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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정연 Jun 23. 2022

인용문 단장 (1)

학문은 산보다 강에 비유하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올라야 할 정상이 있는 것이라기보다, 골짜기 물이 모여 내를 이루고 그것이 다시 강을 이루는 것과 같은 것이 학문의 속성이지 않을까 싶다.


책의 머리에 이런 비유를 드는 것은 이 책을 강하(江河)에 견주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지금까지 학문이란 것을 시늉하면서 이 비유로써 조금이나마 자신의 서두름을 억제할 수 있었기 때문일 따름이다. 학문의 길에 선 사람이면 누구나 머릿속에 그려지는 구상을 한 글에 나타내고 싶은 충동을 자주 겪는다. 그러나 학문은 오히려 그러한 충동이나 욕망을 억제하는 데 묘미와 생명이 있는 것이라고 한다. 이 책에 모은 글들은 그때그때 부족함을 많이 느끼면서도, 이를테면 골짜기의 가닥 물로 여기면서 쓴 것들이다.


- 이태진, 「머리말」, 『한국사회사연구』(지식산업사, 1986)




가끔씩 '첫 문장이 뛰어난 작품'의 순위를 매기거나 '가장 좋아하는 첫 문장'의 앙케이트를 하는 것을 보곤 한다. 그걸 보면 나도 내가 마치 거기 낄 만한 '끕'이라도 된 것마냥 혼잣속으로 그 조사에 참여하게 된다. 또 그럴 때마다 필연적으로 쓸어 보게 되는 내 독서의 밑천을 새삼스레 깨닫고 절망하기도 한다.


쓰고 보니 절망이란 말은 좀 과한 면이 있다는 게 떠오른다. 백석의 「절망」을 두고 유종호는 '다소 거창한 표제를 가진' 시라는 말을 쓴 적이 있다. 쉬이 지나가듯이 쓴 표현이었는데도 냉철하면서 동시에 해학적인 맛이 있어 기억에 자연스레 박힌 말이다. 그 뒤로 조금 규모가 큰 낭패 정도의 일을 두고 굳이 절망이라고 여길 필요는 없으리라는 인식을 갖게도 됐다. 아닌 게 아니라 위의 글의 말뜻도 실은 거기에 있는 것이다.


공부를 깊이 하려는 사람에게 절망하지 말라는 것이 위의 글의 주요한 요지다. 나는 저 글을 보고, 학문이, 등정해야 될 산이기보다 곧장 만날 수 있는 강으로 볼 수 있음을 알았다. 학문을 높고 험준하기 짝이 없는 산으로 느끼게 되면 가슴은 무거워지기 쉽고 마음은 조급해지기 쉽다. 그러나 산도 그렇겠지만 학문은 애초에 나를 겁주려고 있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그것을 골짜기에서부터 흐르는 강으로 본다면 그를 굳이 무서워할 필요도, 올라서지 못해 조바심이 들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걸 안다면 정진도 괴롭기보다 즐거운 것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모든 학도가 그럴 테지만 나 역시 그때껏 공부를 하면 할수록 느끼고 있었던 조급함과 절망감을, 이 구절은 일거에 씻어주지는 않더래도, 최소한 씻을 수는 있겠다는 자신감을 선물해 주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학술서의 서문을 읽고 받았던 감동 중에서 가장 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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