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포 에르메스, 루이뷔통, 구찌와 양평군 노포 냉면집의 공통점
노포는 결코 우리의 생활과 멀리 떨어진 존재가 아니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쳐 왔던, 아무 생각 없이 들렸던 가게들이 예상외로 노포였던 것을 알게 되는 것처럼 우리의 주변에서 우리와 함께 존재하고 있다. 흔히들 노포를 '오래된 음식점'에만 국한 짓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특징적인 현상 중 하나이다. 심지어 우리가 잘 아는 '두산'그룹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노포기업 중의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에르메스(HERMES), 루이뷔통(LOUIS VUITTON), 구찌(GUCCI).
이 명품 브랜드들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초빼이도 무척 좋아하는 브랜드이다.
에르메스는 브랜드에서 사용하는 컬러에 대한 감각과 패브릭 류(특히 스카프)에 적용한 패턴의 예술적인 면에 매료되었다. 루이뷔통은 몇 년 전 루이뷔통의 전시회에서 알게 된 아주 오래된 여행용 트렁크(옛날식 트렁크)들에 대한 로망이 있으며, 구찌는 경영자들의 영화적인 스토리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가장 인기 있는 명품 브랜드라는 것 이외에도 이 세 브랜드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이들도 우리가 전혀 생각지 않았던 오래된 '노포기업'이라는 것이다.
에르메스는 1837년에 창립하여 프랑스 귀족을 대상으로 말의 안장과 마구(馬具)를 만들어 판매하는 회사였다. 루이뷔통은 프랑스의 황후(외제니 황후, 나폴레옹 3세의 부인)의 전담 패커(Packer, 짐 꾸리는 사람)로 그녀의 적극적인 후원을 얻어 1854년 여행가방 전문점을 시작하였다. 구찌는 1921년 이탈리아의 피렌체에서 작은 가죽제품 제작하는 매장을 시작하며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었다. 모두가 백 년이 넘는 노포기업들인 것.
이 기업들이 노포기업으로 세계 최고의 명품 브랜드 회사가 된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나라의 노포에 적용시킬만한 몇 가지 '성공원칙'을 끄집어낼 수 있다.
에르메스는 외부 환경의 변화를 주시하고 이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적극적인 변화를 통해 성공한 노포기업이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개발된 지퍼를 유럽으로 도입, 최초로 가방에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창업자가 당시 신흥 강국이었던 미국 방문하면서 '마차 시대'의 종료와 '자동차 시대'가 도래할 것을 깨닫고 마구(馬具) 제품에서 여행과 생활용품으로 주력 제품 라인을 변경하여 세계적인 명품 기업이 되었다.
루이뷔통은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여행용 트렁크의 가장 기본적인 디자인을 확립한 곳이다. 윗부분이 둥근 형태의 트렁크만 사용하던 19세기 후반, 여러 겹을 겹쳐 쌓을 수 있는 사각형(윗부분이 평평한) 모양의 트렁크를 시장에 내놓으며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였다. 또한 베이지와 갈색 줄을 교차로 배치한 특유의 패턴과 모노그램을 여행용 가방 전체에 적용하며 처음으로 브랜드의 BI를 제품에 적용한 첫 번째 사례가 되기도 했다. '루이뷔통'이라는 브랜드는 그들의 강한 정체성(Identity)을 확고하게 지켜왔던 것이다.
구찌는 이에 반해 내외부 자원의 적극적인 발굴과 활용, 구성원의 다양한 실험적 시도로 널리 알려진 브랜드다. 구찌는 외부의 유명 디자이너를 영입하거나 내부 인재 발탁을 통해 브랜드의 새로운 전성기를 이끌어 낸 것으로 유명하다.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미국 남부 텍사스주 오스틴 출신의 디자이너인 '톰 포드'나 자사의 액세서리 디자이너였던 '알레산드로 미켈레'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하여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 사례들은 그들의 새로운 시도에 대한 도전정신을 쉽게 보여준다.
