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초빼이의 노포일기[충북 청주시 모충동 남들 갈비]
긴 여름의 햇살에 세상의 모든 것들이 익어가고 있는 요즘, 급속하게 떨어지는 체력을 보충해 줄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기력을 보충하는 데는 뭐니 뭐니 해도 고기가 진리. 갑자기 맛 좋은 돼지갈비 생각이 나며 작년 가을 찾았던 청주의 오래된 돼지 갈빗집이 떠 올랐다. 지방의 노포를 취재하기 위해 떠난 출장길은 진주를 거쳐 청주와 대전, 그리고 익산을 잇는, 꽤 긴 여정이었다. 밤늦게 도착한 청주에서 미리 예약한 호텔(이라지만 모텔에 더 가까웠던)에 짐을 풀고 차도 세워둔 체 길을 나섰다. 마침 숙소도 구도심의 외진 곳에 있어 택시를 타기 위해 꽤 많이 걸어야 했다.
한참을 기다리다 겨우 택시를 잡아 타고 기사님께 먼저 물었다.
"사장님 청주에 오래된 고깃집이 어디 있을까요?" 물론 이미 염두에 두었던 집이 있었지만, 전국 어디를 가든 택시 기사님들의 추천은 실패할 확률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어 지역 전문가들의 고견을 한번 더 듣고 확신하고 싶었다.
"오래된 고깃집요? 돼지갈비 집이 하나 있긴 한데, 요즘 양이 조금 줄었던데..."
다행히 나의 염두와 택시 기사님의 추천이 어긋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남들 갈비라고..."
"네 그럼 거기로 가 주세요"
밤 9시가 가까운 시각에 도착한 청주의 돼지갈비 노포는 연탄불보다 뜨거웠던 손님들의 열정이 조금씩 사그라들며 한가해지는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매장의 절반 정도는 돼지갈비를 '탐(貪)'하는 사람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혼자 왔는데 괜찮을까요?"라고 물으니 "물론이죠"라며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이 돌아온다. 가급적 다른 이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입구 쪽의 조금 작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이런 탁자를 테이블이라고 불러도 되나 싶을 정도로 오래된, 옛 식당의 흔적이 눈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테이블의 중앙엔 연탄화덕을 놓고, 시멘트로 원형 테이블 모양을 만든 후 테이블의 윗면엔 타일을 붙였다. 테이블의 겉면을 덮고 있는 타일은 요즘은 찾아보기도 힘든, 7~80년도에 지어진 옛날 집에서나 겨우 찾을 수 있는 '올드 스타일'의 타일이다. 초빼이가 국민학교에 입학하기 전, 외가의 큰 외삼촌께서 운영하시던 '나주시 남외동'의 식당에서도 이런 테이블을 썼던 기억이 있다.
차가운 타일로 덮은 테이블 중간엔 연탄아궁이가 자리하고 있어, 연탄불에 굽거나 끓일 수 있는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에 안성맞춤이었다. 고개를 들어 다른 테이블을 보니 테이블마다 '타일'의 모양이 제각각이다. 퍼뜩 포르투갈의 '아줄레주'가 떠 올랐다. 굉장히 매력적인 노포의 오브제이다. 그 시대의 '타일쟁이'가 만든 타일장식이 지금 이 순간에는 '레트로 아트'가 되어 버렸다. 어차피 많은 예술품들이 이와 유사한 과정을 거치며 작품으로 인정받지 않는가?
조금 더 시야를 확장해서 이 집의 테이블을 보고 있자면 옛 식당의 테이블 변천사도 읽을 수 있다. 60년대의 나무 테이블 또는 '도끼다시' 테이블(대전 형제집, 1965년 개업)에서 70년대의 시멘트와 타일로 외부를 마감한 테이블로 변화가 눈에 보인다. 그러나 80년대부터는 다양한 '열원'의 발전과 더불어 테이블의 형태보다는 열원의 변화가 식당의 풍경을 좌우하기 시작했다. LPG 가스가 보급되면서 한동안 테이블용 '간택기'가 손님상 위를 차지했고, 이후 우리 외식사에 굵은 획을 그었던 '부르스타(한국 후지카, 1980년)'가 등장하며 식당의 풍경은 이에 맞는 환경으로 변화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집의 테이블은 한국 외식업의 발전과정에서 의미 있는 사료적 가치도 지니고 있는 듯하다.
남들 갈비의 메뉴는 단일메뉴이다. 돼지갈비 2인분을 주문했다. 혼자 찾은 고깃집에서 고기 1인분을 주문하는 것은 조금은 눈치 보이는 일이다. 그래서 아주 오래전부터(20대 때부터) 혼자 고깃집을 찾으면 첫 주문은 2인분부터 주문하는 버릇이 생겼다. 남들 갈비의 고기는 스테인리스 국그릇에 담아 내준다. 옛날식으로 잘 양념된 돼지갈비를 채운 '스뎅 그릇'이 기본찬들보다 먼저 도착했다. 접시도 아니고 스뎅 국그릇이라. 오래전 이 집의 1대 사장님이 서비스하던 방식이 그대로 전해져 내려온 듯하다. 넓은 접시에 담아 내는 것보다는 소박해 보이지만 조금 더 풍성하게 느껴진다.
