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를 읽고
이미 유효기간이 지난 관계라는 걸 안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그 자리에 남아 있을까.
왜 연인이 없으면 내 삶이 버티지 못할 것처럼
막연한 두려움을 느끼는 걸까.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속 폴은
그 질문을 조용히 보여준다.
폴은 6년간 로제와 사랑을 이어왔다.
그러나 그들의 관계는 더 이상 뜨겁지 않다.
권태와 외로움이 서서히 스며든다.
로제가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에도
폴은 쉽게 그를 떠나지 못한다.
대신 자신을 사랑해주는 시몽에게로 향하지만
결국 다시 로제에게 돌아간다.
많은 독자들은 이 선택을 이해하지 못한다.
왜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을 두고
식어버린 사랑으로 돌아가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나는 폴의 선택이 낯설지 않았다.
오랜 시간 한 사람에게 맞추어 살아가다 보면
그의 취향이 곧 나의 취향이 되고,
그의 세계가 곧 나의 세계가 된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 사람 없이 나를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이별은 단순히 사람을 잃는 일이 아니다.
그 사람에 맞춰 살아온 시간과
그 안에서 형성된 나의 모습을 함께 놓아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떠나지 못한다.
사랑해서라기보다
무너질 자신을 마주할 용기가 없어서.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시몽의 이 질문은 단순한 호감의 표현이 아니다.
오히려 이렇게 들린다.
당신은 무엇을 좋아하나요.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그 질문 앞에서 폴은 잠시 멈춘다.
오랫동안 타인의 취향에 기대어 살아온 사람에게
‘나’를 묻는 질문은 설렘보다 낯설음에 가깝다.
어쩌면 그녀는
새로운 사랑이 두려웠던 것이 아니라
다시 ‘나’를 세워야 하는 과정이 두려웠던 건 아닐까.
연애는 두 사람이 만나 하나가 되는 일이 아니라
각자의 세계를 지닌 채 나란히 서는 일이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종종
사랑받기 위해 나를 줄이고,
떠나지 않기 위해 나를 바꾼다.
그리고 어느 날 깨닫는다.
나는 이 관계에서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는 것을.
본인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춘 사람은
결국 자신을 사랑할 수 없다.
연인과의 관계에서도
가장 먼저 지켜야 할 존재는
상대가 아니라 나 자신이어야 한다.
어쩌면 이 소설이 묻고 있는 질문도
그것일지 모른다.
당신은,
지금도 스스로를 사랑하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