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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정연 Jun 25. 2022

인용문 단장 (2)

같은 학교 동료로 지난해 고희를 맞은 이가 한 분 있는데 이 양반이 술을 좋아한다. 그리고 술이 흥감해지면 집으로 가는 버스 같은 걸 탔다가도 곧잘 도중에 내려 걷기를 잘한다. 그날밤도 걷기 시작해 통금(아직 통금이 있을 때다)이 가까워서야 포장마차를 끌고 돌아오는 사람에게 여기가 어디냐고 물었더니 노고산 밑이라는 것이었다. 실은 서대문 인왕산 방면으로 가야 하는 건데 신촌 노고산 밑까지 왔던 것이다. 그러나 조금도 당황한 빛 없이, 인왕산이면 어떻고 노고산이면 어떻냐 인간도처유청산이니라. 그리고는 노고산 밑 한 곳에서 별하늘을 이불삼아 하룻밤을 지냈다. 이 얘기를 듣고 학생들은 아주 낭만적이라고 크게 손뼉을 치며 웃었다. 이 양반의 속깊은 쓸쓸함일랑 아랑곳도 없는 듯이.


이 양반이 한번은 또 엔간히 흥감스런 기분에 젖어 교외 들길을 걸었다. 휘영청 달밝은 밤이었다. 입에서 절로 흥얼거림이 새어나왔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소치는 아이는 상기 아니 일었느냐…… 그러다가 걸음을 멈췄다. 길 아래에 희한한 일이 벌어져 있었던 것이다. 웬 암록색의 우단이 깔려 있는 게 아닌가. 그게 달빛과 어울려 한없이 부드러웠다. 아, 누가 날 위해 이런 걸 베풀었누, 사양 말고 받아들여야지. 지체없이 길 아래 우단으로 내려가 네 활개를 뻗고 편히 드러누웠다. 실은 그곳은 모를 내기 전의 모판이었다. 이 얘기를 듣고 학생들은 역시 낭만적이라고 박장대소를 했다. 이 양반의 행위 속에 담겨진 쓸쓸함일랑 또한 눈치채지 못하고.


- 황순원, 「낭만적」, 『시선집』(문학과지성사, 1985)




김남조는 과거에 자신이 여러 권의 수필집을 잇따라 출간했던 것을 두고 '매문에의 유혹'을 느끼던 시절이라고 적은 적이 있다. 작가이건 작가 지망생이건 정말이지 공감할 만한 표현이 아닌가 싶다. 나 또한 (아직 작가는 아니지만) 쓸데없는 여담 같은 잡문은 어떻게든 남기지 않겠다는 다짐을 그때그때마다 품었다가 버렸다가 하곤 한다.


작가로부터 매문을 싫어도 하도록 만드는 첫째 요인은 생계요 둘째 요인은 자질 부족이다. 별 근거는 없지만 대체로 첫째 요인으로 시작해서 둘째 요인으로 이어지기가 대다수인 것처럼 느껴진다. 추리고 고치는 일이야 뒷날에 할 수 있으니 일단은 생산에 중점을 두자는 식의 태도는 처음에는 언제나 합리적인 타산으로 여겨진다. 기실 너무 재는 것보다야 그게 차라리 나을 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점차 발표 수준에 대한 내적 기준의 하향 조정으로 이어지기도 십상이다. 김남조는 1970년대 이후 시에서나 산문에서나 매문에의 유혹을 점차 지양하는 방향으로 전환해 갔으며 그 문턱에 가령 『사랑초서』 같은 시집이 놓여 있다.


결벽에 가까울 정도로 잡문을 쓰지 않았다는 황순원의 미담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으며 강단이 있는 그의 성품을 칭송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특히 회자되곤 한다. 작정하고 정리한 기색이 역력한 산문 모음인 「말과 삶과 자유」를 칠십 살이 되던 1985년에 발표한 것 외에는 문학상 심사평 정도로밖에 그의 산문을 접할 길이 없다. 그의 결벽은 우리 쪽 작가 지망생에게는 일종의 롤 모델 비슷한 것이 되어 있다.


그의 평소 생각이 날것에 가깝게 담겨 있는 말년의 산문 모음에서도 강단 있는 성격은 여지없이 드러난다. 가령 해방 이전에 발표한 시편들을 절반 이상 도려냈다는 대목에서 적고 있는, '내가 버린 작품들을 이후에 어느 호사가가 있어 발굴이라는 명목으로든 뭐로든 끄집어내지 말기를 바란다.' 같은 문장에서는 숨이 턱 막히기까지 한다. 군더더기를 싫어했던 그의 삶은 '매문에의 유혹'이 시대정신이 되어 있는 요즘 같은 풍조에서 귀감이 되고도 남음이 있지만, 때로는 우스운 것도 더러 끼어 있는 것이 삶의 진상이며 또 거기서 비롯된 모순에서야말로 삶을 들여다보는 묘미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반동적인 태도도 생겨나곤 한다.


황순원 전집 끝 권인 『시선집』의 끝에서 두 번째 단락은 '세월'이고 1974년에서 1984년 사이에 씌어진 것들로 되어 있다. 거기에는 많지는 않지만 위의 시를 비롯해 「늙는다는 것」, 「메모」 등 서슴없는 산문체의 서너 편이 실려 있다. 「말과 삶과 자유」 쪽으로 들어가도 무리가 없을 정도다. 1984년 이후의 시들을 모은 단락인 '세월 이후'에는 그런 투의 시가 없다. 공교롭게도 두 단락의 거의 사이에 「말과 삶과 자유」의 발표가 놓여 있다. 전연 억측이지만 어쩌면 그는 스스로 단행한 잡문 발표의 원천 차단을 내심 좀 답답해했던 게 아닐까. 그래서 그 우회 방안으로 산문시의 형식을 더러 빌렸던 것은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자꾸만 속으로 미소가 지어진다. 이 양반의 속 깊은 쓸쓸함일랑 아랑곳도 없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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