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돼지국밥만 아는 분들에게 보내는 전라도식 돼지국밥 초대
국밥이란 음식은 대한민국에서는 참 흔하디 흔한 음식이다.
하지만 "국밥이 뭐 있나, 물에다 대충 고기 넣고 채소들 때려 붓고 양념 좀 넣고 소금 뿌리면 다 되는 거지."라고 허투루 말하는 순간, 우린 국밥에 대해 정말 씻을 수 없는 대죄를 짓게 된다.
어디 국밥 한 그릇이, 게다가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들어 온 국밥집들의 국밥 한 그릇이 어디 그리 하찮게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우리의 국밥에는 몇 천년동안 이 땅을 딛고 살아온 사람들의 삶과 애환이 스며있고 국밥을 끓여 내는 이들의 철학과 생을 관통하는 수없이 많은 사연들이 녹아 있는데.
특히나 이 집, 광주 송정역 앞에 자리 잡은 영명국밥 앞에서는 더욱 그런 말을 조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광주를 갈 때마다 반드시 들려야만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게 해 준 국밥집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2008년 영업을 시작한 광주 송정역 시장의 [영명국밥]이다.(솔직히 난 아직은 송정리가 광주라고 믿기지 않는다. 나주가 외가여서 송정리는 광주를 가던 길목에 있던 길목이었다) 고작 15년 된 국밥집을 노포라 부를 수는 없겠지만 이 집의 음식은 어지간한 노포보다 훨씬 더 인상적인 음식을 내고 있는 곳이라 부러 소개하고자 한다.
우선 영명이라는 가게 이름이 참 독특한데, 사전적인 의미로 '영명하다'라는 말은 '뛰어나게 지혜롭고 총명하다'라는 의미. 실제로 그런 의미를 가지고 상호명을 지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마도 국밥집으로서의 영명국밥을 관찰해 본다면 이 집의 상호인 '영명'이라는 단어는 너무나 이 집에 잘 어울리는 단어이다.
이 집 국밥(돼지국밥이다)의 매력은 저 맑디 맑은 육수의 부드러움과 보석처럼 빛나고 있는 내용물들의 신선함에서 기원한다. 그래서 '영명'하다. 닭발을 푹 고아 만들어 낸 저 맑은 육수는 기본적인 감칠맛과 단맛을 하나 가득 담고 있고 거기에 돼지고기와 그 부속물로 다시 삶아내어 국물의 텍스쳐가 한껏 풍부해졌다.
보통 우리가 칼국수 집에서 당연하게 맛 좋은 겉절이를 최고의 조합으로 생각하듯, 국밥이라는 음식 장르에서는 잘 익은 김치와 깍두기(섞박지)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특히 이 집 음식의 최고의 방점은 저 묵은내가 보는 것만으로도 느껴지는 잘 익은 전라도식 김치와 섞박지(깍두기)에서 찍게 된다. 서울의 어느 국밥집에서 내는 갓 만들어 낸 겉절이나 중국산 김치가 아닌 잘 익힌 수제 전라도식 김치와 깍두기이다. 게다가 무성의하게 툭 던져 놓은 듯한 마늘장아찌는 어찌 그리 맛있는지 옛 어머니가 직접 만드신 마늘장아찌가 자연스레 떠 오른다. 공장에서 납품받은 김치와 장아찌류의 반찬들의 폭력적인 맛에 상처 입은 미각이 저 장아찌 한 조각이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또한 ‘내가 바로 전라도 음식이요’라고 선언하는 듯한 저 진한 빛깔의 다진 양념을 국물에 풀어 국물 한 숟갈만 떠 입에 넣으면, (조금은 가학적일 수 있지만) 온몸을 벼린듯한 날카로운 국물이 입 속을 달군 후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전날 새벽까지 마셔) 아직 우리 몸에 남아있던(?) 13병의 소주를 한방에 몸 밖으로 내는 그런 느낌이랄까?
