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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빼이 Jun 06. 2024

초빼이의 노포일기 [서울 종로구 인의동 충무칼국수]

종묘와 창경궁이 이어진 담벼락 밑, 동순라길 아래 숨겨둔 보쌈김치의 대가

또 서울행이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미리 써 놨던 글들이 많았었는데, 이래저래 게으름을 피우다 보니 어느새 쟁여놨던 글들을 모두 소진, 요즘은 정말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사람들처럼 글 하나 완성하자마자 바로 다음 주에 올리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이러다 컨디션이 안 좋아지거나 예상치 못한 일이라도 생겨버리면 펑크가 나는 사태가 벌어질 텐데 하고 걱정하면서도 좀처럼 이 악순환의 고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요즘은 금요일의 서울행이 잦다. 목요일 써 놓은 글을 마지막으로 다듬어 올리고 이리저리 모바일과 인터넷 포털에 실린 글들을 캡처해 놓으면 하루의 2/3이 지나가 있는 일이 부지기수. 다음 주 올릴 글을 위해 부랴부랴 금요일에 상경하여 주변의 노포를 찾아 취재를 다니고 있다.


갑작스레 날씨가 무더워졌다. 오월의 마지막 날인데도 낮 최고 기온이 무려 30도라고 한다. 이런 기세라면 이번 여름은 조용히 동굴에 박혀 사는 것을 진중히 고민해봐야 할 것 같은 생각도 든다. 날씨가 무더워지니 시원한 냉면집이나 갈까 하고 웹사이트를 이리저리 뒤지다가 깜짝 놀랐다. 요즘 세상처럼 미쳐버린 '평양냉면’ 가격에 울분을 토하며 구시렁대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함흥냉면 노포들의 냉면값도 매한가지다. 물론 직접 면을 뽑고 육수와 양념장을 만들고 꾸미를 만들어내는 과정 모두가 일일이 사람의 손을 필요로 하는 고단한 노동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냉면 한 그릇의 가격이 1.5만 원이라는 게 어디 말이나 되는 일인가?


초빼이같이 서해안 낙도에 살며 벌이도 시원찮고 책도 못 내(물론 지금 마지막 교정 중에 있지만) 인지도라고는 1도 없는 햇병아리 노포 작가에게 노포 사장님들이 협찬을 해 줄 일은 절대 없고, 초빼이 또한 이 글을 시작하며 ‘글은 개발새발 써도 거지 같은 짓은 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지 오래니 항상 한정된 예산에서 움직여야 하는 제약도 있다. 그러다 보니 터무니없는 음식값에 꽤 분노하는 경우도 다수.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냉면집뿐 아니라 거의 모든 종류의 음식점들이 최근 2~3년 내에 꽤 가격을 올렸다. 인건비는 하늘 높은 줄 모를 정도로 치솟고, 파값은 한단에 875원이나 하며, 배달비는 1만 원이 넘는 경우도 허다하다. 게다가 이제는 과일조차 우리나라에서 나오는 과일은 겁이 나 못 살 정도로 비싸졌으니 하루하루의 삶이 보통 고단하고 퍽퍽한 것이 아니다.


오래되고 유서 깊은 함흥냉면 노포는 아직 찾아가 본 적 없어 새로운 글의 리스트에 올려볼까 했던 생각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함흥냉면 한 그릇에 1.5만 원, 수육 한 접시에 3만 원, 소주 한 병에 5천 원이니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함흥냉면 집으로 갔다면 혼자서 5만 원을 순식간에 쓰고 나와야 할 뻔했다. 물론 맛있는 음식에 대한 경험의 대가로 5만 원은 그리 비싼 금액은 아니지만, 한 사람의 한 끼 식사비용으로 환산하면 지갑을 꺼내기 망설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냉면값에서 요즘 우리 경제에 가득한 인플레이션의 흔적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아쉽다.

그래서 대안을 찾은 것이 그동안 가보고 싶었던 칼국수 집 한 곳.

이번에 찾은 칼국수 집은 종묘와 창경궁이 이어진 담장 밑에 자리 잡은 40년 된 칼국수 집이다. 문체부 산하기관이었던 마지막 직장이 이 집 근처에 있어서 자주 점심 먹으러 다니는 동네였는데 이 집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직장을 그만둔 최근의 일이다. 정말 의외의 골목에 떡하니 자리 잡은 칼국수집의 간판을 보자마자 절망에 가득했던 눈빛에 생기가 도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 집은 일단 위치가 좋다. 얼마 전 다시 이어진 종묘와 창경궁 사이에 있다. 종묘 입구를 바라보고 왼편으로 동순라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자동차 정비소와 산업장비를 판매하는 매장들이 있는 큰 삼거리가 하나 나오는데 바로 그 근처에 있다. 게다가 작은 골목 안쪽에 자리하고 있어 아무 생각 없이 걸어가다 보면 지나치기 일쑤. 근처에서 직장생활을 했던 나도 이 집이 자리하고 있는 골목은 사실 처음 본 곳일 정도였다. 골목 입구에서 보이는 낡은 간판에 기대감이 커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게다가 이 날도 커피 한 잔과 몇 모금의 물만으로 허기를 달래고 있었던 터라 이미 뱃속에선 발걸음을 재촉하는 아우성이 장난이 아니다.


