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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정연 Jul 08. 2022

인용문 단장 (5)

이렇게 우리가 모르고 지나가고 또 방금 지나고 있는 한국의 미는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나는 한때 박물관 직원으로서 수년간을 경복궁 내에서 살았고 근정전에는 거의 매일처럼 드나들었지만 근정전 주위 석란(石欄)에 배치된 십이지석들이 그렇게도 좋은 것인지는 지난 여름에야 처음 발견하게 되었다.


조선의 조각물을 조사하느라고 사진을 찍고 돌아다니다가 나는 여기 신석(申石, 원숭이)이 가지는 겸손하고도 위대한 한국의 미에 발을 멈추고 혼자 탄성을 올렸다. 이 무명의 석장(石匠)이 곰방대를 물고 쪼아낸 조각 아닌 조각은 근대 한국이 낳은 뛰어난 조각이 아닐 수 없고, 이것이야말로 한국의 미를 일개 화강석 위에 동결시킨 일대의 걸작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우리나라의 조각가들이 외국 조각 작품집에 열중하기에 앞서 먼저 이러한 무명의 한국 고대 작가가 만들어낸 우리 자신의 전통에 눈을 돌이킬 것을 권하고 싶다.


- 김원룡, 「한국미의 재발견」, 『한국미의 탐구』(열화당, 1978)




얼마 전에 박두진의 『수석연가』를 읽었다. 1984년에 완간된 그의 전집의 끝 권으로 출간된 것인데 내가 순서를 제대로 알고 있다면 아마 그의 열다섯 번째 시집일 것이다. 수석 애호가로도 유명했던 그는 총 세 권의 수석 소재 시집을 남겼는데 각 권이 백여 편이어서 모두 합치면 삼백 편에 달한다. 다변과 다작 지향성이 강했던 박두진의 체질을 잘 보여주는 일면이라고 생각된다. 그의 수석 시편은 대체로 돌의 형상이나 자국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를 소재로 얻어서 쓴 것이다. 잘은 모르지만 애초에 수석 감상 자체가 그런 재미를 위주로 해서 이루어지는 것인 듯하다.


시집의 맨 앞에는 창작의 모티프가 되었던 실제 수석의 사진도 대여섯 점이 함께 게재되어 있었다. 재미있었던 것은 시인이 돌에게서 찾아낸 이미지가 내 눈에는 설명을 듣고 봐도 좀처럼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사진 속의 돌들은 멋있기는 했지만 그저 돌처럼 생기기만 했지 시에서 승화된 소재처럼 보이는 것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사뭇 농담조로 야, 딴 게 아니라 이거야말로 아는 만큼 보이는 거로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사물은 언제나 그대로다, 그러나 생각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것이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의 메시지일 것이다. 여기서의 생각이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어 보인다. 하나는 이미 사람들이 사물로부터 찾아낸 지식을 얼마나 습득하고 있느냐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앞선 그들마저도 미처 보지 못했던 새로운 관점에서 사물을 볼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나로서는 전자도 제대로 못하고 있으니 후자는 엄두도 못 내는 형편이다. 주변에 공부를 한다고 떠벌리면서도 사실 속으로는 아는 게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있고, 또 그렇기 때문에 배운 것에 관해 자신 있게 말할 엄두를 내지 못할 때가 많다. 그에 비하면 남들이 보기엔 그저 그럭저럭해 보이는 돌들로부터 시 삼백 편짜리의 사유를 우물물 긷듯이 자연스레 끌어내는 능력이란 얼마나 대단한가.


물론 그저 그런 사물을 두고 과잉 해석을 하는 것은 일종의 해몽 놀음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깊이 있는 소양과 번뜩이는 재치가 있다면 그것은 얼마든지 무시 못할 관점으로 승화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가리켜 문학적 상상력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가령 고대인들의 별자리를 구상하는 논리를 보면 억지도 그런 억지가 없지만 서사적, 종교적 상상력이 더해지면서 어엿한 문화의 근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위의 글에서의 김원룡의 일화 또한 작품을 다시 본다는 점에서 시인이 사물로부터 독창적 이미지를 끌어내는 것과 대동소이한 이치라고 생각된다. 문학적 상상력과 학문적 관점이라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하여간 두 곳 모두에게서 중요한 것은 사물을 보다 자세히 보고, 또 새로운 관점에서 보려는 노력일 것이다.


발표연도를 보니 위의 글을 썼을 당시 김원룡은 마흔 살 무렵이었던 듯하다. 경복궁을 집처럼 드나들곤 했었으면서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근정전 십이지상의 멋을 이제야 보게 되었다는 고백은 그 자체로 매우 진솔하다는 인상을 준다. 자신이 먼저 보았던 감상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순수함도 느껴진다. 근정전의 원숭이 상을 보면서 그가 느꼈던 예사로움의 충격은 그 자신 '자연주의' 또는 '자연스러움에의 경도'로 이야기되는 한국 미술론의 소유자였기에 벌어질 수 있었던 것이기도 하다. 가령 그때 근정전을 지나던 이가 엄밀한 기술성만을 중시하는 사람이었다면 그 석상을 별다른 감흥 없이 지나쳐 갔을지도 모른다.


위의 글을 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히 경복궁에 갈 일이 있었다. 그때 읽었던 귀띔을 의식하고 근정전 주변의 석물들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좋기야 좋았지만 그가 표현한 만큼의 확고한 감동이 오는지는 잘 모르겠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걸 반드시 내 잘못이라고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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