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나에게는 도파민이 필요했다

by 여름

오늘은 TCI 상담을 받았다.
검사 결과를 한참 들여다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내가 조금 변했구나.

예전보다 자극을 덜 찾게 되었고,
위험을 피하려는 성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며,
사람들의 반응에 예민하게 반응하던 사회적 민감성은 눈에 띄게 낮아져 있었다.
대신 관계 안에서의 연대감은 여전히 높은 편이었다.

결과지를 덮고 나서 가장 먼저 든 감정은
안도도, 불안도 아닌 약간의 허탈감이었다.
요즘의 나는 확실히 재미가 없다.
스스로를 그렇게 정의하게 된 순간이었다.

나는 원래 어느 정도의 자극이 있어야 잘 살아지는 사람이다.
쇼핑을 하며 느끼는 짧은 설렘,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고르는 과정에서 생기는 작은 도파민.
그 모든 게 사치가 아니라,
나를 움직이게 하는 연료였다는 걸 뒤늦게 인정하게 됐다.

그래서 요즘은 생각을 조금 바꾸기로 했다.
무작정 참고 버티는 방식 말고,
내가 해야 할 일을 해냈을 때
나에게 납득 가능한 보상을 주는 방식으로.

그 보상은 결코 거창할 필요가 없다.
사고 싶었던 블러셔 하나,
계속 눈여겨보던 옷 한 벌이면 충분하다.
그런 작은 약속이 있다면
하기 싫은 일을 할 때도
‘이걸 왜 하고 있는지’를 조금은 덜 괴로운 마음으로 떠올릴 수 있다.

그래서 나만의 기준을 몇 가지 세워보았다.
하기 싫은 일 앞에서 무작정 감정을 억누르기보다,
그 안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무언가를 하나쯤 찾아보는 것.
에너지를 과하게 쓰지 않아도 되는 취미를 일상에 남겨두는 것.
사고 싶은 것들은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기념이 되는 날에 하나씩 꺼내 나에게 선물하는 것.
그리고 쇼핑을 무조건 참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
관리하며 즐길 수 있는 선택지로 두는 것.

물론 지금의 이 차분한 상태 역시 나에게는 필요하다.
항상 들떠 있을 필요도,
늘 자극적일 필요도 없다.
다만 내 기질을 외면한 채
‘이게 더 어른스러운 선택이야’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사는 건
결국 나를 더 지치게 만든다는 걸 알게 되었을 뿐이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려 하기보다,
현재의 안정과 나다운 자극을
조금씩 공존시키는 연습을 하고 있다.

다음 달 알바비가 들어오면,
링크 인턴 결과가 나오면,
혹은 단기 알바를 무사히 마치게 된다면.
그때마다 나는
잘 버텨낸 나에게
작은 선물 하나를 남기려고 한다.

이 노잼 시기도,
언젠가는 다시 나답게 살아가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르는 구간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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