점심시간이 지나고 얼마 되지 않은 시간, 사장님과 직원들이 겨우 한숨 돌리며 점심 먹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뒤늦은 점심을 하고 있는 3개의 테이블 외에 모든 자리는 비어 있는 상황. 1인용 좌석이 아닌 4인용 테이블에 가방을 내려놓고 주문을 했다. 칼국수 하나와 보쌈 그리고 소주 한 병. 먼저 나온 소주를 따 한잔을 들이켠다. 오늘 찾은 노포는 어떤 음식으로 감명을 줄 것인지 기대되는 순간. 뜬금없이 양념 다대기 통을 먼저 갖다 놓는다. 바로 뒤를 이어 새우젓 접시와 보쌈 그리고 보쌈김치가 나왔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굉장히 깔끔하면서 단출하다'였다. 보쌈을 찍어먹는 장이나 쌈채소 같은 것들은 과감하게 생략하고 새우젓과 보쌈 그리고 보쌈김치 한 접시가 테이블을 가득 채웠다.


3만 원의 가격에 비해 보쌈의 양은 조금 적어 보이는 느낌이었으나 훈련원터 쪽의 '장수보쌈'을 떠 올려보니 뭐 그리 적은 양도 아니다 싶다. 대신 보쌈김치는 꽤 넉넉하다. 잘 버무려진 보쌈용 김치에서 피어오르는 고춧가루 풋내가 꽤 마음에 들었다. 새우젓도 양은 굉장히 박한 편이었지만 깔끔했다. 빈 소주잔을 채우고 보쌈 한 점을 앞접시에 올렸다. 그 위로 보쌈김치 하나를 올려 바라본다. 접시 위에 올려진 모습만으로도 꽤 먹음직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의 첫 음식을 입에 넣는다.


두툼한 비계 부분이 굉장히 윤기 있다. 그 위로 붙은 껍데기도 얇지만 존재감이 충분히 느껴진다. 준수하게 잘 삶은 돼지고기 보쌈이다. 이런저런 잡기술을 쓰지 않은, 우리가 흔히 아는 돼지고기 삶는 방법을 잘 따른 보쌈고기가 입안에서 스르륵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고기를 삶는데 꽤 시간을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냉제육 계통의 식감을 좋아하는 초빼이의 취향과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삶은 맛있는 보쌈인 것은 확실하다. 비계에서 터져 나오는 풍성한 육즙이 좋은 고기를 쓴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했다. 고기 한 점에 세 가지의 식감이 들어있다. 살코기의 바스러지는 느낌과 비계 부분의 '팡' 터지는 듯한 식감 그리고 얇은 껍데기에서 느껴지는 쫀득쫀득함까지. 이 세 가지 식감이 한데 어우러져 만드는 입체적인 식감에 보쌈 먹는 재미가 솔찬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마음에 드는 것은 보쌈김치가 가지고 있는 폭발적인 감칠맛이었다. 감칠맛이란 것이 은은하게 느껴지는 것이 보통인데 이 집의 보쌈김치는 그 감칠맛을 도를 지나칠 정도로 품고 있다. 처음 느꼈던 고춧가루 풋내는 거친 고춧가루를 써서 만든 양념에서 나온 것인 듯했다. 보통 우리가 보쌈김치에서 느낄 수 있는 풍부한 맛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파와 마늘, 무 등을 넣고 굵은 고춧가루와 가는 고춧가루를 비율대로 넣은 후 젓갈을 붓고 버무린 그 양념. 김치 맛에서 '서걱서걱'거림을 느낄 수 있으니 어쩌면 찹쌀풀이나 찹쌀가루도 들어 있는지 모르겠다. 굉장히 기분 좋은 서걱거림도 좋다.


처음 먹었을 때 느꼈던 그 감칠맛은 젓가락의 횟수를 더하다 보니 조금은 과도한 단맛에 의한 것임이 밝혀졌다. 이 집 보쌈김치의 비결은 '단맛'이었던 것이다. 맛있다고 보쌈김치만 계속 집어 먹는다면 조금 질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보쌈김치를 보쌈과 함께 먹는 것. 돼지고기의 지방이 김치의 단맛을 조금 누그러뜨린다. 그리고 또 다른 방법은 보쌈에 새우젓만 올리고 먹는 것이다. 조금 양이 박하다 느꼈던 새우젓은 많이 짜지 않게 적절한 가미가 되어있다. 오히려 깔끔한 맛이 좋았다. '이러니 아끼려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 보쌈 몇 조각에 소주가 반이상 사라졌다. 단맛이 조금 강하다 하지만 그래도 맛있는 보쌈김치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장수보쌈'의 보쌈김치에 거의 육박하는 수준이랄까? 많은 미식가들 사이에서 이 집의 보쌈김치가 유명한 이유를 이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칼국수가 테이블에 올랐다. 우선 아쉬운 점부터 이야기하자면 보쌈의 명징한 존재감에 비해 칼국수는 좀 평이한 편이다.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바지락 칼국수인데 국물은 굉장히 맑고 깨끗하다. 보통 일본의 가락국수가 '면'의 맛과 탄력 등을 중시하는 음식이라면 우리의 칼국수나 국수는 면보다 '육수'의 맛과 진에 대한 판별이 앞서는 음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 집의 바지락 육수는 너무 부드럽고 연하다. 우리가 바지락 칼국수에서 당연히 느낄 것이라 기대하는 바지락 특유의 진한 육수맛을 느낄 수 없는 것이 아쉽다.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후추와 조미료를 많이 쓴 느낌마저 든다.


