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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빼이 Aug 15. 2024

고기국수 한 그릇에 담긴 제주 사람들의 마음

124. 초빼이의 노포일기[제주 제주시 연동 삼대전통고기국수]

제주도 하면 떠오르는 음식이 몇 가지 있지만 초빼이는 아직도 십몇 년 전 올레길을 걸으며 먹었던 고기국수(돗괴기국수)를 잊지 못한다. 돼지 한 마리의 모든 것을 담은 듯한 뽀얀 국물 속에는 굵은 중면 타래가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고, 그 위로 잘 삶은 돼지고기까지 얹었으니 부족함이 없었다. 마치 부산이나 경남지역의 돼지국밥과 비슷하지만 맛과 정취에서 차이가 있고, 일본의 돈코츠 라멘이나 오키나와의 소바와도 비슷하지만 또 다른 점이 보인다. 제주도의 향토음식으로 이런 묘한 매력을 주는 음식이 어디 또 있을까?


사실 고기국수는 역사적으로 그리 오래된 음식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면요리가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한국전쟁 직후 미군의 밀가루 원조가 시작되면서부터이다.(물론 그 이전에 밀가루가 없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제주도의 전통적인 면 음식은 메밀가루나 밀가루 등을 반죽, 면대를 만든 후 썰어 국물에 익한 '칼국'이다. 수제비와 칼국수의 중간형태라고 할까? 그리고 메밀반죽을 미지근한 물로 반죽하여 수저로 떠서 국물에 넣는 '자베기'도 전통적인 면요리의 일종. 초빼이의 노포일기에서 이전에 소개했던 동문시장 골목식당의 꿩메밀칼국수에서 '칼국'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기도 하다.


제주도 고유의 면요리들은 1950년대 한국전쟁 직후 밀가루 건면 상품들이 들어오면서 형태의 변화가 생긴다. 지금 우리가 먹고 즐기는 고기국수는 사실 이때 그 형태가 완성된 음식이다. 제주도의 원주민들은 예전부터 즐겼던 돗괴기 칼국대신 밀가루 건면을 삶아 넣으며 돗괴기 국수를 만들어 냈고, 한국전쟁 당시 난을 피해 제주도로 건너온 육지 사람들은 돼지고기 국물에서 나는 냄새를 꺼려하며 대안으로 멸치육수를 내 국물로 삼았다. 요즘 제주도에서 판매되는 고기국수의 육수가 돼지 육수와 멸치 육수로 나뉘는 것도 이런 배경이 있다.


초빼이는 올레길이 처음 문을 열었을 즈음 고기국수를 처음 접했다. 그 당시 고기국수는 발걸음이 닿는 대로 들렸던 동네 식당의 메뉴 중 하나였던 일상의 음식 중 하나였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집집마다 고기국수의 스타일과 맛이 모두 달랐다. 식당 사장님의 손맛에 따라 맛의 차이가 났고 첨가하는 재료에 따라 풍미가 달랐다. 지금과 같이 '3대 고기국숫집'이라는 유명 국숫집이 생기고 고기국수가 관광객들에게 각광을 받는 제주의 대표음식이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이었다. 이번에 소개할 집은 그 고기국숫집 중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전통적인 방법의 고기국수를 내고 있는 제주시 연동의 '삼대전통고기국수' 집이다.  


상호명 그대로 삼대를 이어 온 오래된 국숫집이다. 삼대전통고기국수는 한국전쟁 시기에 개업한 곳이다. 인천 인근으로 시집간 할머니께서 전쟁이 발발하자 고향인 애월로 피난온 후, 한두해 지나 영업을 시작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의 정확한 개업일은 초대 사장님께서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제주도청에서 조사한 기록은 1950년 개업. 아마도 피난 와서 장사를 시작했다고 하니 전쟁 발발시점으로 기록한 듯하다. 전문가들은 52년 경에 개업했다는 의견을 낸다. 오로지 전쟁통이었기에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었다. 게다가 이 집은 한동안 존폐의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다.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2대째 사장님인 어머님께서 10여 년 이상 문을 닫았던 적도 있다. 1996년 경 2대째 사장님의 따님들이 다시 간판을 달고 영업을 시작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영업한 기간만 보수적으로 잡아도 50여 년이 훌쩍 넘는다.  


