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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빼이 Dec 08. 2022

초빼이의 노포 일기 [서울 종로3가 찬양집]

찬양하라, 그리고 비워라. 이곳의 모든 음식을


일단 거두절미하고, 한낱 칼국수 집이 무슨 노포가 되며 술집이 될까 묻는다면 일일이 그 말에 대답하기는 귀찮으니 그냥, "한번 가서 드셔 보세요"라고만 말하고 싶은 곳.

종로 3가, 5호선과 3호선이 맞닿은 입구의 조그만 골목에는 정말 '찬양'받아 마땅한 국숫집이 하나 있다. 

그래서 상호도 바로 '찬양집'. 


이곳의 영업 시작은 10시. 

해장을 하기엔 조금은 늦은 시간인 것 같은 오전 10시에 문을 열어 아쉽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생각을 달리하여 '해장술을 하기에 딱 좋은 오전 10시에 문을 연다'라고 생각하면 너무나도 적절한 시간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실제로 처음 이곳을 찾았던 시간은 정말 딱 오전 10시였다. 아침 일찍 근처 병원에 들렀다가 어슬렁거리기를 10여분, 갑자기 찾아든 허기에 발길을 돌린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종로 3가 뒷골목에서 오전 10시란 시간은 모호함과 명확함이 반반씩 공존하는 그런 시간이다. 

지난밤의 흔적이 아직 남아, 채 수거하지 않은 쓰레기봉투와 이른 아침 청소차의 물청소 흔적이 고스란히 공존하고 있는 시간, 주변 상가의 상인들마저 아직 출근하지 않았으나 인근 사무실엔 모두가 출근하여 업무에 임하는 그런 시간, 종로 3가 거리치곤 사람들이 뜸한 한적한 시간. 바로 그 시간 어름이었다.  


딱 그때쯤에 하얗게 김이 서린 찬양집의 문을 '드르륵' 열고 한 발자국 들이미니 사장님과 종업원분들이 한 테이블에 모여 앉아 음식재료를 다듬으며 영업 준비를 하다 모두 고개를 돌리고 쳐다보시던 기억이 생생하다. 

2초간의 적막 그리고 난감함에 '아 너무 10시라는 숫자에 집착했나?'라고 순간 고민하다 '지금 물러서면 더 민망해질 것 같은 마음'에 "영업하시죠?"라며 조금 더 공격적으로 나서기로 결심했다. 순간 텅 빈 가게 안을 채우던 어색함을 흩트리며 들려오는 '어서 오세요'라는 인사. 다행이다. 


찬양집은 이미 수많은 방송과  유명인(맛 칼럼니스트인 황교익 선생과 국내 최대의 프랜차이즈 회사 대표인 백종원 대표 같은 분들까지 포함)들의 극찬, 그리고 '개인적으로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음식점의 기준과 같이 언급되는' 미슐랭(타이어 부를 땐 아직도 미쉐린인데 말이지) 가이드에 등재되며 널리 알려진 칼국수 집이다.   

가게를 들어서자마자 쉴 새 없이 끓어오르는 육수에서 나온 수증기와 따스한 온기에 눈앞이 뿌옇게 흐려진다. 지금 이 계절에는 항상 겪는 일이지만 이게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안경 렌즈를 가득 메운 김에는 묘한 해산물의 향이 진득하니 녹아있어, 그 향을 인지하자마자 나의 선택에 확신이 더해진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칼국수 집에 왔으니 당연히 칼국수를 주문해야겠고, 김치 만두의 향도 묘하게 느껴지기에 정말 어쩔 수 없이(?) 김치 만두까지 주문. 이 정도 양이면 식사로 먹기엔 버거운 양이니 소화제도 하나 추가. 


주문이 끝나면 바로 찬과 그릇을 세팅해 주시는데 그 조합이 실로 이해하기 힘든 '괴랄한' 조합이다. 

예전 시골에서나 쓰던 주황색 플라스틱 바가지와 겉절이 김치가 담긴 접시 하나, 그리고 뭐 만두까지 주문했으니 간장과 다른 앞접시(사라라고 해야 하나) 하나 더. 


젓가락을 꺼내 겉절이 김치를 한점 집어 입에 넣는 순간, '아 그래 칼국수집 겉절이는 이래야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겉절이 김치의 완성도는 최상급. 그리곤 잠시 추가로 나온 빈 접시에 대해서 고민을 시작한다. '이게 앞접시일까 아니면 테이블에 올려진 김치통의 김치를 담으라는 걸까' 하고 빈 접시에 대해 고민한다. 뭐 아무렴 어때. 난 앞접시로 쓰기로 했다. 스테인리스 김치통에 들어있는 김치가 왠지 중국산 김치같이 보여 겉절이에 감동한 마음을 해치기 싫었다고 해야 할까? 