두 번째 숟가락에서는 ‘다신 낼부터 술 마시지 않을 거야’라는 어젯밤의 다짐을 한순간에 잊게 하는 강력한 마법을 걸어 버린다. 마치 닥터 스트레인저가 '도르마무'에게 건 최강의 마법 주문처럼 무한으로 시간을 되돌리는 것과 같다고 할까? 결국은 '이모~'를 외치며 나도 모르게 소주 한 병을 주문하게 된다.
이 집의 하이라이트는 모둠 국밥이다.
이 집에서 판매하는 모든 국밥의 재료들이 들어가는데, 그 상태가 매우 좋다. 닭발과 콩나물로 푹 끓여 만들어내는 국밥 육수의 전투력은 거의 저 세상의 텐션을 보인다. 세상의 어떤 술을 마시더라도 상처 입은 내 속을 이 국물 한 모금이면 다시 회복될 것 같은 강한 확신을 갖게 해 준다.
또한 국밥의 영원한 친구이자 기본이랄 수 있는 '질지 않은 고슬고슬한 밥'은 그릇에 통째로 넣어 말기에 딱 좋은 상태. 가끔 국밥집의 밥이 질게 지어져 국물까지 망치게 되는 상황에 굉장히 기분을 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집은 아직 한 번도 그런 배신을 한 적이 없다.(초빼이의 경험상으론 그렇다)
진한 국밥 국물에 밥을 말아 온몸 가득 국물을 품게 하면 그 자체로서 얼마나 좋은 '밥 안주'가 되는지는 술 좀 마셔본 사람들은 다 아는 진리. 요즘 SNS에 핫한 '된장술밥'이니 '청국장 술밥' 등이 그런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또한 한 숟갈 푹 뜨면 자연스레 수저 위에 올려지는 살코기, 머리 고기, 오소리감투, 순대, 그리고 내장 한 조각 한 조각들 그 어느 것 하나도 허투루 여길 수 없는 신선하고 소중한 안주가 된다는 사실도.
원래는 영명국밥은 KTX 광주 송정역을 거치는 객들의 안식처로 24시간 운영하던 곳이었다. 코로나로 인한 일상의 붕괴로 한동안 새벽 5시 반부터 11시까지로 영업시간을 변경했다가 몇 달 전 다시 이전처럼 24시간 영업을 하기 시작했다.
초빼이도 코로나로 여행과 출장을 멈추고 3년여 만에 찾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집은 여전히 그 영명함을 빛내고 있는 곳이다.
[메뉴추천]
1. 1인 방문 시 : 국밥 1+ 소주
2. 2인 방문 시 : 국밥 2+ 소주
3. 3인 이상 : 국밥 3+ 수육이나 순대 + 소주 또는 전골 + 소주도 추천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주차장은 광주 송정역 시장 주차장을 이용하면 1시간 무료.
2. 수육이나 순대도 일반적인 수준 이상이다.
3. 새끼보 수육은 호불호가 있다. 선택 시 주의하실 것
4. 근처 서울 곱창에서 술 한잔하고 약간의 기차 시간이 남아 간단하게 술 한잔 더 하고 싶다면 이곳을 추천한다. 국밥 한 그릇에 소주 한 병 정도 괜찮은 곳이다.
5. 송정 5일장(송정역 시장과는 다르다)을 들러보는 것도 추천. 장날은 3,8장으로 굉장히 많은 볼 것들이 있다. 특히 동지죽을 파는 죽집과 영명국밥보다 더 야성미 넘치는 국밥들을 내는 집들도 존재한다. 시골 5일장 여행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강추.
6. 만약 식도락 여행이나 광주 전남 지역의 여행을 위해 들렀다면, 김대중 컨벤션 센터 인근에 숙소를 잡고 움직이면 편하다. 차를 두고 지하철로도 접근하기 쉽고 시간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