제주도에서도 '고기'는 돼지고기를 뜻하는 말이다. 육지에서는 보통 '소고기'를 뜻하는 것과 조금 다르다. 이와 유사한 사례로 일본의 관동지방인 도쿄 인근에서는 '고기(肉, にく)'는 보통 돼지(豚, ぶた)'를 뜻하지만, 오사카 인근의 관서지방으로 넘어가면 '소고기(牛, ぎゅう)'를 의미한다. 이런 차이는 가장 많이 기르던 가축, 또는 가장 많이 활용하던 가축이 무엇이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섬이라는 척박한 환경에서는 소보다 돼지를 키우는 것이 좀 더 수월했으니 자연스레 제주도의 돼지는 '고기'가 되었다. 그 고기를 삶은 물에 국수를 삶아 그릇에 담고 고기를 얇게 저며 올려 고기국수를 만들었다.

고기국수가 널리 퍼지게 된 원인은 아이러니하게도 정부의 국민 생활에 대한 통제가 주요 원인이었다. 1960년대 초 박정희 정권에 의해 시행된 밀가루 음식 장려정책(분식장려운동)으로 분식을 장려(강요?)하며 국민의 식생활을 통제하였고, 1969년 '가정의례준칙"(법률 제2075호)를 제정하며 국민들의 혼례와 상례를 찾는 방문객들에 대한 접대음식마저 정부가 통제하게 되었다. 원래 제주도에서는 혼례나 상례에서 돼지를 잡는 관행이 있었다. 이때 보통 국과 밥, 그리고 '괴기반(槃, 반)'이 제공되는데 한 접시에 돼지고기 2~3점, 두부 1점, 순대 1점이 한 사람의 몫으로 제공되었다. 이런 전통을 '가정의례준칙'이라는 이름으로 통제하고 제한하기 시작하며 혼례나 상례를 찾는 사람들에게 내는 손님상이 '반상'에서 '국수상'차림으로 바뀌게 된 것도 그 어름쯤이었다.   


전날 과음을 한 후 해장을 위해 아침 일찍 이 집을 찾았다. 제주도 음식에 제주도 소주로 화려한 밤을 보냈으니, 다음 날 아침 해장도 제주도의 음식으로 하는 것은 당연지사. 매장 오픈 10분 전에 도착하여 가게 인근에 주차를 하고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문이 열리자마자 후다닥 뛰어들어가며 "고기국수 하나요"라고 주문하며 자리에 앉았다. 사실 이 집을 찾은 것은 '사골육수'를 사용하는 다른 고기국숫집과는 달리 제주 전통방식으로 육수를 내어 고기국수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완 제주도의 음식들을 취재하러 온 것이니 제주 향토음식의 원형을 고수하는 음식을 먹어보는 것도 좋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삼대전통국수는 제주도에서도 서북지방, 애월읍의 전통방식인 채소고명을 많이 사용하고 계란을 풀어내는 방식을 계승하고 있다. 채소를 풍부하게 넣어 돼지 육수와 채수가 섞인, 부드럽고 담백한 국물이 입에 감긴다. 제주향토음식 전문가 양용진 선생님은 애월지역은 원래 다양한 채소를 경작하던 곳이라 이 지역 음식은 채소 사용비중이 높고, 그중에서도 특히 배추와 파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느끼한 돼지육수에 대한 거부감을 최소화하였다고 한다. 또한 채소와 함께 달걀 줄알을 풀어 고명으로 올리는 방식은 제주의 전통방식인데 현재 이 방식을 고수하는 곳은 이 집 외에는 남은 곳이 없다고 조언해 주셨다.


부드러운 돼지 육수가 식도를 타고 내려가면서 안도감을 준다. 무언가에 쫓기듯 급했던 마음도 스르륵 속을 풀어주는 고기국수의 육수에 한숨 돌린다. 예전에 먹었던 다른 집들의 고기국수와는 품고 있는 격이 다르다. 솜씨 좋은 셰프가 만든 부드러운 크림수프를 한 모금 들이 마신 듯, 부드럽지만 완성도 높은 국물이 온몸을 무장해제 시켜버렸다. 아니 무장해제 시키는 것을 뻔히 보고 있으면서도 저항하지 못했다. 이 국물에 오늘 아침을 맡겨도 될 것 같다는 믿음이 오히려 더욱 굳건해졌다. 자칫 무료해질 수 있는 국물에 고춧가루와 후춧가루를 넣은 것은 신의 한 수가 되었다. 향을 잡기 위해 넣은 것이 아닌 가미(加味)를 위해 넣었던 것이라 적절히 의도한 목적을 달성했다. 후춧가루와 고춧가루 알갱이 하나하나를 혓바늘 위에서 놀리며 국수가락과 함께 씹는 맛도 좋다. 게다가 이 집의 국수는 중면을 사용하니 식감도 더 탄탄하다.


