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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정연 Mar 10. 2022

이러면 안 되지만, 솔직히 너무 고소하다

개표가 95%를 향해 가고 있다. 윤석열 후보의 당선이 유력시되는 것 같아 일단은 안도하고 있다. 기가 막힌 차악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산적한 사회 문제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일단은 그런대로 개운한 기분이 든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상대 후보 및 상대 진영의 극단주의자들에 대한 고소한 기분을 금할 길이 없다. 2010년대 이래 우리 사회에서 일관되게 혐오의 정치를 추구해 왔다고 생각되는 이재명 후보의 실패도 기쁘게 다가오지만, 그 혐오의 정치에 지금껏 동조해 온 적지 않은 사람들의 낭패를 보는 것 또한 행복한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대 진영의 극단주의자들'이란 이재명 후보나 문재인 대통령 등에 대한 극렬 지지자들을 일컫는 것은 아니다. 보수 진영을 무슨 상종도 못할 세력인 것처럼 억지로 악마화하는 것을 좋아하는 이들, 또는 정치 언어를 혁명적이고 폭력적인 것이어야 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이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선거가 끝나면 많은 이들은 정부 여당의 몇몇 정책적인 실책을 패배의 원인으로 들겠지만, 그보다도 나는 그것을 표현하는 이들의 말이 너무나 배타성과 폭력성을 띠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고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그것은 지난 오랜 기간 동안 우리 사회의 정치를 곪게 하고 오로 물들게 했다.(이를 보여주는 사례로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겠으나, 가령 민주화 이후의 보수 진영의 지도자들에 대한 과도하고 분별 없는 비난은 성숙한 사회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는 당치 않은 것이었다는 점을 언급해 두고 싶다.)


이번 여당의 선거 패배는 그러한 오 언어에 대한 일종의 경종이 되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자들이 저쪽 진영에도 많지 않느냐는 반론이 제기될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어쨌든 지난 5년 동안 야당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나마, 또 매우 더디게나마 자기 세력 내의 저질 문화를 떨쳐내고자 조금은 노력했다고 생각하며, 그것이 결국 그들의 성공 요인이 되었다고 생각한다.(아직도 극우 포퓰리즘을 조장하는 작자들이 설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들이 대체로 야당 바깥에서 비웃음 받는 떨거지들로 전락한 것 또한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의 완전한 정리는 오늘의 과제로 남아 있다.) 그간 여당은 이와 같은 쇄신 행보를 이상하게도 잘 보여주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고, 그것은 아쉽게도 여러 어설프고 모순적인 현상으로 이어졌다.(이재명 후보 같은 사람이 가령 '통합정부'를 운운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코믹하게 들렸는지를 여당 지지자들은 잘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이들은 사실은 정치인들보다는 일반 시민들이다. 이른바 시민 의식을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증오의 정치를 서슴지 않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우리 정치 현실에 대한 깊은 환멸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일각에서 떠벌리곤 하는, 한국은 시민 의식은 일류인데 정치인은 삼류입네 하는 소리가 아주 완전히 틀린 소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브런치를 둘러보며 이용자들의 정치적 성향이 대체로 여당 지지세가 강하다는 인상을 받아 왔다. 그래서 요 며칠간은 '시사/이슈' 란을 중심으로 선거 결과와 관련된 글들을 주의 깊게 읽어볼 생각이다. 그간 시민이라는 지위를 내세워 혐오의 정치 언어를 구사하며 사회적 갑질을 일삼아 온 이들이 많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들이 이번 선거를 계기로 자신들의 실책을 깊이 반성하기를 바란다. 다 된 밥에 재를 뿌린 일등공신은 정치인들보다도 사실은 그들이었던 셈이니까.


상대의 실패를 두고 고소하다는 식으로 건네는 얘기가 도리상 해서는 안 될 소리라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혐오의 말들을 피해 온 이곳 브런치에서까지도 그러한 목소리들이 너무나 많았기에, 그간 맞기만 하다가 간만에 일어선 김에 이번 한 번만은 속 좁은 놈이 되고 싶어졌다. 독하고 못난 소리를 했으니 이제 나도 균형을 찾아 가야겠다. 나 또한 우리 사회의 나름의 균형감각을 위해 이번에 진보 세력에게서 온당한 지지를 얻지 못했던 심상정 후보에게 표를 주고 왔다는 사실을, 다소 허세스럽게 첨언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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