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만약은 없다는 소리가 격언처럼 퍼져 있으면서도 동시에 역사를 입에 담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흔히 버리지 못하는 버릇으로, 과거로 돌아간다면 그렇게 하지 않을 텐데, 하는 가정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그런 데에 거의 동의를 하지 못하는 편이다. 다시 돌아가더라도 어찌어찌해서 결국 같은 선택에 같은 결과를 맞게 될 공산이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늘에는 오늘의 현실이 있겠지만 어제에는 또 어제에 살고 있는 사람들 나름으로의 현실이 있다. 암만 오늘 일을 안다고 해도, 어제의 현실에 있는 사람에게는 지지고 볶아도 그때 하는 선택이 차악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그야말로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만약에 내가 정말로 과거에 돌아가서 현실을 바꿔 보려고 해도 나는 이 사실을 맞닥뜨리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일깨워주는 것은, 과거에 어리석은 선택을 한 것처럼 보이는 이들이 사실은 그렇지만도 않았으며 뒷지혜라는 특권을 쥔 채로 그들을 비웃는 것은 어떻게 보면 매우 무례한 짓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터놓고 말하자면 오늘의 상황을 안 채 삼 년 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윤석열 대통령을 올리는 게 여전히 이재명 후보를 올리는 것보다 차악이었을 것이라는 해괴한 소리를 나는 내뱉고 싶어진다.
이것은 비상계엄 사태를 옹호하자는 차원에서 하는 소리가 당연히 아니다. 각론적으로는 삼 년 전의 한국에는 삼 년 전의 현실이 있었다는 것을 일깨우고 싶었을 뿐이고, 총론적으로는 역사 같은 것을 성찰한다는 것이 마치 장기말을 넣었다 뺐다 하는 것처럼 쉬운 차원의 문제가 아니지 않겠느냐는 소리를 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러나 써놓고 보니 내가 봐도 해괴하게 들릴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기는 한다.
사회 일선에 나와 있지 않은 처지여서이겠지만 우리 사회의 현실 특히 정치적 현실이 작년 총선 때와 크게 달라졌다고 느끼지는 않고 있다. 그래서 논평할 거리도 사실은 별로 없다. 여당은 여전히 그때의 여당이고 야당도 여전히 그때의 야당이다. 다만 비상계엄 사태 이후 명분이 확실히 야당 쪽으로 넘어갔다는 차이가 생겼을 뿐이다. 이재명 후보가 대통령을 하기는 할 팔자인가보다는 자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막말로 나는 비상계엄에 대한 속보를 처음 보았을 때 딱 한 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윤석열이 기어코 이재명을 대통령으로 만드는구나.
얘기할 거리를 만들기 위해서 그 뒤의 내 입장을 늘어놓아 보자면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이후로 오늘까지 내 기대는 세 번으로 나뉘었다. 여당 경선 때는 안철수 의원을 응원했었다. 그가 낙선한 이후 한덕수 전 총리가 그러지 않기를 바랐지만 출마를 선언했고, 막상 하고 보니 그를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상식적으로(나는 이 말에 주관적 의견이라는 전제를 붙이고 싶지 않다) 한덕수 전 총리는 김문수 후보나 이재명 후보보다 갑절은 대통령직에 적합한 인물이었다. 여당 지도부의 무리수로 그가 단일화에 승리하지는 못했지만 대다수의 생각과는 달리 나는 그 무리수의 명분만큼은 여전히 납득하고 있다.
그 뒤로는 고민 끝에 울며 겨자 먹기로 김문수 후보에 투표할 수밖에 없었다. 그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지만, 모든 것을 차치하고 극우 진영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가져 왔던 데 대해서는 지지하는 입장에서도 낙선돼도 싸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새미래민주당 측의 이낙연 전 총리의 지원은 그래도 그에 대한 의구심을 중화시켜 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유례 드문 두 분의 전직 대통령의 지원이 보수진영에서 양분되는 표를 김문수 후보 쪽을 정통으로 보이게 만들기도 했다.
각각 보수와 진보의 대안적 인물이었던 이준석 후보나 권영국 후보의 손을 왜 들어주지 못했는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내 스스로도 변명할 거리가 없다. 아마도 비등비등했던 지난 선거와 달리 이번에는 이쪽이 워낙 약세니 나라도 밀어줘야지 하는 심리가 승했던 것 같다.
예상은 했지만 시쳇말로 점입가경인 우리 사회가 이제는 도대체 어떻게 되어 나갈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후보는 대척적으로 보이지만 우둔함과 교활함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실은 양쪽에서 같은 방향을 보고 달리는 쌍두마차임을 그것이 보이는 사람은 안다. 현실 상황을 우화에 빗대는 건 별로 좋은 습관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에 알게 된 이솝 우화에 있다고 하는 한 이야기는 내가 생각하는 우리 사회의 정세와 거의 맞아떨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이런 얘기를 할 때 소위 써먹기가 좋게 느껴진다.
"개구리들이 자신들의 무정부 상태가 싫어지자 제우스에게 사절단을 보내 왕을 달라고 요구했다. 제우스는 개구리들이 순박하다는 것을 알고 그들이 사는 연못에 통나무를 하나 던져주었다. 개구리들은 요란한 소리에 깜짝 놀라 연못 바닥으로 내려갔지만 한참을 있어도 통나무가 움직이지 않자 도로 올라왔다. 그리고 통나무를 얕잡아보고는 그 위에 올라가 앉기도 했다. 개구리들은 그러한 왕을 갖게 된 것에 모욕을 느끼고 다시 제우스를 찾아가 통치자를 바꿔달라고 했다. 첫 번째 통치자는 너무 무기력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제우스가 역정을 내며 개구리들에게 물뱀을 보내자 물뱀이 개구리들을 잡아먹었다."
윤석열 대통령을 거부한답시고 그다음 지도자로 이재명 후보를 선택하는 품이 더도 덜도 말고 이 꼴에 다름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나는 이 상황이 거의 코믹하게까지 느껴진다. 실정을 벌일 가능성이 백 퍼센트라고 봐도 무방할 정치인을 득세하게 만든 상황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혐오하는 정치로 인기를 끌기 시작해서 그 재주로 기어코 대통령까지 된 사람에게 그래도 잘해달라는 요청이 빈말로라도 나올 수 있겠는가?
이렇게만 생각한다면 내뱉을 욕지기가 끝도 없이 나오겠지만 그러나 다시 말하거니와, 지금의 내가 삼 년 전을 돌아볼 때 그랬듯이 누군가 이재명 후보가 앞으로 저지를 과오를 모두 안 채로 오늘로 오더라도 투표의 결과는 같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역사라는 게 그냥 그런 것임을 나는 깨달아가고 있다. 예견된 패배여서 충격이 덜하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일까.
아직 한 것도 없는 신임 정부에 저주스런 소리만 하느냐고 따질 수도 있을 것이다. 유치하게 삼 년 전에 당신들도 그러지 않았느냐고 나는 되물을 수밖에 없다. 이재명 후보가 실패하기를 바란다기보다도 그가 지닌 성격 자체가 실패를 내재하고 있다고 부연할 수는 있을 것 같다. 그러니까 이재명 후보의 당선은 그 자체로 그의 몰락을 내재하고 있는 셈이다. 역설적으로, 그의 당선으로써 사실상 우리는 한국 정치의 가장 악질적인 관습인 망상과 혐오로 각각 대표되는 윤석열과 이재명이라는 두 정치인을 우리 사회에서 쫓아낼 첫 단계를 마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