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탄이라는 판타지의 시작, 72년 역사의 짚불구이 원조 두암식당.
오랜만에 긴 일정으로 노포 취재 출장을 위해 집을 나섰다.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지방의 노포 식당을 초빼이의 노포일기에 싣고 싶어 그 집들을 다시 취재하러 나서는 길. 겸사겸사 인근의 다른 노포들도 취재 일정에 넣었다. 이번 취재의 목적지는 목포. 인천에서 전남 목포로 가는 길은 굉장히 먼 길이다. 게다가 서해안 고속도로는 서해대교를 지나기 전까지는 1년 365일 막히는 구간이라 정체에 걸려 보내는 시간이 더 많다. 그렇다고 다른 우회도로를 찾아가기엔 오히려 시간이 더 많이 소요되는 길. 하루종일 운전대를 붙잡고 있어야 한다는 각오를 하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인천에서 목포로 가기 위해서는 서해안 고속도로를 타고 충남을 거쳐 전북, 그리고 전남의 3개 도를 지나야 한다. 소요 시간만 4시간 남짓. 오래된 노포식당들의 음식을 더욱 맛있게 즐기기 위해 아침부터 끼니를 걸렀다. 심지어 휴게소에 들러서도 물과 커피 한 잔만 구입했다. 가장 먼저 찾아갈 집은 원래 육회비빔밥과 생고기로 유명한 함평의 유명 식당이었으나 전남땅에 점점 가까워지며 마음이 흔들렸다. 그래서 생각해 낸 곳이 함평에서 조금 더 내려간 무안에 있는 고깃집이었다. 서울 용산의 유명한 우대갈비 집 '몽탄(夢炭)'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집이다. 가게의 명칭도 이 노포 식당이 있는 지역인 '몽탄면'에서 따와 한자만 바꿔 적었다.(최근의 기사를 검색하면 '몽탄'이라는 명칭과 '짚불구이'의 직접 전수 여부와 관련한 이견이 있는 듯하다.)
전남 무안군 몽탄면에 있는 이 짚불고기 집은 72년간 돼지고기 짚불구이를 내 온 집이다. 가게 이름은 두암식당. 가게명만 보면 시골의 작은 백반집을 연상케 하는 집이었다. 무안 IC로 접어들어 무안군 사창리로 향하는 길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전라도 시골 풍경과 깨끗한 공기에 영화처럼 차창을 모두 열고 2차선 지방도를 달렸다.(현실은 머리가 엉망이 되었다)
몽탄은 꿈 '몽(夢)'자와 여울 '탄(灘)'자를 쓰는데 이 지역의 전설과 관련하여 풀이하면 '꿈에서 건넌 여울'이라는 뜻이다. 몽이라는 글자 한 자에 이미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느낌을 가질 수 있는데, 이 느낌은 오늘의 목적지인 '두암식당'에 가까워지며 더욱 짙어졌다. 두암식당이 있는 마을의 입구엔 호남선 간이역인 무안역이 있는데 오래된 역사(驛舍)가 홀로 서 있어 주변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준다. 목적지인 두암식당에 가까워지자 활짝 열어젖힌 차창으로 은은하게 짚이 탄 냄새가 스며들어 오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 추수가 끝난 논두렁에 불을 질렀을 때 맡을 수 있던 그 냄새. 5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이 향은 잊히지 않는다. 작은 농가 몇 채가 있는 조그만 마을 전체를 '몽환적'인 짚불 냄새와 어디서 피어오르는지 모르는 연기가 덮고 있었다. 식당으로 들어서기도 전 이미 초빼이의 마음은 싱숭생숭거리기 시작했다.
좁은 농로를 타고 들어가 농산물 창고 앞에 주차를 했다. 이미 가게 앞은 입장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문전성시. 평일 낮,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에도 웨이팅이 걸려 있었다. 매장의 입구로 가기 전 특이한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조그만 창고 같은 공간에서 직원 두 분이 앉아 불을 지르고 있던 것. 군 복무 시절 유격 훈련의 가장 악명 높은 과정이었던 화생방 훈련의 모습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마을 전체를 은은하게 뒤덮은 연기의 출처가 이곳이구나 싶었다. 조금 더 다가가 직원들을 보니 더욱 생경한 모습이다. 이 더운 초여름 날 모자에 커다란 방독면, 그리고 긴팔 옷으로 중무장한 체 짚을 태우고 있었다. 천정에 고정시킨 후 쇠사슬로 이어놓은 틀이 보였고 거기엔 돼지고기가 담긴 석쇠를 올렸다. 그 틀을 붙잡고 옆으로 뒤집으며 고기를 굽는데 그 모습이 장관이었다. 직원분에게 영상을 찍어도 되냐고 허락을 받은 후 핸드폰을 들이댔다.