전날의 과음으로 엉망이 된 몸을 이끌고 아버님과 장인어른을 모신 양평의 추모원을 들렀다 돌아오는 길. 불편한 속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포 몇 군데를 찾았으나 모두 실패. 점심시간을 한참 넘긴 시간이라 브레이크 타임에 걸리거나 아예 영업을 일찍 종료한 곳이 많았다. 결국 고민고민하다 찾은 곳이 옥천냉면 황해식당이었다. 이곳에서 식사를 하기 위해선 무려 30km를 넘게 돌아야 하지만, 이 집의 냉면과 완자라면 충분히 감내할 수 있었다.
초빼이는 국도변의 분점보다는 조금 더 옥천면 방향으로 들어가야 하는 본점을 더 선호한다. 다른 사람들은 본점과 분점 사이에 큰 차이는 없다고 하지만 음식을 내는 모양이나 형태에서 본점이 좀 더 사람의 손을 거친, 인간미를 조금 더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돼지고기 편육을 보면 차이를 느낄 수 있는데 본점의 것이 조금 더 두껍고 좀 더 잘 삶은 느낌이 든다.(순전히 초빼이 개인적인 느낌이다)
자리를 잡으니 면수를 먼저 내주신다. 뒤를 이어 바로 편육과 고기완자 반반이 담긴 접시가 나왔다.
친한 친구를 몇 년 만에 만난 느낌이랄까? 저 멀리서 걸어오는 친구의 모습을 보며 무슨 말을 먼저 건네야 할지 고민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선홍빛을 살짝 품은 돼지고기 편육의 자태에 마음이 설레었다. 거의 4~5년 만에 찾았으니 충분히 그럴만하다.
오늘따라 편육의 색이 참 곱다. 계절 탓인지 연분홍 진달래 꽃이 떠 오른다. 꽃이 자주 생각나거나 꽃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 아저씨가 된 거라던데, 아무렴 어떠랴! 이 집을 드나들기 시작한 이래 가장 좋은 상태의 편육을 만난 듯 같다. 살코기의 결도 한층 도드라져 훨씬 더 맛있어 보인다. 층층이 겹을 쌓은 살코기와 지방층의 비율이 환상적이기까지 하다. 편육 한 점의 끝 부분만 간장을 묻혀 입에 넣었다. 새우젓이 아닌 간장이다. 왠지 오늘따라 이 편육은 유난히 향이 강한 새우젓보다는 간장향이 조금 더 어울릴 것 같았다. 진득한 간장향이 편육 살결에 촘촘히 스며들어 고기향을 조금 더 돋보이게 받쳐준다. 때론 변칙도 필요하다.
편육 한 점을 들어 새우젓에 찍었다. 다진 마늘과 파를 넣고 양념한 새우젓이 이날은 조금 강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래도 조금 습도가 높은 날씨라(식사도중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새우젓의 비린 냄새가 조금 더 도드라져 그런 듯하다. 네 덩어리가 나온 고기완자 하나를 집어 들었다. 꽤 큼직한 완자라 한두 입에 먹기에는 부담스러울 정도의 크기. 욕심을 내 한 입에 넣고 싶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는 크기에 압도당하는 그런 느낌. 가끔은 이런 느낌이 좋다. 욕심을 채우지 못해도 행복한 순간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편육과 고기완자를 다 먹지 못했다. 워낙 전날의 과음의 여파가 진하게 남아 해장이 더 절실했기 때문. 절반씩만 먹은 편육과 완자를 포장하였는데 집에서 보니 편육의 색이 짙은 색으로 변색된 것을 보고 이 날의 편육이 얼마나 좋은 상태였는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음식들이 조금씩 힘겨워지기 시작할 때쯤, 주문했던 냉면이 나왔다. 황해식당의 냉면은 시원한 육수가 좋다. 잘 우려낸 고기 육수에 딱 맛있어질 만큼 간장 간을 하여 나름의 독특한 매력이 있다. 대구의 부산안면옥이나 인천의 경인면옥 육수처럼 간장으로 풍성한 맛을 살린 육수다. 사실 이 날 이 집을 부러 찾았던 것도 이 육수 때문이었다. 전날 1차에서 마셨던 이과두주 7병과 소주, 그리고 2차에서 마셨던 그 귀한 '한산소곡주 생주'의 여운을 그제야 털어낼 수 있었다. 하루종일 불편했던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다.
