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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빼이 Dec 15. 2022

초빼이의 노포 일기 [서울 광장시장 순희네 빈대떡]

만 원짜리 한 장의 행복. 세상을 다 가질 수 있는.

저녁 약속시간까지 시간이 좀 남아 오랜만에 광장시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광장시장은 수많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고 코로나로 닫혔던 하늘길도 열려 꽤 많은 외국인들도 다시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광장시장은 서울 최대의 재래시장이자 한국 최초의 전통 거래 시장이다. 그 시작도 1905년이었으니 이미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서울 시민과 함께 해 왔다. '광장 주식회사'가 모태인 이 시장은 광교와 장교 사이에 '광장 주식회사'의 사무실이 위치하여 광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1947년 서울 지도에서는 동대문 시장으로 이름이 적혀 있다. 후에 광장이라는 한자는 바뀌었다.) 


사실 광장 시장을 드나들 때마다 도쿄의 츠키지 시장을 자주 떠올리게 되는데,  '도쿄의 부엌'이라 불리는 츠키지 시장처럼 광장시장에 별칭을 붙인다면 아마도 '서울의 푸드코트'라고 부를 있지 않을까 한다. 다양한 종류의 음식점과 노점들이 생선회에서부터 전과 빈대떡류, 순대, 떡볶이, 오뎅 등의 분식류, 고기구이, 잔치국수, 칼국수 등의 면류까지 모두 취급하고 있으니 술과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또 이만한 천국이 없지 않나 싶다. 


순희네 빈대떡의 녹두빈대떡과 완자

초빼이가 처음 광장시장을 갔던 것은 '순희네 빈대떡'의 소문을 듣고서였다. 

전과 빈대떡을 좋아하는 내게 순희네 빈대떡이라는 상호는 조금은 촌스럽지만 굉장히 매력적인 유혹이었고, 어느 순간부터 반드시 가 보아야 할 버킷리스트에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그곳을 찾아가는 길은 너무나 위험하고 많은 유혹이 도사리고 있어 절대 쉬운 길이 아니었다. 

광장시장 한 편 작은 골목에는 시장 육회의 지존과 같은 '자매집'이 그 간판을 찬란히 빛내고 있고, 길 건너편 백제약국 골목에는 냉동 육회의 지존이었던 '백제 정육점'이 여전히 버티고 있다. 

그뿐이랴. 보령약국 골목에는 자주 찾던 돼지 곱창집인 '원조 일미곱창'과 보쌈집, 치킨집 등 언제든지 거하게 한 잔 걸칠 수 있는 집들이 구석구석 포진해 있으니, 어지간한 마음가짐으로는 광장시장에 도달하기가 쉽지 않다.  


이 모든 유혹과 위험요소들을 이겨내고 광장시장(북 2문)에 어렵사리 도착하면 그제야 발걸음에 조금의 여유를 가질 수 있다. 북 2문에서 시장 안으로 20미터 정도 직진하면 왼편에 순희네 빈대떡의 붉은색 간판을 볼 수 있다. 내가 처음 이 집을 찾을 때는 가게의 간판도 지금처럼 크지 않았고, 매장도 본점 하나만 있었는데 몇 년 전부터 북 2문 입구에 분점을 한 곳 더 마련하여 더 많은 주객들을 블랙홀처럼 흡수하고 있다.  


사실 빈대떡이라는 음식은 핑계를 대기에 딱 좋은, 언제나 먹고 싶은 묘한 음식이다. 

비가 오거나 눈이 와도, 날이 춥거나 더워도, 때로는 하늘이 너무 맑아서 아니면 찌뿌둥하게 흐려서 등등 어떤 날씨라도 갖다 붙이기 좋은 핑계가 되는 음식이니 그 누가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빈대떡을 서민의 음식이라 생각하는데, 사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서울 지역에서는 큰상이나 제사상에 전을 올릴 때 빈대떡을 크게 부쳐 아래에 깔고 그 위에 다른 전이나 산적 등을 올렸다 하니 반가나 부잣집에서 만들고 소비하는 음식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예전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언제나 값싸게 먹을 수 있는 서민의 음식은 아니었던 것. 


옛 음식 서적에서는 빈대떡은 '찬'류가 아닌 '떡'의 일종으로 분류하였는데 조리법을 살펴보면 '소'를 어떤 재료로 넣는지 자세하게 나와 있기도 하다. 

1670년의 [음식디미방]에서는 빈대떡을 '빈자법'이라 부르며 '거피한 팥에 꿀을 바른' 소를 썼다고 기술했고, 1800년대의 [규합총서]에서는 '밤 고물에 꿀을 버무린 것을 소로 쓰거나 윗면에는 잣이나 대추를 박아 지진다'라고 했다. 1930년대의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서는 '여러 가지 파와 미나리와 배추 흰 줄거리를 데치고...(중략)... 쇠고기와 닭고기와 제육을 잘게 썰어...(중략)... 해삼과 전복을 불려서 저며 넣고' 만든다고 했으니 조리법과 재료에 굉장히 많은 변화가 있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출처 : 네이버 음식 백과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음식 백가지 2 중 발췌) 


이런 근거로 보면 1900년대 초반까지 빈대떡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빈자의 음식'은 아니었던 듯하다. 그러나 1943년 발표된 한복남의 '빈대떡 신사'라는 대중가요의 가사에서 '돈 없으면 대폿집에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라는 가사가 나오는 것을 보면 1930~40년대쯤부터 빈대떡은 간단한 재료로 부쳐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대중화된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마치 일본 히로시마나 오사카의 대표적인 음식인 오코노미야끼와 같은 음식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 아닐까 한다.   


