 돌아보는 것도 필요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설날, 엄마를 떠올리며 느꼈던 죄책감.

엄마 기일을 기억해내지 못한 것도,

엄마가 느꼈을 외로움과 슬픔을

내가 다 마주하지 못한 것도

나는 모두 죄처럼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상담을 하며 알게 되었다.

그건 죄가 아니라 슬픔이었다는 것을.

엄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떠올랐다.

엄마는 충분히 사랑받을 가치가 있고,

아빠는 엄마를 사랑했어.

엄마가 고민을 조금 더 털어놓을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말을 하며 깨달았다.

나 역시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내 가정사를 나누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다음 주면 상담이 마무리된다.

인턴을 시작하면 더는 이어갈 수 없다.

생각보다 많이 슬프다.

하지만 지난 4개월은

나에게 죄책감을 덜어주고

나를 조금 더 사랑할 수 있게 해준 시간이었다.

상담사는 누군가를 숨 쉬게 해주는 직업이라는 걸

몸으로 느꼈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어떤 외로움도, 어떤 슬픔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가끔은 힘들어도

내가 나를 달래가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깊게 사랑하고,

깊게 고민하고,

조금은 죄책감이 많지만

결국 더 단단해지려는 사람이다.

이제는 나를 덜 의심하고

조금 더 믿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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