황해식당의 냉면은 면이 남다르다. 우리가 아는 냉면의 면에 비해 조금은 더 굵은 면의 메밀면이지만 찰기가 예사롭지 않다. 여느 평양냉면 집의 면처럼 툭툭 끊어지는 면이 아닌 찰랑거리기까지 하는 면이다. 메밀가루에 고구마 전분을 배합한 면이라 한다. 초빼이가 보기엔 냉면을 처음 시작하는 입문자들에게 이 집의 냉면이 잘 맞을 것 같다. 쫄면처럼 탄력 있어 조금 더 익숙한 이 집의 면으로 시작하여, 난이도를 조금씩 높여 가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것 같다.
냉면이 조금 버거워지면 유일하게 내주는 반찬인 무짠지 무침을 하나씩 입에 넣는다. 2년 이상을 절여둔 무짠지를 얇게 저며 양념을 한 귀한 찬이다. 요즘은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짠지'라는 찬의 영역은 경상도 출신인 초빼이에겐 조금은 낯설기도 하다. 사실 예전엔 이 집의 짠지를 유심히 살펴보지 않았는데 오늘에서야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맞다. 새로운 깨달음과 배움이다.
1952년 황해식당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옥천냉면 황해식당'은 냉면과 완자, 편육을 팔기 시작하며 현재까지 영업하고 있다. 황해도식 굵은 면을 쓰는 냉면과 돼지고기로만 우려낸 육수를 직접 만든 간장(조선간장. 조선간장과 왜간장, 그리고 국간장과 양조간장의 명칭도 모호하지만)으로 간하는 것이 이 집 냉면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사태나 목살이 아닌 삼겹살을 삶아 낸 편육이나 돼지고기와 채소, 달걀을 버무려 지진 주먹만 한 완자도 빼놓을 수 없다. 거기에 양념한 짠지도 한몫 거든다. 이 모든 것이 '황해식당'의 아이덴티티이다.
요즘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양평 국도'변을 지날 때마다 이 집을 기억에서 끄집어낼 수 있는 것은 초빼이의 머릿속에 이 집의 '정체성'이 명확하게 새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초빼이가 '파블로프의 개'처럼 무의식적 연상작용을 통해 반응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이 식당을 생각하면 자연스레 떠 오르는 음식들의 각인되어 있으니 그것도 하나의 '아이덴티티'일 것이다.
황해식당은 이미 자신들의 고유한 아이덴티티는 확보했으니 더 발전하고 더 오래가는 모습을 기대해도 될 것 같다. 수 십 년이 지난 후 세계적인 식당의 반열에 올라 있을지 누가 알 것인가?
그나저나 이 집은 또 언제 찾아오려나?
[메뉴추천]
1. 1~2인 방문 시 : 냉면 + 소주
2. 3인 이상 방문 시 : 냉면 + 안주(편육, 고기완자 또는 반반 중 택 1) + 소주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가게 앞 주차장이 꽤 넓다. 국도변 분점의 주차장은 더 넓다.
2. 목~화 11:00~20:00 / 매주 수요일은 정기 휴무
- 본점과 분점의 휴무일이 다르다. 본점의 휴무일엔 분점은 영업한다.
3. 참고
- 가급적 본점을 방문하시길 권한다. 분점보다는 조금 더 나은 것 같다.
- 편육이나 고기완자는 반드시 먹어보아야 할 메뉴이다. 냉면도 좋다.
4. 여행 및 관광 정보
- 인근노포 : 국수리국수집, 원조양평신내해장국, 회령손만두국, 고바우설렁탕, 화천갈비, 보광정, 신내
보리밥집, 대문분식점, 제일식당, 진영관, 청계리할머니국수집, 양동큰대문집, 순흥식당, 쌍학반점 등
- 가까운 거리에 두물머리와 다산 정약용 선생의 유적지가 있어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두물머리는 워낙
경관이 좋아 사진작가들도 많이 찾는 명소.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좋다.
- 한강 하면 레포츠도 빼놓을 수 없을 듯. 수상스키 등의 레포츠 활동 후 찾는 것도 권장
- 냉면집 인근 괜찮은 카페가 많이 생겼다.
- 조금 더 범위를 넓히면 초빼이가 애정하는 절집 중 하나인 수종사도 방문해 보시길 권장한다.
- 그 외, 세미원, 중원계곡, 황순원 문학촌 등 양평군 주요 관광지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