급해진 마음이 서둘러 발걸음을 매장입구로 움직이게 했다. 나와 거의 동시에 도착한 사람들은 이미 대기 예약을 하고 나오는 중. '아차, 예약부터 걸어두고 구경을 해야 하는데'라는 후회가 밀려왔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대기 신청을 하고 나니 태블릿을 걷어가며 안내판을 걸었다. 지금부터 도착한 손님들은 16시 이후에 먹을 수 있다는 안내. 조금만 지체했더라면 무척 곤란해질 뻔했다. 20여분 정도 고기 굽는 모습을 구경하다 보니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신발을 벗고 들어서니 거실에는 좌식 탁자가, 방으로는 테이블이 놓여 있다. TV 바로 밑 탁자로 안내받은 후 2인분을 주문했다. 짚불목살구이는 한정수량만 판매하는데 이미 동이 났다고 설명해 주신다. 흔하디 흔한 전라도의 식당답게 많은 찬들이 앞에 깔렸다. 하지만 약간 규격화된 상차림이 조금 어색했다고 할까? 이런 시골 식당에서는 아무 그릇에나 막 반찬을 담아줄 것 같은데 각이 잡힌 그릇과 트레이에 담겨 나와 그런 느낌이 더한 것 같았다.
초빼이가 전라도 밥상에서 가장 기대하는 반찬은 김치류이다. 전라도 음식은 다양한 재료와 젓갈을 풍족하게 사용하여 맛이 좋을 수밖에 없는데 그런 특징들이 가장 잘 나타나는 것이 김치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두암식당의 상도 배추김치와 갓김치, 그리고 양파김치 등 세 종류의 김치가 있었고, 갓으로 만든 장아찌와 부추김치(무침)도 한 칸을 채웠다. 거기에 이 집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칠게장과 밴댕이 젓갈이 한편에서 그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칠게장과 밴댕이 젓은 고기를 찍어먹는 소스이고 나머지 반찬류는 고기와 함께 싸 먹는 사이드 개념의 찬들이다.
배추김치를 집었다. 입에 넣자마자 기대했던 전라도 특유의 김치맛이 난다. 게다가 제대로 곰삭아 그 맛의 풍성함이 예사롭지 않다. 이런 맛을 내는 김치라면 적어도 2~3종류의 젓갈은 함께 썼을 것이다. 갓김치도 다른 지역에서 먹을 수 있는 갓김치와는 향의 깊이나 맛의 수준이 다르다. 하지만 초빼이는 갓으로 담근 장아찌가 더 마음에 들어왔다. 갓 특유의 향과 식감은 잘 살리면서도 장아찌 특유의 정갈함과 깔끔함으로 입 속을 깔끔하게 다듬어주었다. 이러다간 반찬만 먹다가 배부르겠다는 걱정을 할 무렵, 우선 고기 1인분(한 판)이 나왔다.
얇게 저민 삼겹살 16조각이 석쇠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순간 온도가 무려 1천 도가 넘는다는 집불을 견디고 지푸라기가 타오르며 뿜어내는 그 향기로운 향을 온몸에 두른 체 테이블 위에 올랐다. 처음 집어든 고기는 아무 양념 없이 입에 넣었다. 일단 고기는 부드럽고 육즙이 가득하다. 강력한 짚불(1천도)에 40초 동안 구워낸 효과가 부드러운 식감과 풍성한 육즙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석쇠 모양의 타투가 온몸을 검게 가로지르고 있는 삼겹살 조각에서 존재감이 뚜렷한 불향이 느껴진다. 더구나 지푸라기를 태운 향이라 더욱 감미롭고 구수하다. 이 짚불향을 직접 느끼기 위해 무려 3백 km가 넘는 길을 달려왔다. 몸과 마음이 스르르 풀려 나간다. 전라도 지역 소주인 보해나 잎새주가 있었으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바깥에 주차해 둔 차가 걸린다. 정말 몇 년 만에 고깃집에서 사이다를 주문했다.
칠게장은 짙은 갈색(또는 카키색)이 독특한 이 집만의 소스이다. 무안군은 예부터 갯벌이 좋은 지역이라 칠게가 많이 잡혔다고 한다. 그 칠게를 다양한 재료와 찰밥을 넣고 갈아 만든 소스인 것. 이 지역의 특산품이라고 하는데 쿰쿰한 향이 꽤 강한 편이었다. 짚불구이를 칠게장에 찍으니 짚불향이 조금 수그러든다. 계속 씹다 보면 꽤 고소한 맛이 마지막에 치고 올라오는데 꽤 좋은 느낌이다. 그 옆의 밴댕이 젓갈은 더욱 강한 향을 가지고 있다. 맛에서는 많은 차이가 나지만 요즘 돼지고깃집에서 많이 내는 갈치 속젓과 유사한 맛을 가졌다고 생각하면 된다. 단 밴댕이 젓갈이 더 강력했다. 이날 초빼이에게는 칠게장보다는 밴댕이 젓갈이 더 입에 맞았던 것 같다. 돼지고기의 기름진 맛을 적당히 잡아주고 젓갈 특유의 꼬리 한 향과 맛이 계속 씹을 때마다 고소한 향과 단맛으로 치환되면서 먹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 주었다.