순희네 빈대떡의 주메뉴 녹두 빈대떡과 완자 

순희네 빈대떡의 가장 큰 강점은 여전히 저렴한 가격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가격이 꽤 많이 오른편이지만(빈대떡 한 장 5천 원, 완자 1장 3천 원) 몇 년 전에는 빈대떡 한 장에 3천 원 그리고 완자는 3장에 5천 원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을지로가 힙스터들의 관심을 받았던 것처럼 광장시장에 대한 전 연령층의 관심이 폭발하기 시작할 때쯤의 가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요즘의 물가가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만 원짜리 한 장으로 배부르게 먹고 막걸리 한잔까지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곳은 광장시장에서도 빈대떡 집만이 유일할 테니 안심이기도 하다. 


초빼이는 사실 빈대떡보다 고기완자를 더 즐기는 편이다. 

고기의 함유량은 그렇게 높지 않으나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 있어 조금은 밋밋한 맛의 빈대떡보다는 더 좋아하는 편.(사실 요즘은 그 맛도 조금은 못 느끼게 변하긴 했지만) 게다가 씹는 식감도 녹두빈대떡보다 조금 더 낫다. 이 집의 고기완자를 먹을 때마다 '도대체 저 가격으로는 절대 좋은 고기를 쓸 수 없을 텐데'라고 의심하면서도 계속해서 탐닉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는 '강렬한 후추향으로 숨긴 약간은 불량한 그 맛' 때문이다. 이 불량함의 유혹은 도저히 끊어 낼 수가 없다. 

마치 금지된 무언가를, 아니 들키면 안 될 재료를 마구 집어넣어 만든 '가가멜의 마법 스튜'를 먹는 듯한 쾌감이랄까? 같은 시장 내의 '마약김밥'과 보다 더 강렬한 중독성도 갖추고 있는 듯하다. 


육회에 탕탕이, 홍어무침 등을 순희네에서 판매하고 있다. 이유가 알고 싶은 부분. 


지난주 마지막으로 방문하면서 느낀 아쉬움은 순희네 빈대떡에 빈대떡 외의 다른 메뉴가 너무 많이 생겨버렸다는 것. 대기업의 '원스탑 쇼핑'같은 서비스로 손님들이 다른 가게로 굳이 옮겨가지 않아도 한 가게에서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한 것 같은데, 사실은 이런 변화에 대해서는 생각할 점이 조금 있다고 본다.


순희네 빈대떡이 분점도 생기고 직원이 늘어나면서 고정비용이 급 상승하여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을 거라 짐작하지만(사실 거의 100% 확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이 남는다. 

광장시장이 '광장시장'일 수밖에 없는 가장 큰 매력 중의 하나가 다양한 음식을 파는 노점과 가게들을 옮겨 다니며 '도서관 메뚜기'처럼 안주 쇼핑을 하는 것이었는데, 이런 강점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효과가 생겨버렸다. 게다가 지금 순희네 빈대떡의 매출 규모를 짐작해보면 광장시장에서는 거의 '대기업 재벌'수준일 텐데 육회나 다른 메뉴들을 취급하게 되면서 해당 음식들을 취급하는 다른 가게들의 매출에 영향을 미치는 결과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순희네 빈대떡이 오랫동안 강조하던 '상생의 역할'을 스스로 망각한 게 아닐까 하는 우려도 든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희네 빈대떡은 여전히 만 원짜리 한 장으로 무한의 포만감과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이다. 부디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이 행복감을 전파하는 전도사의 역할을 해 주길 기대한다.


빈대떡 한 장, 고기완자 두장, 그리고 막걸리 한 병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와 광장시장 나들이가 따뜻해진 느낌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순희네 빈대떡의 개업 30주년을 한 사람의 열려한 팬으로서 축하드린다. 


[메뉴추천]

1. 1인 방문 시 : 빈대떡 1장 + 고기완자 1~2장 + 막걸리 

2. 2인 이상 방문 시 : 먹고 싶은 대로 주문 + 막걸리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주차는 인근 공영주차장을 찾을 것. 그러나 요즘 인근에 공사 중인 곳이 많다. 참고로 청계천변 노상 주차장이 자리는 많지 않지만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 편이다. (그래서 경쟁이 심하다)

2. 요즘은 웨이팅 줄을 잘 보지 못했다. 코로나의 여파일 수도 있다. 

3. 본점은 여전히 좁다. 4인용 테이블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옆사람과 어깨를 부딪힐 기회(?)가 많다. 번잡함이 싫다면 시장 입구의 분점이 조금 더 넓다. 참고로 어르신들은 여전히 본점으로 많이들 가신다. 

4. 광장시장은 서울의 푸드 코트라 할 정도로 많은 음식이 있다. 순희네에서 1차 후 시장 내 분식 노점이나 횟집, 매운탕집, 고깃집, 육회집 등 다양한 선택 거리가 있다.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간단히 먹는 '광장시장 맛집 순례'도 강추한다.  

5. 광장시장 마약김밥의 진정한 원조집은 지금처럼 메인 거리에 널려 있는 집이 아닌 시장 뒷골목의 원단을 팔던 으슥한 곳에 있었다. 그 집 사장님이 여전히 영업을 하시는지 궁금하다. 아직도 기억나는 것은 그분 노점에서 마약김밥을 파시는데, 벤츠인가 그랜저를 끌고 다니셨던 걸로 기억한다. 굉장히 플랙스 넘치시던 분이셨던 기억이.      

6. 광장시장 추천 가게로는 고향칼국수의 칼국수, 은성횟집의 대구 매운탕, 오라이 등심의 동그랑땡, 육회 자매집 등이 있다. 그리고 길 건너편 백제약국 골목에 있는 백제 정육점의 육회도 추천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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