고기를 집어 석쇠 위에 올린다. 남들 갈비의 갈비는 일반 돼지갈비보다 조금 얇은 편이다. 그래서 갈비를 굽는데 조금 더 세밀한 테크닉이 요구된다.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금세 타버리기 일쑤. 시커멓게 재가 되어버린 갈비를 보면서 나의 멘털도 연기처럼 달아나버리기 쉽다. 그러니 정말 조심스럽게, 아니 조금은 까탈스러운 여자친구를 대하듯 계속 지켜보면서 집게를 놀려야 한다.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집게로 고기를 누를 필요도 없다. 불이 조금 심하게 올라온다 싶으면 고기를 놓은 자리를 다른 편으로 옮기면 된다. 불이 조금 약하다 싶으면 집게로 고기를 몇 번 눌러줘도 된다. 마이아르니 뭐니 하는 단어를 굳이 쓰지 않더라도 고기색이 점점 변하며 먹기 좋은 상태가 되면, 우린 이미, 본능적으로 일고 있다. "지금이 가장 맛있는 때라는 걸"
마음을 정갈히 다잡고자 소주 한 잔을 마신다. 제주도의 애주가들은 '미소(미지근한 소주)'를 찾는다지만, 청주의 열정적인 초빼이들은 '냉소(차가운 소주)'를 즐기는 듯하다. 얼음 가득한 양철 버킷에 깊숙이 넣어둔 소주가 오랜만이라 너무 반갑다. 초빼이가 대학 다니던 시절 이렇게 소주를 내는 집이 참 많았던 것 같다. 아마도 그 시절 즈음의 유행이었으리라. 조금은 뜨겁지만 잘 익은 갈비가 입안에 들어오자마자 녹아내린다. 심하게 달지 않은 옛날식 돼지갈비 양념의 역할이 크다. 간장과 설탕, 그리고 후추로 이뤄낸 콜라보는 우리나라 음식사의 어떤 양념장에 비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갈비 몇 점을 집어 먹다 보니 "이 양념은 속을 불편하게 하지는 않겠는걸"하는 믿음을 준다. 요즘 흔한 돼지갈빗집의 양념은 명함도 내밀 수 없는 맛이다.
초빼이의 노포일기를 통해 이미 여러 번 말했듯이 소갈비가 아닌 돼지갈비나 닭갈비는 굳이 갈비 부위를 고집할 필요는 없다. 고기의 부위보다는 소갈비를 재울 때 쓰는 양념과 같은 양념이면 된다. 진하지는 않지만 달콤하고 짭짜름한 양념. 간장이 중심을 잡고 설탕과 후추, 그리고 다른 부재료들이 합을 맞추는 그런 양념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굳이 더 짙은 색과 불향을 내고자 캐러멜을 넣지 않아도 된다. 색상과 향은 간장만으로도 충분하다. 우리나라의 고기 양념은 짙은 향과 맛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양념맛으로 고기를 먹는다고 할까? 고기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보조 역할을 하는 일본의 야끼니쿠 양념과는 맡은 책임이 다르다. 그래서 맛과 향, 사용하는 재료에서 차이가 난다.
초빼이도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고기를 조금 태웠다. '온실 속 잡초'처럼 자라 한없이 연약한 마음에 짙은 스크래치가 생겼다. 사죄의 의미로 소주잔을 채우고 다시 비운다. 충청도 지역 소주의 와일드한 감촉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것이 느껴진다. 고기를 추가 주문하고 찬으로 나온 양배추로 눈을 돌렸다. 자세히 보니 양배추가 아니라 파절이도 같이 섞여 있다. 게다가 소스 또한 케첩이 아닌 매콤 새콤한 양념장. 파절이만 먹을 때의 느물거리는 식감보다는 이렇게 양배추를 함께 섞어 새롭게 해석해 낸 아삭한 식감이 더 좋다. 차이는 단순하지만 다른 집들과는 구분되는 확연함이 있다. 갈비 한 점을 집어 양배추 파절이와 함께 입에 넣었다. 갈비의 부드러움과 달콤함, 양배추 파절이의 아삭함과 매콤 새콤함, 그리고 파절이의 짙은 향 등 식감과 향, 그리고 맛이 서로 뒤섞여 만들어내는 입체적인 느낌이 굉장히 좋다. 한 번에 미각과 촉각, 그리고 후각을 동시에 만족시킨다. (의도했든 또는 의도하지 않았든)이 집 사장님이 만들어 낸 세 가지 감각을 동시에 자극하는 결과물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집에서 찾은 또 하나의 매력은 우거지 된장국.