이 집의 단점이자 강점은 단일메뉴라는 것. 메뉴를 선택하는 데 있어 고민할 필요가 없고 제공되는 다양한 찬으로 여러 가지 변주를 시도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인 듯하다. 배추김치를 올려 고기를 먹는 것도 좋고, 갓 장아찌를 올린 고기는 더욱 맛이 풍성해졌다. 또한 무안의 특산품 중 하나인 양파로 만든 김치도 입을 깔끔하게 만들며 양파 본연의 단맛까지 느낄 수 있어 나쁘지 않았지만 기대했던 파괴력엔 미치지 못했다. 상에 올려진 반찬 모두가 훌륭한 쌈의 재료가 될 수 있어 좋다.
시간이 많이 흐르지도 않았는데 어느새 석쇠가 비어 버렸다. 석쇠가 비자마자 바로 1인분을 올려주신다. 고기를 먹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흐름이 끊기지 않는 것'인데 그 흐름을 이어주는 센스가 있다. 직원분이 곧 주문을 마감한다고 하시길래 급하게 칠게장 비빔밥을 주문했다. 소스로서는 밴댕이 젓갈에 조금 밀리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별도로 상품화하여 판매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 조금 무리했다.
고추장을 쓰지 않고 칠게장을 고추장처럼 소스로 사용한 칠게장비빔밥은 굉장히 깔끔하면서도 고소하다. 비빔밥을 뜨는 내내 칠게장의 쿰쿰한 향도 슬쩍슬쩍 정체를 드러내면서 참기름의 향과도 매칭이 나쁘지 않다. 조금 더 강한 자극을 원했던 초빼이는 소스로 나온 칠게장을 몇 수저 더 비빔밥에 넣었다. 그제야 칠게장의 향이 힘차게 솟구쳐 오르기 시작한다. 고기를 찍어먹는 소스보다 오히려 비빔밥에 쓰인 칠게장이 더 제 몫을 한다는 느낌? 따듯한 밥의 온기를 딛고 쑥 올라오는 칠게장의 향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비로소 서해안 갯벌의 진득한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또 한 가지 최고의 백미는 비빔밥을 주문하면 내주는 100% 시골 '서타일'의 된장국. 손수 만든 된장과 우거지의 오묘한 조화는 된장국과 같은 흔한 음식에서도 '역시 전라도 음식은!'이라는 감탄을 내뱉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오랜만에 정말 맛있는 된장국을 먹은 느낌. 된장국만 따로 판매해도 기꺼이 사 먹겠다 싶은, 정말 맛있는 시골 된장국이었다. 참고로 초빼이는 민폐 같지만 두 번 리필해 마셨다.
직원들의 휴식을 위한 브레이크 타임이 다가오며 모든 손님들이 빠져나가고 초빼이 혼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꼭 와보고 싶었던 식당이었는데 어렵사리 찾아와서 직접 맛을 보니 명불허전이었다. 전라도 무안을 벗어나 이제는 전국적인 맛집이자 노포가 된 이곳에서 소주 한 잔 하지 못한 것이 사뭇 아쉬울 뿐이었다.
문득 대학입학 학력고사 공부를 하던 시절 서포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九雲夢)'을 읽으면서 직접 만들었던 '호'가 떠 올랐다. 초빼이의 호는 구운몽의 주인공이었던 양소유의 속세명을 따 '소유(少遊)'로 지었다. 주인공 양소유처럼 인간세상에서 '조금만 놀다' 다시 귀천하리라는 뜻을 담았었다. 오늘 이 집의 음식을 맛보니 '아직은 이 세상에서 조금 더 놀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넓고 맛있는 음식을 내는 노포는 너무 많다.
[메뉴추천]
1. 1인 방문 시 : 짚불구이(또는 짚불 목살) 2인분 + 칠게장 비빔밥 + 소주
2. 2인 이상 방문 시 : 짚불구이(또는 짚불 목살) + 칠게장 비빔밥 + 소주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전용 주차장 완비. 매장 옆 창고 건물 터에 주차가 가능하고 매장 건너편에도 주차공간 있음.
2. 금~수 11:00~20:00 / 정기휴무 목요일 / 브레이크타임 15시~16시 / 라스트오더 19:00
3. 참고
- 김치류가 굉장히 좋다. 특히 갓김치와 갓 장아찌가 수준급
- 칠게장 비빔밥은 꼭 드셔보실 것. 다른 곳에서는 먹을 수 없는 별미이다.
- 직원분이 고기 1인분(혼자 온 손님의 경우) 주문도 가능하다고 하셨다. 단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다.
4. 여행 및 관광 정보
- 인근노포 : 장부식육식당, 일로장터백반, 제일회식당, 무안식당, 아몬드식당, 사창짚불구이, 한진수산,
섭섭이네분식, 옛날장터선지국밥, 유수식육식당 등
- 2차는 무안군이나 목포 원도심 또는 남악 등지로 가는 것이 좋다. 두암식당은 시골마을의 식당이라
상가가 활성화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