개인적으로 중면을 좋아한다. 특히 진한 육수를 내는 면요리에 들어있는 중면을 너무나 사랑한다. 입안에서 굴려지는 굵은 면의 묵직함을 사랑한다. 그런 의미에서 삼대전통고기국수의 중면은 초빼이에게 너무나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했다. 면 가닥과 함께 입안으로 슬며시 숨어 들어온 삶은 배추의 촉감은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중면의 식감을 더욱 돋보이게 하였다. 면발 사이사이를 빈틈없이 채우고 있는 돼지육수의 부드러움은 무엇에도 비할 수 없을 만큼 굉장했다. 그래도 부족한 2%는 채소와 잘 풀린 계란의 향이 채워주었다. 투박하고 소박한 모습도 좋았고, 그 속에 품고 있는 깊고 부드러운 맛도 좋았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모든 것들이 좋았다.

아마도 이런 음식이기에 제주도에선 애경사에 찾아온 손님들에게 이 국수 그릇이 올려진 상을 냈으리라. 애경사에 쓰기 위해 정성 들여 키운 돼지를 직접 잡아 통째로 넣고 삶은 후, 그 국물에 국수를 말아내며 힘든 발걸음을 해 준 손님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을 것이다. 오랜 시간 정성을 들인 음식이라는 것을 손님도 알고 기꺼이 맛있게 먹고 상을 물렸을게다. 고기 한 점 한 점에 녹아든 시간과 끊임없이 이어진 국수 가락과 같은 정성을 이 한 그릇의 국수에서 보았을 것이다. 아침 해장을 위해, 그저 아침 공복을 메우기 위해 이 국숫집을 찾은 초빼이조차 섣부르게 추측할 수 있는, 국수 한 그릇에 담긴 진심이 보이지 않았을까?


조금씩 국수 그릇의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하며 힘없이 흐느적거리던 몸에 다시 활기가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돼지고기와 뼈로 만든 육수 따위가 이런 마법을 부릴 줄이야. 진짜배기 돗괴기국수 한 그릇에 제주도에서의 또 다른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기운을 얻었다. 평소 좋아했던 건축가와 작가들의 작품을 보기 위해 꽤 긴 운전을 해야 하는 일정마저 더 이상 버겁지 않게 느껴졌다. 하루의 시작이 좋다. 아랫배가 따뜻해지면서 기운이 충만하다. '좋구나!' 하는 혼잣말이 자연스레 입 밖으로 튀어나온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제주도에서 고기국수를 잘하는 집들은 제주시 삼성혈 인근에 많이 몰려 있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도 여전히 애경사가 있을 때 고기국수를 내는 풍습은 이제는 서귀포 일부 지역에만 찾아볼 수 있다고 하니 이것은 또 무슨 아이러니인지. 국수 한 그릇에도 이런 삶의 재미난 모습이 들어있다.

[메뉴추천]

1. 1인 이상 방문 시 : 고기국수 + 소주

2. 2인 이상 방문 시 : 고기국수(또는 고기국밥) + 도새기볶음(제육볶음) + 소주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별도의 주차장은 없다. 주택가에 위치한 매장이라 인근 도로에 주차 가능매장 앞 6대 정도 주차 가능.

2. 화~일 09:00~16:00 / 월요일 정기휴일   

3. 참고

    - 이른 아침에 찾았는데 손님들이 꽤 찾는 편이다. 현지인들이 많았다.

    - 예전에는 아강발이 메뉴에 있었는데, 초빼이가 찾았을 땐 메뉴에서 사라졌다.


4. 여행 및 관광 정보

    - 인근노포 : 송림반점, 모살물, 우진해장국, 은희네해장국, 삼거리식당, 골목식당, 재벌식당, 올래국수,

      탐라가든, 영미식당, 태광식당, 삼보식당, 가시식당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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