1. 김치만두      /  2. 다재기      / 3. 주황색 바가지 : 바가지의 용도는 이렇습니다.

     

증기로 쪄 낸 김치 만두가 먼저 나왔다. 개인적으로 김치 만두를 굉장히 좋아하는 편인데 내가 딱 기대하던 그런 김치 만두의 맛이라 조금 놀라웠다. 비록 오래된 노포이긴 하지만 이런 허름한 집에서 이런 김치 만두 맛을 내 다니 하는 놀라움이 앞서더라. 


그러면서 또 한편으론 '이런 김치 만두를 만들려면 김치도 만만치 않을 텐데 왜 그 김치는 안 주지?'하고 갸우뚱하다 좀 전에 고개를 돌렸던 그 김치통으로 눈길을 돌렸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조각만 꺼내어 입안에 넣었더니 '헉'이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찬양집 김치의 메인은 겉절이 김치가 아니라 통에 담겨 있던 바로 그 김치였던 것. 하마터면 정말 맛있는 김치를 눈앞에 두고 놓칠 뻔했다. 서둘러 김치통 속의 익은 김치를 꺼낸다. 


이제는 음식에만 집중해야 할 무념무상의 시간. 

만두는 한 입에 하나씩. 칼국수는 뜨거운 열기를 식혀가며 후루룩 마시는 수준. 그리고 중간중간 소화제 한 잔 씩. 이른 아침에 이보다 더 한 행복이 있겠나 싶다. 


칼국수는 특히 국물이 굉장히 인상적인데 바지락과 홍합으로 낸 육수에 '오만둥이'를 넣어 깔끔함에 감칠맛까지 더한 해산물 육수로 변신하였다. 추측컨대 예전엔 미더덕을 썼겠지만 요즘 미더덕 가격이 하늘보다 더 높게 솟구쳤으니 오만둥이로 바꿨겠지 싶은. 음식의 재료로서 미더덕을 사용하면 미더덕 그 특유의 향과 감칠맛으로 더욱 풍성한 향과 맛을 가진 결과물을 얻어낼 수 있으나 이 점은 어쩔 수 없이 수긍할 수밖에 없다. 비록 뒷골목이지만 종로 3가 번화가의 칼국수 집 월세와 인건비를 생각하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 

다만 인천 서구의 권오길 칼국숫집처럼 값 비싼 미더덕을 육수에 쓰는 방법을 한번 고민해보면 좋을 텐데 싶기도 하다.


입 밖으로 말 한마디 꺼내지 않는 시간을 더하고 있다. 쉴 새 없이 입 안으로 만두를 집어넣고, 육수를 마시고 칼국수 면을 흡입하다 보니 어느새 모든 그릇의 바닥이 드러났다. 아마도 내 속에는 '아귀(餓鬼)'가 몇 마리는 숨어있나 보다.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으니.  


찬양집에서 음식을 먹으며 느낀 것은 겉모습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지 알게 되었다는 것. 요즘의 음식점이라는 곳이 휘황찬란한 인테리어와 마치 작품을 보는 듯한 비주얼을 갖춘 곳들이 많고 음식마저도 그런 세태를 따라가고 있는 것이 사실인데 이 집 앞에 서면 그런 것들이 정말 덧없는 것들임을 쉽게 깨닫게 된다. 


허름하고 투박하지만 기본을 잃지 않고, 내는 음식에만 충실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며 

그 원칙을 오랜 시간 동안 지켜 나가는 것은 더욱 고난한 일임을 이 한 그릇의 칼국수에서 알게 된다. 

그러하니 더욱, 이 집을 찬양할 수밖에 없다. 


난 그렇다. 

  


[메뉴추천]

1. 1인 : 칼국수는 기본. 소화가 가능하다면 만두 또는 김치만두도 강추

2. 2인 : 칼국수 2 + 김치만두   

3. 3~4인 : 사람 수에 맞게 칼국수 주문. 그리고 김치와 고기만두 하나씩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5호선 종로3가역 6번 출구로 나와 나오는 길 그대로 직진하다가 행복한 전집 다음 희망 상회를 끼고 우회전하면 골목 안쪽에 있다

2. 손님은 어르신들이 많은 편. 낮에 가도 칼국수 한 그릇에 소준 한 잔 하시는 어르신들을 많이 볼 수 있다

3. 주차는 굉장히 불편함. 주변의 주차장에 차를 대고 가야 함. 

4. 근처에 종로 3가 갈매기살 골목도 괜찮고, 인근의 포항 식당이나 행복한 전집 같은 곳도 술 한잔 하기 좋은 집임. 1~3차 가기에 좋은 조건이나 요즘 같은 코로나 시기에는 시간이 모자라다는. 

5. 추운 겨울, 그냥 따뜻한 국물의 맛있는 칼국수를 먹고 싶다면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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