한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충무 칼국수의 양념장은 부족한 느낌의 칼국수 국물에 보완제 역할을 톡톡히 한다. 다진 파와 고춧가루, 후추, 간장 등을 잘 섞어 만든 양념장인데 곳곳에 매콤함도 숨어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듬성듬성 보이는 청양고추와 고추씨가 눈에 띈다. 파의 진액에서 나오는 감칠맛과 고추의 매콤함 그리고 아주 살짝 넣은 것 같은 참기름의 고소함이 어우러진, 정말 맛있는 양념장이 안도감을 준다. 이 집 칼국수를 먹을 땐 반드시 양념장을 넣어 먹어야 한다. 양념장을 넣기 전후의 차이는 거의 수십 배 차이다. 마치 행주산성의 원조국숫집 양념장과 같은 역할이라 해야 할까?


게다가 칼국수 국물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처럼 이어진 계란을 볼 수 있는데 얼마 전 동해시의 80년 노포 '덕취원'의 계란탕에서 보았던 바로 그 모습이었다. 덕취원의 계란탕을 보며 느꼈던 전율을 다시 한번 더 떠 올리게 되다니. 자칫 계란물을 잘못 풀면 계란 비린내와 함께 계란이 가루처럼 국물에 섞이며 국물의 맛을 망칠 수도 있는데 이 집의 주방에서는 그런 우려를 깔끔히 지워 버렸다. 좋은 계란향과 맛만 잘 뽑아내 국물에 입혀냈다.  


칼국수에는 별도의 김치가 나온다. 보쌈김치가 맛있었던 것처럼 칼국수에 따로 나오는 김치(겉절이)도 아삭한 맛이 일품이다. 호기심에 보쌈김치와 겉절이를 연이어 맛보니 같은 양념을 쓰는 듯하다. 단 보쌈김치용 양념은 특유의 감칠맛을 위해 별도의 양념을 더 첨가하는 듯했다. 두 김치의 양념을 따로 만드는 것만큼 시간과 노동력의 낭비는 없을 터. 사장님의 입장에서는 적절한 선택인 듯하다.  

초빼이의 시각에서 충무 칼국수는 좋은 보쌈과 맛있는 보쌈김치가 강점인 곳이었다. 자신 있게 내놓는 콩국수와 겨울철 한정 메뉴라는 굴무침은 맛보지 못했지만 보쌈과 김치는 이 집의 대표 메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초빼이가 방문했을 때는 1대 사장님이 아닌 자제분들이 나와 가게를 관리하는 것 같았는데, 일하시는 분들의 주방 직원들의 연배가 높은 것을 보면 그분들의 손 끝에서 나온 맛이라 생각된다.


이 집은 1982년 개업하여 종묘와 창경궁을 이으며 둘러싼 높다란 담장 밑, 사람들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 몰래 숨어 그들만의 내공을 쌓아가고 있는 집이었다. 가족들과 함께 종묘나 창경궁을 찾은 가족들이라면 한 번은 꼭 가볼 만한 집이다.


[메뉴추천]

1. 1인 방문 시 : 칼국수(또는 칼만두, 콩국수 중 택) + 보쌈(가능하시다면) +소주

2. 2인 이상 방문 시 : 칼국수 + 보쌈 + 소주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별도의 주차장은 없다. 인근 노상 공영주차장이 있으나 평일에도 가득 차 있다.

2. 월~토 11:30~21:00 / 정기휴무 일요일 / 브레이크타임 15시~17시 / 라스트오더 20:30  

3. 참고

    - 보쌈김치가 굉장히 맛있다. 보쌈도 잘 삶아냈다. 강력 추천 메뉴

    - 겨울철에는 굴무침을 한정으로 낸다.

    - 종로 5가 전철역에서 도보로 접근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 찾아가는 길은 포털 검색 참조.

4. 여행 및 관광 정보

    - 인근노포 : 백제정육점, 장수보쌈, 서울식당, 순희네빈대떡, 방아다리감자국, 연지얼큰한동태국, 할머니

      집순대, 종로곱창, 송정식당, 어머니 국시방, 혜화칼국수, 명륜손칼국수, 개미식당, 서울식당, 우미옥 등

    - 2차는 인근 광장시장이나 곱창골목, 닭한마리칼국수 골목과 연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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