우거지와 된장의 합만으로도 무시할 수 없는 '안주력'을 갖췄는데 거기에 콩나물까지 아낌없이 투입했으니 맛이 없으래야 없을 수가 없다. 우거지와 콩나물의 향과 맛이 진한 된장 육수에 진심으로 녹아있어 그 자체만으로도 완벽에 가깝다. 밥과 함께 먹어도 맛있겠지만 이 국물 하나만으로도 소주 몇 잔은 충분히 커버가 가능할 것 같았다. 국그릇에서 손을 뗄 수 없었다. 그냥 계속 들이마셨다. 도무지 수저로 떠먹을 수 있는 그런 하찮은 맛이 아니었다. 이 날 국만 세 번 정도 리필했으니 어쩌면 이 집 직원들이 자신들을 플러팅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다 싶다.
어중간한 식사로 조금 배가 부른 상태에서도 혼자 돼지갈비 3인분과 소주 두 병을 마셨다. 이 집 돼지갈비 1인분이 300그램이니 900그램을 혼자 먹은 것. 거기에 공깃밥도 하나. 적절한 포만감과 취기가 온몸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제야 고개를 돌려 가게 안을 둘러보니 자리가 꽤 비어 있다. "이 저주받은 집중력은 왜 술과 고기를 먹을 때만 발휘되는지. 공부할 때 쓸 수 있었다면 지금쯤 뭔가 굉장한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다가 "아무렴 어떠랴. 먹는데라도 진심일 수 있으니 이렇게 초빼이의 노포일기도 써 나갈 수 있는 것이겠지."라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사람이 산다는 게 별거 아니다. 이 낯선 땅 청주의 노포 갈빗집처럼 꾸준히 자신의 일에 집중하며 살아간다면 언젠가는 성공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물론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들과 궤를 달리하는 비상한 사람들도 가끔 눈에 띄지만 그들이라고 아무 노력 없이 그 재능을 발현하게 되었을까? 또한 그들의 그 황홀한 절정기가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이어질까? 나이를 먹을수록 점점 더 명확하게 보이는 것은 천재성이나 비범함은 절대로 꾸준함을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인 것 같다. 단순하지만 소중한 이 가치를 제대로 볼 수 있기까지 꽤나 많은 시간을 보냈다. 초빼이는 그럼에도 여전히 일확천금과 같은 뜬금없는 행운도 기대하고 있으며, 소위 '잘 나간다는' 사람들에 대한 근거 없는 질투심도 여전히 느낀다. 그런데 그 질투와 시기라는 것도 제대로 할 줄 아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더라. 어설프게 흉내만 낸들 그게 제대로 될 리가 있을까? 그럴 시간에 '나'라는 존재의 소중한 가치를 깨닫고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해 무한한 확신을 주는 것이 더 내 삶에 유익한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남들 갈비가 50여 년을 지켜온 저 옛날식 연탄 테이블도, 다른 집보다 얇게 내는 갈비도 그런 확신 속에서 지속해 왔으리라. 방송과 SNS를 장식하는 화려한 음식점들과 기업형 음식점들보다 조금 덜 알려졌지만, 지금부터 50년 뒤에도 여전히 살아남아 영업을 하고 있을 가능성은 솔직히 남들 갈비가 더 높아 보인다. 순간의 반짝임에 현혹되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 온 자신들의 확연함을 더욱더 지속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술과 고기를 좋아하는 초빼이의 작은 바람이다.
*참고 1. 지난주 사무실 겸 스튜디오 이사로 인해 초빼이의 노포일기를 연재한 이후, 처음으로 연재를
한 주 쉬었습니다. 초빼이의 노포일기를 찾아주신 많은 분들께 깊은 사과의 말씀드립니다.
[메뉴추천]
1. 2인 이상 방문 시 : 돼지갈비 + 잔치국수 또는 동치미국수 + 소주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전용 주차장 있음. 매장 앞 6대 정도 주차 가능. 인근 골목길 주차 가능.
2. 월~일 11:30~23:00
3. 참고
- 평일 저녁 9시 정도에 찾았는데도 손님이 많았다. 저녁 6시 대에는 대기줄이 있을 수 있다.
- 돼지갈비가 비교적 얇은 편이라 고기를 굽는 스킬이 필요하다.
- 잔치국수와 동치미 국수도 별미라는 소문이 있으나, 혼자 찾아서 먹어보지 못했다.
4. 여행 및 관광 정보
- 인근노포 : 장군집, 남주동해장국, 장터부속구이, 탑연골, 보당해장국, 공원당, 우암설렁탕, 에이피엠
떡볶이, 털보삼겹살, 오성당, 서문우동, 코끼리만두, 신화당, 경남옥, 뚝방갈비, 삼미족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